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모래 폭풍

[이규태 코너] 모래 폭풍 조선일보 입력 2003.03.27 20:14 바그다드에 있는 이라크 국립박물관에 가면 이라크인의 조상인 슈멜인 부부상이 눈을 끈다. 커다란 두 눈과 기다란 수염이 현대 화학전에 대비해 방독면을 쓴 것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염이 아니라 모래폭풍을 방어하는 얼굴덮개라는 설까지 있다. 더러는 방독면이 등장하는 이라크전을 기원전에 예언한 석상이라 하여 주의를 끌기도 했다. 그만큼 모래폭풍이 심한 이라크 사막이다. 사막에서 싸웠던 로렌스의 기록에 보면 모래폭풍은 마치 검은 갈색 벽이 밀려들 듯하고 털색이 같은 낙타가 그속에 들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모래폭풍을 만나면 운반수단인 낙타를 상실한다는 것이 우선되는 공포다. 모래폭풍을 역풍으로 안고 걸어야 한다면 허..

이규태 코너 2022.11.07

[이규태 코너] 전쟁과 괴질

[이규태 코너] 전쟁과 괴질 조선일보 입력 2003.03.28 19:35 중국 광둥에서 발생한 ‘수수께기의 폐렴’이라는 괴질이 중국 본토에서 대만·홍콩·싱가포르·베트남·태국으로 남하하고 영국·독일·아일랜드·스위스·슬로베니아·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으로 서점(西漸)하는가 하면 미국·캐나다로 동점(東漸), 온세계로 번져나가고 있다. 이라크 전쟁만 아니면 온 세상이 떠들썩했을 이 괴질은 감기 증상을 보이는 고열·두통·목구멍통·기침을 동반하는, 닭이나 칠면조의 조류가 옮기는 바이러스다. 발생지인 광둥에서 홍콩에 온 한 손님이 묵은 호텔의 같은 층에 머물렀던 일곱명의 손님이 발병한 것으로 미루어 접촉없이 한층에 머무른 것만으로도 전염된 것으로 판명된 것이다. 이 괴질과의 전쟁은 밀접한 함수관계가 있었다. 희랍의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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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와디이즘

[이규태코너] 와디이즘 조선일보 입력 2003.03.30 20:04 지금 지상전이 진행 중인 이라크 사막에는 와디라는 바위가 많은 좁은 협곡들이 많다. 연중 건조하여 불모의 골짜기로 있지만 상류에 비가 쏟아지면 급류가 되어 크고 작은 바위들을 무차별 굴려 흐름 가운데 있는 것이나 강둑에 있던 목동의 집들을 파괴해 버린다. 둑에서 사랑에 빠져 비 오는 것을 모르고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마저도 휩쓸어내리는 가공할 와디다. 그러길 두어 시간 하고나면 언제 미쳐 날뛰었던가 씻은 듯이 원상복귀한다. 민족의 심성은 그 속에 살아온 자연환경을 닮는다더니, 자제하다가도 폭발적으로 발작하는 과격한 이라크사람들의 심성을 와디 닮았다 하여 와디이즘이라 한다. 보통 대화도 성난 듯 목청을 높이고 흥정하는 소리는 싸우려 드는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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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자살군단

[이규태 코너] 자살군단 조선일보 입력 2003.03.31 19:59 이라크전에서 드디어 몸에 자폭장치를 한 자살군단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역대 어느 전쟁보다 통치자와 피통치자, 그리고 군인과 민간인을 갈라 싸워야 하는 이 전쟁에서 이 위장 인간무기는 전세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 뻔하다. 이 자살군단은 사막 전투에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산노인부대(山老人部隊)'라는 암살군단이 10세기 전후해서 암약했던 선례를 본뜬 것이다. 이란 아람라트산에 본거지를 둔 이 암살군단은 암살병력을 길러 반대종파의 우두머리들을 암살했고, 그 후 이곳을 침입했던 십자군과 몽골군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 것도 바로 단검(短劒) 하나로 무장한 산노인부대였다. 십자군의 명장 레이먼드 백작이며 예루살렘의 곤래드왕, 사막국들의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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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파병

조선일보 | 오피니언 입력 2003.04.01 19:57:57 | 수정 2003.04.01 19:57:57 이라크 비전투부대 파병을 두고 찬반 국론이 전에 없이 열기를 더하고 있다. 조국을 광복시키고 공산주의 남침에서 수복해준 미국에 대한 의리론과 한반도 평화의 관건이 되고 있는 북핵문제 해결이나 앞으로의 경제문제에 있어 미국과 등져 이로울 게 없다는 실리가 찬성론을 주도하고, 유엔의 동의를 얻지 못한 명분 없는 전쟁이요, 미국의 침략전쟁에 가담할 수 없으며 세계적으로 열기를 더해 가고 있는 반전 무드가 총선과 맥락되어 반대론을 주도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상 명나라의 파병 요구가 있었을 때마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해준 재조지은(再造之恩)으로 국론이 갈라진다는 법은 없었다. 청나라에 쫓겨 철산 앞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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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백년 만의 졸업장

