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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岳飛 파동

[이규태 코너] 岳飛 파동 조선일보 입력 2003.02.07 19:53 신라의 김유신(金庾信) 장군은 660년에 당나라와 연합, 백제를 패망시켰고, 다시 그 8년 후에 총사령관인 대총관(大摠管)으로 역시 당나라와 연합, 고구려를 패망시켜 반도통일의 위업을 이루었다. 그래서 위인이요 영웅으로 우러름을 받아 왔고 지금도 우러름 받고 있다. 한데 만약 김유신 장군이 외적 아닌 동일민족 백제와 고구려와 싸워 이긴 것을 두고 평가가 절하되어 교과서에서 그 이름을 지우려 든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비단 학계뿐 아니라 일반의 거센 저항에 부딪힐 것은 자명한 일이다. 지금 중국에서 굴지의 통시대적 영웅인 남송(南宋)의 장수 악비(岳飛)가 그 꼴을 당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아름다운 역사도시 항주(杭州)의 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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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민들레 김치

[이규태 코너] 민들레 김치 조선일보 입력 2003.02.09 20:06 민들레의 별칭이 구덕초(九德草)다. 사람들이 흠모하는 아홉 가지 덕을 갖추었다고 하여 얻은 이름으로 옛날 서당 마당에는 이 들꽃을 옮겨 심어 조석으로 보고 인성을 닦게 했다. 훈장이 민들레 구덕을 외우라고 하면 허리를 절도 있게 앞뒤로 흔들며 암송했던 기억이 난다. 모진 환경을 이겨내고 피어난다는 것이 민들레의 일덕(一德)이다. 씨가 날아 앉으면 바위 위건 길복판이건 마소의 수레바퀴에 짓밟혀 가면서도 피어나고 마는 억척이다. 그 자체가 가공할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이 이덕(二德)이다. 뿌리를 캐어 대엿새 동안 볕에 노출시킨 후에 심어도 싹이 돋고, 뿌리를 난도질하여 심어도 싹이 돋아난다. 역경의 인생에 더없는 교훈을 주는 민들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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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로마 病

[이규태 코너] 로마 病 조선일보 입력 2003.02.10 20:24 백유경(百喩經)이라는 불경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한 돈많은 장자가 절에 가 3층 누각에 올라가 보고 자기도 그런 누각을 짓고 살고 싶었다. 목수를 불러 짓도록 맡기고 한달 후에 가보았더니 1층을 짓고 있는 중이었다. 이에 장자는 화를 내며 "내가 지으라는 것은 1층 집이 아니라 3층 집이야 3층" 하고 호통쳤다. 기초, 1층, 2층― 하는 과정을 겪어야 3층집이 되는데 결과에 집착하여 과정을 묵살하는 인생을 비유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민족성에도 과정을 차근차근히 밟는 과정의식이 강한 민족이 있고, 결과를 빨리 얻으려고 과정을 날리는 결과의식이 강한 민족이 있다. '빨리빨리(Palli-Palli)병'으로 외국사람들이 빗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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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속박이’ 의식

[이규태 코너] ‘속박이’ 의식 조선일보 입력 2003.02.11 20:11 속박이란 선물이나 팔 물건을 상자에 담을 때 보이지 않는 속과 보이는 겉의 크기나 모양새, 때깔, 물이 같지 않다는 표리구조(表裏構造)의 속된 말이다. 명절 때마다 오가는 선물상자의 속박이는 자주 지탄돼 온 한국인의 약점이긴 하나 올해에도 여전히 소비자의 불만으로 상인들이 곤혹을 당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내에 유통되는 과일상자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신용을 타락시키고 있는 속박이다. 홍콩 무역시장에 「코리안 애플박스」라는 무역용어가 있다고 들었는데 흥정할 때 내보이는 견본이나 카탈로그 내용과 실제 들여온 상품의 질이나 양이나 규격이 같지 않을 때 코리안 애플박스, 곧 「한국의 사과궤짝」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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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임청각

[이규태 코너] 임청각 조선일보 입력 2003.02.12 20:02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민가라면 누구나 보고 싶을 것이다. 연산군을 축출하고 영입한 중종14년(1519)에 지은 집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근 80년 전의 집이 그것이다. 최고(最古)뿐 아니라 그 규모에 있어서도 민가로서 최대(最大) 규모다. 궁궐 아니고는 100칸 이상 짓지 못하게 했기로 법도상 제한 받은 규모 안에서 그렇다.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이 임청각(臨 閣)은 고성 이씨(固城 李氏) 종가로 이 집을 국가에 헌납하는 법적 소송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옛집은 최고 최대뿐 아니라 전통가옥에 기생한 풍수문화를 간직한 문화재적 가치 또한 괄목할 만하다. 주택풍수에서 세 명의 정승을 낳을 뿐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을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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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누란 미인

