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사우디왕의 바캉스

[이규태 코너] 사우디왕의 바캉스 조선일보 입력 2002.09.25 20:47 사우디의 파드 국왕은 지금 지브롤터해협 인근에 있는 스페인 별장에서 피서를 하고 있다. 수행원이 3000명이요 600대의 벤츠가 횡행하며 귀금속을 매점하는데 팁도 200만원이 상식이라 한다. 하루 별장 장식에 드는 꽃이 200만원어치요 한 달 체류하는 동안 현지에 떨어지는 경제효과는 1000억원으로 추산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호화 행차다. 중국사에서 가장 부자로 치는 석숭(石崇)이 행차할 때면 귀인들의 독점색인 자색포(紫色布)로 좌우 행길을 가리는 보장(步障)을 40리나 쳤으며 비단옷을 입히고 제호(醍 )만을 먹여 기른 닭요리, 사람 젖을 먹여 기른 애저요리에 꽃초를 켜 지은 밥만을 먹었다. 이덕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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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글로리아 스타이넘

[이규태 코너] 글로리아 스타이넘 조선일보 입력 2002.09.26 19:52 고려때 박유(朴愉)라는 재상이 우리나라는 남자가 적고 여자가 많은 데다 원나라 사나이들이 고려인 첩을 많이 거느려 원나라 인구만 늘리고 있다고 개탄하고 일부이처다첩(一夫二妻多妾)제도로 국력을 보강하기를 상소했다.이 말이 여염에 번지자 성난 여인들이 박유가 행차하는 육조(六曹)거리에 늘어서서 갖은 야유를 퍼부었고 재상부인들은 조정에서 돌아온 남편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지 않음으로써 조정에 상정된 이 의논에 압력을 가했다. 한국 여권운동의 맹렬성을 대변해주는 육조거리요 섹스 스트라이크였다. 고대 희랍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 전쟁으로 지새우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남편들을 전장에서 돌아오게 하고자 부인들이 결탁, 군자금이 보관돼 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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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개구리 소년

[이규태 코너] 개구리 소년 조선일보 입력 2002.09.27 20:02 울산 산골짝에서 실종되었던 세 어린이가 29일 만에 살아서 발견돼 놀라게 했던 적이 있다. 한 달 동안을 먹지 않고 살아 버틴 데 대한 생명의 강인함에 숙연해졌었다. 당시 외국의 한 학자는, 창자가 한국인보다 짧은 서양사람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생명력이라던 말도 생각난다. 곧 세 어린이가 한결같이 한 달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살아낸 것은 그 세 어린이의 개인체질이 아니라 한국인의 민족체질이라 해도 대과가 없는 것이다. 당시 생환했던 세 어린이가 텔레비전 화면에 방영되었는데 "제일 먹고 싶었던 것이 뭐냐?"고 묻자 한 아이는 "까자(과자)!" 또 한 아이는 "고구마!" 남은 다른 아이는 "빱(밥)!"이라고 대답한 것을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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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北女

[이규태 코너] 北女 조선일보 입력 2002.09.29 19:51 일제 때 「날개로는 안창남(安昌男) 수레로는 엄복동(嚴福童) 다리로는 현금녀(玄金女)」라는 말이 노래가 되어 유행했었다. 비행사로서 안창남, 자전거 선수로서 엄복동, 단거리 선수로 현금녀가 억눌렸던 민족감정과 어울어져 영웅으로서 인기몰이를 했었다. 평양 여고보 학생이던 북녀(北女) 현금녀는 30년대초 50m, 100m, 200·400·800m 계주에서 매년 신기록을 깼기에 「평양 여감사」라는 별칭을 얻었었다. 광복 후까지도 육상선수들 수건을 입에 물고 달리는 것이 상식이 돼있었는데 현금녀가 그 뿌리다. 「두 어깨를 추켜들고 주먹을 불끈 쥐었으며 피에 굶주린 사자처럼 흰 수건 입에 악물고서ㅡ」라는 그녀의 스타트 묘사에서 미루어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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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아라파트 사진입장

[이규태 코너] 아라파트 사진입장 조선일보 입력 2002.09.30 19:59 부산 아시안 게임 입장식에 팔레스타인 정부수반 아라파트가 사진 입장을 하여 눈길을 모았다. 팔레스타인 선수단이 이 수반의 사진을 앞세우고 입장한 것이다. 소수의 선수단 규모로 미루어 경기보다 세상의 여론을 타고자 하는 저의가 드러나보이는 사진 입장이다. 바로 그 입장식 하던 날 아라파트는 연금에서 풀려나 기다리고 있던 국민 앞에 V사인을 하고 나타났던 것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경기장에 입장하는 선수들은 환호하는 관중에게 손을 흔드는 것이 상식인데 이번 부산에서의 팔레스타인 선수들은 마치 분노에 치민 시위라도 하듯 팔을 불끈 치켜들었는데 바로 연금에서 풀린 아라파트가 취했던 그대로의 동작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스라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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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주걱 박수

