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최저 출산국

[이규태 코너] 최저 출산국 조선일보 입력 2003.04.20 20:33 압록강 건너 연행(燕行)길에 들면 오밀조밀 손으로 빚은 듯한 봉황산(鳳凰山)이 나오고 그 산 북면 중턱에 알바위가 있다. 사행길 따라가는 조선사람들 다투어 이곳에 들르는 것이 관례였다. 사타구니 틈에 끼인 듯한 거대한 이 알바위 아래 구멍이 나 있고, 그 구멍을 33번 들랑거리면 아들 낳는 영험을 얻는다하여 손이 귀한 사람들 일부러 사행의 말단자리 큰돈 주고 사서 수행한다 했다. 중국의 북쪽 변방을 지켜주는 신당이 북진묘(北鎭廟)요, 이곳 한쪽 구석에 신화시대의 유물인 보천석(補天石)이 있다. 여호아가 천지창조를 할 때 하늘 한쪽이 무너져 재난이 일어났을 때 무너진 하늘을 막던 바윗덩이가 있다. 이 바위 아래에도 세모꼴의 구멍이 나..

이규태 코너 2022.11.07

[이규태 코너] 소를 탄 대통령

[이규태 코너] 소를 탄 대통령 조선일보 입력 2003.04.21 19:28 임진왜란 전에 임금의 명에 따라 곽재우(郭再祐) 이순신(李舜臣) 김덕령(金德齡) 등 명장을 천거한 것은 정승 정탁(鄭琢)이었다.사람 보는 눈이 투철했던 정탁이 만년에 남긴 말이 「연려실기술」에 실려 있다. 젊었을 때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을 뵈었는데 작별에 즈음하여 "내 집에 소 한 마리가 있는데 군이 끌고가게나" 했다. 집에 소가 없으면서 끌고가라는 말에 어리둥절하자 남명이 말하길 "자네의 언어와 의기가 너무 민첩하고 날카로우니 날랜 말만 같아 넘어지기 쉬운지라 더디고 둔한 것을 참작하여야 멀리 갈 수 있을 것이므로 내가 소를 준다는 것일세" 했다. 그 후 대성한 것은 선생이 주신 마음의 소 때문이라 했다. 옛날 훈장이..

이규태 코너 2022.11.04

[이규태 코너] 쿠르드 인

[이규태 코너] 쿠르드 인 조선일보 입력 2003.04.22 19:56 혼혈 민족이 아름답다는 것은 상식이다. 러시아 문학작품 속에서 미녀는 쿠르드족 혼혈의 아르메니아 아가씨로 정평이 나있다. 체호프의 단편소설 '미인(美人)'은 시골길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허술한 마차 정거장이 무대다. 노동자 농부 거간장이 장사꾼들이 속되고 걸쭉한 말로 떠들썩한데, 한 아가씨가 지나가자 파도가 쓸고 가듯 넋들을 잃는다. 바로 쿠르드 혼혈의 아르메니아 아가씨의 미모가 인생을 허탈하게 한다는 주제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이 혼혈지구를 여행하고 나서 아름답고 청순한 호수를 허우적거리다 빠져나온 느낌이라 했다. 이라크 북부 유전도시인 키르쿠크를 제압한 쿠르드 여병사들의 환호하는 보도사진을 보니 그 미모를 직감할 수 있겠다. 지금은 ..

이규태 코너 2022.11.04

[이규태 코너] 바그다드 동물원

[이규태 코너] 바그다드 동물원 조선일보 입력 2003.04.23 20:06 10수년 전 남극 탐험대가 썰매 끄는 데 부린 개들의 처리를 두고 영·일(英·日) 간에 논쟁이 벌어졌었다. 영국탐험대는 그 개들을 사살하고 돌아왔고, 일본 탐험대는 양식을 남겨두고 울며불며 돌아왔었다. 사살한다는 것이 잔인하다는 의견과 아사지경에서 서로를 잡아먹게 두는 것이 잔인하다는 의견이 대립되어 서로가 자기네 행위가 자비롭다고 주장했던 기억이 난다. 이 동서 자비논쟁은 실마리 찾지 못할 영원한 쟁점일지 모른다. 전쟁이 일어나 폭격이 예상되면 동물원의 맹수를 없애는 것이 관례다. 우리를 뛰쳐나와 사람에게 해를 끼칠 우려에서 독살하게 마련이다. 2차대전 중에 있었던 동물원 맹수 독살 사례를 보면 사자가 독이 섞인 먹이를 토하고..

이규태 코너 2022.11.04

[이규태 코너] 달라지는 停年觀

[이규태 코너] 달라지는 停年觀 조선일보 입력 2003.04.24 20:02 미국의 카드 가게에 가면 크리스마스 카드, 밸런타인 카드, 생일축하 카드 말고도 한국에서는 생각 못할 축하카드가 있다. 해피 리타이어먼트 카드가 그것이다. '퇴직을 축하합니다. 많은 새로운 일들을 하게 되고 그 일들을 즐기는 자유로운 시간, 시간들ㅡ당신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퇴직을 부러워합니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에, 새로운 모험에의 도전에 얼마나 가슴 벅찹니까.' '험한 큰 산 하나를 넘었습니다. 이제는 꽃 피고 새 울며 개울 흐르는 야산에 들게 된 것을 부러워합니다.' 우리 한국과 정년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직감할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랑체라 하여 젊었을 때 열심히 일해, 공무원이면 연금, 일반인이면 사 모은 공채(公..