[이규태 코너] 누란 미인 조선일보 입력 2003.02.14 20:20 5세기 이전에 모랫바람에 묻힌 실크로드 왕국 누란(樓蘭)은 동서고금 할 것 없이 소설의 소재로 빈도 높게 선호되었던 환상의 도시다. 거대한 한(漢)나라와 흉노와의 틈에 끼여 완충 정략으로 유지되다가 현장(玄 )법사가 이곳을 지내가던 당나라 때는 모래톱에 들쭉날쭉한 폐허로 남아 있었다 하고 '날리는 모랫바람 속에 인적은 없고 사방이 망망하여 표지삼을 아무 것도 없으며 그저 군데 군데 인골을 주워 모아 도표를 삼을 뿐이었다. 물도, 풀도 없고 바람만이 전부인 데 어떻게 들으면 여인의 통곡소리 같기도 하고 달리 들으면 한 품은 여자의 노랫소리 같기도 하다. 그 소리에 홀려 헤매다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했다. 한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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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150세 시대

[이규태 코너] 150세 시대 조선일보 입력 2003.02.16 19:27 '타임'지 최근호는 세계적 생명과학자 10명에게 물어 앞으로 50년 후에는 150세까지 사는 것이 상식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일의 민화(民話)에 조물주가 동물을 만들 때 생명을 30년으로 똑같이 정했다 한다. 한데 나귀가 생각하길 짐만 지어 나르는 고된 생을 그렇게 오래 살 것에 겁을 먹고 읍소를 하여 18년을 감수(減壽)받았고 이어 개도 늙어 눈치만 보고 사는 여생이 지겨워 12년을 감수받았으며 원숭이도 놀림감이나 우스갯거리로 사는 것이 싫어 10년을 감수받았다. 옆에서 보고 있던 욕심 많은 인간은 이 감수한 나이들을 모조리 구걸하여 도합 70세의 생명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본래의 30세만을 사람답게 살고 나머지 18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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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졸업식 해프닝

[이규태 코너] 졸업식 해프닝 조선일보 입력 2003.02.17 19:51 졸업식을 마치고 쓰고 다녔던 교모, 교복을 찢고 얼굴에 밀가루를 뿌리는 가학(加虐)행위는 인생의 한 매듭을 짓는 해프닝으로 상식화돼 왔다. 한데 웬일로 밀가루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인지 액젓·마요네즈·계란·간장·고추장·케첩·식초까지 서로 뿌려대는 난장판이 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경사스러운 졸업이요, 축복받아야 할 인생 새출발을 이렇게 범벅으로 유린하는 까닭이 뭣일까. 한양에 사학(四學)이라 하여 네 개의 중등학교가 있었고 이 사학 졸업식에도 파금(破襟)이라는 해프닝이 없지 않았다. 교복이라고 할 푸른 두루마기, 곧 청금(靑衿)을 입고 다녔는데 졸업과 동시에 서로 달려들어 관과 청금을 찢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를 파금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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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나물 종주국

[이규태 코너] 나물 종주국 조선일보 입력 2003.02.18 19:33 나물 먹는 명절인 대보름을 계기로 나물 소비량이 근년에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일본에 비빔밥이 크게 유행하면서 한국 나물 수요가 급증한 것과도 무관하지않을 것이다. 흉년과 외난의 연속인 우리나라를 그 기근에서 구해낸 명줄이요, 빈곤의 상징인 나물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되어 눈물겹다. 식용으로서의 야생나물 문화는 우리 한국이 종주국으로 다이어트식품 시대의 글로벌 기류를 타고 주목되는 문화현상이기도 하다. 나물의 어원설에서부터 그것이 나타난다. 「동언고략(東言考略)」에 보면 신라 사람들은 물건 이름에 나라 이름인 라(羅)자를 즐겨 붙였다 하고, 나라를 라라(羅羅) 나락(稻)을 나라에서 받는 녹(祿)이라 하여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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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우울증 방화

[이규태 코너] 우울증 방화 조선일보 입력 2003.02.19 20:23 세상을 구성하는 3대 요인인 공간(空間) 시간(時間) 인간(人間)에 고루 사이 간(間)자가 들어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 작가인 노신(魯迅)이 철학공약수(哲學公約數)란 말을 쓴 인간(人間) 속의 사이 간(間)은 사람은 사람과의 사이 때문에 인간이란 뜻으로, 둘 사이에 육체적 욕망이나 이해타산만으로 밀착되어 틈이 없으면 인간이 못 된다 했다. 서로간에 양보도 하고 겸허도 하고 사양도 하는 윤리 도덕으로 사이를 둠으로써 인간이 되듯이 시간과 시간 틈에도 사이를 두어야 세상이 제대로 돌아간다. 기원전까지 사람의 이동속도는 낙타의 이동속도인 시속 8마일이었던 것이 자동차가 생기면서 800마일로, 다시 우주선은 1만8000마일이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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