[이규태 코너] 주걱 박수 조선일보 입력 2002.10.01 20:50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고 오는 것을 빗대어 「주걱 뺨맞고 온다」고 한다. 흥부가 놀부 집에 양식 얻으러 갔다가 걷지도 못하게 얻어맞고 기어나오면서 형수한테 인사라도 하고 가려고 부엌문을 열고 들어간다. 남녀유별인데 어데 들어오느냐며 밥 푸던 주걱으로 흥부 뺨을 찰싹 친다. 뺨에 붙은 밥풀을 훔쳐 입에 넣으며 다른 한쪽 뺨을 내밀며 이 뺨마저 쳐주시면 그 밥풀 갖다가 어린 자식들 구경이라도 시키겠소 한다. 이에 놀부 마누라 주걱 대신 부지깽이로 쳐 내쫓는다. 놀부 마누라는 주걱으로 뺨을 쳤지만 계집종 다스리거나 첩을 응징할 때 엎어놓고 엉덩이를 치는 내방의 매이기도 했다. 세도가나 소작인을 많이 거느린 부잣집에서는 형틀을 문 안에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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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공기 통조림

[이규태 코너] 공기 통조림 조선일보 입력 2002.10.02 19:57 중국 문화혁명때 사인방의 한 사람인 강청(江靑)의 이름은 전기(錢起)의 한시 속의 한구절 '강위에 푸른 멧봉우리들(江上數峯靑)'에서 위아랫자를 따 모택동이 증정한 것이라 한다. 인간 도처 유청산이요, 청산에 살으리랐다 하듯이 청산은 우리에게도 친근하다. 청(靑)과 녹(綠)을 구분 않고 통틀어 푸르다고 하는 관례로 녹산(綠山)을 청산(靑山)이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관계 학자의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곧 산의 나무들은 녹색이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청색으로 보인다해서 청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호주 시드니 교외에도 블루 마운틴이 있고, 자메이카에도 커피 상표까지 된 블루 마운틴이라는 청산이 있다. 블루 헤이즈라 하여 녹색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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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블론드 소멸설

[이규태 코너] 블론드 소멸설 조선일보 입력 2002.10.03 19:51 우리 조상들은 미인의 조건으로 이백(二白) 이홍(二紅) 이흑(二黑)을 쳤다. 살결과 이는 하얄수록 예쁘고 입술과 볼은 붉을수록 예쁘며 머리와 눈동자는 검을수록 예쁜 것으로 쳤다. 따라서 검지 않은 머리, 검지 않은 눈동자에 대한 인식은 최악이었다. 두만강 건너 이따금 침범했던 러시아사람들을 얕잡아 불러 '노랑캐(黃毛狄)'라 했는데 바로 그들 노랑 머리와 오랑캐의 합성어임을 알 수 있다. 개화기 서양사람을 얕잡아 부르는 속칭이 되기도 했던 그 말은 바로 블론드 머리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여염에서도 노랑머리는 아들 못낳을 상이라 하여 소외받았고 시집을 못가 무당으로 곧잘 빠졌다. 눈동자도 검지 못하고 푸르면 장님으로 알았고 눈이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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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마오리 인사

[이규태 코너] 마오리 인사 조선일보 입력 2002.10.04 19:23 | 수정 2002.10.05 03:20 우리나라는 절이나 읍(揖)처럼 몸을 낮추는 고저(高低)로 공경을 나타내는 수직형(垂直型) 인사가 발달했다. 땅에 얽매여 농사를 지어먹고 살아온 정착성 사회였기에 서열을 잡을 필요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렵·유목·상업 등 이동성 사회에서는 악수나 키스·포옹처럼 대등한 자세의 수평형(水平型) 인사가 발달했다.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종족들의 인사도 수평형인데 그 작태가 이색적이다. 그 인사를 지금 서울 암사동 선사주거지에서 열리고 있는 마오리 축제에서 볼 수 있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이들은 인사로 눈을 부라리고 혓바닥을 날름 내어밀고 콧등을 서로 비벼댄다. 얼핏 보아 공경 표시라기보다 공갈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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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아프간 여자선수

[이규태 코너] 아프간 여자선수 조선일보 입력 2002.10.06 20:16 국운이 기울고 있던 1909년 순종 황제와 황후를 위안코자 한성여학교 학생들이 창덕궁 비원 옥류천 너른 잔디밭에서 어람하에 운동회를 가졌었다. 달리기·뜀뛰기·공던지기·도수체조를 하고 황실문인 이화(李花)가 새겨진 벼루를 선물로 하사받았다. 문제는 그를 둔 보수인사들의 과격한 지탄이다. 다리에 수건을 감고 뛰었는데도 하체를 노출, 폐하를 현혹케 했다는 것이다. 당시 부녀자들은 걸을 때 손은 마음속으로만 흔들고 발은 발바닥 길이 이상 떼지 말며 고개를 돌릴 때도 몸과 더불어 돌리고 앉을 때도 오금과 발목을 번갈아 서서히 굽히라고 가르침받았던 인간 목석화(木石化)시대의 일인지라 여학생 체조는 대단한 충격이요, 그것이 어전이었음에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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