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呪術 축구

[이규태 코너] 呪術 축구 조선일보 입력 2002.06.06 22:29 월드컵에 진출한 5개 아프리카 팀 가운데 나이지리아를 제외하고는 팀에 주술사(呪術師)를 참여시키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자기 팀을 승리로 이끄는 데 초자연적인 주술을 부린다는 것이 된다. 아직도 지구촌에는 주술이라는 원시적 사고방식이 도처에 남아 있으며, 그것이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있음이 월드컵에서 입증된 셈이다. 명성황후는 정동에 있는 단골 무당을 시켜 앙숙이던 대원군을 저주(詛呪)한 사건이 있었다. 신당에 대원군 화상을 그려붙이고 왼손으로 활을 쏴 맞히기를 거듭했던 것이다. 같은 것끼리는 같은 효과를 낸다는 유감주술(類感呪術)로 앙숙을 육체적으로 해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제주기생 애랑은 떠나가는 배비장에게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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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책방 이야기

[이규태 코너] 책방 이야기 조선일보 입력 2002.06.07 19:13 개화기 서울의 책방들은 종각(鐘閣)에서 수표교 돌다리에 이르는 길가에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었다. 전통 책방은 둘로 갈라볼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속칭 양반책방으로 책만 파는 전용 전방이다. 전방 안에 깔아놓은 판자에 책을 펴놓긴 했으나 값지고 품위있는 책은 숨겨놓고 팔기에 안에 들어가 주인에게 물어야 다락에서 꺼내 놓았다. 주인은 갓을 쓰고 장죽을 물고 거만했다고 외국인들이 적고 있음으로 미루어 고급문화를 파는 긍지와 체통을 지녔던 것 같다. 양반책방과 대비해 상놈책방으로 속칭되었던 다른 하나는 담배·쌈지·망건·붓·종이 등 잡화를 파는 노점상이 한쪽에 대중적인 책을 늘어놓고 팔거나 빌려주기도 하는 세책가(貰冊家)다. 양반집 마님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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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축구와 아펜젤러

[이규태 코너] 축구와 아펜젤러 조선일보 입력 2002.06.09 23:46 한국과 잉글랜드의 사전 축구대결이 비겼을 때 한국 축구의 내력을 아는 사람들은 남다른 감회에 젖었었다.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났던 1882년 6월 영국 군함 플라잉피시호가 제물포에 입항, 닻을 내렸다. 러시아의 남하에 민감했던 때인지라 견제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상륙허가를 받지 못했기로 배 안에만 있기에 답답했던 선원들은 부두에 내려와 공을 찼다. 부둣가의 아이들은 신기하게 바라보았을 것이요, 끌어들여 같이 찼던 것이 한국 축구의 시작이다. 그렇다면 한국과 잉글랜드 전은 한국에 축구가 들어온 지 120년 만의 재대결인 셈이다. 공식으로 유럽축구가 들어온 것은 1900 년대 초의 외국어학교인 것만은 틀림없으나 프랑스어 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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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히딩크 경영학

[이규태 코너] 히딩크 경영학 조선일보 입력 2002.06.10 16:41 한국축구를 단시일에 발전시켜 국제적 위상을 높여 놓은 히딩크 감독의 경영 수법이 축구 이외의 분야에서 각광받고 있다. 재벌 업체들이 그의 리더십을 경영에 접목하려 들고 그의 경영에 관한 단행본과 보고서가 나왔으며, 앞으로도 그를 둔 다각도의 조명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서구식 사고방식의 소유자로서 한국적 인간 경영을 성공적으로 해낸 숙원의 실마리가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히딩크의 인간 관리로는 3대 원칙을 들 수 있다. 그 하나는 소질이나 재간 이전에 기초체력을 다지는 소위 펀더멘털리즘이다. 기초과학 없이 과학발달을 기할 수 없다는 논리의 원용이다. 개척시대 미국의 정신지도자 프랭클린은 미국에 이민하고 싶은 유럽사람에게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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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유니폼 바꿔입기

[이규태 코너] 유니폼 바꿔입기 조선일보 입력 2002.06.11 18:42 월드컵 경기를 마친 다음 적대 선수끼리 유니폼을 바꿔 입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적대 감정을 완화시키는 흐뭇한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동업자끼리 유대 강하기로 소문난 부보상(負褓商)들이 오다가다 만나면 입었던 옷을 바꿔 입고 제 갈길 간다. 곧 옷을 바꿔 입는다는 것은 친화와 신의(信義) 그리고 일심동체를 다지는 전통 의식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아버지의 옷을 맏이 둘째 셋째로 물려입었던 물림옷의 관행도 가난해서가 아니라 조손 형제간에 이해를 초월, 한마음을 가지라는 정신 의식이었다. 초생아의 배내옷을 할아버지 할머니의 속곳 빨아 지어 입혔던 것도 섬유가 빳빳한 새베를 피한다는 실용성도 있지만 신생아의 탄생으로 멀어지기 쉬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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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장닭과 프랑스