이규태 코너 2022.11.04

[이규태 코너] 절 콘테스트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절 콘테스트 조선일보 입력 2003.04.25 19:27 사람이 만나면 반가워서건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건 인사를 한다. 이 세상 사람들 인사하는 동작이 같지 않은데, 크게 횡적(橫的) 거리를 좁히는 X축 인사문화권과 종적(縱的) 높낮이를 좁히는 Y축 인사문화권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해먹고 사는 생업이 수렵이나 유목·상업 등 이동성 민족은 X축 인사를 하고, 농경 등 붙박이로 살아온 정착 민족은 Y축 인사를 한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슬라브족이나 게르만민족 등 고위도의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체온이 아쉬어 밀착하는 X축 인사를 하고, 다습 고온의 저위도 지방에서는 접근하면 불쾌하기에 거리를 두고 자세를 낮추는 Y축 인사를 한다고 했다. 서양 사람들은 만나면 접근해 악수를 하..

이규태 코너 2022.11.04

[이규태 코너] 松下 政經塾

[이규태 코너] 松下 政經塾 조선일보 입력 2003.04.27 20:01 일본에 대변혁이 있을 때마다 선견 있는 지사(志士)들이 세운 사숙(私塾) 출신들이 개혁을 주도하곤 했다. 명치유신(明治維新)만 해도 봉건사회의 지도 이념이었던 유학(儒學)에 대항하는 신흥 학문을 한 사숙 출신들에 의해서였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게이오(慶 )대학의 전신인 후쿠사와(福澤諭吉)의 게이오의숙과 요시다(吉田松陰)의 요시다촌숙(松下村塾)을 들 수 있다. 이 젊은 사숙 출신들이 정치·사회개혁의 선봉에서 역사상 가장 강한 일본을 만들어 냈었다. 이번에 있었던 일본의 지방선거에서 23명 출마에 20명을 당선시킨 한 사숙이 뜨고 있다. 이 마쓰시타 정경숙(松下 政經塾)이 24년 동안 배출한 총 200명 가운데 이미 국회의원으로 활약..

이규태 코너 2022.11.04

[이규태 코너] 감악산의 風笛

[이규태 코너] 감악산의 風笛 조선일보 입력 2003.04.28 20:18 1960년대만 해도 런던에 '임진강'이라는 바가 성업을 이루고 있었다. 한국 참전 영국 병사들의 집산지로 영국 내의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구심점이 돼 있었다.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가 시작되었던 1951년 4월 말께 일당백(一當百)의 요새라는 임진강 감악산(紺岳山) 설마령(雪馬嶺)을 방어하고 있던 영국연방 글로스터셔연대 소속 장병 800여명이 포위되어 전멸당했다. 한 부상 영국 병사가 야음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두메에 사는 촌로가 업어다 벙커에 숨겨 두고 수복되기까지 한 달 동안 간병하고 먹여 살렸다. 이 병사가 설마령 전투에서 살아난 단 세 사람 가운데 하나이고, 셋 중 한 병사가 본국에 돌아가 '임진강'을 개업한 것이다.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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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비행기 수출

[이규태 코너] 비행기 수출 조선일보 입력 2003.04.29 19:51 서양에 천사가 있었다면 한국에는 천녀가 있었다. 서양의 천사는 우두머리 천사 미카엘을 비롯 성모 마리아의 둘레를 나는 아기 천사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날개로 난다. 한데 한국의 천녀들은 경주 봉덕사나 오대산 상원사의 종벽(鍾璧)들에서 보듯이 구름을 타고 천의(天衣)로 난다. 서양문명을 탄생시킨 희랍의 풍토가 해양성이기에 바다를 나는 갈매기의 날개로 비상원망(飛翔願望)을 만족시키고 한국의 풍토는 산악성이기에 산마루 넘어가는 구름에 비상원망을 충족시킨 때문일 것이다. 하늘을 날고 싶은 인간 욕망은 하늘을 지배하는 초월자에게 영역침해가 된다. 그래서 그 비상 시도는 좌절되거나 응징받게 마련이었다. 희랍신화에서 이카로스는 아버지가 밀랍(蜜蠟..

이규태 코너 2022.11.04

[이규태 코너] 캐쥬얼 의원

[이규태 코너] 캐쥬얼 의원 조선일보 입력 2003.04.30 20:41 갑신정변 때 김옥균 일행은 임금을 받들고자 침전(寢殿) 정문인 협양문전에 이르렀다. 문지기 무감(武監)의 저지를 받았는데 그 저지 명분이 기발하다. 이들 복장인 평복 무관(無冠)으로는 임금 앞에 나설 수 없으며, 그런 복장으로 무슨 일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건 무효라 했다. 장검으로 내려치려 하자 "정장은 못하더라도 착관(着冠)만은…" 하며 애걸하다 칼을 맞았다. 을사조약으로 나라가 반신불수가 돼 있을 때 고종황제의 동기간 한 분이 일본 임금 생일 기념식에 참석하여 일본 임금을 위한 만세를 불렀다는 것이 문제가 됐었다. 고종이 불러 그 사실 여부를 묻자 무복(無服) 무관(無冠), 곧 정식 조복과 관을 쓴 것이 아니라 양복차림으로 만세..

이규태 코너 2022.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