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막걸리 먹는 소나무

[이규태 코너] 막걸리 먹는 소나무 조선일보 입력 2002.11.25 20:35 서부 개척자들은 개척예정지에 여러 묘목을 심어놓고 3~4년 후에 가본다. 어느 나무가 잘 자라고 못 자라는지로 목장이면 말이 잘 자라는지 소가 잘 자라는지를, 작물이면 밀이 잘 되는지 옥수수가 잘 되는지를 알고 정착 여부를 정했던 것이다. 그만큼 나무는 더불어 사는 사람이나 동물 식물과의 상생(相生) 상극(相剋)에 민감했다. 나무와 사람의 성향은 닮는다 하여 나무이름으로 특정인을 대명하는 관행도 있었다. 이를테면 제퍼슨은 진취적인 오크나무, 휘트먼은 고독을 좋아하는 미루나무로 불렸다. 그 정치가의 집은 오크나무 숲 속에, 그 시인의 집은 미루나무로 싸여 있었다. 그것이 섭리라면 한국인은 소나무다. 태어나면 선산에 그 몫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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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베풀면 오래산다

[이규태 코너] 베풀면 오래산다 조선일보 입력 2002.11.26 20:37 미국 심리학회지 최신호에 남에게 베풀고 남을 돕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두 곱이나 오래 산다는 추적조사 결과가 보도되었다. 장수 부부 세 쌍에서 두 쌍꼴로 선행을 일상처럼 했고, 남과는 전혀 무관하게 산 사람은 일찍 죽을 확률이 두 배나 높다 했다. 조선조 명종 때 점 잘 치기로 소문난 홍계관(洪繼寬)이라는 이가 있어 나라에서 국사나 정승 판서들의 길흉에 대해 맞히지 않은 것이 없어 상류사회를 주름잡고 있었다. 이에 당대의 명정승 상진(尙震) 대감도 매사를 홍에게 점을 쳐 대비했는데 맞히지 않은 것이 없어 죽을 날까지 알아 여생을 정리해왔던 것이다. 상 정승이 죽는다고 예언한 연월일을 전후하여 홍계관이 일이 있어 전라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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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아우 優性論

[이규태 코너] 아우 優性論 조선일보 입력 2002.11.27 18:50 옛날 시골에서 아이가 철들기 시작하면 나막신 거꾸로 신는 나이라고 했다. 아마도 맏이 아닌 둘째 셋째가 철들기 시작하면 맏이만큼 알아주지 않는 데 반응, 자기 과시를 위해 나막신을 거꾸로 신고 다님으로써 어깃장 놓고 주의를 끌려 한다 해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이 어깃장 나이에 각광을 비추는 연구 조사가 일전 영국 BBC방송에서 보도되었다.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로 탄생 서열이 맏이가 아니며 창조적 사상가들은 손위에 형이나 누나가 적어도 한 명 이상 있었다 했다. 또 과학자 로버트 윈스턴 교수가 12만명을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어릴 적 맏이가 아닌 형제들은 형만큼 알아주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본능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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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동대문 운동장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 코너] 동대문 운동장 입력 2002.11.28 20:28:30 | 수정 2002.11.28 20:28:30 서울의 원대한 개발 비전은 이원화하여 현대적 개발은 성 밖에서 다하고, 성 안에는 빈터가 나오는 족족 그곳에 숨쉬고 있는 역사를 부활시키고 재정이 되는 대로 중요 역사 유적을 되살려 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 차원에서 청계천 복원은 바람직하다. 한데 우리나라 군(軍)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농축된 유적지인 훈련원(下都監) 터인 서울 동대문운동장의 잔디를 거두고 시영 주차장으로 만들 계획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훈련원은 지금의 사관학교, 육군대학교, 하사관학교를 통합시킨 장병 선발 및 교육기관으로 무과(武科)의 본향이다. 고종조에만도 390칸의 건물이 남아있었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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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이색학과

[이규태 코너] 이색학과 조선일보 입력 2002.11.29 19:36 새타령에 둥구렁뎅 노래가 있다. 황새란 놈은 다리가 길어 우편군사로 돌리고 까치란 놈은 집을 잘 지으니 목수장이로 돌리며 딱따구리란 놈은 파기를 잘하니 나막신장이로 돌린다. 다람쥐란 놈은 잘 달리니 파발꾼으로 돌리고 꾀꼬리란 놈은 노래를 잘하니 기생방으로 돌리며 부엉이란 놈은 밤눈 밝으니 야경꾼으로 돌린다는 새 타령은 바로 세상 사는 데 적재적소에 부합되는 소질을 새들이 지니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한데 한국사람은 그러하지가 못하다. 개미는 일만 하는 근면한 곤충으로 알려져 있는데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한데 머레이즈라는 곤충학자는 개미의 생태를 관찰한 끝에 근면하게 일하는 것은 그 개미집단에 속하는 20%의 개미에 불과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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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복제인간 古今

