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587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49> 도덕과 윤리 ; 가르칠 수 없는 것?

두 낱말은 비슷하기도 하고 다르게도 여겨진다. 과연 비슷할까? 다를까? 과거에 초·중등 교과목에 도덕이 있었다. 도덕은 국민의 공중도덕과 바른 생활을 위한 계몽수단일까? 노자를 읽으면 그리 간단치 않다. 춘추시대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다고 추정되는 노자는 생사가 분명한 역사적 인물이 아니다. 노자도덕경이라는 문헌이다. 5000자 간결한 글이지만 글에 담긴 생각의 깊이와 넓이는 이루 가늠하며 형용할 수 없다. 노자 사후에 노자는 황제와 연관된 황로학(黃老學)이나 신선사상이 가미된 주술적 도교로 변질된다. 어떤 이는 노자를 전제주의 통치이념이라고 대들 듯 비하하지만 노자는 그런 경박한 공격마저도 단번에 비틀어 버리는 묵직한 텍스트다. 노자도덕경에 살아 있는 도덕은 2500년이 지난 이 시대 우리의 고정관..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0> 마른 하늘에 날벼락 : 아닌 밤중에 홍두깨

두 낱말은 깜짝 놀랄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본래 뜻을 알고 나면 기분이 묘해진다. 벼락이란 하늘에서 번쩍번쩍하는 번개가 땅으로 떨어진(落) 것이다. 번락이 벼락이 되었다. 벼락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니 날벼락이다. 벼락 맞은 나무가 살아남아 골프장 관상수로 고가에 팔리기도 하지만 사람은 벼락 맞으면 즉사한다. 번개와 천둥, 폭우를 동반하는 벼락이 화창하니 맑고 밝은 마른 하늘에서 떨어질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런데 떨어지면 재앙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예상외의 일이 느닷없이 갑작스럽게 일어나 깜짝 놀라는 상황이다. 옛날에 청상과부들은 싫어도 수절해야만 했다. 그래서 밤중에 젊은 과부들이 자는 방에 사내가 몰래 들어가 일을 벌이거나 이불에 싸서 남자들이 업어가는 보쌈이 종종 있었다고 한다. 밤중도..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1> 프리덤일까? 리버티일까

두 단어 모두 자유로 번역된다. 그러나 자기(自)로부터(由)인 자유의 질이 다르다. 자유의 여신상은 Statue of Freedom인가? Statue of Liberty인가?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연설에서 Give me liberty라고 했는데 맞을까? 영화 빠삐용의 주제가는 Free as the wind인가? liberal as the wind인가? 자유로운 섹스는 free sex인데 Liberal sex는 안될까? 파편적 지식창고인 인터넷에서 검색해도 두 단어의 차이를 이해하기 힘들다. 이 때 가만히 혼자 생각하면 둘의 차이가 벌어진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내 생각으로는 프리덤은 자유행동, 리버티는 자유의지다. 어떤 제재없이 내 하고 싶은 맘대로 행동하는 것이 프리덤이다. 하지만 어떤 억압에서..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2> 엉터리와 뚱딴지

두 낱말은 엇비슷하게 여겨진다. 알고 보면 달라도 너무 다른 말이다. 얼라리꼴라리, 노가리, 아가리, 주둥아리, 대가리, 멍텅구리처럼 '리'가 붙은 낱말은 상대를 낮게 깔보는 말이다. 사투리도 그렇지만 이 낱말에 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따로 다루겠다. 엉터리란 터무니없는 언행, 또는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이다. 터무늬가 없다는 것은 건물이 있었던 터의 무늬, 즉 부지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굴착기로 파서 밀어버리면 건물의 터는 물론 산의 터까지도 없애버리는 시대지만 과거에는 집을 없애도 터는 남았다. 결국 터의 무늬가 없다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엉터리다. 둔하다는 뜻을 가진 만주어 옹토리(ongtori)에서 왔다는 설이 있는 엉터리는 엉망이다, 엉성하다, 엉뚱하다와 어원이 같다. 모두 비..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3>사투리와 지역말 ; 무엇을 버릴까?

두 낱말을 모두 방언이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는 방언이 아니라 탯말이다. 엉터리처럼 사투리도 접미어 '리'가 붙어 부정적 의미를 가진다. 사투리란 지방에서 쓰이는 말로 표준말이 아닌 틀린 말이다. 원래 우리말이지만 한자로 만들어 쓸 수 있다. 평평한 중심이 아니라 비스듬한 변방인 사(斜)의 버릇인 투(套)로 말하는 촌스러운 리(俚)의 말이 사투리(斜套俚)다. 중심에서 인위적으로 정한 표준말의 관점에서 사투리는 다른 말이 아니고 틀리고 잘못된 말이니 표준말로 고쳐야 옳을까? 표준말은 교양있는 서울사람들이 쓰는 말이라는데, 서울 아닌 곳에서 살면 교양이 없다는 뜻인가? 표준글은 있을 수 있지만 표준말은 억압으로 작용하기 쉽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들은 나의 탯말이 표준말이 아니라서 고쳐야 한다면 억울하다. 아..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4> 바로크와 클래식 ; 정반대다

