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코너] 수달 이주작전

[이규태코너] 수달 이주작전 조선일보 입력 2003.12.09 17:51 우리 조상들 자연현상과 인간현상은 서로 상응(相應)한다고 믿었고 따라서 초목이나 조수(鳥獸)에 이변이 생기면 삼강오륜(三綱五倫)에 변고가 생긴 것으로 가늠했다. 이를테면 선산에 소나무가 시들면 그 가문에 누군가 실절(失節)한 것으로 가늠했고, 해마다 날아와 집을 짓던 제비가 오지 않으면 가문에 배은망덕한 일이 일어났거나 일어날 것으로 알았다. 요즈음 그렇게 흔하던 까마귀 찾아보기가 힘든데 보양에 좋다고 잡아먹어서 사라졌다고들 하지만 옛날 같으면 이 상응철학을 적용하여 부모를 모시지 않고 소외시키는 사회풍조의 상응으로 보았을 것이다. 까마귀는 길러준 어미를 먹이는 반포(反哺)를 한다 하여 불효자식을 나무랄 때 까마귀만도 못한 놈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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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오타니 컬렉션

[이규태코너] 오타니 컬렉션 조선일보 입력 2003.12.10 17:36 1900년에 들면서 중앙아시아를 탐험하던 헤딩과 스타인이 불교 경전과 미술의 보고인 둔황(敦煌)을 발견하고 방대한 문화재를 자기들 나라에 경쟁적으로 실어날랐다. 이 소식이 인도의 불적(佛蹟)순례를 하고 런던에 유학하고 있던 한 일본의 모험심 강한 젊은 스님을 자극했다. 그 스님은 일본 니시혼간지(西本願寺)의 주지인 오타니(大谷光瑞)로, 귀국하면서 젊은 네 사람을 대동하고 둔황에 들른 것을 시작으로 세 차례에 걸쳐 불교벽화를 비롯해 다량의 유물들을 낙타등에 싣고 자기네 나라에 옮겨놓았다. 유럽의 탐험대들이 국가나 박물관의 후원으로 학문적인 뒷받침 아래 체계적인 약취를 한 데 비해 오타니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이렇다 할 학문적인 뒷받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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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장관 성적표

[이규태코너] 장관 성적표 조선일보 입력 2003.12.11 16:35 선조 때 정승 이준경(李浚慶)은 재상으로서의 자질을 따져보고자 두 판서와 더불어 기방(妓房)에 갔다. 거나하게 취하자 이준경은 수청 든 기생의 손을 잡고 “오늘 밤 나와 동침하지 않으려나”라고 물었다. 이에 “천첩이 대감을 잠자리에 모신다면 자식을 낳게 될 것이요, 자식을 낳으면 앞에 앉아계시는 두 대감들과 같은 지체가 될 것이온데 어찌 영광이 아니오리까” 했다. 실은 이 두 판서가 첩 소생들인 것을 알고 기생과 미리 짜고 연극을 꾸민 것이다. 이 모욕적인 기생의 말에 어떻게 반응하는가로 두 판서의 사람됨을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한 판서는 안색이 태연하고 못 들은 척하는데 다른 판서는 발끈하여 안절부절못했다. 이로써 두 판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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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자선냄비속의 거금

[이규태코너] 자선냄비속의 거금 조선일보 입력 2003.12.12 17:22 부처님에게 아나율(阿那律)이라는 앞 못보는 제자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 아니라 출가 후 설법을 들으면서 졸았기로 부처님 앞에 졸지 않겠다는 맹세를 지키느라 눈이 짓물러 못 보게 된 것이다. 수도하면서 옷은 제 손으로 짓고 기워 입게 돼 있었기에 아나율도 그에 따랐지만 오로지 바늘귀 꿰는 일만은 남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데 바늘귀를 꿸 때마다 “누군가 공덕을 쌓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했다. “실 좀 꿰주십시오. 부탁합니다” 하면 될 것을, 실 꿰는 공덕을 쌓는 기회를 베풀고 있는 것이 된다. 인도여행에서 호주머니에 볼펜 두 개 꽂고 있으니 그 하나는 자기가 써주겠다며 손벌리는 꼴을 당한 적도 있다. 콜카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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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산촌의 한국학

[이규태코너] 산촌의 한국학 조선일보 입력 2003.12.14 15:54 산촌의 외딴집들은 소나무 판자를 겹겹이 놓아 인 너와지붕이다. 이 너와는 도끼로 소나무의 동맥인 결을 찾아 자른다. 이렇게 자른 너와는 수십 년 가는데 기계톱으로 네모 반듯하게 제재한 너와는 2년도 못 가서 물이 샌다. 결을 살려두면 빗물이 결을 타고 흐르지만 제재한 너와는 결을 묵살했기에 물이 스며 썩기 때문이다. 나무 한쪽 이용하는 데도 생명을 아끼는 슬기를 산촌의 너와 쪽 하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물며 생명이 있는 금수나 벌레임에랴. 산촌에 집을 지을 때 터를 잡으면 맨 먼저 쌓아야 하는 것이 고수레 단(壇)이다. 모든 음식을 먹기 이전에 조금씩 떼어 이 고수레 단에 바치는 것이 산촌살이의 관습인데 신명과 공식(共食)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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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역사를 판 후세인