[이규태 코너] 복제인간 古今 조선일보 입력 2002.12.01 19:54 중국 삼협(三峽)이 시작되는 장강(長江) 오른쪽 기슭에 풍도라는 지옥도시가 있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지옥에 관한 전설을 지상에 재현시켜 놓았는데 염라대왕의 심판을 거쳐 이승에 나갈 때 거쳐가는 부활의 방도 있다. 이 방에서 분해된 인체들이 쌓여 있어 피골(皮骨), 사지(四肢), 그리고 오장육부(五臟六腑)를 공급받아 새 사람이 만들어지는 인간복제 공장이다. 마지막 공정이 마음을, 새로 조립된 육체 속에 집어넣는 작업이다. 마음에는 나를 위하는 마음과 남을 위하는 마음 두 가지가 있어 열 개의 마음을 골라 넣게 돼 있는데 십중팔구 나만을 위하는 마음을 선택하기에 복제인간 세상은 좋아질 날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복제인간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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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도청

[이규태 코너] 도청 조선일보 입력 2002.12.02 20:07 우리 고전소설들에 남녀 할 것 없이 악역이 등장하게 마련이다. 심청전의 뺑덕어멈, 흥부전의 놀부, 장화홍련전의 장쇠 등등. 이들의 행실 적은 것 가운데 하나가「쥐소리만 나도 귀 기울인다」는 것이다. 엿듣는 동작으로, 인성으로 보아 악인이요 도덕으로 보아 악덕인 것은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옛날 부자가 맞을 매를 대신 맞는 것을 매품 판다고 한다. 흥부가 애써 얻은 매품의 선금으로 양식을 사다가 굶주린 새끼들 먹이고 있는데 흥부집 거적문 밖에서 도청꾼이 귀 기울여 엿듣고 그 매품을 가로챈다. 장화 홍련을 해치려는 계모 허씨는 자기 소생의 장쇠로 하여금 언행을 엿보고 엿듣게 하여 음모를 꾸민다. 한국 고전소설의 기본철학이 권선징악(勸善懲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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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미국 인삼

[이규태 코너] 미국 인삼 조선일보 입력 2002.12.03 19:55 1637년 화란에서 발간된 「조선각서(朝鮮覺書)」에 이 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색다른 것으로 인삼을 들었으며 대마도 도주(島主)가 네 곱을 남겨 일본에 판다 했다. 이처럼 초기 유럽에 소개된 한국 견문으로 인삼이 빠진 적이 없고 그래서 '코레아' 하면 인삼이요, 인삼 하면 환상의 영약으로 이미지가 붙어다녔다. 이미 당나라 문헌인 「명의별록주(名 別錄注)」에 인삼은 백제에서 나는 것이 상품이요, 버금으로 고려(고구려)삼을 친다」 했고 「본초몽전(本草蒙全)」에도 요동(遼東)삼은 황삼이라고 하여 고려삼에 비하여 약효가 허하다 했다. 소동파(蘇東坡)는 어떻게 신라삼을 입수했던지 이를 구경하러 명사들이 자주 들렀으며 학자 장식은 구경만 하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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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閨秀學科

[이규태 코너] 閨秀學科 조선일보 입력 2002.12.04 19:58 20세기 굴지의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 여사가 한국에 왔을 때 한국 여성들과 여자대학들을 돌아본 끝에 한 말이 생각난다. 한국에 오기 전에 알고 있던 사전 지식과 직접 접해본 한국 여성과의 사이에는 연관지을 수 없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사전 지식이란 한국 여성은 시집가기 전에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 남편을 따르며 남편 사후에 아들을 따른다는 삼종지도(三從之道)와 아들을 낳으면 구슬을 들려 놀리고 딸을 낳으면 기왓장 들려 놀린다는 남존여비(男尊女卑)·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성차별, 더워도 소매를 걷지 말고 말소리가 장지문 밖에 들리지 말아야 하는 등의 구속문화가 전부였다는 것이다. 한데 그 같은 압제 전통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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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촛불 시위

[이규태 코너] 촛불 시위 조선일보 입력 2002.12.05 20:21 2차대전 말 유대인 수용소에 갇혀 있던 정신의학자 프랑클은 촛불을 지켜보며 죽어간 60대 할머니 이야기를 써남겼다. 켜지 못하게 돼 있는 초를 구해 담요를 둘러쓰고 자기만의 암흑 속에 그 촛불을 응시하는 것으로 삶을 확인하며 연명하고 살았다. 어느날 너무 오랫동안 기척이 없어 담요를 벗겨보았더니 촛불은 닳아 꺼지고 할머니는 눈을 뜬 채로 굳어있었다 한다. 이 수용소의 할머니는 촛불이 생명이라는 구상(具象)의 조각이다. 30년 전이던가 수녀들의 촛불예배 앞에서 행한 바오로6세의 설교도 잊혀지지 않는다. '곧고 무구하며 순결한 마음의 막대에 더러는 아프게 정열을 불태우는 촛불은 그대들의 삶과 매한가지로 침묵속에 소진하는 운명을 감당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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