[이규태 코너] 장닭과 프랑스 조선일보 입력 2002.06.12 18:54 월드컵 대(對) 덴마크전 프랑스 응원석에서 장닭을 들고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티셔츠에도 장닭 문양이 박혀 있었다. 영국의 상징이 표범이요 벨기에의 상징이 사자이듯이 장닭은 프랑스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어제 아침 모든 신문에 클로즈업된 프랑스 예술축구의 영웅 지단은 그라운드에 쓰러진 장닭이었다 할 수 있다. 프랑스의 자존심과 기대가 그에서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광명의 아침을 고하는 장닭이기에 대부분 문화권에서의 장닭 이미지는 긍정적이다. 장닭의 울음이 어둠을 쫓는다 해서 어둠으로 상징되는 악마나 악귀·불행을 쫓아주는 수호신이기도 하다. 정초에 대문에 붙이는 세화(歲 )에 장닭을 그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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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韓·葡 관계사

[이규태 코너] 韓·葡 관계사 조선일보 입력 2002.06.13 19:18 오늘 월드컵에서 한국과 접전하는 포르투갈에 대한 한말 식자들 간의 인식은 형편없었다. 포도주를 잘 담가 중국까지 오는데도 시지 않아서 나라 이름이 포도아(葡萄牙)라던가. 그 나라에는 교화왕(敎化王)과 치세왕(治世王) 두 임금이 있었고 얼굴 흰 여자를 아내로 선호하는데 귀신이 흰색을 두려워해 도망치기 때문이라던가. 오귀(烏鬼)라 하여 온몸이 검고 물 위를 땅 위 걷듯 걸으며, 물 속에서도 눈을 뜨고 사는 종들을 거느리고 산다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기억해둘 것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서양인이 포르투갈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유재란(丁酉再亂)때 파죽지세로 북상하던 왜병은 명나라 원병사령관 형개(邢价)가 이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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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월드컵 도박

[이규태 코너] 월드컵 도박 조선일보 입력 2002.06.16 19:30 투우·경마·투계 등 짐승을 겨루게 하여 싸움을 시켜놓고 승부에 돈을 거는 도박은 동서고금이 공통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개미를, 중국에서는 귀뚜라미를 호전적으로 길러 싸움을 붙여놓고 도박을 하는 투솔(鬪 )을 극히 근년까지 했다. 사람끼리 싸우거나 겨루게 하여 돈을 거는 도박의 역사도 유구하다. 고대 희랍에 아피스키로스라는 요즈음 축구와 유사한 경기가 있었는데 우승자에게는 황소 20마리 값인 500드라크마씩의 상금을 주어 승리를 유도했는데, 이 돈을 염출하기 위해서 승부를 건 도박 복권을 팔았다. 통신망이 전혀 없었던 중세에 권력자나 귀족들은 심부름하는 비각(飛脚)을 거느리고 살았다. 우수한 비각을 스카우트하는 행사로 경주(競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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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黃色 컴플렉스

[이규태 코너] 黃色 컴플렉스 조선일보 입력 2002.06.17 18:24 중국사람들에게 있어 노랑은 중심색(中心色)이다. 저희 나라가 세상의 복판이요 주변 나라들은 오랑캐라 하여 국색(國色)이 노랑이다. 역사도 유구하며 그에서 체질화된 중국사람의 자존적 중심의식을 황색 콤플렉스라고 한다. 梁나라에서 백제 무령왕(武寧王)에게 영동대장군(寧東大將軍)이란 벼슬을 내린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래 종주국 행세를 해왔고 우리나라에서도 사대(事大)의례를 다해온 것만은 사실이다. 한데 근대화 과정에서 종주권을 유지하려는 중국과 근대국가로서 대등한 국제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게 된 한국과의 갈등에서 만화 같은 일이 속출했다. 한·미(韓美)수교조약을 맺을 때 중국은 마건충(馬建忠)을 보내어 조약문에 종주국임을 명시코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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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빨강 考

[이규태 코너] 빨강 考 조선일보 입력 2002.06.18 18:46 라파엘로의 「레오 10세와 두 추기경」이라는 명화를 보면 교황의 옷색이나 의자 테이블 보에 이르기까지 붉다. 추기경을 칼디늘이라 하는데 붉은 복색에서 비롯된 호칭이다. 곧 빨강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상징으로 성직(聖職)의 색이다. 비단 성직뿐 아니라 로마의 황제나 귀족들의 복색은 빨강이며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에 붉은 천을 매매하면 사형에 처했으니 특정계급의 독점색이기도 했다. 빨강은 피의 색일 뿐 아니라 불의 색이기도 하다. 한자의 적(赤)은 「大+火」의 모둠글씨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불은 귀신이나 악마를 쫓는다. 마를 쫓기 위해 붉은 흙을 입술에 칠했던 것이 립스틱의 뿌리다. 옛 어머니들이 염병이 번지면 붉은 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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