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6524> 휴대전화 커닝

우두(牛痘)의 도입으로 알려진 지석영(池錫永)의 형에 지운영(池運永)이라는 천재가 있었다. 흔히들 천재를 시·서·화(詩·書· ) 삼절(三絶)이라 하는데 지운영은 거기에 문·선·광·치·혜(文·禪·狂·痴·慧)가 더해 팔절(八絶)로 불렸던 자유분방한 천재였다. 당시 세도가요 판서였던 민영목이 그의 조카의 과거급제를 위해 답안의 대필을 이 지운영에게 은밀히 부탁했다. 종이 한 장 살 돈 없어 창호에 바람을 못 막을 만큼 가난했던 지운영의 이 대필 거절은 한말에 단절돼가던 선비정신의 명맥을 잇는 쾌사로 자주 거론돼왔다. 이처럼 한말의 세도가 사이에는 과거 출제의 범위를 알고 있었으며 출제 가능의 답안들을 써 들고가 장외에서 신호를 통해 제출 답안을 통고하는 커닝이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장외에서 새소리로 답안을..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6525> 벌레 잡아먹는 꽃

불모의 사막에서 악착같이 살아낸 유대인의 별칭이 '사막 파인애플'이다. 황량한 사막에서 유일하게 푸를 뿐 아니라 꽃도 별나게 붉고 열매도 달기에 얻은 별칭이다.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의 벤구리온 대학을 들렀던 일이 생각난다. 건국의 아버지요 초대 총리 벤구리온은 "사막을 정복하지 않고는 이스라엘에 미래가 없다"고 선언, 총리 자리를 버리고 사막에 들어가 이 대학을 세우고 사막 녹화의 최전위에서 활동하였으며, 그 이스라엘의 미래를 상징하는 식물로 사막 파인애플이 도처에서 자라고 있음을 보았다. 풍토나 인종이나 정치적 악조건 속에서 이스라엘이 그러했듯, 이 식물이 독야청청한 비결은 이렇다. 드물게 내리는 사막의 빗물을 넓고 두툼한 잎 세포가 머금으면 아코디언처럼 접혀있던 잎이 북처럼 부푼다. 이 물을 한데 쏟..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6526> 주사와 서기

전염병인 염병이 나돌면 이 병마가 두려워 도망칠 무서운 관직명을 붉은 글씨로 써 문기둥이나 환자의 이마에 붙여 대결시켰다. 일제 때 조사된 이 두려운 관직명은 '평안감사(平安監司)' '포도대장(捕盜大將)' '순사(巡査)' '산림주사(山林主事)' '면서기(面書記)' 등이다. 병마도 무서워 도망쳤을 만큼 위세가 당당했던 주사(主事)와 서기(書記)였다. 어릴 적 강변에 서깃벌이라는 들판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마을 사는 면서기 한 분이 클로버 씨앗을 뿌렸다 하여 자기와 자기네 친척의 소나 염소 아니면 이 들판에 매지 못하게 해서 얻은 이름이다. "감사면 다 평안감사냐, 첩이면 다 주사첩이냐" 하는 속담도 있었다. 주사가 가장인 어느 한 문중의 묘제(墓祭)에서 종부(宗婦)가 성묘할 차례를 앞질러 주사의 첩이..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6527> 법치 人倫사건

내어던지려는 애완견을 편든 딸에게 “아비가 개만도 못하냐”며 딸을 때린 아버지가 상습구타의 전력도 있고 해서 딸로부터 100m 이내의 접근 금지 조치를 받았다.또 중학교 여학생이 많은 또래가 보는 앞에서 여교사로부터 뺨을 맞았다 하여 소송을 제기, 벌금과 더불어 교육상 허용되는 체벌이 아니었음과 그에 대한 법적 조치를 공지토록하는 판결이 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잇따른 법치 인륜사건들이다. 아버지의 딸에 대한 상습적인 손버릇이나 또래가 보는 앞에서 체벌부위가 아닌 뺨을 쳐 수치심과 반발심을 유발한 행위만은 어떤 방식으로라도 제재가 가해져야 할 일이긴 하다. 천륜(天倫)인 부녀 간을 법이 개입, 100m나 이간시킨 것이나 인륜(人倫)인 사제(師弟)사이를 제자들 앞에 스승이 사죄하는 문건을 공시시킴으로써 벌어..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6528> Mother

모파상의 단편소설 '초상화'는 지금 욘사마가 일본에서 매력 소동을 일으키고 있듯이 부인들 틈에 상식 밖으로 뜨고 있는 한 사나이를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사나이의 매력을 밝혀내고자 '나'는 이 사나이의 방을 찾아든다. 그 방에 들자 맨 먼저 눈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벽에 걸린 한 여인의 초상화였다. 매력의 주인공인 그 사나이가 초상화에 넋을 잃고 있는 '나'를 보고 "어머니의 초상입니다. 아주 젊었을 때 돌아가셨습니다"고 하는 데서 이 단편은 끝나고 있다. 이 젊은이의 매력의 원천이 못 채운 어머니에 대한 갈망에 있음을 암시하고 생사를 초월한 어머니의 인간에 있어 위상을 적시해주는 소설이다. 50년대 미국에서 '걸어두고 싶은 초상화'를 선정했는데 1위로 뽑힌 것이 뒤러의 '어머니상'이었다. 인자하고 고운..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6529> 선물 권장