[이규태코너] 역사를 판 후세인 조선일보 입력 2003.12.15 17:15 바그다드 남쪽 유프라테스 강변에 고대 바빌론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유적이 있다. 사담 후세인이 독재를 시작하면서 맨 먼저 이 유적 보수에 착수했는데, 그에 드는 엄청난 벽돌 하나하나마다 「함무라비가 건설한 바빌론을 이제는 사담 후세인이 재건한다」고 새겼었다. 후세인의 통치 수단으로 역사적 위인을 자신과 겹쳐 이미지를 높여 왔는데 함무라비왕 말고 또 다른 위인이 있다. 유럽 다국적군과 싸워 물리친 이슬람군의 영웅 살라딘으로 후세인이 외국 요인과 회담할 때 자신은 살라딘의 화신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입으로 했다. 12세기에 성지 예루살렘을 90년 만에 탈환한 살라딘은 용맹과 인도주의로 범아랍권의 존경을 받아온 인물로 사담 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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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열하 행궁(熱河 行宮)

[이규태코너] 열하 행궁(熱河 行宮) 조선일보 입력 2003.12.16 16:16 이제까지 닫혀 있던 청나라 열하 행궁이 관광지로 개방된다는 보도가 있었다. 베이징에서 북동쪽으로 250㎞ 떨어져 있는 열하는 청나라 최성기 90년간 여름 서너 달 동안 임금을 비롯한 문무백관이 옮겨 집무했던 제2의 수도로, 10㎞의 성벽에 둘러싸인 행궁 지역과 행궁 둘레의 라마교 사찰지대로 대별된다. 열하나 열하성이라는 지명은 지도에서 사라지고 허베이(河北)성 청더(承德)로 알려져 있을 뿐이요, 온천이 솟아 얻은 열하라는 이름은 행궁의 온천지(池)에 서 있는 열하천이라는 돌비석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법국오동(法國梧桐)으로 불리는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끝나는 곳에 새장 들고 새를 파는 노인들이 웅성거리는 궐문 앞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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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후세인의 수염

[이규태코너] 후세인의 수염 조선일보 입력 2003.12.17 16:12 생포 당시 덥수룩했던 후세인의 수염을 미군이 말끔히 자르고 공개했다. 후세인의 본 얼굴을 드러내고자 함이었을 것이다. 한데 깎인 후세인의 수염이 이라크 사람들의 뼈아픈 공감대를 자극, 저항을 격화시키는 불씨가 될 것이라고 아랍계 방송이 보도했다. 수염은 아랍사람들에게 있어 몸에 난 털이 아니라 힘과 권위의 상징이다. 이집트의 수호신인 인면사신(人面獅身)의 스핑크스에는 본래 수염이 있었다. 한데 영국군이 이곳을 점령했을 때 맨 먼저 그 수염을 떼어내 대영박물관에 옮겨 놓았었다. 스핑크스가 있는 한 이집트는 외적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이집트 사람들의 애국심을 거세하고 이집트를 수호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약화시키는 수단으로 수염을 떼어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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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후세인과 '죄와 벌'

[이규태코너] 후세인과 '죄와 벌' 조선일보 입력 2003.12.18 15:59 독재자 후세인이 소설을 쓴 작가라면 곧이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파리에는 사담 후세인이 쓴 것으로 알려진 소설 ‘사비바와 왕’이 불역되어 출판되었는가 하면, 연합군의 공격 직전까지 이라크 저항세력이 미군에게 승리한다는 ‘악마는 물러가라’는 표제의 서사시를 쓰고 있었다는 외신보도가 있었다. ‘사비바와 왕’은 1000년 전 한 왕국의 고독한 왕과 그의 연인인 젊은 유부녀가 주인공으로 왕국과 왕을 해치려는 음모가 줄거리인데, 그 연인이 왕을 배신한 자로부터 강간을 당하는 그 날을 걸프전쟁이 일어났던 1월 17일로 잡고 있다. 여성이 피해를 입건 조국이 피해를 입건 강간은 최악이며 그보다 더 나쁜 것은 강간을 당하고만 있는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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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성묘 투쟁

[이규태코너] 성묘 투쟁 조선일보 입력 2003.12.19 16:14 별의별 투쟁방식이 선을 보여오더니 심지어는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급 정객들의 선영을 찾아다니며 제사를 지내고 다니는 성묘 투쟁까지 등장하여 이목을 끌었다.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의 국회심의를 앞두고 그 통과를 반대하는 농민단체의 무저항 투쟁방식으로, 지극히 한국적인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성묘 자체는 나쁠 것이 없으나, 그로써 묘소의 소재를 알고 있으며 법안이 통과되면 그 묘소를 훼손할 수 있다는 공갈 효과를 노린 것일 게다. 조상의 묘소가 후손의 흥망성쇠와 직결돼 있다는 한국인의 묘지의식을 볼모로 투쟁 목적을 쟁취하려는 세계민간투쟁사에 기록될, 상궤(常軌)를 벗어난 이색 투쟁방식이 아닐 수 없다. 5년 전에 우리나라 명왕(名王)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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