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崔淳雨 古宅

[이규태 코너] 崔淳雨 古宅 조선일보 입력 2002.12.06 20:20 언젠가 덕수궁 박물관으로 미술사학자 최순우선생을 찾아갔을때 작업복 차림으로 도자기를 운반하면서 도자기들에게 휴가를 보내고 있는 중이라 했다. 범인(凡人)에게 와닿을 리 없는 도자기 휴가다. 많은 관람객에게 노출될수록 도자기에 피로한 기색이 쌓이는 것이 감지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적정한 시일 동안 사람들의 안광(眼光)으로부터 휴식시키는 것으로 미를 아낀다는 것이었다. 고려청자와 수십년을 더불어 살다보니 청자의 색이 살결에 스며든 것을 느낀다고도 했다. 특히 부슬비 오는 날 오후 청자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일체의 잡념이 청자에 빨려들고 대신 청자가 뿜어대는 청색이 방안에 가득한 착각을 갖게 된다고도 했다. 속인으로서 이를 수 없는 미의 ..

이규태 코너 2022.11.16

[이규태 코너] 동아시아 늑대

[이규태 코너] 동아시아 늑대 조선일보 입력 2002.12.08 20:58 개의 원조는 한국 늑대와 같은 과에 속하는 동아시아 늑대라는 것이 세계적으로 분포된 654종의 개와 38종의 늑대 DNA를 조사한 끝에 확인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개는 1만5000년 전 동아시아에서 늑대가 가축화한 것으로 미국의 토종개는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이 연륙돼 있던 시절에 건너간 것으로 확인되어 유럽전래설이 뒤집히게 됐다. 그동안 개의 원조에 대해 아프리카 자칼이라는 설, 인도 늑대라는 설, 그리고 자칼도 늑대도 아닌 빙하시대에 살았던 낭견(狼犬)을 드는 학자도 있었다. 스웨덴 공대의 학자들이 국제적인 협력을 얻어 유전자를 추적해 오른 결과 아시아 늑대의 배열에 귀일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미 그 이전에 늑대와 개의 ..

이규태 코너 2022.11.16

[이규태 코너] 남한산성 행궁

[이규태 코너] 남한산성 행궁 조선일보 입력 2002.12.09 19:50 조선왕조 500여년 동안 가장 아픈 45일로 기억되고 있는 역사의 현장―남한산성 행궁 73칸이 복원되었다. 병자호란으로 강화도로 피란길 떠난 인조가 남대문을 벗어나자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땀을 흘리며 버티어 서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에 인조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말머리를 남한산성쪽으로 돌렸던 것이다. 후에 알고 보니 오랑캐 장수가 임금이 강화도로 피란갈 줄 알고 길목에 복병을 묻어두고 기다렸다는 것이다. 동궁의 말잡이를 비롯, 수행원이 모두 도망쳐 임금님은 등에 업혀 오르면서 발에 동상까지 걸렸던 산성길은 고행길이었다. 산성에 들어 성을 한 바퀴 돌아본 인조는 행궁 마당에 백관 장수들을 불러놓고 그 유명한 빗속의 행궁 유시..

이규태 코너 2022.11.16

[이규태 코너] 上士 中士 下士

[이규태 코너] 上士 中士 下士 조선일보 입력 2002.12.10 20:45 임오군란의 원인이 된 별기군(別技軍)훈련소는 세검정 밖에 있었다. 이 현대식 사관생도 양성소는 한성근(韓聖根)이 정령(正領) 곧 대령으로 우두머리이고, 윤웅열(尹雄烈)과 김노완(金魯莞)이 부령(副領) 곧 중령으로 부소장이었으며, 교관은 참령(參領) 곧 소령인 우범선(禹範善)이 맡았다. 한데 내로라하는 양반집 자제들인 사관생도들은 우범선 소령이 양반이 아니라 해서 교관을 부를 때 말을 놓아 '너'라고 불렀다. 이에 생도들을 모아놓고 "너희가 훈련을 마쳐도 참위(參尉·현재의 소위(少尉))에 불과할진대 월등한 상급자요, 그 더욱 교관으로서 '놈'이라 불리는 것은 쓸개 있는 사나이로 참을 수 없는 일이다"고 일장 연설을 하고 옷을 벗어..

이규태 코너 2022.11.16

[이규태 코너] 용문산 은행나무

[이규태 코너] 용문산 은행나무 조선일보 입력 2002.12.11 21:08 1100년 된 고목인 용문산 은행나무가 지난 40년 동안 적지 않이 7m나 자랐다는 보도가 있었다. 백발노인의 머리에 검은 머리가 나고 이가 다 빠진 잇몸에 새 이가 돋았다는 이변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무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몇백만 년 된 고생대(古生代)의 지층에 화석으로 나오는 은행나무요, 지구상의 동식물이 모조리 절멸한 빙하기를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무의 원조요, 어쩌면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은행나무일 것이다. 이 은행나무의 원산지가 황해의 주변이다. 은행나무는 사람 키 두 배 이상 자라지 않는다는 송나라 때 기록이나, 한반도의 대안(對岸)인 일본 규슈(九州)에 가..