제사를 마치고 나면 신령이나 조령과 공식(共食)하는 뜻에서 제수와 제주를 먹는 음복(飮福) 절차가 따른다. 여기에서의 복(福)은 제수와 제주를 뜻하며, 이 제사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갖고 들어가 나누어주던 장소가 복덕방(福德房)이다.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물물 거래를 흥정하는 곳이 돼버렸지만 이곳에서 배포하는 제물을 선물(膳物)이라 했다. 선물의 선(膳)이 '肉+善=膳'이니, 곧 선량하고 상서로운 제물이란 뜻이다. 선물은 신성행위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선량하고 상서롭게 하는 수단이었다. 한데 그 사이에 이해가 개입되면서 선물이 뇌물화한 것은 신화시대부터였다. 2000여년 전 '좌전(左傳)'에 관리가 해서는 안 되는 삼탐(三貪)으로 식탐(食貪)·음탐(飮貪)·복탐(卜貪)을 들었다. 복(卜)이란 한 ..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코너] <6530> 黨名 바꾸기

조선조 최초의 당파싸움인 왕자의 난 때 태조의 뜻을 받들어 방석(芳碩) 편을 든 정도전 등을 제당(弟黨)이라 했고, 방원(芳遠) 편을 든 하륜 등을 형당(兄黨)이라 일컬었다. 방원과 방석은 배다른 형제였기 때문이다. 나라의 권력이 왕에게 집중돼 있었기에 그 힘을 나누어 누린 왕족의 관계로 당파를 호칭하게 마련이었다.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찬탈했을 때 한명회 등 쿠데타에 참여했던 정난파를 숙당(叔黨)이라 했고, 그 불의에 항거한 사육신 등을 질당(姪黨)이라 호칭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명종 때 문정왕후(文定王后) 집권 시 대윤(大尹)과 소윤(小尹)의 파당이 싸웠는데 왕후의 숙질 간 싸움이기에 얻은 당명이다. 중세에 들어 왕족 아닌 인물 위주로 파당이 갈라져 정권을 탐했기로 그 파당을 이끄는 중..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6531> 인정 시계

조선일보 입력 2004.12.09 18:46 세상에는 별의별 시계가 다 있다. 베트남 전쟁 때 전투에 참여했던 고산족 병사들 목에서 상봉(相逢)시계라는것을 볼 수 있었다. 매듭이 줄줄이 맺힌 나무 섬유를 꼰 목걸이로 집을 떠나올 때 아내나 애인이 손수 만들어 목에 걸어준 것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맨 먼저 이 상봉시계의 매듭 하나 푸는 일로 일과가 시작된다 했다. 휴가 날짜만큼 매듭을 맺어 둠으로써 그 모두가 풀렸을 때 상봉하게 되는 낭만적인 사랑시계가 아닐 수 없다. 중세 상업도시 베네치아는 몇 개 대상(大商)들의 도매 시스템으로 돼 있었는데 그 가게 머리에 신용시계 여남은 개가 걸려 있게 마련이었다. 거래하는 소매상별로 외상값을 둔 신용 정도를 시곗바늘로 표시해 소비시민들에게 알렸던 것이다. 바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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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6532> 부모파업

조선일보 입력 2004.12.12 18:19 20세기 4반세기 유럽에서 가장 많이 읽힌 10대 소설 가운데 3권이 아버지의 권위를 주제로 하고 있다. 구미(歐美)사회에서 아버지의 권한이 얼마나 강한가를 보여주는 장ㆍ단편 소설들로 쇠퇴해가는 부권(父權)의 반동으로 보았다. 쉬엔헤르의 ‘토지(土地)’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 그리고 메리메의 ‘마테오 팔코네’다. 아버지 마테오가 출타 중에 헌병에게 쫓기는 독립군 패잔병이 산속 농가에 은신처를 구해 찾아든다. 집을 지키고 있던 아들은 뒤쫓아온 헌병으로부터 회중시계의 유혹을 받고 은신처를 가르쳐준다. 이 사실을 안 아버지는 장총을 꺼내들고 아들을 앞세워 들판에 나아간다. 총소리가 났다. 돌아온 마테오는 어머니에게 놈을 위해 기도해주라고만 하고 어머니도 ..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코너] <6533> 대마초

[이규태코너] 대마초 조선일보 입력 2004.12.14 18:42 60~70년대 네팔은 히피의 천국이었다. 이 무렵 미국이나 유럽의 재벌 등 상류사회 자녀들의 실종이 잦았고, 이들을 찾아 사설 탐정들이 네팔을 누볐었다. 기존 체제를 거부한 젊은이들이 네팔을 찾아든 데는 대마초를 헐값으로 구할 수 있고 그 환각 행각에 제재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카트만두 거리를 걷다 보면 장발에 맨발인 백인 히피 남녀가 "25센트!" 하며 손을 내밀며 구걸한다. 25센트 이하도 그 이상도 받지 않는 이상한 구걸이다. 그 돈이면 저희 짝끼리 하루 세 끼를 때우고 흔한 야생 대마초의 값이 싸 실컷 환각세상에 잠길 수 있으며 밤만 되면 으슥한 숲길에 '지금은 사랑 중' 하는 푯말을 세워놓고 그 뒤쪽에서 껴안고 뒹굴 수 ..

이규태 코너 2022.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