[이규태 코너] 백년 만의 졸업장 조선일보 입력 2003.04.02 20:19 보스턴 동북쪽에 미국에서 가장 역사 깊다는 기숙학교 거버너 더머 아카데미가 있다. 하버드대학 입학을 위한 예비고등학교로 미국독립 이전에 더머라는 주지사가 설립했다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한국 최초의 미국 유학생인 유길준(兪吉濬)이 다녔던 고등학교로, 이 한국의 개화선구자를 기리고자 이 학교에서 유길준에게 명예졸업장을 주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120년 만의 졸업장이니 동서고금 가장 긴 세월의 졸업장이 아닐까 싶다. 한·미 수교 후 그 보빙사로 명성황후의 친정조카인 민영익(閔泳翊)의 수행원으로 미국에 갔던 유길준은 관비유학생으로 미국에 남게 되었고 당시 한국 외교를 대행했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이 그의 학우인 동물학자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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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姑婦 新聞觀

[이규태 코너] 姑婦 新聞觀 조선일보 입력 2003.04.03 20:05 며느리 흉보지 않으면 시어머니들 만나는 재미가 없다. '우리 며느리 부뚜막에 앉아 이마 털 뽑는다' 하면 '우리 며느리 호롱불에 속곳 말린다' 하고 '우리 며느리는 주걱으로 이 잡아죽인다'고 한다. 시어머니에게 예쁜 며느리 없는 걸 보면 구조적인 괴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분신(分身)처럼 금이야 옥이야 길러온 아들을 며느리가 가로챈 데 대한 원천적 질투 때문인지 시어머니의 가계권(家計權)이 옮아가는 데 대한 불안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래선지 며느리 증오하는 속담이 우리나라처럼 많은 나라도 없다. 며느리는 비빔밥 그릇 씻게 하고 딸은 흰죽 그릇 씻게 하며, 며느리는 갈퀴나무 불을 때게 하고 딸은 장작불 때게 한다. 며느리는 콩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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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바그다드

조선일보 입력 2003.04.04 19:57 바그다드 중심의 번화가인 알 라시드 거리가 폭격으로 화염에 싸이고 남녀의 시체가 나뒹군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비련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뉴스가 별나게 와닿을 것이다. 교주인 알 라시드는 누이동생을 사랑하여 곁에 살려두고 싶었고 한편으로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란 친구 자파아르와도 떨어지기 싫었다. 남남인 미혼 남녀가 한지붕 아래 같이 산다는 것은 이슬람 관례상 허락되지 않는지라 두 남녀를 편법을 써 결혼을 시키고 동침하는 것을 엄하게 금했다. 한데 서로가 사랑하여 은밀히 사내아이를 낳은 것을 알자 알 라시드는 누이동생 모자를 죽여 궁전 지하에 매장하고 친구 자파아르는 참수(斬首)했다. 바그다드의 알 라시드 거리는 바로 이 비련의 현장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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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新版 금지된 장난

[이규태 코너] 新版 금지된 장난 조선일보 입력 2003.04.06 20:22 프랑스 영화감독 클레망은'태양은 가득히''선술집''금지된 장난'등 전쟁 증오를 동화처럼 담담하게 묘사하여 감동을 주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파리가 독일군에 함락당하자 난을 피해 시골로 가던 다섯 살의 포레트는 기총소사로 양친을 잃고 전쟁고아가 된다. 애견의 사체를 안은 채 숲속을 헤매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인 열한 살의 미셸을 만나 그 집에 가 산다. 애견의 무덤을 만들었던 포레트는 전장에서 본 그 많은 죽음의 충격 때문인지 작은 동물이나 곤충의 사체를 주워 와 무덤 만드는 일로 지새우고 미셸은 작은 연정으로 이를 돕는다. 장의사나 남의 무덤에가 십자가를 훔쳐대다 모자라자 교회의 큰 십자가를 훔치려다 목사에게 들켜 포레트는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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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물소

[이규태 코너] 물소 조선일보 입력 2003.04.07 20:01 20년 전 대구에서 코끼리가 저를 먹여 길러주던 사육사를 코로 감아 죽인 일이 있었다. 태종 때 사복사(司僕寺)에서 일본에서 보내온 코끼리를 기르는데 구경꾼 하나가 추하다고 비웃으며 침을 뱉었더니 성나 짓밟아 죽이는 일이 있었다. 이때 병조판서 유정현이 동물 재판을 열어 사람을 죽인 자는 죽임으로 보상받아야 한다는 법조를 적용, 사형을 언도했으나 임금이 감일등하여 전라도 노루섬에 유배시키고 있다. 엊그제 연휴에 서울대공원에서 격리장치를 넘어간 10세 초등학생이 물소에 떠받혀 골절 등 중상을 입었다. 물소는 달려드는 늑대나 사자를 역습, 격퇴시킬 만큼 무서우나 인도에서는 사람과 짐승의 중간 존재로 우러름받는다. 불교에서도 자비와 인내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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