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587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29> 한량과 건달 : 최고의 삶은?

두 단어는 나쁘게 들린다. 그러나 따져 보면 가장 멋진 뜻을 담고 있다니? 한량(閑良)에서 한(閑)은 한가하다는 뜻도 있지만 조용하고 품위있다는 뜻도 있다. 량(良)은 좋다는 뜻과 함께 곧다는 뜻도 있다. 그러니 한량이란 조용하며 곧은 남자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에 무과의 과거시험에 붙지 못한 남자다. 한량 중에는 무관의 벼슬을 얻기 위해 무술 연습이나 한다며 아무 일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일부 한량들의 모습에서 우리가 지금 아는 한량의 부정적인 뜻이 생겼다. 지금 한량의 사전적 정의는 돈 잘 쓰고 잘 노는 플레이보이다. 건달이란 말은 인도의 힌두신화나 불교경전에 나오는 간다르바에서 나왔다. 간다르바는 음악을 연주하며 술과 고기를 먹지 않고 향만을 먹고사는 신성한 신으로 상체는 사..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0> 여유엄과 소요유 ; 멋진 삶은?

두 단어로 바로 전회에 언급한 한량과 건달의 삶을 어렴풋이 그릴 수 있다. 노자와 장자, 이른바 노장 철학을 흔히 도교라고 하지만 둘의 사유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노자가 직접적으로 주창한다면 장자는 우화를 들려주며 우회적으로 이야기한다. 노자가 고정 관념을 비트는 패러다임시프터라면, 장자는 기존 관념을 비꼬는 스토리텔러다. 노자가 엄숙하고 진지하다면, 장자는 여유롭고 자유롭다. 노자도덕경 15장과 장자 1장에서 알 수 있다. 노자는 도의 세계를 여유엄(與猶儼) 등으로 설명한다. 살얼음 냇가를 건널 때처럼 조심조심하는 것이 여(與). 주위 사방을 망설이며 경계하는 것이 유(猶). 다른 사람 집에 머무는 손님처럼 점잖케 행동하는 것이 엄(儼)이다. 남양주에 있는 정약용 생가는 여유엄에서 앞 두 글자를 따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1> 야망과 소망 : 뭘 품을까?

둘 다 꿈은 꿈인데 하나는 허황되고 다른 하나는 실속있다. 왜일까? Boys, be ambitious! Ambition을 야망으로 번역한 일본인의 속내는 무얼까? 일본인은 야(野)라는 한자를 좋아한다. 베이스볼을 굳이 야구(野球)로 번역한 그들이다. 중국인은 봉구(棒球)라 한다. 축구도 야구도 넓은 들판(野)에서 하니 야구가 아니라 몽둥이(棒)로 공(球)을 치는 봉구가 맞다. 야(野)는 들판이지만 거친 상태라는 부정적 의미도 있다. 그래서 야심이란 길들이지 않은 거친 마음이다. 일본인들은 품지말아야 할 야심을 가지고 대동아공영권의 야망적 대망을 위해 우리나라를 합방하고 침략전쟁을 일으키며 하와이의 진주만까지 기습했다. 거친 꿈인 야망과 달리 소망이란 소박한 꿈이다. 작을 소(小)가 아닌 흴 소(素)의 의..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2> 신앙과 종교 ; 벌어지는 차이

두 단어는 별 차이 없이 들린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하면 차이가 살며시 벌어진다. 신앙이나 종교를 영어로 하면 'religion'이다. 이 단어는 다시(re) 묶다(lig)에 명사형 접미사(ion)의 합성어로 튼튼하게 묶인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릴리지언은 내가 무엇에 강하게 묶여 의지하는 것으로 종교보다는 신앙에 가깝다. 신앙이란 절대적 존재에 묶여 의지하며 믿고(信) 우러르는(仰)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느)님을 믿는 기독교·천주교 신앙, 부처님을 믿는 불교 신앙, 알라신을 믿는 이슬람 신앙, 시바나 강가 등과 같은 인도 신화의 여러 신들을 믿는 힌두교 신앙은 릴리지언이다. 어떤 동물이나 식물을 신성시하는 토테미즘, 물신숭배의 애니미즘, 신과 접하는 초능력자를 통한 샤머니즘 등도 릴리지언이다. 릴리..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3> 고독함과 외로움 ; 어원이 같다

각각 한자와 한글인 두 낱말은 뜻도 같지만 어원이 같다. 같은 과(科)의 식물이다. 고독이란 한자를 풀이하면, 고(孤)는 子와 瓜가 합친 형성문자다. 독(獨)도 개(犭)는 둘이면 싸우니 홀로 두어야 한다는 형성문자다. 한자를 만드는 육서(六書) 중 하나인 형성(形聲)이란 부수에 음(聲)을 나타내는 글자가 합쳐져서 새로운 뜻의 한자를 이루는(形) 방법이다. 아들을 뜻하는 부수인 子에 고와 발음이 비슷한 오이 과(瓜)가 합쳐져 외로울 孤라는 한자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한자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고견을 들으면 형성문자라도 음에 해당하는 글자를 아무 것이나 넣지 않았다고 한다. 특별히 오이를 뜻하는 瓜를 넣어서 외로울 고라는 한자가 만들어진 데는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외로울 고라는 한자에 高나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4> 새삼스럽다와 변태스럽다

