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코너] 단식

[이규태코너] 단식 조선일보 입력 2003.11.27 17:20 미국작가 마크 트웨인은 ‘단식 권유’라는 신문 칼럼에서 43일간 해상을 떠돈 표류민들이 그 단식으로 어느 한 사람 예외없이 지병이 사라졌음을 듣고 건강단식을 권유했다. 우리 조상들 흉년이 닥치면 콩과 삼씨(대마자·大麻子)로 단자를 만들어 식구들 울면서 나누어 먹는 관행이 있었으니 그로써 이레 동안 굶을 수 있다는 슬프디슬픈 단식문화였다. 초나라 지방장관인 섭공(葉公)이 자로(子路)에게 물었다. 당신 스승인 공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태도가 불손하여 대답하지 않았다고 공자에게 말하자 ‘무슨 일에 흥분하면 며칠이고 밥을 안 먹는 그런 사람이라고 말해주지 그랬느냐’고 했다. 이처럼 성인도 흥분하면 단식을 한다. 소원을 간절하게 빌 때도 신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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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명사가 살던 집

[이규태코너] 명사가 살던 집 조선일보 입력 2003.11.28 18:31 | 수정 2003.12.01 13:25 취리히의 카페 ‘오데온’에 가면 작가 제임즈 조이즈가 ‘유리시즈’의 대작을 썼다는 좌석이 표시돼 있다. 그뿐만 아니라 레닌이 망명시절 때를 기다렸다는 좌석도 보존돼 있고 아인슈타인이 단골손님으로 27개 신문을 뒤적거리던 자리도 가 앉아 차를 마실수 있다. 2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 파리의 카페 드라페가 포격을 받고 형적도 없어졌었다. 모파상을 비롯해 졸라, 오스카 와일드가 즐겨 다녔던 단골집이었다. 파리 해방 직후 포격 쓰레기에 싸인 그 앞에 해방군의 지프 한대가 와 멎었다. 그 차에서 내린 것이 바로 단골집 찾아온 드골 장군이었다. 일개 카페의 좌석 하나도 명사가 앉았던 자리는 그만한 부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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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영국과 체벌

[이규태코너] 영국과 체벌 조선일보 입력 2003.11.30 17:34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영국 자장가다. ‘고요히 잘자라 가지 끝에/바람이 불면 요람이 흔들리는데/보채면 가지가 꺾여/요람이 땅에 떨어지고 /아기도 떨어지고….’ 영국 아기들은 이처럼 보채면 응수를 받는다는 체벌이 침투된 자장가를 듣고 자란다. 줄넘기할 때가 되면 ‘바닷가에서 굴러 조니가 밀크병을 깼네/내가 밀었다고 핑계대기에/나는 엄마에게 일렀고/엄마는 아빠에게 일러/조니는 엉덩이 맡기를/한 번… 두 번… 세 번….’ 이렇게 폴짝폴짝 줄넘기를 해나간다. 놀이 노래에까지 침투한 체벌이다. 영국왕실에서는 왕자를 기숙학교에 보내어 응석 단절교육을 시키는데 매맞을 일을 하면 지엄한 몸을 때릴 수 없다 하여 대신 매를 맞는 태동(笞童)을 정해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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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손과 한국인

[이규태코너] 손과 한국인 조선일보 입력 2003.12.01 17:06 국제 기능올림픽에서 한국의 젊은이들이 연패(連覇)행진을 하고 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한데 장애자 기능올림픽에서도 3연패의 승전보가 들려왔다. 역경을 이긴 심지(心志)를 찬양하기 이전에 한국인의 손, 그 손재간의 세계적 위상을 확고부동하게 하는 쐐기요, 세상 사람들의 인식 속에 한국인을 개성화·차별화하는 문화자원을 과시했다는 측면을 크게 사고 싶다. 한 나라의 전통이란 역사시간 동안 조상들이 시행착오로 간직해내린 지혜다. 그러기에 그것은 국민 전체의 소유이며 국가 재산이다. 20세기에 들면서 자의건 타의건 서양문화를 왕성하게 받아들였고 한국의 근대화에 공이 컸지만 두 개의 폐단을 동반했다. 하나는 극단적인 서양숭배요, 그 반동으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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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진시황릉

[이규태코너] 진시황릉 조선일보 입력 2003.12.02 18:27 진시황의 지하궁전인 여릉(驪陵)에 전자파 탐지를 하여 그 구조가 밝혀졌다. 「사기(史記)」 진시황본기의 기사와 들어맞기도 하고 기사에 없는 구조도 발견되었다는 보도다. 진시황은 13세에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능 만드는 일을 착수했는데, 이는 수릉(壽陵)이라 하여 생전에 무덤을 만들면 정해진 수명보다 오래 산다는 말을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죽기 전에 관을 만들어 놓고 해마다 손수 옻칠을 하면 오래 사는 것으로 알았으며, 이 관재(棺材)를 수목(壽木)이라 불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천하를 평정하고부터 이 능 축조에 70만명을 차출, 생전에 집무했던 함양궁을 본뜬 규모의 지하궁전을 지었다고 했는데 이번 탐지조사에서 축구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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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도롱뇽 재판

