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북한과 丹靑

[이규태 코너] 북한과 丹靑 조선일보 입력 2002.10.20 19:42 성불사(成佛寺) 하면 밤새도록 잠 못 이루게 한 풍경을 연상한다. 한데 근간에 북한 성불사를 다녀온 친구로부터 성불사에는 풍경이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 북한 사찰들에서 풍경뿐만 아니라 기둥과 처마의 그 화려했던 단청도 볼 수 없다 한다. 산을 사랑했던 시인 노산으로부터 들은 말이 생각난다. 금강산은 너무 여성다워 요염하고 지리산은 너무 남성다워 멋이 없다. 이를 알맞게 절충한 것이 묘향산(妙香山)인데 여덟 가지 향나무의 훈향(薰香)이 어우러져 묘향이요, 묘향산 본사인 보현사의 단청 여덟 구름이 어우러져 묘운(妙雲)이라고 옛 시인이 읊었다 했다. 보현사 단청 속의 구름이 별나게 고왔던 것 같으며 그에 그려진 구름 무늬만도 1)머흘러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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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對治주의

[이규태 코너] 對治주의 조선일보 입력 2002.10.21 20:15 병액(病厄)을 귀신의 소행으로 알았던 우리 조상들은 그에 대해 양면으로 대처했다. 하나는 그 귀신이 좋아하는 것을 바침으로써 해코지를 면하려는 소극적 대처로 가해자·피해자가 한통속이 되어 해소하려 한다 하여 이를 동치(同治)라 한다. 이를테면 암(雌)귀신으로 알려진 천연두가 나돌면 남성 성기를 유감(類感)하는 방망이를 죽으로 엮어 문전에 걸어둠으로써 이 암귀신을 성적으로 환대, 돌아가게 할 수 있을 것으로 알았다. 그런가 하면 몸에 종기가 나면 그 둘레에다 호랑이 호(虎)자를 둘러 써 그 병귀를 꼼짝 못하게 하여 낫게 할 수 있는 것으로도 알았으니 이는 가해자·피해자가 맞대결하여 적극적으로 해치우려 든다 하여 대치(對治)라 한다.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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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大使들의 합창

[이규태 코너] 大使들의 합창 조선일보 입력 2002.10.22 19:41 부산 국제 합창올림픽의 전야제에서 주한 외국대사들 16명이 한복 차림으로 합창을 했다. 나라와 문화가 다르고 얼굴색·눈빛깔·목청도 다르며 말도 다르고 음에 대한 감각도 다른 잡동사니가 고운 화음으로 조화를 이루어낸 것은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다. 이탈리아 사람을 빼놓고 서양사람들 노래 못한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부르지도 않으려니와 불러도 들어줄 수가 없다. 이에 비해 한국사람치고 노래 못하는 사람 드물다. 일본에서 시작된 노래방이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극성을 떨어 산간벽지에도 노래방 없는 고을이 없는 것만 미루어보아도 알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고된 일을 하면서 노래로 그 힘을 덜었고, 억눌려 풀 길 없는 원망이나 슬픔도 노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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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예수의 동생

[이규태 코너] 예수의 동생 조선일보 입력 2002.10.23 19:46 예수의 형제인 야고보의 유골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석회 납골단지가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프랑스 고고학자가 예루살렘 인근에서 발굴한 이 유골함에는 예수 시절 이스라엘에서 썼던 아람어(語)로 '야고보, 요셉의 아들, 예수의 형제'로 명기돼 있다 한다. 아버지와 형의 이름으로 미루어 예수의 동생이 확실한 것 같다. 하지만 당시에는 같은 이름이 많아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요셉이란 이름만 해도 구약·신약성서에 11명이나 나온다. 예수란 이름도 히브리말로 '야훼가 구원한다'는 뜻인 여호수아에서 비롯된 것으로, 같은 이름을 가진 제사장이 4명, 신약에도 다섯 군데에서 동명이인이 나온다. 예수 시절 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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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성난 포도

[이규태 코너] 성난 포도 조선일보 입력 2002.10.24 19:48 청나라 건륭제(建隆帝)의 사랑을 거부했던 서역(西域) 미인 향비(香妃)는 역사에 두 가지 교훈을 남겼다. 회교 국가인 호자국 왕비였던 이 미녀는 전리품으로 건륭제에게 바쳐졌는데 갖은 유혹을 거절하고 정절을 지켜낸 서역의 춘향이다. 그녀가 향비로 불렸던 것은 몸에서 풍기는 유혹적인 향기 때문이었다. 사막대추인 사조(沙棗)의 꽃즙(花汁)으로 목욕하고, 그 꽃즙 향고(香膏)를 온몸에 바르기 때문이었다. 사막대추가 여느 대추보다 달 듯이 사막대추 꽃은 작지만 향기는 여느 꽃보다 은근하고 매혹적이다. 양귀비가 좋아하는 여지를 대느라 국력을 소모했듯이 향비의 사조꽃 대는 데도 국력을 소비했던 것이다. 중국땅에도 사조 꽃이 피긴 하나 그 은근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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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외국인 윤락

