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구의 대학에서 304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4> 安仁과 利仁

편안할 안(宀 - 3)어질 인(人 - 2)이로울 리(刀 - 5) 밝은 덕을 밝힌 자는 仁者(인자)요 知者(지자)다. 이런 인자나 지자라야 어떤 상황에서든 가장 좋은 것을 알아보고 가장 좋은 데를 찾아낼 수 있으며, 가장 좋은 것을 오래 지니고 가장 좋은 데서 오래 머물 수 있다. 공자가 말했다. "不仁者, 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仁者, 安仁; 知者, 利仁."(불인자, 불가이구처약, 불가이장처락. 인자, 안인; 지자, 리인) "어질지 않은 자는 간소함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즐거움에 길이 머물지 못하지. 어진 자는 어짊을 편안하게 여기고, 아는 자는 어짊을 이롭게 여긴다네." 그러나 밝은 덕을 밝히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토록 儒者(유자)들이 떠받드는 聖君(성군)을 아비로 두었음에도 그 자식들..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3> 慾善善將至

- 하고자 할 욕(欠-7)좋을 선(口-9)앞으로 할 장(寸-8)이를 지(至-0) 초나라 莊王(장왕)이 대부 士亹(사미)에게 태자 箴(잠)을 가르치게 하였다. 그러자 사미가 사양하며 말하였다. "저는 재주가 없어 보탬이 될 수 없습니다." 장왕이 말하였다. "그대의 좋은 점을 가지고 태자를 좋게 만드시오." 사미가 대답하였다. "무릇 좋게 되는 일은 태자에게 달렸습니다. 태자가 좋게 되려고 하면, 좋은 사람이 이를 것입니다. 태자가 좋게 되려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게 하려고 해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임금에게는 丹朱(단주)가 있었고, 순임금에게는 商均(상균)이 있었으며, 啓(계)에게는 五觀(오관)이 있었고, 탕왕에게는 太甲(태갑)이 있었으며, 문왕에게는 管(관)과 蔡(채)가 있었습니다. 이 다섯 ..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2> 至善不戰

지극할 지(至-0)좋을 선(口-9)아닐 부(一-3)싸울 전(戈-12) 기원전 403년부터 시작되어 거의 200여 년 동안 지속된 戰國時代(전국시대)는 그야말로 전쟁의 시대였다. 이미 춘추시대에도 전쟁은 잦았으니, 140여 개의 제후국이 전국시대 들어서 고작 20여 개만 남았다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전국시대에는 전쟁이 더욱더 잦아지고 규모도 훨씬 더 커져서 한 번의 전투로 수만 명 때로 수십만 명이 죽었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數戰則士疲, 數勝則君驕. 驕君使疲民, 則危國. 至善, 不戰; 其次, 一之. 大勝者, 積衆勝, 而無非義者焉, 可以爲大勝. 大勝, 無不勝也."(삭전즉사피, 삭승즉군교. 교군사피민, 즉위국. 지선, 부전; 기차, 일지. 대승자, 적중승, 이무비의자언,..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1> 上善과 善之善者

위 상(一-2)좋을 선(口-9)갈 지(丿-3)것 자(老-5) 주희는 至善(지선)에 대해 "事理當然之極也"(사리당연지극야)라고 풀이했다. "사물의 이치로서 마땅히 그렇게 해야만 하는 근본이나 궁극 또는 표준"이라는 뜻이다. 지선을 도덕이나 윤리의 차원에서 해석한 것인데, 治國(치국)의 차원에서 논하자면 또 달라진다. 더구나 문제는 그저 좋은 것이든 지극히 좋은 것이든 그 좋은 것이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사람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문제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다른 학파에서 언급한 것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道德經(도덕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20> 止於至善

머무를 지(止-0)어조사 어(方-4)이를 지(至-0)좋을 선(口-9) 큰 배움의 길 또는 정치는 밝은 덕을 밝히는 '明明德(명명덕)'에서 시작하여 백성을 가까이하는 '親民(친민)'으로 이어지는 내내 지극히 좋은 것 곧 至善(지선)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이것이 '在止於至善(재지어지선)'이다. 至善(지선)은 말 그대로 "지극히 좋다 또는 착하다"는 뜻이다. 善(선)에는 착하다, 좋다, 길하다, 잘하다, 옳게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이 모두 하나로 통한다. 옳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고 또 착하고 길하며 좋은 것이라는 뜻이다. 善(선)의 金文(금문)을 보면, 羊(양) 한 마리를 가운데 두고 말씀 言(언)이 양쪽에 놓여 있다. 양은 송사에서 판결에 쓰이는 신령한 짐승이고, ..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9> 君舟民水