[이규태코너] 도롱뇽 재판 조선일보 입력 2003.12.03 17:20 | 수정 2003.12.03 17:36 지난 월말께 울산 법정에서 도롱뇽의 법정 출석을 확인하는 이색 절차가 있었다. 경부 고속전철의 천성산 구간공사 때문에 이 산에 사는 도롱뇽이 죽어가고 있다고 소송을 제기했는데, 원고가 피해동물인 도룡뇽으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원고는 출정하지 못했지만 도롱뇽의 친구인 환경단체가 대신하여 재판을 진행시켰던 동물재판이었다. 이 자리에는 일본에서 환경파괴에 대항하는 토끼재판, 도요새재판 등을 주도해온 환경운동가들이 응원 방청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동물재판의 역사는 동서간에 유구하다. 돼지를 놓아기르던 중세 프랑스에서는 사람이나 작물, 기물을 다치게 한 돼지를 잡아 도시 한복판에서 재판을 하고 그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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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백제 신발

[이규태코너] 백제 신발 조선일보 입력 2003.12.04 18:21 북방 오랑캐의 침공에 골머리를 앓아온 조(趙)나라 무령왕(武靈王)은 이를 물리치고자 기마(騎馬)전투에 편리한 오랑캐옷(胡服)을 채택했었다. 이때 오랑캐 풍습을 따른다 하여 조정신하들이 모두 불복, 출사를 하지 않았으며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은 그 유명한 오월(吳越)의 싸움에 대해 89자만을 썼을 뿐인데 이 오랑캐옷의 채택에는 1천375자나 썼음만 미루어보아도 당시 중화사상이 지배하고 있던 조나라에서 큰 사건이었음을 미루어 알 수 있다. 발목까지 덮는 이 북방형 오랑캐 신발은 고구려에도 들어와 사신총(四神塚)이나 쌍영총(雙楹塚) 등 고분 벽화들에서 볼 수 있다. 한데 신라 백제 고분들에서 출토된 금동제 신발들은 발목이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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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막달라 마리아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막달라 마리아 입력 2003.12.05 18:15:55 | 수정 2003.12.05 18:15:55 예수 그리스도가 골고다의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히던 날 제자들은 모두 사람들에게 들킬까 두려워 숨어 있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를 부정했고 야곱은 묘지의 토굴 속에 있었다. 한데 그 살벌한 현장에서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려져 시신을 수습하기까지 전과정을 지켜본 여인이 있었다. 이튿날 시신에 향유(香油)를 바르고자 무덤에 들었던 바로 그 여인이요, 부활한 예수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 여인 앞이었다. 그 여인이 바로 막달라의 마리아다. 창녀로서 회개하여 그 죄를 용서받은 것으로 알려진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가 아니라는 해석이 성서 속의 여인들을 재조명하는 과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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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에카르트 미술사

[이규태코너] 에카르트 미술사 조선일보 입력 2003.12.07 16:47 한국문화의 근대화에서 잊혀지고 있는 두 독일인 거목이 있다. 음악의 에케르트와 미술의 에카르트로 이름도 흡사하다. 에케르트는 일본해군군악대교사로 초빙되어 당시 입으로만 구전돼 오던 일본국가 「기미가요」를 처음으로 편곡 채보하여 일본 임금 생일날에 최초로 취주악으로 연주한 분으로 그 후 우리나라에 초빙되어 대한 제국군악대장으로 있으면서 「애국가」를 작곡한 분이다. 1904년 황성신문 보도에 보면 이 에케르트 작곡의 애국가는 국가로 공식 채택되어 당시 조약국들에 악보가 보내졌고 각급학교에서 예식을 할 때 불렀다 한다. 미술의 에카르트는 선교사로 조선땅에 와 미술에 빠져 「한국미술사」라는 대작을 저술, 한국미술의 우수성을 처음으로 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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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루벤스와 한국인

[이규태코너] 루벤스와 한국인 조선일보 입력 2003.12.08 18:08 임진왜란 때 납치되어 로마까지 팔려갔던 한국 소년이 그림이 되어 근 400년 만에 환국을 한다. 17세기의 거장 루벤스의 드로잉 명화 「한복 입은 사나이」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전시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 거장의 모델이 된 한국 사나이가 나가사키 노예시장에서 이탈리아 인신상인 카를레티에게 팔려간 한국 소년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것은 알려져 있다. 다만 언제 어떻게 루벤스와 만나게 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안토니오가 팔려간 해는 1597년으로, 그때 여남은 살의 소년이었다. 당시 노예매매에서 성인 몸값이 100스쿠드인데 안토니오는 다섯 아이와 싸잡혀 12스쿠드라는 헐값에 팔린 것이고, 인도 고아로 살 사람이 나서지 않자 해방시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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