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코너]도끼 상소

[이규태코너]도끼 상소 조선일보 입력 2004.08.25 18:47 충주지역 유림들이 광화문전에 도끼를 올려놓고 수도이전으로 차별 소외당했다는 민의를 상달하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렸다. 상소는 올곧은 말이 많아 임금이나 권력자의 비위를 건드려 보복당할 위험이 크기에 그를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도끼를 들고 상소를 했던 것이다. 조선조에 임금에게 올린 가장 격렬하고 용기 있는 상소문은 헌종 연간에 용천(龍川) 기생 초월(楚月)이 열다섯 살에 올린 상소문일 것이다. 자신의 미욱한 남편부터 시작하여 ‘좋은 얼굴을 한 대도(大盜)’인 벼슬아치의 부패상, 권세가의 살찌는 곳간, 갓난아이에게까지 물리는 병역세, 주걸(紂桀)을 닮아가는 임금의 주색(酒色)에 이르기까지 직소하고 “엎드려 원하오니 신의 죄를 살피시어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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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許王后의 DNA

[이규태코너]許王后의 DNA 조선일보 입력 2004.08.26 18:39 | 수정 2004.08.26 18:43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비 허씨의 고향은 인도 남동부 아요디아시(市)다. 그곳에 세워진 허왕후비에 후손들인 김해 김씨, 김해 허씨, 인천 이씨 일행이 해마다 참배하고 있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에 보면 서기 48년 김수로왕은 김해 앞바다에 표착한 아유타국의 여인 허황옥을 맞아 비(妃)로 삼았다 했는데, 그 아유타국이 어디며 그 먼 타국에서 어떤 사연과 경로로 김해 앞바다까지 흘러왔는지를 살핀다는 것은 역사에 대한 대탐험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을 고고학자인 김병모(金秉模) 교수가 30년에 걸쳐 추적, 허 왕후의 뿌리를 찾아내어 그곳에 허 왕후 고향비를 세우기에 이르렀는데, 얼마 전 한국유전체학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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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개성상인 마인드

[이규태 코너]개성상인 마인드 조선일보 입력 2004.08.27 18:13 | 수정 2004.08.27 18:14 돌상에는 돈꾸러미·지필묵(紙筆墨)·실타래 등 장래를 가늠하는 물건들을 놓고 아기에게 집도록 시킨다. 한데 개성상인의 아기돌상에는 다른 데서 볼 수 없는 가래엿이 놓여있고 엿가래 집는 것을 가장 경사스럽게 여겼다. 상가(商家)로서 가운이 번창할 것으로 예언받기 때문이다. 엿을 손아귀에 쥐면 끈끈해 떨어지지 않는다. 한번 잡으면 놓치지 않는 것이 개성상인 마인드요, 그것이 엿가래 쥐는 것으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엿가래처럼 잡으면 놓치지 말고 붙들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가 한 업종을 잡으면 바꾸거나 곁눈질 말고 정면대결해서 승부를 보라는 엿 철학이 그것이다. 한말에 양품이 들어오고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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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양재천 너구리

[이규태코너]양재천 너구리 조선일보 입력 2004.08.29 18:19 인조 때 척화신인 김수익(金壽翼)이 겨울밤에 글을 읽다 출출해서 아내에게 밤참을 내오라 시켰다. 밤을 삶아 내왔길래 이를 먹고 있는데, 또 한 여인이 삶은 밤을 들고 들어와 올려다보니 역시 자기 아내였다. 두 아내가 서로 자기가 진짜 아내라고 맞싸우는데 김수익이 오른손으로 먼저 들어온 아내 손을 잡고 왼손으로는 뒤에 들어온 아내의 손을 잡고 놓아주질 않은 채 밤새기를 기다렸다. 새벽닭이 울자 오른손에 잡힌 아내가 놓아달라고 아우성치더니 갑자기 너구리가 되어 달아났다. 허다한 여우와 너구리의 인신둔갑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천애록’이라는 문헌에 나온다. 둔갑문화에도 역사가 있다. 인간세계를 멸망시키려는 야망을 품은 구미호(九尾狐) 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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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오버 더 힐’

[이규태코너]‘오버 더 힐’ 조선일보 입력 2004.08.30 18:13 미국 캐나다 호주 등지의 서양학자들에게 한국의 효문화를 연구시키고 그 효도의 국제화를 시도하는 효문화원 설립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동서양 문화를 크게 벌려놓는 인자 가운데 하나가 효다. 서양계 언어들에 아예 효라는 말이 없다. 굳이 말을 만들어 피리얼 듀티(Filial Duty) 또는 피리얼 파이어티(Filial Piety)라 하는데 자식으로서의 도리 또는 자식으로서의 사랑이란 뜻으로 효란 개념의 극히 일부만을 표출하고 있을 따름이다. 서양에서 효를 연상시키는 최초의 문서가 함무라비 법전에 나오는 사마리아의 사계율(四戒律)로 '자식이 아버지더러 아버지가 아니라고 하는 자는 문신(文身)을 하여 은과 바꿔버린다' 했다. 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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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할머니 모시기

