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음악 법정

[이규태 코너] 음악 법정 조선일보 입력 2003.04.08 20:05 일본에서 대안의학을 하는 한 학자의 내한 강연에서 물에도 음악을 듣는 마음이 있다고 했다. 눈(雪)에 결정이 있어 육출화(六出花)라 하듯이 물에도 결정이 있어 이를 촬영해왔다는 그는 물에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들려주었을 때 정돈된 아름다운 결정을 지었고 분노와 거친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그 결정은 정돈을 깨고 들쑥날쑥해졌다고 촬영사진을 비교해 보여주었다. 인체의 70%는 물이요, 감정의 변화에 따라 그 몸 안의 물의 결정이 달라지며 심신 건강에 양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식물이 음악에 영향받는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미국 덴버방송국에서의 실험으로 두 개의 트랜지스터 틈에 호박을 길렀더니 베토벤 브람스 슈베르트 등 클래식 음악만을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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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4文字語

[이규태 코너] 4文字語 조선일보 입력 2003.04.09 19:43 팝스타 마돈나가 만든 이라크전 반전 비디오가 회수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 여군이 「F*ck!」이라는 욕설을 퍼부으면서 부시 대통령에게 수류탄을 던지는 장면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성행위를 뜻하는 F*ck이란 말은 천한 비속어요, 욕말이라 하여 영어권에서 500여년 동안, 극히 근년까지 출판물에 쓰지 않았던 금기어(禁忌語)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의 외설 재판 때도 판검사나 변호인이 이 말을 입에 할 수 없어 「4문자어(four-letter word)」라 대신했을 정도다. 그 말과 발음이 비슷한 옷 주름(tuck)이란 말을 입에 담는 것마저도 천하게 여겼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조사한 외설어금기도(猥褻語禁忌度)에 보면 1위가 '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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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지하 궁전

[이규태 코너] 지하 궁전 조선일보 입력 2003.04.10 20:22 이 세상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도록 불을 밝혀놓은 무덤이 두 개 있다. 미국 알링턴 묘지에 있는 케네디 무덤과 중국 시안 근교에 있는 진시황의 무덤이 그것이다. 기록에 보면 그 지하 아방궁은 지상 아방궁을 축소해 놓은 것으로 수은으로 강물을 만들어 둘러놓고 금은보화로 나무와 꽃과 새와 고기들을 조각해 놓았다. 그렇게 호화로운 궁전이지만 영면하는 침상은 여느 서민의 침상과 다름없이 세로 6척, 가로 3척에 불과하다. 그래서 부와 권력을 좇아 허덕이는 사람에게 「진시황도 단칸 자리에서 영면한다」고 충고하곤 했던 것이다. 그 머리맡에 인어유(人魚油)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을 켜놓았다 했는데 인어유가 어떻게 만든 기름인지 몰라도 켜져 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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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바이 바이 사담!

[이규태 코너] 바이 바이 사담! 조선일보 입력 2003.04.11 19:31 임진년의 왜란으로 졸지에 피란길을 떠난 선조가 겨우 모래재(沙峴)에 이르러 성 안을 뒤돌아보니 검은 연기가 곳곳에서 치솟고 있었다. 임금과 동행했던 유성용의 「징비록」에 보면 임금이 성문을 나서기가 바쁘게 난민들이 형조(刑曹) 등 관아와 내탕고에 불을 질러 재물을 약탈했으며, 경복궁·창덕궁·창경궁을 불질러 역대로 내려온 보화와 귀중품을 앞다투어 훔쳐갔다. 홍문관의 책과 승정원의 일기를 불사르고, 임해군 등 왕족과 홍여순 등 고관의 집들은 왜적이 오기 전에 우리 백성들이 약탈하고 불질렀다. 외적에 앞선 이 같은 우리 백성의 약탈·방화는 한양에서만이 아니었다. 일본 가토(加 正)군이 함경도 회령에 쳐들어가기 이전에 그곳 아전인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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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頭像위의 신발짝

[이규태 코너] 뗏목 장보고호 조선일보 입력 2003.04.13 20:40 15년 전이던가 남해 장흥(長興)에 사는 10대 청소년 셋이 1t짜리 통통배를 훔쳐 타고 두 달 남짓 동지나해를 헤매다가 양쯔강 하구에서 중국 관헌에게 잡혀 송환된 일이 있었다. 배를 훔친 것도 잘못이요, 부모 애간장 녹인 것도 잘못이며, 목숨을 경시하기도 한 겁없는 아이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 마음 후미진 곳에서 건포도처럼 메말라 있는 진취정신의 원형(原型)을 보는 것 같아 싱그러웠던 기억이 난다. 한국 아이들은 바다가 가까워지면 저도 모르게 달려가는 데 예외가 없음을 관찰한 것은 한국에 오래 살았던 프랑스 신부 여동찬이다. 삼면이 바다요, 그 속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한국인에게 바다의 사상이 비장돼 숨쉬고 있다는 증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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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頭像위의 신발짝

