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변수로 본 미국大選<6514>

서부영화 '셰인'에서 묵묵히 땅을 가꾸며 이웃과 조화하여 평화로운 마을을 이루고있는 농부 조, 그 조의 일가를 괴롭히는 악당을 백마 타고 나타난 셰인이 소탕하고 떠나간다. 이 멋진 방랑자에게 황홀해진 조의 아들이 뒤쫓아가며 "셰인! 셰인! 돌아오라"고 외쳐댄다. 뒤돌아본 셰인은 "이 세상에서 용감하고 훌륭한 것은 내가 아니라 너의 아버지 조다"면서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간다. 지금 미국에선 용기와 투지로 험난한 앞길을 개척해나가는 셰인형(型) 리더십은 사라져가고 협조와 우애로 풍요를 지향하는 조형(型) 리더십이 뜨고 있으며, 이를 예언한 것은 사회학자 리스먼이다.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부시가 "나는 대문자 부시(Bush)지만 소문자 부시(bush)를 좋아한다" 하여 미개척 분야에 펼치는 아메리칸 드림으로 ..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체벌봉(體罰棒)<6515>

삼천포에 있는 항공기능대학의 강의실에 학생들이 스승에게 바친 1m 남짓의 막대기가 세워져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게으름의 응징을 달게 받겠다는 사라져간 체벌문화의 부활이 아닐 수 없다. 옛날 지리산 자락의 서당들 문설주에는 부젓가락이 걸려 있게 마련이었다. 체벌봉처럼 예비 체벌효과를 노린 것으로 그 연유는 이렇다. 옛날 한 합천현감의 늙어 본 아들놈이 과보호로 안하무인인지라 당해낼 스승이 없었다. 이에 해인사의 큰스님에게 맡기면서 이 아이 살리고 죽이는 것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을 문서로 써주었다. 이 아이 방자하여 늙은 스님들을 능멸하고 발길질하는 등 방자하기 이를 데 없자 큰스님은 이 아이를 잡아다 기둥에 묶고 생살여탈 문기를 보여주고는 시뻘겋게 달군 부젓가락으로 넓적다리를 찔렀다. 중이 양반 능..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공전 막말국회<6516>

국무총리가 막말을 하는 바람에 국회가 공전하고 있다. 국회에서 총리가 막말한 사례란 극히 드문데, 2차대전 후 일본의 총리인 요시다 시게루(吉田茂)가 "바카야로(바보녀석)!"라는 막말을 하여 그것이 빌미가 되어 국회가 해산까지 했었다. '바카야로 해산'으로 유명한 이 사건이 말해주듯 국회에서의 막말은 국민 앞의 막말이기에 파장이 커나갈 수밖에 없다. 영국 하원에서 국정답변을 하던 한 장관이 반대당 의원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들은 바 귀하는 수의(獸醫)라면서요?" '짐승이나 상대하는 자가 국정을 논하다니…'라는 의미의 막말을 포장해서 드러나지 않게 한 것이나, 이에 '수의'장관은 "귀하의 말씀대로 저는 수의입니다. 한데 보아하니 의원님 안색이 좋지 않은데 원하시면 제가 보아드리겠습니다"고 했다. 질문한..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08년 8월 8일 8시<6517>

베이징 올림픽 개최 일시를 2008년 8월 8일 저녁 8시로 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숫자 징크스에 별나게 집착하는 중국인의 심성이 집약된 택일이 아닐 수 없다. 여덟 팔(八)자가 아래로 퍼져나간 형상이 운수가 새어나간다고 해석하는 문화권과 운수가 갈수록 펴져나간다고 해석하는 문화권이 엇갈려 8수에 대한 징크스가 길흉으로 엇갈리는데 중국의 한족은 개운(開運)으로 보는 대표적인 8자 선호민족이다. 더욱이 8자가 넷이나 겹치는 쓰바르(四八日)는 100년 만에 한 번 돌아오는 대길일이라 하여 지난 88년 8월 8일에 화교들이 많이 사는 싱가포르 홍콩 대만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는 이날 결혼하면 수복다남을 보장받는다 하여 열달 전에 예식장 예약이 끝났고 그날 8시8분을 차지하는 데는 기만불(幾萬弗)의 웃돈이 붙었다..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6518> 부여씨(扶餘氏)

당나라 서울 뤄양(洛陽) 남쪽에 있는 용문석굴 한 기둥에 조그맣게 두 개의 감실(龕室)을 파고 석상 둘을 새긴 그 아래'부여씨(扶餘氏)'라는 명문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백제 멸망 후 의자왕, 태자 부여륭(扶餘隆)과 더불어 포로로 잡혀 갔던 왕성(王姓)의 한 백제석공이 사역하면서, 한 품고 여생을 마친 왕과 태자의 망국한을 달래고 명복을 비는 뜻에서 새겼을 것이다. 의자왕은 3천 궁녀를 거느린 방탕으로 망국을 자초한 것으로 돼있다. 실은 효심이 지극해 해동증자(海東曾子)의 별칭을 받고 30개 성을 정복한 용감한 임금이었으나 망국임금에 대한 관행인 격하와 폄하로 누명을 얻은 것이 학계에서 입증돼왔다. 나라가 망하자 의자왕은 묶인 몸이 되어 1만3천명의 포로와 더불어 뤄양으로 연행되었다. 당시 당나라..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6519> 정치의 3대조건

