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코너] 노인 비하

[이규태코너] 노인 비하 조선일보 입력 2004.10.07 18:13 기원전 400여년 많은 나라들이 난립했던 중국에서 이 나라 저 나라 많이 돌아다녔던 공자는 그 나라의 정치가 잘 되고 못 되고의 여부, 앞날이 있나 없나 여부를 어느 한 가지만 보고 판단했다. 튼튼한 성새(城塞)도 아니요 유복한 생계도 아니었다. 저자에 등짐 지고 다니는 노인이 있나 없나가 그 판단 기준이었다. 곧 노인의 인식과 지위가 그 나라 그 사회의 정치와 미래상을 대변하는 것으로 본 데 공자의 혜안이 있는 것이다. 그 공자가 타임머신 타고 우리나라를 들렀다 하자. 노인들이 물대포와 곤봉 세례를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세상을 다 산 90대 노인이 90대 아내를 목 졸라 죽이고 자신도 목 매어 죽은 꼴을 보았다. 또 여당 고위층은 ..

이규태 코너 2022.10.11

[이규태 코너]노랑꽃과의 전쟁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노랑꽃과의 전쟁 입력 2004.10.10 18:23:55 | 수정 2004.10.10 18:23:55 노랑은 눈에 잘 띄는 색이라서인지 식별할 필요가 있는 차별인간의 표지로 자주 쓰여왔다. 나치스는 유대인에게 노란 천을 앞가슴에 달고 다니게 함으로써 식별했고, 경원해야 할 창녀들에게 노랑 베일을 씌워 식별해온 것이 유럽의 전통이었다. 창녀를 노랑꽃이라 일컬었음은 그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정부는 노랑꽃과의 전쟁을 선포, 포문을 열었고 그 소리 없는 포탄에 맞아 하나 둘 죽어간다는 보도도 있었다. 1949년 국제 폐창(閉娼)협약에 100여개국이 조인했고 1960년 케임브리지회의에서 매춘 금지조약에 전 세계적인 동참이 있었다. 하지만 그로써 창녀가 없어졌다는 나라 이름을..

이규태 코너 2022.10.11

[이규태 코너]OK 사인<6506>

철학자 사르트르와 계약결혼한 작가 보부아르가 일상적인 살림이나 가계(家計) 이야기를 꺼내면 사르트르는 엄지와 인지를 가볍게 대고 동그라미를 짓는 OK 사인을 하기 마련이었다고 보부아르가 회고했다. 프랑스에서 이 OK 사인은 제로(0)의 형상으로 무(無)나 무의미, 무가치를 나타낸다. 곧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몸짓말이다. 우리나라에서 동그라미는 예부터 돈을 뜻했는데 돈이 둥글기 때문이다. 불교와 힌두교의 OK 사인은 명상에 있어 완성을 상징한다. 불상이 짓는 동그라미도 그 일환으로 선정인(禪定印)이라 하여 석존(釋尊)께서 깨친 오묘한 경지의 나타냄이다. 희랍이나 지중해 섬들 그리고 이집트, 이라크 등 아랍사회에서 OK 사인은 성교의 몸짓말로 모욕적이라 하여 금기시한다. 지역에 따라 동성애 또는 남녀 간의 불..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발로 그린 그림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발로 그린 그림 입력 2004.10.14 18:39:45 | 수정 2004.10.14 18:39:45 서양 미인선발대회의 기준이 되고 있는 미의 상징 ‘미로의 비너스’ 상에는 팔이 없다. 미로의 비너스뿐만 아니라 메디치의 비너스나 에드키리언의 비너스에도 팔이 없다. 이 미의 상징에 팔이 없다는 것은 팔이 여체를 아름답게 하는 데 없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로댕의 대표작인 ‘팔 없는 여인의 명상’에서 팔이 없다는 것이 조금도 미완성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히려 없는 팔로 포옹하고 없는 손으로 더듬는 허공의 미를 실체의 미가 따르지 못한다는 것이 된다. 인간이 예(藝)와 지(知)를 창조하는 데 손이 무용지물이라는 조형물로 전기 로댕의 조각 ‘신(神..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한반도 浮沈<6508>

중국대륙의 서해안에 있는 상하이를 비롯, 대도시들의 지반이 한 해에 10㎜씩 침하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변이 없었다면 10년에 10㎝요, 1세기면 1m가 가라앉아왔다는 것이 되며, 양귀비가 살았던 당 현종시대에 비기면 무려 13m가 가라앉았다는 것이 된다. 이렇게 중국 서해안이 가라앉는 대신, 그 연쇄 역동 때문인지 한반도 서해안은 떠오르고 동해안은 가라앉아 왔다. 서해안인 군산에 밀물이 들어와 차는 해수 라인이 낮아지고 있다는 일전의 보도도 이 지각변동의 일환일 것이다. 통일신라 시대 경주의 외항은 동해안 율포(栗浦)였다. 신라 충신 박제상(朴堤上)이 인질로 잡혀 있는 왕의 아우를 빼돌리고자 일본을 떠났던 나루도 율포였다. 그 현장인 경주 양남면(陽南面) 하서리(下西里)에 가보면 나루의 흔적은 ..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黃狗 시위<6509>

