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304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23> 炎凉世態

뜨거울 염(火-4)서늘할 량(水-8)세상 세(一-4)형편 태(心-10) 위나라 사자가 설 땅에 가서 맹상군을 초빙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제나라 민왕과 신하들은 모두 맹상군이 제나라를 떠날까 두려워졌다. 민왕은 곧바로 太傅(태부)에게 황금 1000근과 화려한 사두마차 두 대 따위를 주어 맹상군에게 전하게 했다. "과인이 복이 없어 종묘에서 내린 재앙을 입고 아첨하는 신하들에게 빠져 그대에게 죄를 지었소. 과인은 능력이 모자란 자이니, 부디 그대는 선왕의 종묘를 생각해서 돌아와 온 백성을 다스려주기 바라오." 그러자 풍훤은 맹상군에게 이렇게 일깨워주었다. "먼저 설 땅에 宗廟(종묘)를 세우고 선왕들의 祭器(제기)를 옮기고 싶다고 청하십시오." 군주라도 종묘가 있는 곳은 함부로 침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설 ..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22> 狡兎三窟

- 약을 교(犬-6)토끼 토(儿-5)석 삼(一-2)굴 굴(穴 -8) 풍훤이 설 땅에 가서 빚을 탕감하고 돌아온 뒤 1년쯤 지났을 때였다. 제나라 閔王(민왕)은 세상의 비방에 현혹되어 맹상군의 명성이 자신보다 높아서 제나라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른다고 생각해 맹상군에게 말했다. "과인은 선왕의 신하를 과인의 신하로 삼고 싶지 않소." 이리하여 맹상군은 벼슬에서 물러나 자신의 영지인 설 땅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때 빈객들은 맹상군이 벼슬에서 물러나는 것을 보고 모두 떠나갔다. 맹상군에게는 풍훤을 비롯한 몇 사람만 남아 있었다. 그들과 함께 쓸쓸히 설 땅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맹상군 일행이 아직 설 땅에 이르지도 않았는데, 영지에서 100리나 떨어진 곳까지 설 땅 백성들이 나와서 길을 메운 채로 맹상군을 맞이..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21> 吾家所寡有

- 나 오(口-4)집 가(宀 -7)바 소(戶-4)적을 과(宀 -11)있을 유(月-2) 전국시대에 자신의 문객들을 마치 제 손과 발처럼 여긴 인물이 있었으니, 孟嘗君(맹상군)이다. 그에 대해서는 '사기' '맹상군열전'과 '전국책'에 두루 나온다. 그는 성이 田(전)이고 이름은 文(문)이다. 맹상군이 선친을 이어 제나라의 재상이 되어 도성에 머물고 있을 때다. 어느 날 장부를 내놓으며 문객들에게 물었다. "누가 회계를 잘하시오? 누가 나를 위해 설 땅에 가서 빚을 받아오겠소?" 그러자 馮諼(풍훤)이라는 사람이 나섰다. 맹상군은 그에게 일을 맡겼다. 풍훤은 곧 수레를 준비하고 행장을 꾸려 빚 문서를 싣고 떠날 준비를 다 하고는 맹상군에게 물었다. "빚을 다 받으면 무엇을 사가지고 오면 좋겠습니까?" 맹상군은 ..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20> 臣視君如寇讐

- 신하 신(臣-0)볼 시(見-5)임금 군(口-4)같을 여(女-3)도둑 구(宀-8)원수 수(言-16) 월왕 구천이 걱정하고 있을 때, 길에서 개구리 한 마리가 배를 내밀고는 화를 내며 싸울 기세를 하는 것이 보였다. 이를 본 구천은 수레 앞의 가로나무를 잡은 채 몸을 굽히며 개구리에게 경의를 표했다. 그러자 병사들 가운데 한 명이 물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개구리와 같이 하찮은 짐승에게 몸을 굽히며 경의를 표하는 것입니까?" 구천이 대답했다. "나는 병사들이 분발하기를 오랫동안 기다렸지만, 아직 내 뜻에 부합하는 병사를 본 적이 없다. 이제 이 개구리는 지혜가 없는 짐승임에도 적을 보고는 분노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래서 몸을 굽혀 경의를 표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병사들 가운데 죽기로 싸울..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19> 臥薪嘗膽

- 누울 와(巨-2)땔나무 신(艸-13)맛볼 상(口-11)쓸개 담(肉-13) 王政(왕정)에서는 왕이 통치의 중심에 있으므로 대소신료들이나 백성들의 이목은 왕에게 쏠리기 마련이다. 군자나 현자라면 왕의 언행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판단하여 도리를 따르겠지만, 소인들이나 백성은 왕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취향을 좇아서 행동할 것이다. 앞에서도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앞의 글()에서 말한 초나라 왕은 靈王(영왕)으로, 기원전 535년에 章華宮(장화궁)을 짓고 그곳에 허리가 가는 여자들을 모아 놓았다. 그러자 도성 안의 여자들이 허리를 가늘게 하기 위해서 먹지 않고 굶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래서 그 궁을 '細腰宮(세요궁)'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영왕은 어린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인물인..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18> 一人之治亂在其心