[이규태코너]할머니 모시기 조선일보 입력 2004.08.31 18:33 영화 '서편제'에 보면 밭에 일하러 나간 어머니가 기어다니는 아기와 나무밑둥을 띠로 묶어놓고 밭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아기 업어 기르는 띠가 모체로부터의 격리 도구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띠는 이처럼 일이 많았던 옛 어머니들의 비정의 탁아도구이기도 했다. 서양사람들은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모체와 격리, 침대·유모차·요람에서 양육하며 공원에 가면 마치 륙색을 나뭇가지에 걸어놓듯 칭칭 엮은 아기를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부인네들끼리 잡담하는 모습이나 아장아장 걷는 아기를 마치 강아지처럼 가슴팍을 끈으로 매어 몰고 다니는 광경도 흔히 볼 수 있다. 아기의 격리육아 도구인 아기구덕이 없는 문화권은 이 세상에 제주도를 제외한 한반도뿐이다. 히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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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눈어림 날씨예보

[이규태코너]눈어림 날씨예보 조선일보 입력 2004.09.02 18:54 정시의 산책으로 유명한 철학자 칸트는 햇볕이 쨍쨍한데도 우산을 들고 나가고 비가 쏟아질 것 같은데도 우산을 들지 않고 나가곤 했다. 그는 새벽종 저녁종 소리를 듣고 당일 날씨를 가늠하는데, 빗나간 일이 없었다 한다.‘아베마리아’로 알려진 작곡가 구노는 하프시코드 연주가이기도 했다. 그 하프의 G선을 퉁겨 보고 닥칠 날씨를 가늠하는데 열 번에 여덟 번 맞히는 높은 확률이었다 한다. 파주 화석정에서 보름날에 시회(詩會)를 갖기로 한 정약용(丁若鏞)이 파주에 사는 한 친지에게 당일 날씨를 알려달라고 편지를 띄웠던 것 같다.‘보름날 전야의 오동잎이 서풍에 등을 보이니/ 달은 못 보겠지만 가랑비 나리는 밤의 달인들 달이 아니랴’하는 낭만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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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퓨전 김치

[이규태코너]퓨전 김치 조선일보 입력 2004.09.05 18:43 서울의 햄버거 가게에 들르는 외국인으로 햄버거 아닌 김치버거를 찾는 손님이 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김치 먹는 나라가 100개국을 웃돌 만큼 국제화되고 있는 마당에 햄 대신 김치를 겹쳐 먹는 퓨전 김치가 세상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했다는 것이 된다.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듯이 김치버거는 '동서양이 융합한 독특하고도 미래지향적인 제3세대의 맛' 시대의 개막이다. 한국의 한 이탈리아 식당에서는 김치 스파게티를 개발, 별미로 인기를 끌었다. 스파게티의 주원료가 마늘과 고추라는 점, 그리고 음식 색깔이 같다는 점에 착안, 퓨전에 성공한 것이다. 김치 케이크도 제과점의 쇼윈도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김치를 잘게 썰어 말린 김치빵은 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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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목계론(木鷄論)

[이규태코너]목계론(木鷄論) 조선일보 입력 2004.09.09 18:58 닭싸움을 좋아했던 제나라 임금을 위해 기성자(紀?子)가 싸움닭을 훈련시키고 있는데 열흘쯤 돼서 임금이 불러 물었다. "닭이 다 됐느냐?" "아직 멀었습니다. 무턱대고 위세를 부리고 기력에 의존하려 듭니다." 그 후 열흘이 되어 다시 물었다. "아직 덜 됐습니다. 소리가 나거나 그늘이 들면 그에 대결하려 듭니다." 열흘이 지나 다시 묻자 "상대를 보면 노려보고 기세를 꺾지 못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난 다음에야 "이제 됐습니다. 다른 닭이 울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고 마치 나무로 깎아놓은 닭 같습니다. 덕(德)이 갖추어져 다른 닭들이 대들기는커녕 등지고 도망쳐 버립니다" 했다. '장자(莊子)'에 나오는 목계론(木鷄論)이다. 지금 여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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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韓中日 된장전쟁

[이규태코너]韓中日 된장전쟁 조선일보 입력 2004.09.12 18:33 한국 된장의 국제규격화가 같은 된장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의 견제로 실패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도 같은 식품이 있음을 들고 반격하는 바람에 Doenjang이라는 이름으로 국제적 공인을 받아 시장을 선점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여기에서 역사적 배경을 살펴 이 된장의 국제규격화를 위한 접근방식에 문제가 없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무위하지 않을 것 같다. 고대 로마에 '가물'이라는 어장(魚醬)이 시판됐다는 기록이 있고 성서에도 어장이 등장한다. 서구에 있어 이 장(醬)의 전통은 지금 '안초비 소스'로 명맥을 잇고 있으나 고기가 주식인 유럽에서는 소금만으로도 맛있게 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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