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머루포도 文明論

[이규태 코너] 머루포도 文明論 조선일보 입력 2002.10.31 20:33 서양 포도와 한국 머루를 교접시킨 머루포도는 이미 시판되고 있지만 새로 개발되었다는 품종인 「MBA 포도」는 그 맛이 여느 다른 서양 포도를 능가하고, 알이 작다는 종전의 약점과 서양 포도의 유약성이 보강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동서문물의 교합·절충으로 이전의 그것들보다 한결 발전된 단계를 창조했다는 것이 되며 이를 문명론에 투영시켜 보는 것도 무위하지 않을 것 같다. 우세문명이 약세문명과 부딪쳤을 때 이를 흡수해버림으로써 약세문명이 소멸되고 만다는 문명 수렴설(收斂說)이 있고 양 문명이 부딪쳤을 때 환경에 알맞게 두 문명이 절충·융합하여 이전보다 발전된 형태를 자아낸다는 비수렴설(非收斂說)이 있다. 유럽 식민정책이 전세계를 ..

이규태 코너 2022.11.18

[이규태 코너] 임꺽정

[이규태 코너] 임꺽정 조선일보 입력 2002.11.01 19:54 한국문학의 큰 유산이요 한국어의 풍부한 보고이며 역사소설의 백미로 여겨지는 홍명희(洪命熹)의 「임꺽정」을 재조명하고 마당극으로 공연하는 등의 홍명희문학제가 오늘(2일) 서울에서 열린다. 「임꺽정」은 일제 때인 1928년부터 10여년간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인기소설로 그가 신간회 사건으로 검거당했을 때도 옥중에서 그 연재를 허락했을 만큼 일본 제국주의자들마저도 겁을 먹었던 인기였다. 임꺽정에 관한 기록은 문헌 「기재잡기(寄齋雜記)」가 바탕이 된 것이며, 그것을 보면 임꺽정이 양주의 백정 출신이긴 하나 계급적인 항거였다기보다 악정을 베푼 지방 관리들에 대한 항거로 그에 피해본 백성들의 공감대를 타고 무섭게 세력이 번져나간 것으로 돼 있다. 이..

이규태 코너 2022.11.18

[이규태 코너] 신주(神舟) 계획

[이규태 코너] 신주(神舟) 계획 조선일보 입력 2002.11.03 20:12 얼마 전 내몽골 자치주의 평원에 하늘에서 떨어진 듯한 둥근 쇳덩이가 보도되어 눈길을 끌었다. 바로 지구를 백여번 돌고 돌아온 중국의 무인 우주선 신주(神舟)3호로, 유인우주선 개발을 위해 인체생리 실험용 인형들을 요소에 탑재시킨, 성공한 실험이다. 이로써 중국은 러시아 미국에 이은 세 번째의 유인 우주비행국으로 발돋움했고 이를 토대로 '3년 안에 유인 우주선을, 8년 안에 달을 밟게 된다'고 일전에 발표했다. 미국의 우주개발계획을 천계를 지배하는 신의 이름을 따서 아폴로 계획이라 했듯이 중국에서도 천계를 지배하는 서왕모(西王母)와의 교통수단인 신주(神舟)로 그 계획의 이름을 삼고 있다. 서왕모가 사는 천계에는 불사의 나무가 자..

이규태 코너 2022.11.17

[이규태 코너] 正裝入場 是非

[이규태 코너] 正裝入場 是非 조선일보 입력 2002.11.04 20:18 부산 국제영화제 개·폐막식에 검은 정장을 하지 않고는 입장하지 못한다 하여 시비가 일고 있다. 비단 이번뿐 아니라 격식과 권위를 과시하는 행사나 클럽·레스토랑·골프장 드는 데도 정장을 요구하고 있어 시비가 돼 오던 터다. 동서 할 것 없이 1년 365일을 성(聖)스러운 날과 속(俗)된 날로 대분해 살아 왔다. 우리나라에서 가제(家祭) 동제(洞祭) 등 제삿날, 혼례 장례 같은 통과의례, 설 추석 같은 명절이 성스러운 날이요 이를 제외한 날들이 속된 날이다. 이 성스러운 날에 입는 옷이 정장이다. 그 가난했던 흥부의 성스러운 날 정장을 보자. 「위가 터진 갓에다 삭아 바스러진 갓 테를 실로 여미고 노를 꼬아 갓끈 삼아 쓴다. 헌 고의..

이규태 코너 2022.11.17

[이규태 코너] 앞 못보는 마라토너

[이규태 코너] 앞 못보는 마라토너 조선일보 입력 2002.11.05 20:22 앞 못 보는 30대 여인이 엊그제 세계적 선수들이 겨루는 뉴욕 마라톤에서 풀코스를 5위로 골인하여 세상을 감동시키고 있다. 11세에 앞을 못 보게 된 말라 러년은 앞사람이 뛰는 발 소리만을 듣고 암흑이 주는 인간 한계를 극복해낸 것이다. 88서울올림픽이 있기 직전 로스앤젤레스 마라톤에서 두 다리를 절단당한 베트남 참전 용사 위랜드가 두 손만으로 경쟁자도 없는 고독한 경주를 3일 계속한 끝에 심판도 없는 가운데 골인을 하여 온 세계를 울렸던 이래의 감동이다. 베트남전쟁 중 퀴논 육군병원에서 다리를 절단당한 미군 병사가 두 발을 자른 도마뱀을 머리맡 유리상자 속에 기르고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다리 없다는 것이 살아가는 데..