- 한 일(一-0)사람 인(人-0)갈 지(丿-3)다스려질 치(水-5) - 어지러워질 란(乙-12)있을 재(土-3)그 기(八-6)마음 심(心-0) 환공은 덕이 모자란 데다 성질까지 급한 인물이었음이 분명하다. 패배의 원인을 제대로 분석할 줄도 몰랐다. 그저 군사력을 기르기만 하면 적국을 쳐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참으로 순진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관중이 간언했음에도 듣지 않았으니, 어찌 이길 수 있었겠는가? 그 뒤에도 환공은 관중의 말을 계속 듣지 않았다가 거듭 곤란한 지경에 처했다. 포숙이 환공에게 관중의 말을 듣고 따라야 한다고 계속 설득해서야 비로소 관중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환공이 포숙의 의견을 듣고 관중의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면, 패자는커녕 나라를 존속시키는 일조차 어려웠을 것..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17> 學不可以已

- 배울 학(子-13)아닐 불(一-3)할 수 있을 가(口-2)그칠 이(人-3)뿐 이(己-0) '순자'의 첫 편은 '勸學(권학)'이다. 그 첫머리에 "學不可以已"(학불가이이) 곧 "배움은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배우지 않으면 선비 노릇, 관리 노릇, 정치가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제 몸을 닦거나 집안을 가지런히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묻고 배워야 하는데, 하물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경영하려는 이라면 어떠하겠는가? '관자'에는 환공이 관중에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일마다 묻는 대목이 꽤 많이 나온다. 제나라가 부강해지고 환공이 패자가 된 것은 관중이라는 현명한 재상에게 묻고 그 의견을 경청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환공도 즉위 초기에는 관중의 의견을 자주 묵살했다. ..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16> 不恥下問

아닐 불(一-3)부끄러워할 치(心-6)아랫사람 하(一-2)물을 문(口-8) '논어' '公冶長(공야장)'에는 또 다음의 대화가 나온다. "子貢問曰: '孔文子, 何以謂之文也?' 子曰: '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之文也.'"(자공문왈: '공문자, 하이위지문야?' 자왈: '민이호학, 불치하문. 시이위지문야) 자공이 여쭈었다. '공문자는 어찌하여 文(문)이라 일컬어졌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셨다. '재바르면서도 배우기를 좋아하였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이라 일컬어졌다.'" 뛰어난 스승을 구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사람에게는 정해진 스승이 없어야 마땅하다. 어디에서나 만나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이치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15> 好問則裕

좋아할 호(女-3)물을 문(口-8)곧 즉(刂-7)넉넉할 유(衣-7) 湯王(탕왕)이 夏(하)나라의 폭군인 桀王(걸왕)을 내쫓고 商(상) 왕조를 열 때, 그를 보좌한 인물로 仲虺(중훼)가 있었다. 아직 탕왕이 실존 인물이었는지 확인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그를 보좌한 중훼 역시 실존 인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탕왕이나 중훼가 허구적 인물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언행이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고 또 후대의 정치에서 중시되었으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상서'의 '仲虺之誥(중훼지고)'에 나온다. "德日新, 萬邦惟懷; 志自滿, 九族乃離. 王懋昭大德, 建中于民. 以義制事, 以禮制心, 垂裕後昆. 予聞曰, '能自得師者王, 謂人莫己若者亡. 好問則裕, 自用則小.'"(덕일신, 만방유회; 지자만, 구족내리. 왕무소대덕, 건중우..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14> 定而履

바로잡을 정(宀-5)너 이(而-0)밟을 리(尸-12) 수신의 요체는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것은 자신의 감각기관을 잡도리하지 못하여 바깥 사물에 휘둘리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다. 진나라에 길을 빌려주었다가 나라를 망하게 한 우공이나 여인에게 빠지고 권력에 눈이 멀어 자신뿐만 아니라 일족까지 죽임을 당하도록 만든 춘신군이나 모두 감각기관이 바깥 사물에 휘둘렸다. 흔히 사람들은 남이 당하는 그런 비참한 일을 보고는 "나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한다. 우공이나 춘신군도 그렇게 장담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그 말로는 처참했다. 어쩌면 덕이 없거나 모자라기에 호언장담했고, 그 때문에 외물에 휘둘리며 마음이 어지러워져도 알아채지 못했으리라. 날마다 새롭게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