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수목장(樹木葬)

[이규태 코너] 수목장(樹木葬) 조선일보 입력 2003.03.16 19:34 조상 의식이 희박해져가고 있는 데다 후손들의 묘지관리를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매장문화도 급속하게 달라져가고 있다. 연전에 화장한 유해를 우주선에 실어 우주공간에 뿌리는 우주장(宇宙葬), 월장(月葬)을 공모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지금 영국 시립런던묘지에서는 전에 없던 두 묘지를 조성, 인기를 모으고 있다던데 그 하나는 유해를 묻은 위에 장미를 심고 그 장미 가지에 망인의 신원을 새긴 표찰을 매어두는 것이 고작이다. 묘지가 아니라 넓디 넓은 장미화원이요, 바람이 불면 표찰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나는 것이 다를 뿐이다. 한 그루 장미꽃으로 돌아가는 소박한 자연회귀의 이승 마무리다. 이 장미무덤은 함부르크·뮌헨 등 유럽 전..

이규태 코너 2022.11.08

[이규태 코너] 제주 귤나무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제주 귤나무 입력 2003.03.17 20:29:32 | 수정 2003.03.17 20:29:32 문종(文宗)은 풍류를 아는 시인이었다. 언젠가 제주도에서 진상된 귤 한 쟁반을 집현전에 보냈는데 다 먹고 보니 쟁반 바닥에 친필 시 한수가 쓰여 있었다. 「단향목은 코에만 향기롭고 /기름진 음식은 입에만 마땅한데 /나 제주 귤을 사랑하는 뜻은 코에도 향기롭고 입에도 달기 때문이다.」 해마다 제주 귤 수만개가 진상되었는데 이 귤이 올라오면 특별히 과거를 치러 인재를 뽑기까지 했는데 진품(珍品)이 올라와 경사스러워서가 아니라 귤이 코에 향기롭고 입에 달 듯한 인재(人材)를 상징한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일본서기」에 신라로부터 귀화한 다지마(田島間守)가 730년 상세국(常世..

이규태 코너 2022.11.07

[이규태 코너] 이라크전 動物兵器

[이규태 코너] 이라크전 動物兵器 조선일보 입력 2003.03.18 20:42 정유재란 때 북상하는 왜군과 명나라 원군(援軍)이 충청도 직산에서 대결했다. 왜적이 접근하자 매복시켜둔 원병(猿兵) 300 마리를 풀어 교란을 시켰다. 왜병들이 이 원숭이 병사들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4000명의 기병이 포위하여 대첩을 이루었다. 당시 명군 사령관이던 형개(邢价)의 한국인 참모였던 김대현의 후손 집에서 명나라 군대를 환송하는 그림이 연전에 발견되었는데 그 그림 속에도 원병삼백(猿兵三百)이라 쓰인 깃발 아래 원숭이로 가장한 병사들이 춤을 추며 뒤따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원숭이를 훈련시켜 참전시킨 것이라는 설, 중국에 표류한 백인들을 훈련시킨 외인부대라는 설, 적정을 살피고자 원숭이로 위장시킨 특수부..

이규태 코너 2022.11.07

[이규태 코너] 논문 대필업

[이규태 코너] 논문 대필업 조선일보 입력 2003.03.19 20:05 우두를 도입한 의학자 지석영(池錫永)의 형으로 지운영(池運永)이라는 재사가 있었다. 흔히들 시(詩)·문(文)·서(書)·화(畵)에 뛰어난 사람을 사절(四絶)이라 하는데 지운영은 선(禪)·광(狂)·치(痴)·혜(慧) 사절이 더하여 팔절(八絶)로 불린 재사였다. 다만 돈버는 데에만 무능하여 가회동 언덕바지 벽이 무너져 바람이 드는 허름한 집에서 끼니를 걸러가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내장원경(內藏院卿)인 친구 이인우가 찾아와 옷을 차려입고 나오라고 했다. 해진 갓에 기운 도포 자락을 걸치고 나와 걸으면서 "어디를 가느냐"고 물으니 "자네 팔자 펴줄 사람 만나러 간다"고만 말할 뿐이었다. 말하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송현고개에서 버티자 "세..

이규태 코너 2022.11.07

[이규태 코너] 釋一行

[이규태 코너] 釋一行 조선일보 입력 2003.03.20 20:05 이웃집 아저씨 같은 정감이 흐르는 용모나 한국인의 심정에 거부감 없이 와 안기는 언행으로 친근해져 있는 스님에게 틱낫한이라는 이름은 낯설기도 하려니와 외우기도 까다로우니 한국인에게 익숙한 한문 법명을 쓰면 친근감이 더할 것 같다고 했더니 틱은 불성을 뜻하는 석(釋)이요, 낫한은 오로지 한 가지 일에 저념한다는 일행(一行)이라 써주었다. '관경소(觀經疏)'라는 불경에 보면 만 가지 소망을 이루는 한 가지 일에 전념한다는 것은 바로 염불이라 했다. 한국에 온 베트남의 틱낫한 곧 석일행 스님의 저서들이 많이 팔리고 움직이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가 무엇일까. 스님의 저서를 읽어 보면 불교색채가 별반 드러나지 않는다. 마음의 꽃밭을 가꾸..

