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식의 한시한수 198

재치 있는 반격[이준식의 한시 한 수]〈68〉

謝令妻 / 李白(현령 부인에게 사죄하다) 素面倚欄鉤 소면의란구 嬌聲出外頭 교성출외두 若非是織女 약비시직녀 何得問牽牛 하득문견우 난간 모서리에 기댄 하얀 얼굴 밖을 향해 내뱉는 아리따운 목소리 그대가 직녀가 아니시라면 어떻게 견우를 꾸짖으시는지 시적 순발력이 돋보였던 이백. 소년 시절 고향 마을에서 현령(縣令)의 잔심부름이나 하는 아전을 지낸 적이 있다. 한번은 소를 끌고 현령이 거처하는 대청 앞을 지나는데 현령의 아내가 이를 마뜩잖게 여기고 그를 나무랐다. 이백이 즉각 시 한 수로 응수했다. 백옥같이 고운 얼굴, 낭랑한 목소리, 그대는 필시 천상의 직녀일 터, 아니라면 견우에게 말을 걸 리가 없지. 견우(牽牛)는 문자 그대로 ‘소를 끌다’는 뜻, 소 끌고 지나는 자신을 나무라는 현령 부인이 직녀처럼 아름..

두보의 노심초사[이준식의 한시 한 수]〈67〉

江上値水如海勢聊短述 / 杜甫(바다처럼 드센강위의 단상) 爲人性僻耽佳句 위인성벽탐가구 語不驚人死不休 어불경인사불휴 老去詩篇渾漫興 노거시편혼만흥 春來花鳥莫深愁 춘래화조막심수 新添水檻供垂釣 신첨수함공수조 故著浮槎替入舟 고저부사체입주 焉得思如陶謝手 언득사여도사수 令渠述作與同遊 영거술작여동유 내 성격 괴팍하여 멋진 시구만 탐닉한 탓에 시어로 경탄을 자아내지 못하면 죽어도 그만두는 법이 없었지 늘그막엔 시를 되는대로 짓다 보니 봄날 꽃과 새를 보고도 깊은 고심은 없어졌네 새로 만든 강 난간에서 낚싯대 드리우거나 낡은 뗏목 엮어 배 삼아 들락거릴 뿐 어찌하면 도연명 사령운 같은 시상을 배워 저들과 더불어 시 지으며 노닐어 볼거나 거침없이 쏟아냈던 이백과 달리 두보는 정형시의 正格을 지키는 데 치밀하고 신중했다. 역대..

백거이의 첫사랑[이준식의 한시 한 수]〈66〉

潛別離 / 白居易(남모를 이별) 不得哭 부득곡 潛別離 잠별리 不得語 부득어 暗相思 암상사 兩心之外無人知 양심지외무인지 深籠夜鎖獨棲鳥 심롱야쇄독서조 利劍春斷連理枝 이검춘단련리지 河水雖濁有清日 하수수탁유청일 烏頭雖黑有白時 오두수흑유백시 唯有潛離與暗別 유유잠리여암별 彼此甘心無後期 피차감심무후기 울지도 못한 채 몰래 한 이별 말도 못 하고 속으로만 그리워하네요 우리 둘 외에는 아무도 모르지요 깊은 새장에 갇혀 홀로 밤을 지새는 새 예리한 칼날에 끊어진 봄날의 연리지 신세 황하수는 흐려도 맑아질 날이 있고 까마귀 머리 검다 해도 하얘질 때 있으련만 남모르는 은밀한 이별 뒷날의 기약이 없대도 서로 참고 견딜밖에요 열아홉 젊은 시인은 한 이웃 소녀와 두터운 정분을 쌓았지만 과거 시험을 위해 고향을 떠나면서 인연이 멀..

