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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즉석 피임약

[이규태 코너] 즉석 피임약 조선일보 입력 2002.01.23 20:25 성관계 후 사흘 안에 두 차례 먹으면 임신을 피할 수 있는 피임약 「노래보정」이 발매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문란해져 있는 성의식을 타락시킨다 하여 그 발매를 두고 많은 저항을 받아왔던 즉석 피임약이다. 성을 둔 종족보존의 회임(懷妊)과 환락도구로서의 피임(避妊)은 역사가 생긴 이래 반비례의 가치관으로 상충해왔으며, 이제 명분은 전자를 유지하되 실속은 후자가 판칠 수 있는 멍석을 깔아놓은 셈이 됐다. 피임의 역사는 회임의 역사와 더불어 했으며, 전자는 공개적인데 후자는 은폐적이었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피임의 원시적 방법으로 질 속에 회임을 방해하는 물질을 미리 넣어두었다. 주로 해초를 썼고, 희랍·로마시대부터 해면(海綿)을 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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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人情 담보대출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人情 담보대출 입력 2002.01.24 20:34:18 혈연의 농도를 촌수로 나타내는데 삼촌(三寸)까지만 있고 이촌(二寸) 일촌(一寸)은 없다. 따질 필요가 없을 만큼 피의 결속농도가 진하다 해서 가리지 않을 뿐이지 이촌은 형제 간이요 부모와 자녀 간이 일촌이다. 반촌(半寸)이란 말도 쓰는데 일촌은 자녀측에서 본 부모와의 인정 밀도요,반촌은 부모측에서 본자녀와의 인정 밀도다. 곧 이 세상에서 가장 인정이 짙은 관계가 부모와 자녀 간인 것이다. 그러했기로 신은 아브라함의 신심을 시험하고자 늘그막에 낳은 아들의 희생을 요구했다. 이스라엘의 영웅 에프타는 개선하는 그를 반겨 맨 처음 달려오는 사람을 희생시키는 조건으로 지배자가 될 것을 신탁(神託)받는다. 그의 외동딸이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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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덕 은행

[이규태 코너] 도덕 은행 조선일보 입력 2002.01.25 20:43 중국 장사(長沙) 인근 마을에서 시작된 도덕은행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도덕은행이란 남이 불행을 당했을 때 봉사나 금품으로 돕고 이를 은행에 돈 맡기듯 저축해놓고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르는 자신의 불행에 대비, 그 저축 선행을 찾아쓰는 제도다. 무형의 봉사를 저축할 때에는 그 봉사 현장의 이장이 봉사 시간을 확인하는 증명서를 떼어 주고 이를 도덕은행에 맡기면 1시간을 5위안으로 환산 통장에 올린다. 19세기에 중국에서 오래 살았던 아더 스미스의 「중국인 성정론(長沙論)」에 이런 목격담이 적혀 있다.「말을 타고 가던 한 부인이 낙마를 하여 땅바닥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데 이를 보고도 마부는 모른 체하고 말을 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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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실버 시터

[이규태 코너] 실버 시터 조선일보 입력 2002.01.27 18:56 전통 사회에서 효자의 조건으로 '노모에게는 책비, 노부에게는 입담꾼ㅡ'이란 말이 있었다. 늙으신 어머니에게는 책 읽어드리는 계집종을 드려 이야기책을 읽어드리고 늙으신 아버님에게는 떠돌아다니며 우스개 이야기를 해서 웃기는 입담꾼을 드려 웃기게 해드림으로써 효도한다는 뜻이다. 외로운 노인들 말동무해주고 산책 같이하며 고독을 덜어주는 신종 직업 실버 시터의 전통적 존재형태랄 수가 있다. 책비는 부름을 받고 가 누워 있는 마님 머리맡에서 이야기 책을 읽어드리는데 그 격앙과 어조로 울리고 웃기기를 마음대로 했다. 대가는 이야기 듣는 노모를 얼마나 많이 울려서 눈물을 흘리게 했는가로 값이 오르내렸는데 수건 하나를 적셨을 때 한 짠보, 석 장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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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불로장수약

[이규태 코너] 불로장수약 조선일보 입력 2002.01.29 13:40 한국인 과학자가 주도하는 미국의 한 연구팀이 빈혈 치료제의 영향을 실험하던 중 우연히 수명을 연장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인체 구조와 유사한 점이 많은 파리에다 실험해보았더니 무려 50%나 수명이 연장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 여산릉에 묻힌 진시황이 몸을 일으켰을 충격적인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진시황은 삼신산에 있다는 불사약을 구하러 서시를 파견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연(燕)나 라 술사인 노생(盧生)을 갈석산으로 손수 찾아가 선문고(羨門高)라는 신선이 갖고 있다는 불로불사약을 구해오도록 시켰었다. 한무제(漢武帝)가 사냥을 갔을 때 이상한 달무리같은 원광이 떠있는 것을 보고 찾아갔더니 백발 홍안의 노인이 걷고 있었다. 나이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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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非理와 선비

