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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해상 선박테러

[이규태코너] 해상 선박테러 조선일보 입력 2004.07.12 18:46 테러에 무소불위인 반미 이슬람 지하단체들이 망망대해를 무방비로 오가는 한국 선박들을 테러 대상으로 삼을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당장 파병부대의 물자와 석유를 배에 실어 중동을 오가야 하는 우리나라에 해상 테러 위협은 남다르다. 무력 테러는 무력으로 대항하겠지만 고대 병법으로 불식간에 저질러 오는 데는 속수무책이다. 우선, 하역을 하거나 기름을 싣기 위해 외항에 정박 중인 선박에 대한 화공(火攻) 테러를 예상할 수 있다. 중국 정사인 ‘당서(唐書)’에 보면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장수 유인원(劉仁願)이 백제를 돕고자 백강(白江)에 포진한 왜(倭) 수군단(水軍?)에 화공작전을 쓰는데, 수군선 400여 척을 화승(火繩), 곧 불이 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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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나노 플라워

[이규태코너] 나노 플라워 조선일보 입력 2004.07.13 18:46 흔히들 한국인은 손으로 사물을 본다고들 한다. 옷가지 하나 사고 쌀 한 됫박 살 때도 반드시 손으로 만져보고 산다. 관광도 눈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선지 손으로 만져본다. 손이 닿을 만한 문화재마다 손때가 반지르르한 데 예외 없음이 그 때문이다. 서양사람들은 기도할 때도 손바닥만 맞추고 허공을 응시하는데, 우리 어머니들은 두 손바닥을 맞추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닳도록 손을 비빈다. 서양사람은 눈으로 신을 잡으려 하는데 한국사람은 손으로 잡으려 한다. 인간의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 다섯 감각을 교신하고 통합하는 교환대 구실을 하는 뇌량(腦梁)이라는 부위가 있다. 뇌량에서 통합된 제3의 감각을 감(勘)이라 한다. 직감(直感)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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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내부고발 제도

[이규태코너]내부고발 제도 조선일보 입력 2004.07.14 18:53 '흥부전'에 나오는 꾀쇠아비나 '장화홍련전'에 나오는 장쇠처럼 한국 고전소설에서 악역은 고자질하는 자이게 마련이다. 서로 아는 사람끼리 오순도순 살아야 하는 정착사회를 금가게 하는 요인 중 으뜸이 고자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 전통사회를 그물처럼 단단하게 얽어 놓은 부자(父子)·부부(夫婦)·형제(兄弟) 사이 그리고 친지나 상전 같은 일하는 동무 사이를 해치는 내부고발을 법 어기는 일보다 큰 악으로 여겼다. 인조 연간에 대흥산성에서 관은(官銀)을 훔친 혐의자가 잡혔는데, 포도청에서 이 혐의자의 열 살 난 아들을 잡아다 아버지가 은을 훔친 일을 두고 고발을 유도했다. 겁에 질려 자초지종을 고백했고 포청에 가면 말하지 말라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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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제2의 해인사

[이규태코너] 제2의 해인사 조선일보 입력 2004.07.15 18:08 해인사 일주문에 이르기 전에 우람한 사적비와 안내판에 대조되어 초라해 보이는 3층탑이 있다. 표면의 이끼를 긁으면 거무튀튀한 표층이 부스럼처럼 일어나는 가려진 이 탑이, 싱그러운 신라정신이 손이 시리게 와닿는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묘길상탑(妙吉祥塔)이다. 이 탑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겨우 40여년 전 체포된 도굴꾼에 의해서였다. 그 탑 속에서 신라 최고의 문장 최치원(崔致遠)이 쓴 지석(誌石) ‘해인사 묘길상사탑기(妙吉祥寺塔記)’가 나온 뒤부터다. 거기 보면 이 탑은 진성여왕 9년(895)에 세운 승군(僧軍)의 호국 진혼탑으로, 전사한 56명의 법명이 적혀 있다. 신라정신의 기틀이요, 우리나라 애국 정신의 원천인 원광스님의 세속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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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이라크의 還鄕女

[이규태코너] 이라크의 還鄕女 조선일보 입력 2004.07.16 18:31 병자호란 때 오랑캐는 전리품으로 조선 남녀들을 끌고 가 심양(?陽) 남변문(南?門) 밖에 노예시장을 벌이고 팔았다. 노동력으로 또는 처첩으로 팔려가 계약 시한을 채우고는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이렇게 돌아온 여인을 환향녀(還鄕女) 또는 쇄환녀(刷還女)라고도 했다. 한데 이 돌아온 여인을 상민이나 천민은 반갑게 받아들였지만 양반 신분의 여인들은 거의 문 안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하여 문밖에서 울다가 발길을 돌렸다.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우는 것 같기도 한 이상야릇한 한국적인 웃음을 ‘환향녀의 웃음’이라 하는데 바로 법도를 지키는 가문에서 전란에 납치돼 가 실절했을 어머니나 아내, 딸들이 문전에서 짓지 않을 수 없었던 기구한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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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세 발 까마귀