어떤 상봉[이준식의 한시 한 수]〈65〉

上山采蘼蕪 / 漢代 民歌(산에 올라 궁궁이를 캐다) 上山采蘼蕪 下山逢故夫 상산채미무 하산봉고부 長跪問故夫 新人復何如 장궤문고부 신인부하여 新人雖言好 未若故人姝 신인수언호 미약고인주 顔色類相似 手爪不相如 안색류상사 수조불상여 新人從門入 故人從閤去 신인종문입 고인종합거 新人工織縑 故人工織素 신인공직겸 고인공직소 織縑日一匹 織素五丈餘 직겸일일필 직소오장여 將縑來比素 新人不如故 장겸비래소신인불여고 산에 올라 궁궁이를 캐다 하산 길에 옛 남편을 만났네 무릎 꿇고 옛 남편에게 묻는 말 새 여자는 또 어때요 새 여자가 좋다고들 하는데 옛 사람만큼 예쁘진 않다오 얼굴은 비슷비슷해도 솜씨는 그렇지 못해요 새 여자가 대문으로 들어올 때 옛 사람은 쪽문으로 나갔지요 새 여자는 누런 비단을 잘 짜는데 옛 사람은 흰 비단을 잘..

시인의 용기[이준식의 한시 한 수]〈64〉

息夫人 / 王維 莫以今時寵 막이금시총 能忘舊日恩 능망구일은 看花滿眼淚 간화만안루 不共楚王言 불공총왕언 지금 총애를 받는다고 옛정을 잊을 수 있다고 생각지 마오 꽃을 보고도 눈물만 그렁그렁 초왕과는 말도 나누지 않았다오 식부인은 춘추시대 식국(息國) 군주의 아내. 초나라 문왕(文王)이 식국을 정벌하여 식부인을 빼앗아오자 식국 군주는 울분을 삭이다 병사하고 말았다. 끌려온 식부인은 문왕과의 사이에 두 아들까지 두었지만 문왕과는 말 한마디 섞지 않았다. 호사로운 궁중 생활이었지만 꽃을 보고도 눈물을 쏟을 정도로 식부인은 옛 남편을 그리워했고, 그만큼 문왕에 대한 원한도 깊었다. 오랜 역사 속 상처를 왕유가 왜 새삼 들추어냈을까. 당 현종의 친형 寧王은 수십 명의 미녀를 곁에 둘 정도로 생활이 방탕했다. 하루는..

떠돌이 시인[이준식의 한시 한 수]〈63〉

旅夜書懷 / 杜甫(떠도는 밤, 회포를 적다) 細草微風岸 세초미풍안 危檣獨夜舟 위장독야주 星垂平野闊 성수평야활 月湧大江流 월용대강류 名豈文章著 명기문장저 官應老病休 관응노병휴 飄飄何所似 표표하소사 天地一沙鷗 천지일사구 여린 풀 미풍에 하늘대는 강 언덕 높다란 돛대 올린 외로운 밤배 광활한 들판으로 별들이 쏟아지고 흘러가는 큰 강 위로 달이 용솟음친다 명성이 어찌 문장으로 드러나리 관직마저 늙고 병들었으니 그만둘밖에 정처 없이 떠도는 신세 무엇에 비기랴 천지간에 한 마리 갈매기라네 별빛 쏟아지는 평원, 달빛 넘실대는 강, 더없이 느긋하고 평온한 밤이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지금은 한갓진 유람길이 아니다. 가족을 거느린 시인은 배를 하나 얻어 쓰촨(四川) 지역을 무작정 떠돌아야만 했다. 이따금 자신의 시명(詩名..

나라님에게[이준식의 한시 한 수]〈62〉

詠田家 / 聶夷中(농가를 읊다) 二月賣新絲 이월매신사 五月糶新穀 오월조신곡 醫得眼前瘡 의득안전창 剜却心頭肉 완각심두육 我願君王心 아원군왕심 化作光明燭 화작광명촉 不照綺羅筵 부조기라연 遍照逃亡屋 편조도망옥 2월에 새 명주실을 팔고 5월에 햇곡식을 팔아버리니 눈앞의 종기는 치료될지언정 마음속 살점을 도려낸 꼴 바라노니 군주의 마음 광명의 촛불이 되어 비단옷 화려한 연회장일랑 비추지 말고 도망 다니는 백성들 빈집이나 비춰주시길 시인은 이를 종기 고치자고 제 속살을 파서 메우는 꼴이라 비유했다. 쪼들리는 생활에 저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입도선매’하거나 빚과 세금을 피해 도망 다니기도 했을 것이다. 나라님이 편당(偏黨) 없이 백성을 보듬어 줬으면 하는 시인의 바람. 소망이라기보다 나라님과 저 화려한 연회장을 채..

