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197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7.항로(航路)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7.항로(航路)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5. 1. 21. 17:33 늘 안개가 끼는 중국 동남부 저장성 항저우의 시후(西湖) 전경. 이곳 지명이 '물길을 건너다'의 航(항)이라는 글자와 관련이 있다. 먼 길을 나서는 일, 예나 지금이나 쉽지만은 않다. 비행기와 기차, 자동차 등 문명의 이기가 발달한 요즘에도 낯설고 물 설은 먼 외지로 길을 떠나는 일은 고생의 연속이다. 교통의 편의성이 지금보다는 아주 떨어졌던 옛 사람들의 먼 여정이야 새삼 이를 게 없다. 뭍길보다는 물길이 더 어려웠을 수 있다. 높은 산, 깊은 계곡이 놓여 있는 뭍길에 비해 물길은 배가 있으면 다니기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땅한 교통수단을 갖추지 못했을 경우 깊은 물길을 건너는 일은 목숨을 걸어야 ..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6.심복(心腹)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6.심복(心腹)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5. 1. 14. 17:56 권력자와 측근의 관계를 잘 알아 큰 공을 이루고도 미련없이 떠날 수 있었던 춘추시대 월나라 범려의 상. 요즘 이 말 좋게 쓰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권력자, 또는 재력가 등의 곁에 바짝 붙어 호랑이 없는 산에서 여우가 폼 잡는 식의 행위 등을 벌이는 사람에게 쓰는 말이다. 그러니 이 말이 어느 경우에는 ‘주구(走狗)’라는 험악한 단어와 함께 선다 해도 크게 이상스러울 일은 별로 없다. 예전 쓰임에는 없던 측근(側近), 또는 그를 더 강조한 최측근(最側近) 등의 말도 만들어졌다. 그 만큼 권력자나 실력자의 주변에 선 사람들은 힘을 부적절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다른 이들에게는 좋은 모습으로만 비치..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5.화복(禍福)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5.화복(禍福)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5. 1. 7. 18:14 제갈량 그림이다. 천재적인 전략가로 알려졌으나, 실제의 제갈량은 전략가라기보다 성실한 인품이 돋보이는 행정가에 가깝다. 오늘의 칼럼도 예전 중앙일보 재직 때에 썼던 내용을 고쳐 옮긴다. 새해를 맞아 사람들은 제게 다가올 행운, 피해가야 할 상황 등에 관심을 기울인다. 여러 표현이 있을 수 있으나 단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 바로 화복(禍福)이다. 그를 좀 더 부연한 표현을 꼽으라면 길흉화복(吉凶禍福)이다. 새해의 운수를 점치는 사람들의 머릿속을 꽉 채우는 항목이다. 화(禍)는 싫어서 피하고, 복(福)은 즐거우니 맞아야 한다는 것. 그저 상식(常識) 수준이다. 누가 재앙을 좋아하며, 즐거움을 마다할까. 그러..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4.홍조(鴻爪)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4.홍조(鴻爪)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4. 12. 31. 15:24 '설니홍조'의 성어를 만들어낸 북송 최고 문인 소동파의 사당. 그의 부친 소순, 동생 소철을 함께 기리는 '三蘇祠(삼소사)'다. 쓰촨 청두에 있다. 예전 중앙일보 재직 때 지면에 소개했던 글이다. 기러기를 가리키는 鴻(홍), 발톱 등을 지칭하는 爪(조)의 붙임이다. 어려워 보이는 한자 단어지만, 함의는 깊다. 새해의 초입에 들어선 우리의 마음을 그에 견주며 글 내용을 조금 고쳐 다시 싣는다. 시간이 또 하나의 길목을 지났다. 음력으로 우리가 맞이하는 설이 곧 닥치고, 이제는 서력(西曆)으로 2014년을 넘겨 2015년을 맞았다. 물 흐르듯 지나가는 게 시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시간이 갈마드는 길목에 ..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3.세모(歲暮)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3.세모(歲暮)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4. 12. 24. 17:51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를 상상해 그린 그림. 이백의 글에는 인생의 짧고 덧없음을 표현한 내용이 들어있다. “歲歲年年人不同(세세년년인부동)”이라는 말이 있다. 옛 시구에서 먼저 나온 뒤 후대의 중국 시단에서 즐겨 썼던 말이다. 풀자면 “해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뜻이다. 앞 구절에는 “해마다 피는 꽃은 서로 비슷해도(年年歲歲花相似)”라는 말이 등장한다. 세월이 흘러도 경물(景物)은 변함이 없지만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의 모습은 나날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라는 우리 옛 시조가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그렇게 시간은 꾸준히 지나가고, 사람의 인..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2.