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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채식 바람

[이규태 코너] 채식 바람 조선일보 입력 2002.01.16 20:11 중국에 「답파채원(踏破菜園)」이란 말이 있다. 채소밭을 짓밟아 부순다는 뜻인데 융숭한 음식대접을 받아 뱃속이 놀랐다는 치사말이다. 채식만하던 사람이 어느 날 양고기를 배불리 먹었더니 꿈에 오장(五臟)의 신이 나타나 양이 「채소밭을 짓밟고 있다(羊踏破菜園)」 해서 비롯된 말이다. 심청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 떠나가던 날 영문 모르는 찬이 건 밥상을 받은 심봉사가 「허 기름진 것 들어가면 배를 다치느라」고 한 말과 피장파장이다. 고기가 들어가면 배를 다친다는 발상은 바로 오장육부의 구조가 풀로 돼 있는 채식민족이라는 존재증명인 것이다. 한민족이 세상에서 가장 채식문화가 발달한 채식민족임은 소장(小腸)이 여느 다른 민족의 평균보다 두드러지..

이규태 코너 2022.11.29

[이규태 코너] 어린이 경제과외

조선일보 | 오피니언 입력 2002.01.17 20:36:10 어릴 적 장에 갔다오는 할아버지에게 엿 사먹고자 돈 3전만 달라고 했다가 얻지도 못 했을 뿐더러 호통만 맞았던 기억이 난다. 돈 한푼ㅡ하면 타산되지 않은 돈이지만 3전 5전ㅡ하면 타산된 돈이요, 철도 들지 않은 놈이 일찍부터 타산한다는 것에 옛 어른들은 교육적인 거부감을 가졌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서당에서 훈장이 이런 문제를 자주 냈던 기억이 난다. 두 아이가 노는데 동네 어른이 떡 세 개를 나누어 먹으라며 주고 갔다. 어떻게 나눠 먹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다. 하나씩 떡을 나누어 갖고 나머지 하나는 둘이서 똑같이 나눠 먹는다고 했을 것이다. 산술로는 맞지만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나머지 하나는 돌부처에게 바친다 해야 맞는 것으로 쳤다. 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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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은퇴자 협회

[이규태 코너] 은퇴자 협회 조선일보 입력 2002.01.18 20:21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이어' '해피 버스데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통용되고 있지만 단 한 가지 은퇴를 축하하는 '해피 리타이어먼트'는 우리나라에서 통하지 못하고 있다. 카드 파는 가게에 들어가보아도 '해피 리타이어먼트'의 카드는 살 수가 없다. 만약 그런 카드가 있어 사서 보냈다면 약올린다 해서 평생 원한을 살 것이다. 하지만 미국 카드 가게에 들어가면 은퇴를 축하하는 카드가 다양하기 그지없다. 그 인쇄된 문구를 몇 가지 옮겨보면 이렇다. 「은퇴한 나날은 행복한 나날/ 신나는 새 경치를 바라보며/ 많은 새로운 일을 하게 됐으니/ 당신은 얼마나 운이 좋은가」 「은퇴하는 마당은/ 미래를 바라보고/ 그대의 전방에서 기다리고 있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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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평화 의식’

[이규태 코너] ‘평화 의식’ 조선일보 입력 2002.01.20 19:18 이스라엘 사해(死海)변에 로마에 저항했던 이스라엘의 마사다 요새가 있다. 예루살렘을 함락당하자 유대인들은 이 요새에 포위당한 채 7년간을 버티다가 노예가 되느냐 죽느냐의 기로에서 960명이 집단자결을 감행한 비극의 현장이다. 온 세계로 이산한 유대인들이 순례하는 성지가 돼있으며 뱀길(蛇道)로 불리는 좁다란 외길을 한 시간 남짓 오르면 요새에 이른다. 이곳을 순례하는 유대인들은 예외없이 마사다의 흙을 마련해온 병에 담아가게 마련인데 비록 이산해 살고 있더라도 이 집단 자결로 과시한 유대인의 구심력(求心力)을 그들의 피가 스민 그 흙에서 얻고자 함일 것이다. 그래선지 이산해 살고 있으면서 과시되는 강력한 유대인의 단결력을 마사다 정신..