비가[이준식의 한시 한 수]〈61〉

遣悲懷 / 元鎭(비통한 심경을 토로하다) 昔日戲言身後意 석일희언신후의 今朝皆到眼前來 금조개도안전래 衣裳已施行看盡 의상이시행간진 針線猶存未忍開 침선유존미인개 尚想舊情憐婢僕 상상구정련비복 也曾因夢送錢財 야증인몽송전재 誠知此恨人人有 성지차한인인유 貧賤夫妻百事哀 빈천부처백사애 지난날 사후 생각을 농담 삼아 말했는데 오늘 아침 모든 게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소 옷은 이미 남을 주어 거의 남지 않았지만 반짇고리는 그대로 둔 채 차마 열지 못하였소 옛정 생각에 시중들던 사람들은 각별히 챙겨주고 꿈속에선 그댈 만나 재물도 보냈다오 누군들 이 한이 없으리오만 가난한 부부였기에 만사가 더 애통하구려 아내를 먼저 보낸 시인의 애통함을 담은 비가(슬픈 시)다. 그녀는 스물에 시집와 스물일곱에 요절했다고 한다. 죽음은 인연의 단..

도연명의 갈등[이준식의 한시 한 수]<60>

飮酒 / 陶潛 有客常同止 유객상동지 趣舍邈異境 취사막이경 一士長獨醉 일사장독취 一夫終年醒 일부종년성 醒醉還相笑 성취환상소 發言各不領 발언각불령 規規一何愚 규규일하우 兀傲差若穎 올오차약영 寄言酣中客 기언감중객 日沒燭當炳 일몰촉당병 두 나그네 늘 함께 지내지만 취사선택하는 건 영 딴판이다 한 사내는 언제나 저 홀로 취해 있고 한 사내는 평생토록 말짱 깨어 있다 말짱하니 취했느니 서로 비웃으면서 얘길 해도 서로가 이해하지 못한다 구차하게 얽매여 사니 우둔한지고! 꿋꿋이 제 뜻대로 하는 게 외려 더 현명할 듯 거나하게 취한 자여 날 저물거든 촛불 밝혀서라도 더 실컷 마시게나 취향과 행동이 판이한 두 자아가 시인의 내면에서 갈등한다. 하나는 매사에 소심하고 신중하다. 세상사에 순응하면서 궤도에서 벗어날까 전전긍긍..

아내의 속앓이[이준식의 한시 한 수]<59>

夫下第 / 趙氏(남편의 낙방) 良人的的有奇才 양인적적유기재 何事年年被放廻 하사연연피방회 如今妾面羞君面 여금첩면수군면 君到來時近夜來 군도래시근야래 낭군께선 분명 남다른 재능 있으신데 어찌하여 해마다 그냥 돌아오시나요? 이젠 저도 그대 얼굴 뵙기 민망하니 오시려거든 날 어둑해지면 그때 돌아오셔요 아내가 보기에 남편은 재주가 남달리 특출하다. 한데 왜 해마다 과거에 낙방하는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해마다 그냥 돌아오신다’고 했지만 흔쾌한 발걸음이 아니다. 시 원문에 ‘피방회(被放回)’라 했는데 이는 쫓기다시피 돌아왔다는 뜻이다. 번번이 낙방했으니 아내 쪽이든 남편 쪽이든 서로 만나기가 민망했거나 아니면 지인 보기가 부끄러웠을 것이다. 굳이 귀향하겠다면 어스름을 틈타 슬그머니 들어오라고 당부했다. 당 덕종(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