전자는 식물이고, 후자는 동물에서 왔다. 도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일까? 새삼스럽다는 이미 알고 있는 뭔가에 대하여 갑자기 새로운 데가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새삼은 다른 식물의 영양을 빨아먹고 사는 악덕 기생식물이다. 다른 식물에 달라붙으면 영양분을 흡입하는 뿌리가 필요없기에 스스로 잘라내며, 광합성으로 영양을 창출하는 잎도 비늘처럼 퇴화한다. 그래도 씨는 뿌려야 하기에 생식기관인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어떤 식물에 새삼이 달라 붙으면 영양분을 빼앗겨 말라 죽는다. 새삼스럽다의 어원에 대해 몇몇 설들이 있지만 바로 이 새삼에서 나왔다는 설에 따르면 새삼스럽다는 결코 좋은 뜻이 못된다. "새삼스럽게 무슨 말씀을"은 "저를 말려죽여 잡수실 말씀을"이란 뜻이 된다. 변태란 한자 그대로 모습(態..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5> 그리스도, 바울, 베드로, 스데반, 데릴라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름들에 대해 분명하고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톰 존스가 불렀던 딜라일라는 성경 속 삼손과 데릴라의 그 데릴라다. 매튜(Matthew), 마크(Mark), 루크(Luke), 존(John)은 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이 되었을까? 성경번역의 역사를 살펴 볼 일이다. 가장 먼저 1800년대 후반 중국에서 성경이 번역될 때 한자로 가차(假借)하여 부자연스럽게 표기하는 중국의 영향을 근본적으로 받았다. 1910년에서야 신구약 전체가 완역되고, 1937년에 전면 개정되었다. 일제시대 영향을 받았다. 24개로 모든 음들을 자유롭게 표기할 수 있는 한글과 달리 50음도로 이루어진 일본의 가나(1名)는 음의 표기가 제한적이다. ㅊㅍ 등의 자음을, ㅓㅐㅕㅟㅚㅡ 등의 모음을 표기할 수 없..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6>사쿠라와 사이비 ; 어원이 깊다

앞에 사 자가 들어간 두 낱말은 가볍게 들린다. 그러나 어원을 따지면 깊고 묵직하다. 벚꽃(櫻花)인 사쿠라가 뭐 어떻길래 부정적 뜻으로 쓰일까? 연분홍색(櫻色) 말고기(櫻肉)를 소고기로 속여 팔아 그리 되었다는 설도 있다. 더 믿을 만한 설은 아랄(Aral)이라는 한곳으로부터 여러 곳으로 문화가 퍼졌으므로 동서양 언어의 근원이 같다는 알알(Aral) 문명설이다. 이에 따르면 벚나무나 말고기를 뜻하는 사쿠라(さくら)가 의식을 뜻하는 sacrement의 사크라(sacra)에서 왔다. 알알의 문화가 건네진 서양에서는 기독교 전래 전에 말고기를 신에게 바쳐 제사지내는 사크라가 있었다. 일본에서도 불교 전래 전에 벚꽃이 핀 봄날에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쿠라가 있었다. 이 사쿠라 의식을 선동하기 위해 박수꾼과 바..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7> 음력과 양력 ; 달에 맞는 달력은?

지금 우리가 쓰는 달력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음력과 양력을 알면 알게 된다. 밤은 음(陰)이고 낮은 양(陽)에 해당하므로 달력은 낮에 뜨는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양력이 아니라 음력이 중심이다. 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돌 때 보여지는 달 모양 변화를 기준으로 한다. 달이 안 보이는 삭(朔)→초승달→ 상현달→보름달→하현달→그믐달→삭(朔)의 주기가 29.5일이다. 양력 1년이 12달인 이유는 음력 주기 29.5일을 맞추기 위함이다. 음력으로 1년은 354일(29.5일×12달)인데 양력으로는 365일이다. 약 10일의 차이가 나므로 이를 계속 놔두면 서로 어긋나므로 음력에서는 19년에 7번씩 윤달(閏月)을 두어 1년이 13달이 된다. 윤(閏)이란 서로 안 맞는 것을 채운다는 뜻이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8> 운수와 팔자 ; 운명에 따를까?

운수가 좋고 팔자가 편하면 재수가 좋고 복이 많을까? 운수란 운(運)의 수(數)다. 재수(財數)란 재물이 들어오는 운수다. 왜 수(數)라는 한자를 썼을까? 숫자로 따졌기 때문이다.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를 겹친 60간지(干支)는 수다. 토정비결도 태어난 연월일의 수로 따진다. 100자리 1~8, 10 자리 1~6, 1 자리 1~3개인 144개(8×6×3)의 괘(卦)로 운세를 점친다. 태어난 날인 일진(日辰) 괘가 좋으면 운수가 좋을 것같은 희망을 준다. 팔자란 사주팔자다. 태어난 연월일시가 그 사람의 네 기둥인 사주(四柱)다. 사주 각각에 60간지에서 온 글자 2개가 있으니 모두 팔자(4×2=8字)다. 철학관으로 불리는 점집에서는 이 여덟 개 숫자에서 온 간지를 따져 길흉화복을 점친다. 남녀 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