[이규태 코너] 외국인 윤락 조선일보 입력 2002.10.25 20:04 개화기 서울 진고개에 감인(甘人)으로 불리는 외국 여인들이 있었다. 겉으로는 중국 상하이·톈진 등지에서 밀수해온 양화장품 파는 여인이었지만 속으로는 인신을 파는 국제 창녀였다. 난봉꾼들에게는 예쁘고 달콤하기에 감인으로 불렸다고도 하나, 밤거리 희미한 불빛 아래 다리를 꼬고 앉아 '컴인! 컴인!'하고 유객한다 하여 감인으로 불렸다는 설이 맞는 것 같다. 이들은 인천 개항과 동시에 중국에서 이주해온 백계 러시아 여인들로, 주로 청나라 상인들이나 뱃사람들을 상대로 몸을 팔다가 감인으로 토착했다는 설이 있다. 백계 러시아인이란 러시아 서북부에서 살아온 슬라브 민족으로 몽골 지배 때부터 이산하여 제정러시아·공산러시아에 이르기까지 체제에 불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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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하멜 트레일

[이규태 코너] 하멜 트레일 조선일보 입력 2002.10.27 20:04 내년은 화란 선원이었던 하멜 일행 36명이 제주도에 표류한 지 350주년 되는 해로 화란대사관에서는 그 기념 사업으로 일행이 더듬었던 길을 따라 여행하는 관광코스 '하멜 트레일'을 개발하기로 하고, 관계 사적 발굴 및 표시판 등 관계 시·군과 교섭하고 있다 한다. 표류해안을 떠난 이 일행은 대정(大靜) 고을에서 1박, 작은 성과 무기고 그리고 병졸이 주둔하고 있는 차귀포(遮歸浦)에서 아침밥을 먹은 후에 정오에 목사가 있는 제주에 당도한다. 객사의 대청마루 앞에서 따끈한 탕 한 사발씩 내리기에 독약인 줄 알고는 마지막이구나 하고 통곡을 하며 마셨다 했다. 제주목사인 이원진(李元鎭) 앞에 낱낱이 불려가 심문을 받고 '국왕의 숙부가 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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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송이

[이규태 코너] 송이 조선일보 입력 2002.10.28 19:18 철의 장막이나 죽의 장막 등 공산사회가 서방측에 장막을 거둘 때에는 그 앞에 앞서 가는 동·식물이 있다. 중국이 일본 앞에 장막을 거둘 때는 팬더가 앞서 갔듯이 북한은 방북한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송이를 선물했고, 이번에 남한에 와 산업시찰을 하고 있는 북한 대표단이 가져온 것도 100상자의 송이다. 무슨 저의가 있거나 선물로서가 아니라 장막을 거두는 전주곡으로서 역사에 남는 송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문헌에 보면 소나무에는 암(雌)나무와 수(雄)나무가 있는데 송이는 암나무 그늘 아래에서만 돋아난다 했다. 서쪽나라로 갈수록 수소나무가 많아 중국에는 송이가 드물고 따라서 귀물도 아니며 문헌에 나오는 송이 기사도 빈약하다. 진인옥(陳仁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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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핼러윈 特需

[이규태 코너] 핼러윈 特需 조선일보 입력 2002.10.29 20:16 지금 서울의 일부 백화점에는 이전에 없던 코너에 손님들이 꼬이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우리에게 낯선 악마 복장들이며 악마지팡이 해골가면, 속을 파 없애고 눈·코·입을 파 사람얼굴 모양을 한 호박 등이 진열돼 있는 코너다. 이 음산한 소도구들로 꾸며놓은 레스토랑도 생겨나고 있다 한다. 내일이 미국 어린이 명절인 핼러윈이요, 그 명절 치레의 수요에 응하고 그 핼러윈 분위기로 어린이 손님을 유객하려는 장삿속이다. 외국 세시풍속이 그만큼 모르는 새에 침투해 있다는 문화사대주의의 척도를 그에서 본다는 것이 놀랍고도 슬프다. 아일랜드에 살았던 고대 켈트인에게 있어 10월 그믐날은 전년에 죽은 사령(死靈)들이 저승에 가기 이전에, 머물고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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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대동강의 미국배

[이규태 코너] 대동강의 미국배 조선일보 입력 2002.10.30 20:52 130년 전 신미년의 한미(韓美)전쟁을 유발했던 미국상선 제저럴 셔먼호가 대동강 쑥섬 곁에 정박, 통상을 강요했을 때 그 배에 초대되어 승선했던 이가 있다. 지택주(池宅周)라는 당시 16세의 소년으로 아버지와 함께 승선하여 양식을 피로받았는데 "냄새가 고약하여 목에 넘어가지 않았다" 하고 세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돛대가 두 그루 서 있고, 삼끈이 산발한 여자머리처럼 어지럽게 늘어져 있었다 했다. 평안중군(中軍=사령관)을 감금하는가 하면 위협발사한 포탄에 군민이 살상당하자 성난 백성들이 투석으로 대항했다. 원래 평양 투석군은 돌 잘 던지기로 소문나 전투에 자주 차출됐었으며, 그 중 갑판에 나와 수심을 재던 선원이 이만춘(李萬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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