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餘暇 學會

[이규태 코너] 餘暇 學會 조선일보 입력 2002.07.14 19:24 강직한 선비 최영경(崔永慶)이 진주에 은퇴해 사는데 유성룡(柳成龍)이 찾아보았다. 이때 최영경은 집에서 기르던 학 한 마리를 어깨에 얹고 나와 맞았다. 백마디 말보다 그 학이 주인의 심지를 대변해주었다. 이처럼 세속을 등지고 사는 선비들끼리 학계(鶴契)를 맺고 학 한 마리씩 길러 콘테스트를 하는데 아침 꽃 이슬로 학 볏을 매일 닦아주면 선홍빛이 더하고 시 읽는 소리를 많이 들은 학 눈일수록 오묘하다는 등 양학(養鶴)으로 누구의 학 볏이 보다 고운가, 누구의 학성(鶴聲)이 보다 멀리 떨치는가, 누구의 학 눈이 보다 멀리 보는가 등 열 가지를 겨룬다 하니 고상한 여가 이용이 아닐 수 없다. 한겨울에 나무 함지에 물을 담아 한데다 놓아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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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검찰총장

[이규태 코너] 검찰총장 조선일보 입력 2002.07.15 19:03 중위(中尉)하면 초급장교의 계급 이름이지만 옛 한(漢)나라 때에는 범법을 다스리는 최고직위였으니 검찰총장격의 벼슬 이름이었다. 한무제(漢武帝) 때 그 중위 벼슬에 지엄했던 질도( 都)라는 이가 있었다. 경제(景帝) 때 태자로 책봉된 적이 있었던 임강왕(臨江王)이 살 집을 넓게 지으면서 범법했기로 질도에 의해 잡혀든 몸이 되었다. 임강왕은 아우인 집권황제 무제(武帝)에게 자신의 무죄를 석명하는 글을 쓰고자 붓과 주머니칼을 요구했으나 질도는 엄명을 내려 그것이 옥에 들지 못하게 했다. 임강왕은 친할머니인 두태후(竇太后)와 내통, 석명서를 써올리고 그 작은 칼로 자결을 했다. 태후의 분노로 질도는 한동안 벼슬을 떠나 있었으나 권력보다 법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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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楚腰

[이규태 코너] 楚腰 조선일보 입력 2002.07.16 18:57 「전당시(全唐詩)」에 시가 수록된 당나라의 미녀 시인 설요영(薛瑤英)은 신라 아가씨다. 당나라에 들어가 대장군으로 전사하여 당태종이 손수 옷을 벗어 시신을 덮어주었다는 설계두(薛 頭)의 딸로 실학자 이덕무(李德懋)는 고증했다. 설요영은 허리 가는 미녀였던 것 같다. 양염(楊炎)의 「증(贈) 설요영 시(詩)」에 보면 가벼운 걸음 옥산(玉山)을 걷듯 먼지가 일지 않고 버들가지 같은 초요(楚腰) 봄이 시샘한다 했다. 초요는 지극히 가는 허리란 뜻이다. 초(楚)나라 영왕(靈王)이 허리 가는 여인을 사랑했기로 궁녀들이 밥을 줄여 날씬해지려다 굶어죽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전국책」에 보면 궁녀들이 부축하지 않고는 일어서질 못하고 일어서도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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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태극기 패션

[이규태 코너] 태극기 패션 조선일보 입력 2002.07.17 19:18 상여에 앞세워 들고 가는 공포(功布)라는 게 있다. 장방형의 삼베 깃발로, 관을 묻을 때 이로써 관을 닦기 위한 것이라는데 망인의 영혼이 마지막 깃드는 베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인지 30여년 전만 해도 아들을 낳고 싶은 부녀자들의 공포를 서로 차지하려는 장지(葬地)싸움이 신문에 이따금 보도되곤 했다. 이 공포를 얻어다 속곳을 지어 입으면 그 베에 서려있는 주력(呪力)으로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여긴 때문이다. 신미년에 미 극동함대가 강화도 광성포대를 공략했을 때 상륙한 선발대는 그 포대에 세워져 있던 장군기(將軍旗)인 대형 수(帥)자 기부터 노획하려 들었다. 전진에서 깃발을 빼앗으면 승리, 빼앗기면 패배를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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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亡人 移民

[이규태 코너] 亡人 移民 조선일보 입력 2002.07.18 19:36 남해의 낙도인 거문도(巨文島)에 영국 수병(水兵)의 무덤 세 개가 있다. 1885년 러시아의 남하를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영국 군함 8척이 도웰 제독의 지휘 아래 거문도를 점거하는 동안 그 섬에서 죽은 병사들의 무덤이다. 함대가 철수할 때 이 무덤은 고스란히 두고 떠났으며 2차대전 후 묻힌 병사의 후손이 찾아왔는데도 초라한 나무 십자가 아래 꽃 한송이 놓고 간 것이 고작이었다. 죽으면 한국 사람들처럼 가족이나 고향, 고국과 끈끈한 맺어짐이 없이 그저 죽은 곳에 묻히면 그만인 서양사람이다. 파리 에펠탑 인근에 있는 폐병원( 兵院) 지하의 나폴레옹 무덤에 가장 열심히 들르는 것이 영국 관광객들이다. 그 이유를 물으면 나폴레옹이 정말로 죽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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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왼손잡이법