[이규태 코너] 非理와 선비 조선일보 입력 2002.01.29 20:23 권력에는 불법과 비리가 세균처럼 기생하는 데 고금이 다르지 않다. 권력이 집중될수록 기생이 심하게 마련이요, 전통사회에서 이 권력형 비리를 억제해온 것은 지배 엘리트들의 마음의 그릇을 이루고 있던 선비정신이었다. 세종 때 집현전 학사들로 하여금 「역대병요」를 편찬시켰는데, 단종 1년에야 완성되었다. 편찬 책임자인 수양대군이 편찬에 참여한 학자들에게 벼슬 한 등급씩을 올려주는 상을 내렸다. 한데 후에 사육신이 되는 하위지만이 승급 상여를 거부했다. 은혜가 임금으로부터 내린 것이라면 몰라도, 정국이 불안한데 대군이 상을 내린다는 것은 저의가 드러나 보인다는 이유에서 상을 거절하고 낙향해 버렸다. 이처럼 비리가 아닌데도 낌새가 이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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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단명 장관

[이규태 코너] 단명 장관 조선일보 입력 2002.01.30 19:52 갑오개혁 이래 일제의 강제 병탄에 이르는 16년 동안 서울시장이랄 한성판윤(漢城判尹)이 꼭 70명이나 바뀌고 있다. 한 판윤당 80일간씩 근무한 꼴이다. 갑오년 한 해만도 21명의 판윤이 갈렸으니 보름에 한 사람씩 갈린 셈이다. 이민승 같은 이는 판윤으로서 재직이 불과 이틀밖에 안 되었다. 비단 한성판윤뿐 아니라 다른 벼슬들도 한통속이었으니 나라를 위해 벼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벼슬이 있어왔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는 조상들의 맹렬한 벼슬 지향을 말해주는 것이 되며 단 며칠이라도 벼슬에 있고자 하는 이 한국인의 변수가 무엇이었을까. 벼슬을 했다 하면 속된 은어로 「눈꽃이 피었다」고 했다. 벼슬 잔치를 육화무(六花舞)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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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계약 연애

[이규태 코너] 계약 연애 조선일보 입력 2002.01.31 20:30 당나라 위고(韋固)라는 이가 밤중에 길을 가는데 한 노인이 달빛 아래 커다란 보따리를 멘 채 누워 책을 뒤지고 있었다. 그 보따리 속에 뭣이 들어있느냐고 묻자 붉은 끄나풀들이 들어 있다 했다. 뭣에 쓰는 끈이냐고 묻자 남녀가 부부로서 궁합이 맞았을 때 맺어주는 연(緣)끈이라 했다. 이 이야기가 씨알이 되어 중매쟁이를 월하노인(月下老人))이라 했다. 이 연끈을 얻어다가 좋아하는 여인과 발을 묶었으나 조석으로 싸움만 하고 끝내 파경하고 말았다. 이에 월하노인을 찾아가 항의를 했더니 뒤져보던 책을 내보이며 이 책에 적혀있는 맞는 궁합을 찾아 묶어야 한다는 것이다. 해로할 연분이란 숙명적임을 말해주는 고사다. 우리나라에도 궁합을 나막신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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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법율용어 考

[이규태 코너] 법율용어 考 조선일보 입력 2002.02.01 19:38 선조 때 서울 운종가에서 아내의 간통을 적발한 남편이 아내의 국부를 돌로 쳐 죽인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다룬 관가에서는 조서를 꾸미는데 국부의 표현을 두고 고민하였다. 성(性)을 천대하는 삼강오륜이 지배하는 사회였기에 성기를 나타낼 법률용어가 없었고, 여염에서 쓰는 상스러운 말을 쓴다는 것은 선비로서 파계(破戒)가 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우회적 법률용어가 탄생하고 있다. 함양 선비 오일섭(吳一燮)이 생각해낸 것으로, 「모나지 않은 돌로(以無方之石) 차마 보지 못할 곳을 때려죽였다(打殺不忍見之處)」 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로 성색(性色)표현을 기피하는 기색(忌色)문화권의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 성기를 나타내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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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부즈카시

[이규태 코너] 부즈카시 조선일보 입력 2002.02.02 20:05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기 이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근교를 지나면서 이 나라의 국기(國技)라는 피 비린 마상투기(馬上鬪技)를 구경한 일이 있다. 기마민족의 용맹을 기르는 부즈카시라는 이름의 이 경기는, 넓은 황무지 복판에 목 잘린 양 한 마리를 놓아두고 양편으로 가른 기사(騎士)들이 이 양을 뺏고 빼앗겨가며 붉은 깃대를 세워둔 골에 던져놓는 편이 이긴다. 말끼리 부딪쳐 물고 차고 기어오르고 마상의 선수들끼리 채찍질하며 싸우기로, 낙마를 하여 짓밟히고 말에 끌려 달리기도 하는 북방 기마민족의 원시 스포츠랄 것이다. 아프간 사람들이 그토록 즐겼던 이 부즈카시를 탈레반 정권이 금지시켜 내리다가 탈레반 축출과 더불어 등장, 여가를 독점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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