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請託과 한국인

[이규태 코너] 請託과 한국인 조선일보 입력 2003.01.02 18:50 우리 한국인의 의식 가운데 하나로 가문(家門) 이문(里門) 동문(同門)의 삼문의식(三門意識)을 들 수 있다. 이 세 문 안에서 대과(大科)에 급제하면 경사났다 하여 솔문을 세우고 잔치를 베푸는데 이면에 이권이 기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당상(堂上) 벼슬아치는 친(親)8촌 외(外)6촌 처(妻)3촌까지 부양 의무가 지워지고 벼슬의 품수에 따라 그 범위가 좁아지긴 하나 먼 발치의 친지 중에 어렵게 사는 사람이 있으면 인격에 누로 작용했다. 반면 어려운 삼문 안 사람을 돕는 청탁은 누가 되지 않았던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청탁망이 삼문에 그치질 않고 거미줄처럼 넓어져 나갔다. 수백 수천년간 관행이 돼내린 이 청탁은 현대정치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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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물과 한국인

[이규태 코너] 물과 한국인 조선일보 입력 2003.01.03 19:40 서당 뒷산 으슥한 응달에 먹물샘으로 불리는 샘이 있었다. 응달에서 검게 보인다 해서 먹물샘이 아니다. 훈장은 반드시 이 물을 길어다 먹을 갈게 했으며 이 먹물로 쓴 글씨와 다른 물로 먹을 갈아 쓴 글씨를 훈장은 귀신처럼 식별해냈다. 이끼 냄새를 맡고 식별한다느니, 광채가 다른 것으로 식별한다느니 말들이 있었지만, 이웃 고을 서당들에서도 그 먹물샘 물을 길어 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글씨의 광채까지 좌우했던 한국의 물빛이었다. 조선조 초의 선비 성석인은 그 집안에 정자를 지어놓고 차 끓여 마시는 것으로 낙을 삼았는데 단골손님으로 소를 타고 내왕하는 이행(李荇)이라는 선비가 있었다. 어느 날 이행이 차맛을 보더니 다동(茶童)을 불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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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물에 뜨는 돈

[이규태 코너] 물에 뜨는 돈 조선일보 입력 2003.01.05 20:54 미국에서 복권에 당첨된 돈 10만달러(약 1억2000만원)라는 거액을 구세군에 희사를 했는데 구세군측에서 '도박으로 번 돈은 자선에 해독을 끼친다' 하여 되돌려주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돈이란 액면의 경제적 가치만으로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는 오랜 만에 듣는 싱그러운 소식이요, 돈의 질에 너무 맹목적이던 우리들의 정신 자질을 쑥쓰럽게 뒤돌아보게 하는 작은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적 가치를 짓누르는 정신적 돈은 우리 나라에도 전통이 유구하다. 고을마다 대금업자가 있게마련인데 복전주(福錢主) 부전주(浮錢主)로 은밀히 갈라져 있어 복돈(福錢)의 이자는 뜬돈(浮錢)의 이자보다 몇 곱절 많았다. 더욱이 요행이 많이 따르는 불안한 무역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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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인터넷 인재천거

[이규태 코너] 인터넷 인재천거 조선일보 입력 2003.01.06 20:07 옛 선비들 사랑에 한가히 모이면 삼국시대이래의 인재들을 총 활용하여 이상적인 조각(組閣)을 하는 지식유희(知識遊 )를 즐겼다.이 유희에서 벼슬의 우두머리인 영의정(領議政)에는 고구려의 국상 을파소(乙巴素)가 오르는 빈도가 가장 잦았다. 이유는 을파소가 남나름대로 벼슬길을 오른 것이 아니라 명망으로 천거되길 여러번 했다는 데 있다. 요(堯) 임금이 천거정치를 했고 주(周)나라도 육경(六卿) 모두를 천거로 채웠다. 천거정치는 이처럼 태평성세의 조건이지만 야누스처럼 밝고 어두운 두 얼굴을 가져 부작용으로 단속(斷續)이 계속되었었다. 우리나라에도 태종 이래로 왕궁 문전에 인재·효자·열녀 등을 천거하고 비리를 고발하는 신문고(申聞鼓)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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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진통 母乳

[이규태 코너] 진통 母乳 조선일보 입력 2003.01.07 20:11 갓난아기에게 젖을 먹이면서 피를 빼는 아픔을 주었을 때 젖 아닌 다른 것을 먹였을 때에 비해 현저하게 아픔을 덜 느꼈다는 연구결과가 보도되었다. 18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것이기에 신뢰가 가는, 모유의 다른 한 발견이 아닐 수 없다. 모유가 장수에 좋고 살결을 희게 하며 머릿결을 부드럽게 한다는 것은 동서양의 고전에 나오는 비방이다. '본초강목'에 보면 양성(穰城)에 240세 넘도록 산 노인은 증손자의 며느리 젖만을 받아 먹었다 했고, 한나라 장창(張蒼)은 늙어 이가 다 빠진 후에도 100여명의 처첩을 곁에 두고 그녀들의 젖만을 마시고도 100세를 넘겨 살았다 했다. 로마의 폭군 네로의 왕비 포파이어는 여행할 때 500여 마리의 나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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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다산왕

