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다도(茶道) 대학원

[이규태 코너] 다도(茶道) 대학원 조선일보 입력 2002.09.01 20:11 조선조 초의 학자로 소를 타고 다니는 이행(李行)이라는 선량이 있었다. 어느 날 이 선량의 정자에 성석인(成石因)이 놀러가서 차를 끓이는데 찻물이 넘쳐 물을 더 부었던 것 같다. 뒤늦게 정자에 온 이행이 끓인 차 맛을 보더니 「이 차에 두 가지 생수를 부었구먼」 했다. 이처럼 끓인 찻물의 맛을 분간할 줄 알았을 만큼 조선조 초의 차문화는 고도로 발달돼 있었다. 이 발달돼 있었던 한국의 차문화는 불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심신(心身)이 합일하여 몸과 마음을 분간 못하는 경지에야 들 수 있는 곳이 선경(禪境)이다. 그 경지에 이르는 과정이 좌선(坐禪)이요, 그 방해 요인이 수마(睡魔)다. 이 잠을 쫓는 방편으로 카페인이 주성분..

이규태 코너 2022.11.20

[이규태 코너] 태풍속의 무궁화

[이규태 코너] 태풍속의 무궁화 조선일보 입력 2002.09.02 20:29 당나라 여제(女帝) 측천무후(則天武后)는 한겨울 궁중 잔치에 백화(百花)를 만발시키고 싶었다. 아부배들이 신통력을 발휘하기를 청하자 무후는 천자의 전용지인 황지(黃紙)에다 「백화가 소용되오니 화신(花神)으로 하여금 꽃을 빌려주게 하소서」하는 천신(天神)에의 차용증서를 써 올렸다. 궁중에서는 난리가 났다. 사방팔방에 사람을 풀어 성 안의 방 안에서 기르는 화목들을 모두 거두어 백화를 만발케 하여 무후의 신통력을 입증해야 했다. 그 만발한 백화 가운데 오로지 한 화목이 꽃잎을 닫고 피지 않았다. 화가 난 무후는 무슨 꽃이냐고 물었다. '목근화(무궁화)입니다' 하자 그 나무를 촌단하는 혹형을 내렸다. 무궁화는 악에 저항하여 순교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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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世界歌

[이규태 코너] 世界歌 조선일보 입력 2002.09.03 20:19 10여년 전 프랑스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전통 의상 차림의 열 살 소녀가 프랑스 국가인 「라 마르세유」를 반주 없이 부르는 것을 텔레비전으로 본 기억이 난다. 어둠과 고요 속에 한 줄기 빛의 조명을 받은 이 순박한 소녀의 입에서 「멱을 따러 왔다」느니, 「피로 밭고랑을 적실 때」라는 등 피비린 국가(國歌)의 가사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 국가는 18세기 프로이센 군대에 포위된 프랑스 혁명군의 진군가로 피비릴 수밖에 없음직하다. 그래서 미테랑 전 대통령은 이 피비린 노랫말을 바꾸려 한 적이 있다. 공격적이고 비평화적인 가사는 프랑스 국가만이 아니다. 하이든이 작곡한 독일의 국가는 강이름을 빗대어 프랑스·이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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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춤추는 회의

[이규태 코너] 춤추는 회의 조선일보 입력 2002.09.04 20:44 악녀요, 음녀로 황제에까지 오른 당나라 무조(武照)는 스스로를 관음보살로 신격화했을 만큼 불도에 귀의하는 척했다. 그녀가 권력을 잡기 전에 감업사(感業寺)에 출가하고자 삭발하기 전야의 일이었다. 이별 인사차 오랜 만에 찾아온 조카 무삼사(武三思)가 미남으로 장성해 있는 것을 보고 이를 유인해 잠자리를 같이했다. 겉으로 내세운 명분과 자행하는 실속이 정반대되는 표리부동을 빗대어 「무조삭발(武照削髮)」이라 했다. 서양에서 영화까지 된 「춤추는 회의」도 「무후삭발」 같은 표리부동의 회의를 빗댄다. 1814년 나폴레옹의 패배로 유럽에는 오랜 만에 평화가 찾아 왔다. 하지만 열강의 이해 충돌로 국가간에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어 이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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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金배 銀사과

[이규태 코너] 金배 銀사과 조선일보 입력 2002.09.05 20:13 과일 값이 폭등하는 데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그 하나는 역사적으로 연고가 있는 과일일 때 프리미엄이 크게 붙는다. 중국 푸젠성에서 나는 자색 여지는 여느 여지보다 100배나 값이 비싸다 한다. 양귀비가 여지를 좋아하여 푸젠성의 여지를 장안까지 준마를 릴레이시켜 갖다 먹었다는 바로 그 여지이기 때문이다. 한 장사치가 이 자색 여지의 품종을 찾아내 독점하여 번식시키지 않고 떼돈을 벌고 있다고 들었다. 양귀비 때문에 값이 비싼 과일로는 이원(梨園)배도 있다. 당 현종은 양귀비와 더불어 연극과 가무를 즐겨 궁 가까운 배나무 밭에 이 배우들을 살게 하여 양성했기로, 이원하면 연예계의 별칭이 돼왔다. 시안 사는 누군가가 이 이원터를 찾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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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북한 축구

