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蟹戒

[이규태 코너] 蟹戒 조선일보 입력 2002.07.01 18:58 우리 옛 선비들이 후학이나 자제들에게 내린 교훈 가운데 해계(蟹戒)라는 게 있었다. 게의 생태에서 인생의 교훈을 얻은 것이다. 지금 꽃게철에 서해안 남북 경계선 남쪽에서 꽃게어장 보호를 빌미로 한 무장충돌이 또 일어나 북측의 속셈이 뭣인가 의아해하고 있다. 이 의아심이 옛 선비들이 내렸던 해계와 고스란히 들어맞는 것 같아 되뇌어보고 싶어진 것이다. 게의 별명이 무장공자(無腸公子)다. 겉인 게딱지는 단단하여 외모는 공자(公子) 같으나 속은 창자가 없어 실속이 없다 해서 얻은 별명이다. 곧 표리부동(表裏不同)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 그 첫째다. 남북해빙을 내세우고 동해에서는 금강산 관광으로 유람선이 오가는데, 서해안에서는 포화를 쏘아 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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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충무공상과「弔旗」

[이규태 코너] 충무공상과「弔旗」 조선일보 입력 2002.07.02 19:30 월드컵 성공 축제가 벌어졌던 어제, 시청 앞에서 광화문으로 가는데 행인이 하는 말이 들렸다. "어, 충무공상 앞에 조기(弔旗)가 걸렸네." 동상 바로 앞에 갸름한 장방형의 검은 깃발모양의 것이 드리워져 있어 누가 보아도 조기를 연상하게 돼있었다. 서해 무장충돌 사건의 미온적인 대처를 두고 해전의 영웅인 충무공 정신의 증발을 통탄하는 민심의 반응이거나, 우리 해군 함정이 격침당하고 그에 대한 응분의 반격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충무공에 대한 사죄의 민심이려니 했다. 한데 보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검은 깃발이 아니라 검은 상자들을 여러 개 길쭉하게 연결시켜 대형 크레인에 매달아놓은 고성능 스피커였다. 축제의 음향효과를 위한 장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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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울음 銃彈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울음 銃彈 입력 2002.07.03 19:48:02 아기들이 잘 우는 이유로 셰익스피어는 리어왕으로 하여금 이렇게 부르짖게 했다. 「바보들만이 사는 세상이라는 큰 무대에 타의에 의해 밀려나온 것이 억울해서 그렇게 신경질적으로 울어댄다」고. 연전 타임지에 보도된 바로 아기가 어른도 낼 수 없는 그렇게 큰 주파(周波)로 울 수 있는 것은 인생 최초의 단절에서 느끼는 비애 때문이라 했다. 태아로 있을 때 자궁 속에서 유일한 외계와의 접촉은 어머니의 맥박 소리가 전부였다. 태어나면서 그 소리의 단절이라는 인생 최초의 환경 이변을 당하고는 불안하고 못 견뎌 운다는 것이다. 우는 아기 달랠 때 가슴을 다독거려주는 것이나 자장가 박자가 심장 박동 리듬과 같은 것은 바로 그 환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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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비양도

[이규태 코너] 비양도 조선일보 입력 2002.07.04 21:30 날아오른다는 뜻인 제주도 비양도(飛揚島)가 이름대로 뜨고 있다. 바다에서 솟아오른 지 1000년 되는 한반도의 막둥이 섬으로 올해에 1000년 돌을 맞아서뿐 아니라 「내셔널지오그래픽」지가 흙 한줌 돌멩이 하나하나 섬 전체가 자연사 보물섬이라고 평가하고 유명한 외국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취재해가고 있을 만큼 국제적 관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1000여년 전만 해도 한반도의 지반은 불안했다. 그 전후로 북단인 백두산의 대폭발이 있었고 남단인 제주도 근해에서는 해저 폭발로 섬이 생겨났다. 제주도 서해안의 분출에 관해서는 고려 목종(穆宗)5년(1002년) 6월과 10년(1007년)의 두 차례 기록이 있는데, 두 번 분출한 것인지 첫 번째 분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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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地名의 왜색청소

[이규태 코너] 地名의 왜색청소 조선일보 입력 2002.07.05 19:32 이명박 서울의 새 시장은 서울의 지명에 남아있는 왜색을 청소하기로 하고 관계 연구소로 하여금 작업에 착수케 했다. 지명은 함부로 고쳐서 안 되는 문화재요 역사인 것을 한문문화가 들어오면서 한문화해 파괴를 하고 일본이 지배하면서 오염시켜 본 지명에 덧칠에 덧칠을 가해왔다. 이를테면 을지로의 원지명은 구리개인데 한문이 들어오면서 동현(銅峴)이 되고 일제 때는 구리보다 황금이라하여 황금정(黃金町)으로 때를 묻히더니 광복 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을지로(乙支路)가 되고 말았다. 충무로(忠武路)란 지명은 충무공의 생가가 있는 마르내(乾川)길에 붙여야 옳았고 지금의 충무로는 본명인 진고개길로 했어야 옳았다. 가장 기구한 지명 유전(流轉)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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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八角 神宮