임금 군(口-4) 배 주(舟-0) 백성 민(氏-1) 물 수(水-0) 齊(제)나라 景公(경공) 때, 눈이 사흘 내내 내리며 개지 않았다. 경공이 여우의 겨드랑이 털로 만든 갖옷을 입고 섬돌 위에 앉아 있었다. 晏子(안자)가 들어와 謁見(알현)하고 잠시 서 있는데, 경공이 말했다. "괴이한 일이로다! 눈이 사흘 내내 내리는데도 춥지 않다니." 안자가 말했다. "날씨가 춥지 않다는 말씀이신가요?" 경공이 겸연쩍게 웃자, 안자가 말했다. "제가 들으니, 옛날의 현명한 군주는 자신이 배부를 때 백성이 굶주리는지 생각하고, 자신이 따뜻할 때 백성이 추위에 떠는지 생각하며, 자신이 편안할 때 백성이 힘든지 생각했다고 하는데, 지금 군주께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경공이 말했다. "옳은 말이오! 과..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8> 民無信不立

백성 민(氏-1)없을 무(火-8)믿을 신(人-7)아닐 불(一-3)설 립(立-0) 흔히 유가 사상은 덕성과 예법을 중시할 뿐 법률이나 형벌은 경시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또 유가의 정치나 통치에서는 어짊과 올바름, 믿음 따위가 중요하지, 군사력이나 경제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경향도 있다. 공자가 "소인은 이끗에 밝다"고 말하고 맹자가 梁惠王(양혜왕)에게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라고 말한 뒤로 이익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흔히 생각한다. 이 모두 오해다. 공자나 맹자, 순자 그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論語(논어)' '顔淵(안연)'편에 다음의 대화가 나온다. 子貢問政, 子曰: "足食, 足兵, 民信之矣." 子貢曰: "必不得已而去, 於斯三者何先?" 曰: "去兵..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7> 夜行과 親民

- 밤 야(夕 - 5)다닐 행(行 - 0)가까이할 친(見 - 9)백성 민(氏 - 1) 왜 "백성을 가까이한다"는 親民(친민)을 말하는가?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民心(민심)이 곧 天心(천심)이라 한 것처럼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天命(천명)을 얻은 것으로 인정되어 왕조나 정권의 정당성이 확보되기도 하지만, 또한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야 실질적으로 부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국시대에는 백성의 마음을 얻는 것이 곧 백성의 수를 늘리는 일이었다. 백성이 많아지면 생산에 종사하는 인구도 많아지고 전쟁에 나가 싸울 군사도 많아진다. 한마디로 백성이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서 富國(부국)과 强兵(강병)이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백성을 가까이하는 일이 부국강병의 길로 나아가는 요체였고, 여전히 그..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6> 推己及人

- 미룰 추(手 - 8)자기 기(己 - 0)미칠 급(又 - 2)다른 사람 인(人 - 0) 흔히 쓰는 兩親(양친), 親戚(친척), 親族(친족) 따위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본래 '親(친)'은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 곧 피붙이나 살붙이에 대해 쓰는 용어였다. 친은 가까이로는 어버이를, 멀리로는 겨레붙이를 두루 이른다. 어버이를 비롯한 겨레붙이는 당연히 '나'와 가까우니 내가 자연스럽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피붙이나 살붙이를 가까이하는 것, 이것이 친의 본래 뜻이다. 그렇다면 '親民(친민)'은 백성을 내 어버이처럼 또는 내 형제처럼, 내 겨레붙이처럼 여기고 아낀다는 뜻이리라. 친민의 뜻을 분명하게 밝힌 이는 孟子(맹자)다. 맹자는 齊(제)나라에 가서 宣王(선왕)에게 王道(왕도)를 역설했다. 제나라..

정천구의 대학에서 정치를 배우다 <15> 新民과 親民

- 새롭게 할 신(斤-9)백성 민(氏-1)가까이할 친(見-9) 전국시대에 들어서자 음모와 술수가 난무하였고, 끊임없이 분란과 전쟁이 거듭되었다. 사람은 본디 "이끗을 좋아하고 밝히는 본성" 즉 好利之性(호리지성)을 타고났다고 주장하는 법가의 학설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듯한 시대였다. 그러나 거울이 때가 끼어 흐리다 해서 그 본성까지 흐린 것은 아니듯 혼탁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버둥질하면서 간사하고 포악한 짓을 일삼는다 할지라도 사람의 본성이 본래 흐린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것이 유가 사상가들의 확신이었다. 그런 확신이 '明明德(명명덕)'으로 표현되었던 것이니, 이 얼마나 처절한 외침인가! 명명덕을 이어 나오는 말은 '在親民(재친민)'이다. "밝은 덕을 밝히는 데서 시작한" 대학의 길이 "백성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