[이규태 코너] 북한 축구 조선일보 입력 2002.09.06 20:11 일본 축구가 해군학교의 영국인 교관이 쉬는 시간 틈틈이 공을 차게 한 것이 시작이듯이 한국 축구도 제물포항에 정박 중인 프라잉피시호의 해군 병사들이 부두에 내려와 공을 찬것이 시작이다. 하지만 축구를 정착시킨 것은 선교사요, 온상은 미션 스쿨들인 데도 양국이 공통되고 있다. 유교 사상의 영향이 덜한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 지방이 초기 선교의 텃밭이었고, 일본 선교사들의 텃밭은 고베(神戶)였으며 두 나라 축구의 고장이 이 두 도시인 것도 그 때문이다. 평양의 장로교파 학교인 숭실학교와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대성학교에서 축구를 익힌 졸업생들이 1918년에 그해 간지(干支)를 따서 무오(戊午)축구단을 만들었고, 같은 해 서울에서는 휘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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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酒道 강의

[이규태 코너] 酒道 강의 조선일보 입력 2002.09.08 20:11 폭음과 주사(酒邪)를 원천적으로 할 수 없게 하는 자질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자 연세대학교에서는 이번 2학기 교양선택 과목으로 주도(酒道)를 채택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신입생 환영 잔치에서 자주 발생하는 폭음 치사를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음주문화의 바른 정립을 위한 것이라 한다. 음주에는 좋은 면이 많지만 이를 가리고 있는 나쁜 면을 밀쳐내려는 주도의 역사는 유구하다. 이미 '논어'에서 마시더라도 난잡해지지 말아야 한다 했고 '채근담'에 꽃은 반만 피는 것이 좋고, 술도 반만 취하는 것이 좋다 했으며 '안자(晏子)'는 술이 머리에 미치기 이전까지만 마셔라 했다. 머리에 미치면 허세가 밀려 나오기 ..

이규태 코너 2022.11.19

[이규태 코너] 예술 치료

[이규태 코너] 예술 치료 조선일보 입력 2002.09.09 20:27 한국전쟁 때 한국전선에도 위문공연을 했던 미국의 희극배우 밥 호프가 1개 연대에서 웃기고 나면 그 연대의 중화기중대의 전력만큼이 증진된다는 말이 있다. 곧 어떤 방식으로든지 감동을 주면 근심 걱정 불안 공포 같은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임꺽정은 인간의 이 메커니즘을 잘 활용했던 리더였다. 태종의 5대손인 이주경이라는 분이 황해도 지방으로 토조(土租) 받으러 갔다가 임꺽정의 도당에게 잡혀 이 괴수 앞에 끌려갔다. 이주경은 당시 피리의 명수로 팔도에 소문나 있던 터라 임꺽정이 알아보고 깍듯이 모셨다. 그리고서 그의 도당을 달밤에 한데 모아놓고 피리 한 곡조를 청했다. 허리 춤에 차고 다녔던 학다리 피리로 불어대는데 구슬픈 계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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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모차르트 鎭魂曲

[이규태 코너] 모차르트 鎭魂曲 조선일보 입력 2002.09.10 19:49 이승과 저승 사이에 중공(中空)이라는 중간 공간이 있다는 생각은 동서가 다르지 않다. 사람이 제명에 죽지 못하면 그 원한 품은 영혼이 이 중공에서 울어 헤매는 것으로 알았다. 그리하여 이 원혼을 달래는 진혼(鎭魂)문화가 나라마다 발달했다. 희랍 앞바다에는 아름다운 노래로 뱃사람을 유인하여 빠져 죽게 하는 세이렌이라는 요정이 있는데 제명에 죽지 못한 원혼들의 화신(化身)이다. 슈베르트의 가곡에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리타나이」도 바로 바이에른 지방의 시집 못가고 죽은 아가씨들의 원혼을 달래는 진혼곡에서 그 주제를 암시받은 것이다. 월남에는 마을마다 암충신이라는 당집이 있는데 미명의 혼을 불러서 달래는 당집으로 아오자이 아가씨들이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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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왕조실록 蜜蠟本

[이규태 코너] 왕조실록 蜜蠟本 조선일보 입력 2002.09.11 18:29 출가하여 수도중인 한 사미(沙彌)승이 법화경(法華經)을 읽는데 제오품(第五品)에 나오는 애체( )라는 대목에 이르면 읽지 못하길 거듭하는 것이었다. 왜 다른 부분은 잘 읽다가 그 대목에서만 막히느냐며 스승에게 꾸지람을 당했지만 어찌할 길이 없었다. 어느날 스승의 꿈에 고승이 나타나 "그 사미의 전생은 이 산문 동쪽 마을에 살던 아낙으로 법화경 독경으로 여생을 살았는데 애체라는 두 글자를 좀이 먹어 외우지도 읽지도 못했기에 그 사미를 꾸짖어도 소용없는 일이다"라고 알리고 사라졌다. 이튿날 그 마을에 찾아가 부인이 읽었다는 법화경의 그 대목을 찾아보니 두 글씨를 좀이 먹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글씨 쓰인 종이를 먹는다는 좀을 '본..

이규태 코너 2022.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