부부(夫婦)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2.부부(夫婦)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4. 12. 17. 17:44 양귀비 상상도. 당 현종과 애틋한 러브스토리를 남겼고, 시인 백거이가 그를 '장한가'라는 긴 폭의 시로 읊었다. 남녀가 결혼 등을 통해 한 쌍을 이루면 부부(夫婦)다. 인류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일이 남녀의 혼인이요, 그로써 이어지는 번식이다. 그러니 이 부부관계를 새삼 정의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그만큼 별칭도 많이 따랐다. 당(唐)나라 때의 걸출한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황제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슬픈 사랑을 노래한 ‘장한가(長恨歌)’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 되리라, 땅에서는 연리지 되리라(在天愿作比翼鳥, 在地愿爲連理枝)”는 시구를 선보였다. 이미 죽어 저승으로 간 양귀비, 그녀를 보..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1.각하(閣下)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1.각하(閣下)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4. 12. 10. 20:54 올해 가을의 경복궁 근정전 모습. 이런 '전'이라는 건물 밑에서 나를 낮춰 임금을 부르던 존칭이 '전하'다. 신분과 계급을 아주 엄격하게 따졌던 옛 동양사회에서는 지체가 높은 대상을 부르는 존칭(尊稱)이 퍽 발달했다. 치밀하게 매겨 놓은 ‘위계(位階)’에 관한 의식 때문에 높은 신분의 대상에게는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일이 꺼려졌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나를 낮춤으로써 상대를 높이는 방식의 존칭이 있다. 중국에서는 흔히 이를 因卑達尊(인비달존)이라고 한다. 낮춤(卑)으로써(因) 존경(尊)을 표현한다(達)는 식의 엮음이다. 우리가 가장 잘 알 수 있는 그런 방식의 존칭이 각하(閣下)다. 여기서 閣(각..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0.영락(零落)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80.영락(零落)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4. 11. 26. 17:21 중국의 '세한도'. 차가운 날씨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상록의 식생들을 찬미한 그림이다. 우리말 속에 숨어 있는 한자가 참 많다. 숨은 그림 찾기라도 해야 할까. ‘영락없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우선 문제 하나 내자. “나뭇잎이 무수히 떨어지니 영락없는 가을이다”라는 말은 성립할까.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있다. ‘영락(零落)’이라는 단어를 먼저 살피자. 앞의 글자 零(영)은 우선 숫자 ‘0’을 가리킨다. 그러나 앞서 얻은 의미는 다르다. 비를 가리키는 雨(우)에 명령을 의미하는 令(령)이 붙었다. 초기 자전(字典)의 뜻으로는 본격적으로 내리는 비가 아닌, 나머지의 비다. 굵은 빗방울로 떨..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79.출제(出題)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79.출제(出題)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4. 11. 19. 17:10 빨간 낙엽에 제 심정을 적어 보내 훗날의 남편과 만나는 '홍엽제시'의 성어를 주제로 그린 명나라 때 그림이다. 어느 한 궁녀, 어느 한 서생(書生). 궁에 오래 갇히다시피 살았던 궁녀는 맑은 가을날 빨간색 낙엽에 글귀를 끼적인다. 궁녀로서의 답답한 삶을 하소연하는 내용이다. 이어 궁궐 해자(垓子)의 물에 띄워 보낸다. 해자 주변을 서성이던 서생은 그를 우연히 주워 읽는다. 역시 낙엽에 감상을 적어 물에 띄운다. 누군가 받아볼지 알 수 없는 글쓰기였다. 궁녀는 어느 날 신분의 족쇄를 벗는다. 궁녀 ‘정리해고’ 명단에 ‘다행히’ 이름이 올랐던 모양이다. 서생도 어느 권세가의 참모로 지낸다. 아주 우연한..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78.불우(不遇)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78.불우(不遇) 한자 그물로 중국어 잡기 2014. 11. 12. 16:48 고대 중국 명마도. 말은 고대의 가장 중요한 전략 물자이면서 한편으로는 '인재'를 상징하는 동물이었다. 험준한 태항산(太行山)을 늙은 말이 오르고 있었다. 소금을 잔뜩 실은 수레를 끌면서 말이다. 다리는 자꾸 접혔으며 말굽은 헤어지고, 땀은 흥건하게 몸을 적셨다. 그래도 말은 높고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끙끙거리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백락(伯樂)이 그 말을 알아봤다. 말은 하루에 천리를 내닫는 명마, 즉 驥(기)였다. 명마를 알아보는 데 일가견이 있던 백락의 눈길을 피하지 못했던 것. 그러나 백락은 그저 타고 지나가던 제 수레에서 내려 천리마의 멍에를 잠시 벗겨주는 일밖에는 달리 해 줄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