이규태 코너 2022.11.16

[이규태 코너] 美大陸발견 異說

[이규태 코너] 美大陸발견 異說 조선일보 입력 2002.12.12 20:30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전에 중국 명나라의 항해가 정화(鄭和)가 발견했다는 이설이 제기되었다. 영국 역사학자 멘지스가 든 그 근거로 콜럼버스는 아메리카로 가는 지도를 갖고 있었고 지도가 있다는 것은 그 이전에 누군가가 이 대륙에 항해했다는 것이 되며 콜럼버스 이전에 항해했다면 정화가 이끈 대선단(大船 ) 아니고는 불가능했다는 것. 그리고 콜럼버스 이전에 나온 중국 서적에서 미대륙에만 사는 짐승 그림이며 남미 도처에 정화의 선단의 것으로 보이는 표석들을 들었다. 세계사 발전에 사상 가장 큰 기여를 한 동양인으로 손꼽히는 정화(鄭和)는 중국 운남(雲南)에 대대로 살아온 색목인(色目人) 곧 아랍계 이방인이다. 명나라 건국..

이규태 코너 2022.11.16

[이규태 코너] 다시 보게 될 서대문

[이규태 코너] 다시 보게 될 서대문 조선일보 입력 2002.12.13 20:25 이명박 서울시장은 기초 학술 조사 후 2005년에 한양 4대 문 가운데 하나인 서대문을 복원하겠다고 공약했다. 돈의문(敦義門)인 이 서대문은 태조가 도성을 쌓을 때 정서(正西)의 정문으로 정동(正東)인 동대문과 일직선상인 지금 경희궁 정문 안 북쪽에 동대문처럼 옹성으로 둘려 있었다. 한데 세종 4년 경희궁 정문 앞 교차로에 옮겨 지었는데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성문을 옮겨 지어야 했는가에 대해 「용재총화( 齋叢話)」와 「해동야언(海東野言)」에 그 내력이 나온다. 태종 쿠데타의 공신으로 세도가인 한 정승의 집이 그 서대문 안쪽 가까이에 있었다. 한데 서대문을 통해 드나드는 고양의 나무꾼들 수레 소리에 소음이 대단했던지 그의 ..

이규태 코너 2022.11.16

[이규태 코너] 위스키 코리아

[이규태 코너] 위스키 코리아 조선일보 입력 2002.12.15 20:42 외산 고급주인 위스키가 국산 대중술인 소주 소비량을 웃돌았다는 보도에 이어 발렌타인 17년 로얄 살루트 21년 같은 고급 스카치 위스키는 작년 대비 90%가 늘었다고 전제한「타임」지는 한국을 두고 고급 위스키의 희망이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왜 값비싼 고급 위스키 선호가 급상승하는 한국일까. 위스키나 소주같은 독한 술은 옛부터 떠돌며 사는 이동성 사회나 사회가 변동 불안정할때 선호되는 동적(動的)인 술이요 막걸리나 와인같은 순한 술은 붙박이로 사는 정착 사회나 사회가 안정되었을때 선호하는 정적(靜的)인 술이다.서부 개척시대에 선호됐던 위스키와 서부시대가 끝났을때 선호됐던 위스키의 평균 주정도수는 20도 차이가 났다는 연구도 있다..

이규태 코너 2022.11.16

[이규태 코너] 12분의1 人生論

[이규태 코너] 12분의1 人生論 조선일보 입력 2002.12.16 20:18 「인생에 있어 돈이 충족시킬 수 있는 분량은 전 인생의 12분의 1에 불과하다」는 말로 끝나는 오 헨리의 단편소설이 있다. 끼니도 제대로 못 잇던 신사가 뜻하지 않은 막대한 유산으로 쓰고 싶은 대로 돈을 썼는데 겨우 한 달 지나니까 쓰고 싶은 마음이 고갈되어 엄습해드는 허망함을 견디다 못해 자살한다는 줄거리다. 곧 인생에 있어 12분의 11은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딴 데 있는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여자의 유혹을 작 중 인물인 나타샤와 소냐의 순애(純愛)로 승화시켰고, 술의 유혹은 역시 작 중 인물인 카라마조프의 형제로 하여금 승화시킬 수 있었지만 도박의 유혹만은 승화시키지 못하고 트럼프 사기로 감옥에 드나들었고 여행 중에..

이규태 코너 2022.11.16

[이규태 코너] 浮動票

[이규태 코너] 浮動票 조선일보 입력 2002.12.17 20:35 선거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부동표를 30%로 추산, 이 향배로 당락이 결정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표의 형성요인을 세 가지로 갈라보는 시각이 있다. 그 하나는 정치나 선거에 무관심한 부층이다. 민주주의의 발상지요 고대 희랍 민주주의의 투표현장인 아테네의 아골라에 가면 지금도 투표소의 유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시장을 겸했던 이 아골라에 모인 유권자들은 투표소가 바로 곁에 있는데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이에 관리 둘이서 동아줄에 붉은 칠을 하고서 양편에서 들고 이 무관심한 군중을 투표소로 몰아대곤 했음이 당시 기록인 '아르카나이의 사람들'에 묘사돼 있다. 붉은 물이 옷에 묻을까 봐 이리저리 피해다니면서도 끝내 투표소에 들어가지..

이규태 코너 2022.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