이규태 코너 2022.11.29

전광진의 '하루한자와 격언'[1275] 出頭(출두)

出 頭 *날 출(凵-5, 7급) *머리 두(頁-16, 6급) 화(禍)나 복(福)! 결국 누가 불러들인 것일까? 답을 알아야 화를 당하지 않고 복을 받을 수 있다. 먼저 ‘암행어사 출두요!’의 ‘出頭’란 한자어의 속뜻을 알아본 다음에... 出자는 산(山)이 겹친 것으로 보기 쉬운데, 사실은 반지하의 움집을 가리키는 凵(감)에다 ‘발자국 지’(止)가 잘못 바뀐 屮(철)이 합쳐진 것이다. 발자국이 집 밖을 향하고 있는 것을 통하여 ‘(밖으로) 나가다’(go out)는 뜻을 나타냈다. 頭자는 ‘머리’(the head)를 뜻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머리 혈’(頁)이 의미요소로 쓰였고, 豆(제기 두)는 발음요소일 따름이다. 후에 ‘우두머리’(the boss) ‘첫머리’(the start) ‘끝’(the tip) ‘..

전광진의 '하루한자와 격언' [1274] 陽氣(양기)

陽 氣 *볕 양(阜-12, 6급) *기운 기(气-10, 7급) 열심히 했는데도 원망을 듣는 수가 있다. 원성을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양기가 부족하면 몸이 쉽게 지친다’의 ‘陽氣’가 뭔 말인지 알아본 다음에... 陽자는 햇빛이 내리 쪼이는 모습인 昜(양)과 산비탈(언덕)을 뜻하는 阜(부)가 합쳐진 것으로, 남쪽으로 강이 흐르고 북쪽으로 산을 끼고 있는 지역, 즉 ‘양달’(a sunny place)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태양’(the sun)․‘햇빛’(sunshine)․‘밝다’(bright) 등으로도 쓰인다. 氣자는 ‘쌀 미’(米)가 의미요소로 쓰인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남에게 음식을 대접하다’(treat a person to a meal)가 본뜻이었고, 气(기)는 발음요소다. 후..

[이규태 코너] 백제성(白帝城)

[이규태 코너] 백제성(白帝城) 조선일보 입력 2002.01.21 20:26 세상 물정 모른다는 뜻의 「야랑자대(夜郞自大)」라는 말이 있다. 장강(양자강·楊子江)의 수원인 사천성 깊은 산골에 야랑(夜郞)이라는 미개국이 있었는데 한(漢)나라 사신이 처음 이 나라에 들렀을 때 「한나라가 우리나라만큼 크냐」고 물었다 해서 생긴 말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이 안녹산의 난에 연루되어 이 야랑국으로 귀양가면서 삼협(三峽)을 역류하면서 「사흘 아침 사흘 밤이 걸려/수염이 희어졌다」고 읊었는데 백제성에 당도하자 은사(恩赦)의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배를 돌려 「만겹 산들을 뚫고/하루아침에 삼협 천리 물길을 빠져나왔다」고 읊었다. 장강을 가로막는 삼협 서쪽 입구인 백제성(白帝城)은 중국의 서반(西半) 산간부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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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용간란 할머니

[이규태 코너] 용간란 할머니 조선일보 입력 2002.01.22 19:45 옛 선비나 부호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에 대한 책이 엊그제 본지에 소개되었다. 12대 만석꾼 9대 진사를 배출한 경주 최부잣집의 철학은 만석 이상의 재물은 못사는 사람에게 베풀고 백리 주변에 굶는 사람을 없게 하며 벼슬은 진사 이상 하지 않음으로써 부(富)와 벼슬과 권력 때문에 척 짓지 말고 살라는 것이었고 그 때문에 한국사상 유일무이하게 부와 덕망과 이름을 10대 이상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에는 서양사회에 있어 '귀족신분의 의무'란 뜻이었으나 한국의 전통 상류사회에도 이처럼 정신적 의무가 주어져 있었고 서민층의 하류사회에도 나름대로의 정신적 기틀이 잡혀 있었다. 옛날 어머니들은 시집 간 딸이 사위에게 얻어맞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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