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사라지는 바나나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사라지는 바나나 조선일보 입력 2003.01.26 19:49 축구 팬들은 바나나하면 휘어 골인하는 바나나킥을 연상하지만 필리핀에서는 소녀를 사랑한 요정의 손을 연상한다. 사람과 요정이 맺어질 수 없자 이별하면서 팔을 붙든 채 손이 떨어져 나갔고 이 손을 고이 묻었더니 손모양의 바나나가 열렸다 해서 지금도 바나나 하면 사랑을 고백하는 은어가 돼있다 한다. 힌두교도들은 결혼식하는 집 앞에 바나나 나무를 세워두는데 바나나처럼 아들 많이 낳기를 비는 기원 주술이다. 인도 상류사회에서는 여인 틈에 끼어 자는 것으로 냉방을 하고 여인에 대한 최대찬사가 '바나나 나무 같다'함인데 섭씨 40~50도의 인도에서 체온보다 낮은 것이 바나나 나무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기독교 신자들은 에덴에서 뱀이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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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울력과 눈 쓸기

[이규태 코너] 울력과 눈 쓸기 조선일보 입력 2003.01.27 19:37 시골에는 저녁 먹고 모이는 사랑이 있는데 노인들 모이는 노사랑, 아이들 모이는 아사랑, 그리고 10대 청소년이 모이는 울력방이라는 게 따로 있었다. 모여서 잡담하고 놀기도 하며 새끼도 꼬고, 짚신도 삼고, 잠도 자곤 했다. 왜 울력방인가는 우리 고유의 청소년문화를 이해하는 데 좋은 실마리를 주고 있다. 울력이란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서 하는 일이나 그 힘을 뜻하며, 울력집이란 협동작업을 하기위해 모인 집회소란 뜻이다. 「울력 걸음에 봉충다리」란 속담이 있는데 힘을 합쳐 일하면 평소에 하지 못하던 일을 해낸다는 뜻으로 원시사회에 있었던 청년집회소(Mens House)의 한국적 잔재가 아닌가 싶다. 이미 삼한시대부터 일정 나이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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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한국의 절수문화

[이규태 코너] 한국의 절수문화 조선일보 입력 2003.01.28 20:22 갑신정변의 행동대로 활약했던 이규완(李圭完)은 을사조약 후에 함경도와 강원도 관찰사를 역임했다. 어느날 갓 시집온 며느리에게 물었다. "빨래는 어데서 하느냐"고. 개울에 들고 나가서 빤다고 하자 "안 되니라. 작고 큰 빨래 할 것 없이 반드시 집안에 있는 샘에서 빨고, 빨고 난 땟물은 버리지 말고 두엄터에 끼얹어라" 했다. 새 며느리에게 내외를 시키고자 집 밖에 나가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비록 하찮은 때를 빤 물이라도 버리지 말고 보이지 않는 때일망정 거름으로 이용하라는 근검의 표출이다. 혼담이 오가면 중신아비로 하여금 예비 신부의 성행을 염탐시키는데 그 중 하나가 샘에서 물을 기를 때 물동이를 다 채우고 남은 두레박의 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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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움직이는 조각들

[이규태 코너] 움직이는 조각들 조선일보 입력 2003.01.29 19:48 | 수정 2003.01.30 14:30 본지에 연재 중인 서울 새명물로 움직이는 형상의 이색 조각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서울 새문안 경희궁 앞에 높이 23m의 거인 조각이 2분 만에 한 번씩 망치질을 하고있어 답답한 도시인의 가슴 치기를 대행하고, 경복궁 옆 미술관거리에는 건물 지붕 위를 큰 보폭으로 탈출하는 여인 조각이 숨막히는 도시와 체제, 모럴에서 탈출하고 싶은 시민들의 원망을 대행하고 있다. 이 움직이는 조각들은 텔레비전·인터넷 등 영상만을 주로 접하고 살아온 신세대의 피그말리온 콤플렉스에 영합되어 주의를 끌게 한다. 실제 인간과 담을 쌓고 영상만을 접하다 보면 인형이나 조각 등 상상 속의 인간이 실제 인간보다 더 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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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세뱃글

[이규태 코너] 세뱃글 조선일보 입력 2003.01.30 19:09 설 하면 세뱃돈을 연상하는데 그 뿌리는 깊지 않다. 설날에 액(厄)과 결별하는 민속이 많은데 그 가운데 하나로 제웅이라는 게 있었다. 짚으로 만든 인형에 액 곧 불행을 담아 섣달 그믐날 길바닥에 던져두는데 걸인이나 아이들로 하여금 주어가게 하고자 짚 인형 뱃속에 동전을 담아 던져둔다. 그렇게 해서 불행이 옮겨갈 수 있을 것으로 알았다. 아이들은 당장 돈욕심이 우선되기에 버려진 제웅을 줍지 못하도록 하고자 주기 시작한 것이 세뱃돈이라는 설도 있다. 옛날에 집안 어른이나 서당 훈장에게 세배 가면 세뱃돈 대신 벼루를 앞에 놓고 붓글씨를 써서 봉투에 넣어주었다. 집에 들고와 무릎 꿇고 펴보게 돼있었는데 한자 서너자가 씌어 있게 마련이었다. 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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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小康 社會

