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不動明王

[이규태 코너] 不動明王 조선일보 입력 2003.02.20 20:28 시골집 부엌 흙벽에는 부동명왕(不動明王)의 부적이 붙어있게 마련이었다. 타오르는 화염 속에 칼을 든 부동명왕은 화마(火魔)로부터 집을 수호하는 가신(家神)이다. 불 속에서 불을 이겨낸다는 자체가 모순인 것 같지만 대형 화재 속에서 그 피해를 극소화하는 지혜가 내포되어 새삼스럽다. 불이나 공황(恐慌)에 휩쓸려 동분서주하면 자신이나 남에게 기하급수의 인신피해를 가중시킨다는 것은 상식이다. 부동명왕의 부동(不動)은 육신이 아니라 마음의 부동 곧 냉정을 어느만큼 유지하느냐로 피해는 정비례한다. 로스앤젤레스 대지진 때 공황에 말린 피재자(被災者)와 이성을 잃지 않은 부동성 피재자의 사상(死傷)비율은 8대1이었다. 수소와 산소는 그 자체가 가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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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프렌치 키스

[이규태 코너] 프렌치 키스 조선일보 입력 2003.02.21 19:25 공조를 바라는 미국의 이라크 공격에 어깃장 놓고 있는 프랑스에 대한 미국인의 반감이 프랑스 제품의 불매운동으로 확산되고 있다. 향수·포도주·생수 등 명품 불매운동과 여행 보이콧, 국제행사 불참 등 확산일로에 있다던데, 단 한 가지 보이콧에서 제외된 것이 있다. 프렌치 키스인 것이다. 유럽에서 키스 하면 프랑스를 친다. 볼에 키스하는 치크 키스만 해도 영국이나 북구 사람들은 단 한 번 하는 싱글 키스인데, 프랑스 사람들은 더블·트리플 키스를 한다. 키스를 주제로 한 조각의 최고 걸작인 로댕의 「키스」와 블랑쿠시의 「키스」도 프랑스 작가에 의해 파리에서 제작되었다. 키스하는 시늉만 짓고 흡입음만 내는 바큠 키스에 버릇이 들어 있는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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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돌아온 홍어

[이규태 코너] 돌아온 홍어 조선일보 입력 2003.02.23 19:10 임금이나 정치가와 연관되어 역사에 기억되는 정치음식(政治飮食)이라는 게 있다. 강화도에서 어렵게 자랐던 철종(哲宗)이 궁에 들어와 받는 수라상 주식(酒食)이 입에 맞을리 없어 수라간에서는 임금님의 향수음식을 찾아 헤맨 끝에 이문안의 마부와 장꾼들이 찾는 탕국밥과 막걸리를 찾아냈다. 임금이 이 탕국밥과 막걸리만 찾아 먹자 백성이 임금 먹는 것을 같이할 수 없다는 법도로 그 잘되던 장사를 폐하고 대신 선혜청 선달이라는 벼슬을 얻고 있다. 반면에 이웃하고 있는 술국집은 안동김씨 세도의 핵심인 김병국 대감이 드나든다는 소문이 나 팔도에서 노부모 업고 이 술국집을 찾아들었기에 음식재벌이 되었다. 비로 정치 기류를 탄 정치음식의 명암이 아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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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대관식

[이규태 코너] 대관식 조선일보 입력 2003.02.24 19:53 영국 임금이 취임하는 대관식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안에 있는 「스쿤의 돌」 위에서 베풀어진다. 스코틀랜드의 한 마을인 스쿤에서 전래되었다 해서 얻은 이름인 이 돌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이 베었던 돌베개로 이를 베고 잘 때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진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꿈을 꾸었다던 바로 그 돌이다. 기원전 5세기에 아일랜드에 있었다는 이 돌이 후에 스코틀랜드로 옮겨져 왕의 대관식을 이 돌 위에서 베풀어왔다. 에드워드 1세가 스코틀랜드를 정복한 1297년 영국에 가져와 역대 임금이 이 돌 위에서 즉위를 했기로 「대관식 의자」라고도 불린다. 곧 야곱의 베개는 하늘과 땅을 잇는 매체로 신의 명을 거역 않고 받든다는 선서를 상징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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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대통령의 넥타이

[이규태 코너] 대통령의 넥타이 조선일보 입력 2003.02.25 20:23 어제 16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옥색 넥타이를 하고 영부인은 옥색 한복에 옥색 목도리를 하고 나왔다. 평소에 좋아했던 옥색인지, 취임식에서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선택된 옥색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서양사람의 선호와는 거리가 있는 동양적인 선택이다. 옥에는 별의별 색이 다 있다. 부여(夫餘)에서는 붉은 옥이 나고 읍루에서는 푸른 옥이 나며 한반도에서는 엿빛깔의 황갈색 옥이 난다. 어느 왕조부터인지는 몰라도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옥을 세개 꿰어 허리에 차게 하는 패옥(佩玉)으로 그 인품을 다스렸다. 옥을 세개 꿰었다 하여 임금 왕(王)자가 되고 임금과 구별하기 위해 점 하나를 찍어 옥(玉)이 됐다는 해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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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운명 성형수술