이규태 코너 2022.11.07

[이규태 코너] 후세인과 살라딘

[이규태 코너] 후세인과 살라딘 조선일보 입력 2003.03.21 19:36 이라크의 후세인 대통령은 십자군 전쟁 때 성지 예루살렘을 90년 만에 탈환한 아랍의 영웅 살라딘을 자처했다. 근 900년의 세월을 사이에 둔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분모가 있다. 둘 다 바그다드의 북쪽 타크리트에서 태어난 동향인이다. 살라딘은 이집트의 통치자가 되면서 영지(領地)를 군인에게 나누어주어 명령에 멸사봉공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군사토지 제도를 썼으며, 그 주종관계를 맺을 때 서로의 피로 쓴 코란의 한 구절을 교환함으로써 확고부동하게 했다. 지금 바그다드의 교외 「싸우는 어머니」라는 이름의 회교사원에는 피로 쓴 코란의 경문이 전시되어 이라크 국민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바로 후세인 대통령의 몸에서 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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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이라크 대추나무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이라크 대추나무 입력 2003.03.23 19:16:29 | 수정 2003.03.23 19:16:29 비가 없는 건조한 황무지에서만 자라는 사조(沙棗)나무가 있다. 올리브나무처럼 생겼고 올리브 같은 향내가 나는 열매가 열리는 사막 대추나무다. 김옥균의 암살범인 홍종우(洪鍾宇)가 근무했던 파리의 기메 미술관에 가면 이탈리아 화가 카스테리오네가 그린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출렵도(出 圖)가 있는데 그 일행 가운데 서역(西域) 여인을 찾아볼 수가 있다. 실크로드 카슈갈에서 전리품으로 황제에게 바쳐진 이 미녀는 아름다움보다 향기로운 체취 때문에 향비(香妃)로 불리는 임금님의 애인이다. 그 향의 비밀이 카슈갈의 사막에 자라는 사조 열매 탕에서 목욕을 한 때문이다. 중국 북서..

이규태 코너 2022.11.07

[이규태 코너] 바벨의 탑 무상

[이규태 코너] 바벨의 탑 무상 조선일보 입력 2003.03.24 19:27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인 바벨탑이 이라크의 전화(戰禍) 속에 있어 그 유적의 훼손이 우려되고 있다.구약성서시대 바벨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세상을 지배했다고 생각하고 그 끝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이를 내려본 신은 천국에의 도전이요, 불손으로 간주하고 천벌을 내려 부수고 대혼란을 야기시켰다. 영어로 퍼펙트 바벨, 바벨 사운드ㅡ하면 대혼란이나 대소음을 의미한 것도 이에서 비롯됐다. 바빌론이란 말도 이 바벨에서 비롯됐다 한다. 전쟁은 악이지만 최초의 세계 대제국인 바빌론의 계승국으로 자처하는 이라크가 지금 공습에 의한 바벨 사운드 속에 퍼펙트 바벨에 빠져있으니 3000년 만의 바벨탑이 재현되고 있는 셈이라 무..

이규태 코너 2022.11.07

[이규태 코너] 폴란스키

[이규태 코너] 폴란스키 조선일보 입력 2003.03.25 20:11 요즈음 청소년들은 키도 크고 다리도 길어지는데 가슴만은 좁아지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콩나물 키, 롱 다리, 새가슴인 셈이다. 마음이 들어가 있을 상자인 가슴은 사람에 따라 크거나 작기도 하고, 둥글거나 모나기도 하며, 희석되거나 부풀기도 한다. 거지 몰골이 되어 찾아온 이도령을 보고 월매(月梅)가 한 말이 생각난다. '거지 중의 왕거지인데 떡 벌어진 가슴을 보니 뭣인가 들어있는 것 같다'는…. 반면에 뺑덕어멈은 새 주둥이에 새가슴을 하고 있다고 하듯이, 고전소설에서 소인배는 가슴 좁은 것으로 비유하게 마련이다. 왜 청소년들 마음의 상자가 작아져갈까. 맨 먼저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 중독돼 부모형제나 친구들과 담쌓고 제 방에 콕 박혀 ..

이규태 코너 2022.11.07

[이규태 코너] 포로 대우

[이규태 코너] 포로 대우 조선일보 입력 2003.03.26 20:27 이라크 방송에 의해 연일 전 세계에 공개된 미군 포로와 시체에 대한 학대 광경을 두고 미국에서는 폭력과 위협 모욕과 호기심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포로 대우에 대한 협약 위반으로 보고 전후에 전범(戰犯)으로 다루겠다고 나섰다. 1949년에 만들어진 이 제네바협약 이전에도 포로에 대한 인도적 대우는 기원 전부터의 상식이었다. 기원 전 인도의 「마누법전」에는 도망가다가 합장(合掌)하는 자, 아무 것도 갖지 않았다고 팔을 펴보이는 자는 나의 친족처럼 보살피라 했으니 이미 3000년 전에 제네바협약은 성문화돼 있었다는 것이 된다. 중국에서도 포로로 잡힌 이릉(李陵)이 항복하여 부귀를 누리고 소무(蘇武)가 절개를 굽히지 않아 짐승만도 못하게..

이규태 코너 2022.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