부시 대통령이 ‘논어’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재선 제1성이 공자가 갈파한 신뢰였다. 지난 4년 집정해 본 끝에 얻은 절실한 체험을 이 한마디에 집약한 것일 게다. 정치에 있어 피치자(被治者)의 신뢰가 얼마나 소중한가 ‘논어’ 안연(顔淵)편을 보자. 제자 자공(子貢)이 정치에 대해서 물었다. 스승이 이르기를 식량을 갖추고 군비를 튼튼히 하며 백성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세 가지 일이라 했다. “부득이한 일이 있어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떤 것을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군비라 했고 “나머지 둘 가운데 다시 더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하고 묻자 스승은 식량이라 하고 “하지만 오로지 신뢰만은 버려서는 안 된다. 위정자에 대한 백성의 신뢰 없이 정치란 해낼 수 없는 ..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6520> 광개토대왕비

개간 중인 덤불 속에서 광개토대왕비(廣開土大王碑)의 한쪽 모서리가 드러난 것은 1880년의 일이다. 그 비석 곁 초막에 초붕도(初鵬度)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성경(盛京)장군 좌씨(左氏)가 탁본을 떠간 것을 처음으로 하여 일본 사람들이 자주 왔었는데, 비면에 이끼와 덩굴이 엉켜 불로 이를 태우는 바람에 비면과 모서리가 바스러졌으며, 비문이 선명치 않다고 석회 칠을 하고 자획을 써넣기도 하여, 원자(原字)를 그르쳤음은 뻔한 일이다” 했다. 만주 침략을 은밀히 공작하고 있던 일본 육군참모본부에서 이를 알고 사코(酒勾景信) 대위를 특파하여 이 비문을 탁본케 하여 본부에 올려보내게 했다. 그 탁본의 비문을 토대로 하여 삼국시대에 일본이 백제·신라·가야를 점령했다는 한국침략 증빙자료로 활용해왔던 것이다. 사코..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6521> 다시 보는 경회루

성종 때 유구(琉球) 국왕 사신이 조선의 3대 장관 가운데 하나로 경복궁 경회루의 못에 떠다니는 용 그림자를 들었다. 48개 우람한 돌기둥에 종횡으로 새겨진 용 그림자가 둘레 못의 푸른 물결과 붉은 연꽃 사이에서 보였다 안 보였다 헤엄쳐 다니는 것이 별천지 같다 했다. 중국 사대(事大)에 저항하는 주체이념이 남달랐던 태종 때 지은 다락인지라, 천자의 상징인 용을 부각시킨 데 저의가 깔린 이념건물이랄 수 있다. 용을 탄다는 기용루(騎龍樓)로 이름을 삼자는 주장도 있었다 하니 그 저의를 가늠할 수 있겠다. 6년 전 이 못을 준설할 때 구리로 만든 용이 출토되었는데, 대원군이 중건할 때 화재 예방의 도참으로 풀이했었다. 하지만 그 용이 사대(事大)국의 싱징인 네 발톱의 사조룡(四爪龍)이 아니라 중국 천자의 상..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숟가락 퍼포먼스

솥단지 데모가 있더니 이번에는 대학생들이 자기 이름을 적은 숟가락 8000개를 벽에 걸어 일자리 없어 밥 못 먹을 불안한 미래에 항의하는 숟가락 퍼포먼스가 있었다. 숟가락을 놓는 것이 죽음을 뜻하듯이 우리나라에서는 절박한 일이요 해외에다 신문 토픽감을 연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항의성 퍼포먼스의 주제인 숟가락의 비중이 우리나라만큼 큰 나라는 없을 줄 안다. 중국 고대 고분들에서 숟가락이 출토되고 있으나 신명이나 조상 제사할 때 쓰인 제기(祭器)였을 뿐 고대문헌인 ‘예기(禮記)’에 밥은 맨손으로 먹는다 했고, 근세문헌인 ‘열하일기(熱河日記)’에도 중국사람들 숟가락 없이 사는 데 놀랐다고 적고 있다. 가운뎃손가락을 식지(食指)라 함은 손으로 음식을 거두어 먹는 데 가장 편리한 손가락이기에 얻은 수식(手食)..

이규태 코너 2022.10.10

[이규태 코너] 담배와 문인

문인협회소속 작가들이 담뱃값 올리는데 항의 집회를 열고 그 뜻을 국회에 전달했다. 담배 없이 글 못 쓰는 직업임을 천명하는 이면에는 하찮은 담뱃값에도 영향받는 쥐꼬리만한 원고료에 대한 항의가 숨겨져있다 하겠다. 골초인 중국의 노벨상 작가인 린위탕(林語堂)은 서재의 탁자 위에 타고있는 담배를 놓는 버릇이 있어 그 탁자부위가 타들어가 얇아지고 있었다. 그 두께를 확인하는 것을 낙으로 삼았으며 그 타들어가는 분량으로 자신의 문필작업의 양과 질을 가눔한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탁자가 타들어가지 않은 세월처럼 무미건조한 나날은 없었다고도 했다. 역시 골초인 처칠은 자신 안에 정치인적 소질과 문인적 소질이 공존하는데 후자가 발동하는 시간에 전자보다 세곱의 담배를 피운다고 했다. 한국사상 골초를 들라..

이규태 코너 2022.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