[이규태 코너] 頭像위의 신발짝 조선일보 입력 2003.04.14 20:18 '짚신장가 간다'는 우리 민속이 있다. 처녀가 죽으면 시집 못 간 한을 품은 손말명이 되어 완전히 죽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며 해코지 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래서 그 처녀가 신었던 신발 한 짝을 한길 복판에 던져 놓고 지나다니는 총각들로 하여금 신게 해서 시집 못 간 한을 풀어주었다. 이를 짚신장가 간다 했는데 신발이 성기(性器)의 상징이요, 신발 신는 것이 성행위의 상징인 것은 동서가 다르지 않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의중에 있는 사나이나 혼약의 증거로 여자측에서 베로 만든 신발을 보내는 관습이 있으며 이스라엘 집단촌인 키부츠 결혼식에서 신랑·신부에게 신발짝을 던져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것을 보았다. '콩쥐 팥쥐'에서 콩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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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사스와 마늘

[이규태 코너] 사스와 마늘 조선일보 입력 2003.04.15 20:17 60년대에 '일리노어 타블렛'이라는 마늘 당의정(糖衣錠)이 미국에서 유행했었다. 당시 팔순이 넘도록 정력적으로 사회활동을 하고 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부인 일리노어 여사에게 노익장의 비결을 물었을 때 "수십년 동안 마늘을 먹어왔고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잔병이나 유행병을 앓은 적이 없다는 것밖에 말할 것이 없다" 했다. 이 말이 불씨가 되어 미국에 마늘 붐이 일었고 그 기피요인인 냄새를 없애고자 고안된 마늘 당의정을 그녀의 이름을 따 일리노어 타블렛이라 불렀다. 마늘의 주성분인 알리신 1밀리그램은 15단위의 페니실린 항균력(抗菌力)과 맞먹으며 마늘이 살균력을 발휘하는 세균이 무려 72종에 이르렀다. 150종의 식품 항균력 조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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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흰 진달래

[이규태 코너] 흰 진달래 조선일보 입력 2003.04.16 19:56 「연달래 진달래 난다알래!」 만산에 진달래가 필 무렵 나물 캐는 소녀를 만나면 이렇게 놀려먹던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놀림받으면 소녀는 땅에 주저앉아 발을 동동 구르며 울게 마련이었다. 진달래는 피어나는 장소에 따라 그 빛깔의 농담(濃淡)이 다른데 연한 놈을 연달래 진한 놈을 진달래, 난초처럼 검붉은 놈을 난달래라고 갈라 불렀다. 앳된 소녀의 젖꼭지가 연달래색이요, 숙성한 처녀의 그것은 진달래색이며, 한물간 여인의 그것은 난달래색이기에 바로 이 놀림말은 산골의 순박한 외설이기도 하여 난달래로 놀림받은 연달래 소녀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참 피어오르는 쳐녀를 빗대어 「만산(滿山) 진달래에 볼때기 덴 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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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星條旗 主義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星條旗 主義 입력 2003.04.17 19:40:11 | 수정 2003.04.17 19:40:11 뉴욕 흑인거리인 할렘가의 술집에 들면 벽에 아프리카 지도를 붙이고 기니나 모잠비크의 종이국기를 그 지도에 꽂아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미국 흑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그렇게 확인하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 흑인 남녀 할 것 없이 목걸이나 귀고리 모양이 아프리카의 지형인 경우가 허다하다. 미국의 흑인들에게 뿌리 의식을 일깨웠던 소설 「루츠」의 주인공 킨타쿤테 패션이 혜어스타일, 티셔츠, 색안경 등으로 흑인들의 일체감을 과시했었다. 1975년에 죽은 블랙 모슬렘의 지도자 엘리아 무하마드는 미국 내에 흑인 독립국 건국운동을 벌였으며 그의 추종자는 200만명을 헤아렸다. 백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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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師弟 洗足

[이규태 코너] 師弟 洗足 조선일보 입력 2003.04.18 20:06 육체의 때만 씻는 게 아니라 마음의 때를 씻는 정신 세척문화가 별나게 발달했던 우리나라다. 사도세자를 증오했던 영조께서는 세자의 말소리만 들어도 부정 탔다 하여 세숫물 떠 오라 시켜 귀를 씻는 귀씻기(洗耳)를 했다.깐깐한 옛 선비들은 길 가다 방아소리만 들어도 성행위를 연상시킨다 하여 귀씻기를 했다. 못 볼 것을 보았을 때나 흥분해서 못 할 말을 했거나 하면 발걸음을 재촉, 집에 돌아와 눈씻기, 입씻기를 하여 그로써 마음에 묻은 때를 세척했다. 그러하듯이 기생, 노름, 마약, 깡패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온다 할 때도 발을 씻는다 했다. 불교 성지에 가면 불족석(佛足石)이라 하여 부처님 발자국을 음각해 놓은 돌이 있고, 예루살렘의 암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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