[이규태 코너] 왼손잡이법 조선일보 입력 2002.07.19 18:47 구약성서에서 가나안 땅을 수복하는 벤자민족의 전투 이야기가 나온다. 모두 2만6700명이 모여 싸우는데 그중 700명이 왼손잡이로 이들이 투석을 하는데 한가닥 털도 명중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했다. 그 비율로 보아 왼손잡이는 3%의 소수였음을 알 수 있다. 석기시대로 소급, 원시인이 썼던 석기 354개를 분석했더니 왼손잡이와 오른손잡이가 동수였던 것이, 청동기시대 이래로 왼손잡이가 상대적으로 줄어 오늘에 이르렀다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한 한 나라는 전 국민이 왼손잡이였다는 기록도 없지 않으나 지금은 왼손잡이를 전 인류의 4%로 잡는 것이 상식이 돼있다. 운명의 여신은 생명의 실을 오른손에 들고 있고, 사냥의 신인 아르테미스는 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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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三步一拜

[이규태 코너] 三步一拜 조선일보 입력 2002.07.22 18:52 불교의 예배에는 공경도의 정도에 따라 9등급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가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ㅡ하는 말로써 찬불하는 것이요, 둘째가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하는 것이며, 세번째가 두손을 맞잡고 높이 들어 읍(揖)하는 것이다. 합장하여 허리를 숙이는 것이 넷째요, 무릎을 굽히고 한쪽 발을 꿇는 것이 다섯째 여섯째다. 손바닥과 무릎을 땅에 대고 엎드리는 것이 일곱째요, 인체의 오륜(五輪) 곧 두 무릎 두 팔꿈치를 땅에 대는 것이 여덟째며, 아홉번째가 오체투지(五 投地)로 공경도가 가장 높은 배례다. 발을 가지런히 몸을 바르게 하고 합장을 하고서 고개를 숙인다. 손으로 옷을 들어올리며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이어 왼 무릎을 착지시킨다. 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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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아프리카 연합

[이규태 코너] 아프리카 연합 조선일보 입력 2002.07.21 17:34 유럽 연합(EU)을 본뜬 아프리카 연합(AU)이 출범했다. 그렇다면 아시아 연합도 시급해진 오대(五大) 연합국 체제의 지구촌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다. 1900년 아프리카계 미국 변호사 윌리엄스에 의해 시작된 팬 아메리카니즘 운동이 1963년에 발족한 아프리카 통일기구(OAU)를 징검다리로 하여 1세기 만에 열매를 맺은 셈이다. 해외지식에 굶주렸던 18세기 우리나라의 실학자들에게 아프리카는 리미아(利未亞)로 알려졌으며 그 나라에는 별의 별 생김새의 야수들이 많아 서로 교미를 하여 새로운 야수들을 양산한다는 동물 왕국이라는 인식이 고작이었다. 이 인식은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변함이 없으며 더 아는 것이 있다면 빈곤과 쿠데타가 잦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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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반순이

[이규태 코너] 반순이 조선일보 입력 2002.07.23 19:16 사람 때가 묻은 야생동물의 비극적 말로에 대한 교훈으로 당나라 학자 유종원(柳宗元)이 지은 「임강(臨江)의 사슴」이라는 게 있다. 임강에 사는 한 사람이 사냥을 갔다가 사슴새끼 한 마리를 잡아왔다. 이를 안고 끼고 애지중지 기르는데 개들이 달려들면 이를 꾸짖고 패고 했기에 개들도 주인 눈치를 보고 사슴 새끼에 아부, 함께 뒹굴고 싸워 져주곤 하며 자랐다. 이렇게 3년이 지난 후 처음으로 집 밖에 나들이를 했다. 뭇 동네 개들이 응얼대자 사슴은 집안에서 하듯 어울려 응석을 부렸다. 개들은 달려들어 물어댔고 사슴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임강의 사슴은 왜 이렇게 죽어가야 했는지 모른 채 식어갔다. 40여년 전만 해도 설악산 인근마을에서 새끼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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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뻐꾸기 인간

[이규태 코너] 뻐꾸기 인간 조선일보 입력 2002.07.24 18:48 오목눈이라는 작은 새가 제 몸집보다 10배나 큰 뻐꾸기 새끼를 먹여기르는 장면이 포착되어 어제 보도되었다. 뻐꾸기는 제집을 짓지 않고 꾀꼬리 등 다른 새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놓는다. 낳아 맡긴 알이라하여 탁란(託卵)이라고 하나 실은 속임수로 낳아놓는 사란(詐卵)이다. 그럼 제 알인 줄 알고 품어 부화시키는데 뻐꾸기 알이 일찍 부화, 다른 알들을 둥지 밖으로 떼밀어 깨트려 버린다. 그것도 모르고 제 새끼인 줄로만 알고 먹이를 날라다 먹여 기른다. 그래선지 뻐꾸기의 이미지는 세계적으로 좋지가 않다. 호(胡) 뻐꾸기 우는 소리를 「궈다사체(郭打殺妾) 이바이바거(一百八個)」로 듣는다. 곽(郭)이라는 사나이가 그의 첩을 108번 때려서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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