이규태 코너 2022.11.17

[이규태 코너] 외할머니

[이규태 코너] 외할머니 조선일보 입력 2002.11.06 20:07 외할머니와 동거하는 어린이의 사망률이 그러지 않는 어린이에 비해 절반이나 낮았다는 보도를 접하고 보니 어릴 적에 배 아프면 외할머니 불러 배를 문지르고, 심하게 앓으면 외할머니에게 맡겨졌던 일이 생각난다. 엄마 손은 약손, 엄마 입김은 약김이라 하지만, 가난했던 삼남(三南) 산간 지방인지라 엄마가 바쁘기 때문에 외할머니 손을 빌리는 줄 알았는데 반드시 그런 이유만은 아님을 시사하는 외할머니의 힘이다. 엄마 손보다 외할머니 손이 약손인 까닭은 뭣일까. 손으로 환부를 어루만지면 플라세보 효과라 하여 의사(擬似)치유 효과를 내기도 하고 손에서 발산되는 동물 자기(磁氣)의 작용으로 낫게 한다고도 한다. 그 무엇보다 설득력을 갖는 것은, 아기들..

이규태 코너 2022.11.17

[이규태 코너] 사라져가는 무지개

[이규태 코너] 사라져가는 무지개 조선일보 입력 2002.11.07 20:27 하늘에 걸친 오색 무지개처럼 분명히 있는데 다가가 보면 없어지는 행복의 속성이 김동인(金東仁)의 단편 「무지개」의 주제다. 영국의 데이비드 로렌스는 장편 「무지개」에서 무지개에서 평등의 이상을 보았고, 고대 페르시아에서는 무지개가 서면 임금은 그 지방의 옥에 갇힌 죄수를 석방케 하는 것이 관례였으니 자유의 상징이었다. 자유·평등·행복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불길한 조짐이기도 했다. 선조(宣祖) 임진년에 궁에 있는 샘에서 푸른 무지개가 일어나더니 임금이 계신 방에 뿌리를 박았다. 두세 차례 자리를 옮겼으나 무지개 뿌리가 따라 움직였다. 이 이변이 있던 날이 왜적이 부산포를 기습 점령하던 바로 그날이었다. 구약에 노아의 방주 위에 무..

이규태 코너 2022.11.17

[이규태 코너] 약한 性 남자

[이규태 코너] 약한 性 남자 조선일보 입력 2002.11.08 19:07 톨스토이의 단편「이반 이리치의 죽음」에서 직장 동료들은 각자 마음속에서 그의 죽음으로 생긴 빈 자리와 자신의 승진을 저울질한다. 고인의 친구들도 표정만 침통할 뿐 심야에 벌어질 노름판에 더 신경을 쓴다. 고인의 아내도 관심은 손에 거머쥘 퇴직금이나 유족 위로금에 있으며 보다 싼 묘지의 흥정에 거짓눈물이 끊기곤 했다. 이반 이리치는 이처럼 주변의 이기적 무심이 쏟아낸 막중한 고독을 감내할 수 없어 죽은 것이다. 유태인 수용소의 안네 프랑크는 3단 침대에서 언니 마르고트와 더불어 수용돼 있었다. 어느날 그 언니가 발진 티푸스로 갑자기 죽자 그렇게 건강하고 쾌활하던 안네가 급작스레 쇠약해지더니 그 길로 죽어갔다. 수용소의 유태인들이 강..

이규태 코너 2022.11.17

[이규태 코너] 52억원짜리 접시

[이규태 코너] 52억원짜리 접시 조선일보 입력 2002.11.10 20:00 청나라의 전성기로는 강희(康熙)·옹정(雍正)·건륭(乾隆) 3대 130여년을 치나 가운데 끼인 옹정제 13년은 악정으로 소문나 있다. 옹정제는 별나게 도자기에 관심을 가져 궁에서 직영하는 관요(官窯)인 경덕진(景德鎭)의 책임자는 일품관을 임명 직할했다. 그 옹정제가 직접 그린 채색(彩色) 매화를 그리고 눈 속에 피어 암향(暗香)을 풍긴다는 시를 쓴 법랑(琺瑯) 백자 접시가 홍콩 경매장에서 사상 최고값인 52억원에 팔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백자 접시 하나에 그토록 비싼 값이 붙은 데는 옹정제의 친필 그림과 글이 있다는 것 이외의 다른 이유가 부가된 때문일 것이다. 옹정제는 자신이 직접 쓸 자기에 대해서는 붉은 글씨로 특기된 문서로..

이규태 코너 2022.11.17

[이규태 코너] 인간 胡錦濤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인간 胡錦濤 조선일보 입력 2002.11.12 19:35 지상 천국을 무릉도원이라 하는데 그 말을 있게 한 도원(桃源)이 중국 장사 서쪽 200여㎞에 있다. 7년여 전 그곳에 들렀을 때 안내하는 중국 아가씨로부터 관광객 한 사람을 소개받았는데, 당시 국가 부주석이던 막강한 권력자 후진타오(胡錦濤)였다. 대중국의 2인자가 수행원이나 공원관리 하나 없이 직업가이드에 의존해 관광하는 것을 보고 권위와 눈높이를 낮춘 무던히 겸손한 사람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의 또다른 사람됨으로 말이 없다는 것을 든다. 공식석상에서 눈길을 끌 만한 말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말이 많을수록 잃는 게 많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사방 3치의 구멍을 파고 3치 사방의 막대기를 꽂으려 할 때 들어가느냐 않느냐를 두..

이규태 코너 2022.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