[이규태코너] 운명 성형수술 조선일보 입력 2003.02.26 21:15 관상이나 수상을 성형하여 인생의 운세가 바꿔지는 것일까. 두 번이나 자살미수를 한 40세의 오스트리아 여인이 손의 연구로 유명한 문화인류학자 월터 소렐을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20세 때 집시 점쟁이에게 손금을 보였는데 생명선에 두 번의 단절이 있어 30세와 40세에 생명의 위기를 맞는다는 예언을 받았다 했다. 이에 소렐은 간단한 수술로 손금을 휘어주었더니 아주 쾌활해져 미국에 건너가 성공적인 여생을 살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사람이 당하는 재난은 그렇게 당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조작된 운명에 빠져들고 있다' 하고 관상·수상·운명론의 부질없음과 성형으로 운명이나 팔자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망상과 허구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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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대두 섬유

[이규태 코너] 대두 섬유 조선일보 입력 2003.02.27 20:37 유럽에 있어 원한 품고 죽은 영혼은 완전히 죽지 못하고 콩꽃에 붙어 산다. 따라서 여자가 콩을 먹으면 그 악령을 잉태하는 것으로 알았다. 마녀가 타고 다니는 빗자루는 콩대로 만들었으며 유령을 그릴 때 콩나물처럼 털 난 외다리와 콩나물 대가리로 그린다. 희랍의 피타고라스가 자객들에게 쫓겨 도망치는 데 콩밭을 가로지르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콩이 이성을 마비시키고 광기를 불러 일으킨다 하여 싫어했던 피타고라스는 콩밭을 가로지르느니 죽음을 선택, 자객에게 목을 찔려 죽고 만다. 18세기 실학자 이익(李瀷)이 우리나라에 콩이 없었던들 나라는 유지되지 못했을 것이라 했을 만큼 콩은 민족식량이었다. 한국전쟁 때 된장과 두부·콩나물 없이는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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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인간 방패

[이규태 코너] 인간 방패 조선일보 입력 2003.02.28 20:20 이라크를 포위하고 있는 미군 사령관은 전쟁이 시작되면 폭격 목표에 숙박하고 있는 인간방패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언명했다. 지금 이라크에는 20개국에서 300여명의 인간방패들이 발전소, 정유공장, 수도시설 등에서 숙식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11명의 지원자가 참여하고 있다 한다. 지난번 걸프전쟁 때 쿠웨이트에서 미처 빠져나가지 못했던 외국인들을 이라크측에서 거두어 발전소 등 요지에 수용, 폭격을 피하려 했던 적이 있으며 구미(歐美)의 반전운동가들은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에 들어가 소규모의 인간방패운동을 벌여왔다. 인간방패운동의 시작은 기원전 400년으로까지 소급된다. 승세를 몰아 아테네성을 포위한 스파르타군은 그 성을 한쪽부터 헐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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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씨받이 은행

[이규태 코너] 씨받이 은행 조선일보 입력 2003.03.02 20:47 불임에는 남편의 정자에 문제가 있는 경우와 아내의 난자에 문제가 있는 두 경우가 있다. 우리 전통사회에서 전자는 야밤에 사나이를 보쌈해 납치, 합방시키는 씨내리가 있고 후자는 직업적인 부인을 들여 합방시키는 씨받이가 있었다. 그 불임여성을 위한 씨받이를 주선하는 한국의 난자은행(卵子銀行)이 일본에 상륙했다고 아사히 신문이 보도했다. 서울에 본사를 둔 이 난자은행에서는 일본의 난자제공자를 1인당 60만엔으로 공모, 현재 20~30명을 확보하고 있다 한다. 이 난자를 살 사람은 부부가 와 경력 자료를 보고 제공 난자를 선택하여 남편의 정자와 체외수정한 뒤 아내의 자궁에 이식하여 임신시키는 절차로 진행된다. 그 값은 200만엔. 난자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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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넥타이 소송

[이규태 코너] 넥타이 소송 조선일보 입력 2003.03.03 20:38 여성 공무원에게는 자유복장을 허락하면서 남성 공무원은 넥타이를 매지 않으면 안 되게 돼 있는 복무규정은 성차별이라는 넥타이 소송이 지금 영국에서 진행 중이다. 복무규정에 '깔끔한 복장'으로만 돼 있지만 그 깔끔 속에 넥타이가 강요되어 있음을 든 것이다. 이 소송은 한국을 비롯 온세계 샐러리맨의 공통 불만이기에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미국에 망명했던 갑신정변 주역 이규완의 회고담에 「서양사람들 목에 댕기(넥타이) 매기를 조선사람 상투에 망건(網巾) 쓰듯 한다」 했다. 그렇다면 요즈음 사람들이 넥타이를 매야 격조를 갖추고 행세하는 것과 조상들이 상투 좇고 망건 써야 인격을 갖추고 대접받는 것과 그 사회적 의미에 있어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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