[이규태 코너] 小康 社會 조선일보 입력 2003.02.02 19:12 일전 중국의 새 지도자 후진타오(胡錦濤)는 소강사회(小康社會) 달성이 정치목표임을 표방했고 16차 중국공산당대회에서도 중국사회가「소강사회」임을 자임, 그에 준해 정책을 펴나가기로 선언했었다. 소강이란 공자 사상으로 정치가 고루 미쳐 교화가 이뤄지고 안정이 돼가는 상태, 조금씩 부역을 덜어 백성을 편하게 하는 일, 다소 자산이 생겨 생활에 쪼들리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다. 소강지가(小康之家)라고 하면 중산층을 뜻하는 것으로 중국이 소강사회를 자임하고 나오는 것은 일대 변혁을 예고하는 것이 되어 주의를 하게 된다. 그 두드러진 변혁 가운데 하나가 소강지국의 모럴을 정립한 공자 정신의 선양이다. 글로벌화하는 세상에서 중국을 주목시키는 인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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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야생초

[이규태 코너] 야생초 조선일보 입력 2003.02.03 20:07 덴마크의 중세도시 오덴세에서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생가를 찾아갔던 일이 생각난다. 구두수선을 했다는 가난했던 집으로 정원도 없고 응달진 두어 평 남짓한 땅에 자갈만 깔려있었다. 그의 동화들에 보면 이름 모를 초화(草花) 이야기들이 아름답게 승화돼있어 분명히 잡초꽃들이 엉클어진, 가꾸지 않은 넓은 정원이 있을 것으로 상상했었다. 세탁으로 품팔이하는 그의 어머니는 알콜중독으로 죽어가면서도 길 가다가 야생의 초화를 보기만 하면 옮겨다 심기를 수십년 했기 때문이다. 관리하는 노인에게 물었더니 마당이 없어 낡은 과일 상자들에 흙을 담아 길렀다면서 창변 아래 쌓아놓은 이끼 낀 상자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의 동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야생콩이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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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누비 옷

[이규태 코너] 누비 옷 조선일보 입력 2003.02.04 20:33 스타인벡의 단편소설에 큰 토관 속에서 사는 가난한 일가족 이야기가 있다. 아내가 쓰레기통에서 주워온 베 나부랭이를 이어 토관 속에 커튼을 만들어 치자 남편이 창도 없는데 커튼은 쳐 뭘 하느냐고 빈정거리는 대목이 있다. 미국의 개척시대에는 영국이 자국의 무명산업을 보호하고자 목화를 기르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베가 금값이라 색과 무늬 재질도 다른 베 조각들을 이어 옷도 지어 입고 커튼도 만들어 달았다. 이를 퀼트라 하는데 미국인의 근검 절약과 인내력의 상징으로 풍요 속에서도 굳건히 자리매김하여 경제위기 때마다 극복해낸 것이 퀼트정신이었다 해도 대과 없는 정신 직물이다. 미국의 퀼트정신이라면 한국에는 누비정신이 있다. 겉베와 속베 사이에 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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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고구려 정신

[이규태 코너] 고구려 정신 조선일보 입력 2003.02.05 20:03 당나라에 병합된 후에도 고구려 유민들의 저항은 대단했던 것 같다. 중국문헌인 「자치통감(資治通鑑)」에 「고구려 백성들 여기 저기에서 이반(離叛)이 심하여 (당나라) 황제는 고구려 백성 3만8200호를 황무지에 옮겨 살게 하고 이반하지 않은 자들만 요동 지방에 눌러살게 했다」 했으니 반골들의 황야에의 대추방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추방당한 황무지가 영주(營州) 곧 지금의 열하성 조양(朝陽)지방이다. 망국 이전에도 당나라에 당당히 굴었기로 거만하게 높을 고(高)자를 국호에 썼다하여 이를 아래 하(下)로 바꿔 하구려(下句麗)로 불렀던 한때가 있었을 정도였다. 강제이주당한 고구려 유민 중의 한사람인 걸걸중상(乞乞中象)이 반란을 일으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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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Corea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Corea 입력 2003.02.06 20:03:48 | 수정 2003.02.06 20:03:48 750년 전인 13세기 중반께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승 두 사람이 8년간에 걸쳐 험준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 몽골의 수도를 방문했었다. 고려 고종(高宗) 말년으로 몽골이 개성을 점거하고 왕족을 몽골에 인질보내고 있던 그 무렵이다. 「잡혀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라는 공포말고도 굶주림·갈증·혹서·혹한·인해(人害)·수해(獸害) 등 상상을 초월한ㅡ」 고난을 겪은 수도승 카르피니와 뤼브뤼케는 각기 기행문을 남겼다. 전자의 기행문에는 그곳 왕궁에서 만난 고려 사신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아마 인질 잡혀가 있던 왕족 왕순이나 사신으로 가있던 박수(朴 )였을 확률이 높다. 이 고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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