청주 시청의 공무원노조원들이 시장을 비난하고 격하하는 수단으로 황구에게 시장표지를 두르고 끌고 다닌 시위가 징계를 넘어 형사고발로 진전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그 보도에 접하고보니 십수년 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노동자들이 황구를 묶어 앞세우고 시위하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다만 청주의 개가 한 마리인데 매사추세츠의 개는 10여마리였다는 것이 다르고, 청주의 개는 사용자를 비유한 것인데 매사추세츠의 개는 피고용자를 비유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미국의 노동관행에 황견계약(黃犬契約)이라는 게 있다. 노동자가 고용될 때 고용주와 맺는 계약의 일종으로, 이미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있다면 이를 탈퇴하고 아직 가입하지 않고 있다면 앞으로도 가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고용조건으로 노사간에 계약하는 것을 옐로 도그..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통나무 국경선<6510>

간도 땅의 옛 귀속을 두고 벌어진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 한국 땅으로 그려진 18~19세기 유럽지도 69점이 수집돼 그중 몇 점이 공개되었다. 지금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국경선으로 삼고 있지만 이 지도들에는 200여리 안으로 그 국경선이 북상하고 있다. 고구려 유적이 집중돼 있는 지안(集安)이나 부여(夫餘) 예(濊) 맥(貊) 읍루(?婁) 발해(渤海) 등 고대 유지를 비롯, 조선족 자치지역인 간도는 이 북상된 국경선 안에 들어있는 한국영토로 돼 있다. 이 유럽의 지도들이 어디다 근거를 두고 국경선을 북상시켰을까. 장장 2000여리나 연해 있던 책성(柵城) 자리를 지도에 고스란히 옮겨놓은 것이다. 책(柵)이란 토담 위에 통나무를 엮어 담장이나 성을 삼는다는 뜻글자로, 이 책성이 한·중 국경선인데 학문적으로나 역..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코너] 손아귀 속의 신문

여당의 실세인 이해찬 국무총리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내 손아귀에서 논다"는 발언이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론을 대변하는 신문이 권부의 손아귀 속에서 노는 경우는 셋으로 갈라볼 수 있다. 그 하나는 비연형(飛燕型) 손아귀다. 한(漢)나라 성제(成帝)는 연약한 조비연(趙飛燕)을 사랑했다. 어찌나 몸이 가냘프고 가볍던지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었고 황제는 그 손바닥 위에서 노는 자태에 혹하여 손바닥 위에서 나라가 기울었다는 말이 있기까지 했다. 밥도 숟가락 젓가락질이 무겁다 하여 황제가 떠먹여 주었을 정도였다. 그러하듯이 아양과 아부로 권부의 손아귀 속에 노는 신문이 비연형이다. 그 둘째가 부처님 손아귀다. 의인원(擬人猿)인 손오공(孫悟空)이 제천대성(齊天大聖)을 자처하고 천상 천하 지옥의 대정벌로 대적할..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코너]아름다운 ‘所有’<6512>

흥선대원군의 형인 흥인군(興寅君)은 권좌에 있으면서 치부, 곳간 아홉 개에 재물을 가득 쌓아놓고 차례로 문안을 드리고야 아침을 들었다. 그 무렵 고기 잡는 통발에 이엉을 씌우고 그 속에 들어가 자는 정벙어리라는 이가 있었다. 한양 남북촌 권문 귀가들 사랑을 전전하며 시폐(時弊)를 풍자하고 그의 풍자에 걸리기만 하면 여론을 몰아 지탄이 거세었기로 나들이를 못할 지경이었다. 그의 단골 쇼 메뉴가 바로 흥인군의 곳간 문안이었고 그의 정치풍자를 달래고자 벼슬과 고대광실로 유혹했지만 그럴 때마다 통발 속에 기어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들어주겠다는 천하 소원으로 대왕이 가리고 서 있는 볕이라 했던 고대 희랍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한국판이다. 흥인군과 정벙어리는 소유와 무소유의 선명한 대비인 것이..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코너] 한국의 石橋 <6513>

한양 천도 당시 그 복판을 흐르는 청계천 다리들은 징검다리이거나 나무다리, 널다리, 배를 연결한 배다리, 띠다리 그리고 출렁다리, 흙다리들이었고, '동국여지비고'에 보면 가죽다리(革橋)도 나온다. 이 모두 수레 하나 지나다닐 수 없는 허약한 다리인데 예외가 없다. 청일전쟁 때 패전한 청나라 장수는 "조선의 다리는 말이 끄는 야포 하나 나르는 데도 주저앉아 작전이 지연되거나 패했다"고 다리 타령을 한 데는 일리가 없지 않다. 그만한 수요나 만들 만한 기량 그리고 공공의식이 없었던 것일까. 아니다. 다리에는 자연과 문화와 안보가 어우러진 한국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석교 같은 영구적 도강시설이 없었던 이유로 첫째, 우리나라의 물줄기는 협곡인데 낙차가 커 급류로 자주 유실되기에 한시적 수요에 응하는 다리로 충..

이규태 코너 2022.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