[이규태 코너] 다산왕 조선일보 입력 2003.01.08 20:13 고금을 통틀어 아이 많이 낳은 다산왕을 뽑는다면 전라·경상·충청 삼도의 이을목 지리산 자락에 살았던 흥부 마누라를 들 것이다. 흥부 굶다못해 놀부집에 곡식을 구걸하는데 「돈 한 푼 못 벌고 원치 않은 자식 스물다섯ㅡ」 하자 놀부 뒤로 물러앉으며 군소리로 흥부 마누라를 겨냥 「계집년 생긴 것이 눈이 벌써 음녀(淫女)거든ㅡ」 한다. 흥부 나이 40인데 스물다섯이나 낳았다면 합리화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한 해에 한 배씩 한 배에 둘셋씩」 낳은 것으로 사설에 나온다. 이 많은 아이 입힐 옷이 있을 수 없으니 낡은 멍석 한장 구해다 크고 작은 구멍을 세줄로 뚫어 목만 꿰어 놓으니 한 놈이 측간에 가면 스물네놈이 따라간다. 이처럼 자식 많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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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행복 방정식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행복 방정식 조선일보 입력 2003.01.09 20:10 행복은 힘이 약하고 불행은 힘이 세다. 불행이 행복을 만나기만 하면 손을 비틀고 행패 부리는 바람에 이를 피해 모조리 하늘로 피신했다. 이에 제우스신은 너희들이 행패를 당하지 않은 것은 좋으나 너희를 목마르게 대망하는 사람들이 가엾으니 아무도 모르게 하나씩 은밀히 내려가거라 했다. 그래서 세상은 불행뿐이요 행복은 보이지 않는다 했으니 이것이 이솝의 행복방정식이다. '서경(書經)'에서 사람의 행복은 다섯 가지 복이 갖추어져야 한다 하고 그 하나는 수(壽)로 오래 사는 것이요 둘이 부(富)로 풍족하게 사는 일이며 셋이 강녕(康寧)으로 건강하게 사는 것이며 넷이 호수덕(好修德)으로 도덕을 숭상하고 다섯이 고종명(考終命)으로 천수(天壽)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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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松商 徐成煥

[이규태 코너] 松商 徐成煥 조선일보 입력 2003.01.10 20:10 송도(개성)상인인 송상(松商)의 점포를 송방(松房)이라 했고, 송방에는 상도(商道)를 집약하는 의(義)·신(信)·실(實)이라는 삼도훈(三道訓)이 걸려 있게 마련이었다. 의는 더불어 일하는 사람과 친화하고 동업자와 의리를 지키며 협동하는 일이요, 신은 고객에게 믿음을 주는 일이며, 실은 현실속에서 부딪치는 장사 그리고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근검하는 일이다. 시대가 바뀌고 상업규모도 대형화하고 경영이론도 발달했는데 이 세 가지 상도를 지켜내기란 어렵기 그지없는 일인데 이 삼도훈을 끝까지 지켜 현대경영으로 승화시킨 마지막 송상 서성환 태평양회장이 타계했다. 그 중 서 회장의 실(實)의 철학을 보아보자. 화장품을 처음 만들 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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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하와이 아리랑’

[이규태 코너] ‘하와이 아리랑’ 조선일보 입력 2003.01.12 19:52 '날 버리고 가시는 임,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라'는 아리랑은 정든 임을 보내는 이별의 노래이듯이 세계적 민요인 '알로하오에'는 하와이 아리랑이다. 하와이 왕조의 마지막 여왕인 리릴워카라니가 공주 적에 은밀히 사랑했던 보이드 중령과 밀회하러 가는데, 그 연인이 예쁘게 생긴 이웃에 사는 원주민 아가씨와 격렬한 포옹을 하는 것을 목격했다. 둘 사이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확인한 공주는 흔들리는 감정이 콧노래를 타고 나왔고 궁전에 돌아오기가 바쁘게 그 콧노래를 채보(採譜)한 것이 바로 알로하오에다. 작곡한 지 3년 후 오빠인 임금이 죽자 이를 계승하여 왕위에 오른 여왕은 미국의 거센 합방 물결에 휩쓸려, 나라는 빼앗기고 연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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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아기 기르는 아빠

[이규태 코너] 아기 기르는 아빠 조선일보 입력 2003.01.13 20:10 일전 미국 하원 제108회의 개원식이 진행되고 있는 의석에 한 젊은 아빠 의원이 넉 달된 딸아기를 안고 우유를 먹이고 있는 사진이 보도됐다. 구미사회에서는 그러려니 했겠지만 유별사상이 혹심했던 한국사람에게는 세상 달라져 가는 것을 절감했을 것이다. 30여년 전 스웨덴에 갔을 때 유모차를 밀거나 공원 벤치에서 우유병을 물리거나 개처럼 상체를 엮은 가죽끈으로 아이를 몰고 다니는 것은 거의 남자인 것을 보고 '할 일 없으면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한국 속담이 생각나 '스웨덴에는 실업자가 많기 때문인가' 하고 우문(愚問)을 던졌던 기억도 난다. 이미 스웨덴에는 아버지의 90일간 육아휴가가 제도화돼 있었고 아버지들의 육아파업 금지법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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