[이규태코너] 세 발 까마귀 조선일보 입력 2004.07.18 18:31 삼족오(三足烏), 곧 세 발 까마귀가 한·중·일 세 나라의 상징물로 뜰 것 같다. 지난 한·일 공동주최의 월드컵 때 일본축구협회는 야타가라스(八咫烏)를 문장(紋章)으로 삼았는데, 일본 건국신화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시조인 진무왕(神武王)을 안전하게 인도한 까마귀로 발이 셋이다. 태양 속에 세 발 까마귀가 산다는 우리나라 신화가 있고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그려져 있어, 야타가라스의 뿌리가 한국이라 하여 이를 한·일 공동체의 상징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번 유네스코에서 이 세 발 까마귀가 일본 시조왕을 인도한 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됨에 따라 이 까마귀를 주제로 한 심포지엄이 열리고 그 뿌리를 찾는 한국여행이 뜨고 있다고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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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소외 살인

[이규태코너] 소외 살인 조선일보 입력 2004.07.19 18:27 아프리카 야생동물계에서 가장 무서운 짐승 하면 사자를 연상하겠지만, “가장 약한 짐승이 가장 두려운 짐승”이라는 케냐 야생공원 감독관의 말이 생각난다. 비단 맹수뿐 아니라 모든 짐승에게 쫓겨다니기만 하는 임팔라 사슴이 바로 그 가공할 만한 존재다. 약육강식의 아프리카 황야에서 집단 행동하는 임팔라 사슴 떼가 유유자적하고 있는 인근 100~200m 이내에는 반드시 사자 한 마리가 누워 있게 마련인데 이 사자 때문에 다른 짐승들이 접근하지 못한다. 노쇠하거나 병든 임팔라 사슴 한 마리가 정기적으로 사자에게 잡아먹힘으로써 배고프지 않은 사나흘 동안 그의 위력 아래 집단 안전을 보장받는다는 것이다. 임팔라 사슴이 두려워지는 것은 이 집단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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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파랑새

[이규태코너] 파랑새 조선일보 입력 2004.07.27 18:33 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원주민 간에 ‘푸르다’라는 말이 없다 한다. 우리나라 말에서처럼 청(靑)과 녹(綠)이 구분돼 있지 않은 나라말도 많고ㅡ. 하늘 바다, 그리고 산천초목의 대자연이 푸른빛 일색이기 때문이란 설도 있고, 이 대자연을 제외한 소자연에는 희귀한 보석 말고는 거의 볼 수 없는 희귀색이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그래선지 블루 다리아ㅡ 하면 극히 진기한 것을 뜻하고 푸른꽃ㅡ 하면 노봐리스의 작품에서처럼 꿈속에 나타난 동경의 상징이다. 파랑새는 마테를링크의 시극에서 잡히지 않는 행복의 상징이고ㅡ, 은요번(殷堯藩)의 ‘궁사(宮詞)’에 보면 중국에서는 파랑새 발에 편지를 매어 연인에게 애전(愛箋)을 주고받았다. 이에 비해 한국의 파랑새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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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酒池肉林' 발굴

[이규태코너] '酒池肉林' 발굴 조선일보 입력 2004.07.28 18:27 폭군 하면 하(夏)나라를 망친 걸왕(桀王)과 은(殷)나라를 망친 주왕(紂王)을 연상한다. 그 주왕의 주색방탕의 현장이요 환락의 형용사가 되기까지 한 ‘주지육림(酒池肉林)’의 현장이 중국 허난성(河南省) 옌스(偃師)의 은나라 유적지를 발굴하던 고고학 연구팀에 발견되었다고 엊그제 발표됐다. 미녀 달기(?己)에 빠져 이궁에 못을 파 술로 채우고 인근 나무들에 살코기를 매달아 숲을 이룬 속에 남녀로 하여금 벌거벗겨 포르노를 실연시키며 밤새워 즐긴 현장이다. 색정소설 ‘금병매(金甁梅)’에서 서문경이 배경음악으로 연주시켰다던 ‘북리무(北里舞)’나 ‘미미락(靡靡樂)’은 그를 듣고는 모기일지라도 암수가 짝짓지 않고 배길 수 없다던, ‘주지육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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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100미터 김밥

[이규태코너] 100미터 김밥 조선일보 입력 2004.07.29 18:21 억센 정착성 민족이라선지 남들과의 화합을 큰 덕목으로 쳤던 한국인이다. 그래선지 화(和)의 문화가 보다 발달한 나라를 찾아볼 수 없음도 그 때문이다. 이를테면 너와 나라는 가장 기초화합의 의식으로 합근(合?)을 들 수 있다. 표주박 잘라 그 잔에 담은 한 잔 술을 둘이서 나누어 마심으로써 일심동체가 되어 일생을 해로하자는 결혼의식이다. 세조가 여진족을 토벌하고 온 신숙주와 더불어 궁벽(宮壁)에서 표주박 하나를 따 이를 갈라서 술을 담아 나누어 마심으로써 군신의 일심동체를 다진 것이나, 사라지지 않은 술잔 주고받는 수작(酬酌)도 바로 합근문화의 잔재다. 법도 있는 집안에서 한 식구일지라도 종이나 머슴 이부 자식은 한솥밥을 먹이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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