[이규태 코너] 八角 神宮 조선일보 입력 2002.07.07 19:41 신라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경주 나정(蘿井)은 돌담으로 둘러싸 사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그 담이 낡아 보수하는 과정에서 팔각형의 목조건물 기단(基壇)을 발견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 변 길이가 8m요 총 건물폭이 20m인 신당(神堂) 건물로 박혁거세를 모셨던 신궁(神宮)터로 추정하고 있다. 신라 건국 이전의 서라벌에는 육촌(六村)이 있었는데 그중 고허촌장 소벌공이 나정 옆 숲 사이에 말이 무릎꿇고 있는 것을 보고 가보았더니 홀연히 말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커다란 알 하나가 있어 깨어보니 아이가 태어났고 이 아이가 후에 신라시조가 됐다고 「삼국사기」는 적고 있다. 나정으로 추정된 곳에 가로 세로 1m 남짓의 화강암 돌을 덮어 박혁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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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失踪 戰士

[이규태 코너] 失踪 戰士 조선일보 입력 2002.07.08 19:03 사람이 죽으면 맨 먼저 지붕에 올라가 고인이 입었던 체취(體臭)스민 저고리를 흔들며 떠나가는 혼백을 불러들이는 초혼(招魂)을 한다. 이처럼 죽으면 육신에서 분리된 혼백이 이승과 저승의 중간 공간인 중공(中空)을 헤매는 것으로 알았다. 육신이 가족들에 의해 묻히고 제사가 지나면 영혼도 잠들 수 있으나 버려진 채 찾지 못하면 영혼은 영원히 중공을 울어 헤매며 그 원한이 불행을 몰아오는 것으로 알았다. 마을마다 동구밖 숲거리에 이끼낀 돌무더기를 볼 수가 있다. 서낭당이라고도 불리는 여단( 壇)이다. 전장에 나갔다가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거나 염병 등으로 객사한 사람의 방황하는 혼백을 불러들여 제사지내는 상설 제단이다. 이같은 영혼관 때문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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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풍선 효과

[이규태 코너] 풍선 효과 조선일보 입력 2002.07.09 19:03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여성경찰대회에서 매춘 단속으로 기억되고 있는 김강자(金康子) 총경이 매춘단속의 풍선효과에 대한 주제발표가 있어 눈길을 끌었다. 사창가를 단속하면 매춘녀들은 마치 밑둥 잘린 풍선처럼 그 현장을 떠나긴 한다. 떠오른 풍선이 터져 사라지면 좋겠지만 너울너울 날아 어디선가 다시 자리 잡으니 풍선을 이동시킨 효과밖에 없음을 통계로 제시한 것이다. 특정지역에서 단속 150명을 이주시켰는데 뒤를 추적했더니 143명이 다른 곳에 가서 매춘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풍선효과는 옛날부터 있어왔다. 태종 11년에 조정에서 창기(娼妓)를 폐하는 논의가 있었는데 모든 조정신하들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매춘제도의 폐지를 찬성했으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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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景德鎭

[이규태 코너] 景德鎭 조선일보 입력 2002.07.11 20:19 인조 때 한양의 벼슬아치나 사대부 사이에 춘희자(春 子)라는 음란(淫亂) 조각 도자기가 꽤나 번져있었던 것 같다. 「공사견문록」이라는 문헌에 보면 국사를 의논하는 조정에 까지 남녀가 음희(淫 )하는 춘희자가 놓여있었으며, 인조가 이를 알고 조야(朝野)가 음란물을 좋아하는 것은 변란의 조짐이라 한탄하고 이를 치우도록 하고 있다. 이 춘희자는 중국에 사신길 갔던 사행들이 돌아올 때 상관들에게 바치는 선물로 상식화돼 있었으며, 하인을 일부러 춘희자의 원산지인 중국 강서성(江西省) 경덕진(景德鎭)까지 보내 무더기로 사왔던 것이다. 경덕진은 송나라 때 황실의 각종 그릇을 대기 위해 만든 어기창(御器敞)으로 청나라 광서제(光緖帝)를 마지막으로 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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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미국 산불 기우제

[이규태 코너] 미국 산불 기우제 조선일보 입력 2002.07.12 20:01 맹렬한 산불에 위협받고 있는 미국 애리조나에서는 인디언 간에 전해 내린 전통 기우제들이 재현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산불이 아파치족의 보호마을까지 번지자 인디언들이 성지에 모여 비 뿌리듯 물을 뿌리고 다니며 비를 부르는가 하면, 개구리를 담은 항아리를 치며 주문을 외우고, 아가씨들이 손잡고 돌며 음란한 춤을 추어 비를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여기에서 주의하게 된 것은 미국 기우제의 방식이 한국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점이다. 우리 전통 기우제로 가장 흔한 것이 부녀자들이 강가에 모여 키에 물을 담아 나르게 하여 물 새는 것이 마치 장대비 내리듯 하게 하는 것이다. 공감주술(共感呪術)이라 하여 비슷한 것끼리는 서로 공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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