바로크풍이나 클래식풍이라고 하면 우아한 고전미가 느껴진다. 과연 그런 걸까? 1400년대 시작된 유럽의 르네상스 시대는 중세에서 벗어나 그리스 로마 때처럼 질서, 균형, 조화, 논리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를 거부하는 것이 바로크다. 찌그러진 진주인 바로크(Baroque)는 단정명료하며 완벽한 미를 지닌 원형의 진주를 과감히 찌그러뜨린 것이다. 르네상스 보수주의자들에게 바로크는 퇴폐적, 추악한 것이었다. 엉뚱한, 이상야릇한, 어긋난, 어지러운, 기이한, 추한, 괴상한, 요상한, 해괴한, 별스러운, 혐오스러운과 같은 뜻이었다. 바로크 미술은 절묘한 명암대비를 통해 외형의 아름다움보다 복잡한 내면을 묘사했다. 바로크 음악은 화려한 기교의 화성을 통해 인간의 감정을 드러냈다. 바로크 건축은 현란한 장식을 통해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5> 트집을 잡다? : 시비를 걸다?

두 낱말 모두 싸움을 거는 것처럼 여겨지나 그런 뜻과 거리가 멀다. 트집의 사전 정의는 조그만 흠을 들추어내어 불평하거나 비난하여 남을 괴롭히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 부리는 성질인 몽니와 일이 잘 안 되도록 몹시 방해하는 까탈이 있다. 트집을 부리다, 몽니를 부리다, 까탈을 부리다는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트집이란 원래 그런 뜻이 아니다. 옻나무에서 옻액을, 소나무에서 송진을, 고로쇠나무에서 고로쇠액을 얻기 위해 나무에 흠집을 낸 것이다. 트집은 내는 것이지 트집을 잡을 수는 없다. 트집은 몽니나 까탈처럼 부리는 것이 아니다. 고로쇠물을 얻겠다고 나무에 트집을 내 깔대기를 꼽은 모양은 곰쓸개즙(熊膽)을 얻겠다고 살아있는 곰의 배에 대롱을 꼽은 것처럼 비추어진다. 동물은 말할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6> 안면과 얼굴; 무엇을 가꿀까?

두 낱말 모두 비슷한 뜻이긴 한데 차원이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다르다. 얼굴을 뜻하는 우리말로 낯, 쪽이 있다. 낯 두껍다는 얼굴이 두꺼워 뻔뻔하다는 뜻이다. 맨 얼굴은 민낯, 얼굴빛인 낯빛은 안색(顔色)이다. 쪽팔린다는 말은 얼굴이 팔린다는 뜻이다. 얼굴을 뜻하는 한자로는 안, 면, 용이 있다. 안(顔)은 머리(頁)를 중심으로 하는 얼굴이다. 면(面)은 얼굴 윤곽이 어느 쪽 방향으로 드러난 모양이다. 면상(面相)은 영어 face에 가장 가깝다. face의 어원은 라틴어 facies인데 납작한 모양의 판자다. 인간의 얼굴은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납작한 편이다. 그런 납작한 얼굴 모양이 면상이다. 용(容)은 머리만이 아니라 머리(宀) 아래 골짜기(谷)처럼 많은 부위를 담고 있는 몸 전체의 얼굴이니 몸얼굴..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7> 빈축과 비난 ; 빈축하면 비난받는다

중국은 옛날부터 허풍이 센 나라다. 속된 말로 뻥이나 구라가 세다. 그런데 그 뻥구라가 재미있다. 의미 깊은 이야기를 담은 텍스트 장자도 붕(鵬)이라는 새와 곤(鯤)이라는 물고기의 엄청난 크기를 과장하는 구라로 시작한다. 중국의 4대 미인을 설명하는 구라도 상상을 초월한다. 서시가 호수에 얼굴을 비추니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것을 잊고 가라앉았다(浸魚).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왕소군을 보고 날갯짓하는 것을 잊고 떨어졌다(落雁). 달이 초선을 보고 기죽어 구름 뒤로 숨었다(閉月). 꽃들이 양귀비를 보고 바짝 움츠리고 말았다(羞花). 빈축은 이다지도 아름다운 4대 미인 중에 서시로부터 유래했다. 서시는 늘 얼굴을 찡그리고(嚬) 쭈그리며(蹙) 빈축(嚬蹙)했다. 오히려 그 모습이 정말 아름다워 남자들은 그 모습에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8> 위인전과 인물전 ; 무엇을 읽을까?

어릴 적부터 많이 들은 말 중의 하나가 영웅전이나 위인전을 많이 읽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책은 위대한 사람의 훌륭한 점들만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비근한 예로 링컨 위인전은 어릴 적부터 무척 정직한 소년으로 역경을 극복하며 따뜻한 인간애를 가지고 노예해방을 이루어낸 위인이며 영웅이라는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한쪽 측면으로만 맞는 말일지 모른다. '링컨의 진실'책에 보면 링컨의 또 다른 측면이 보인다. 여기서 링컨은 노예해방보다 오로지 중앙집권을 위해 협박, 회유, 흥정을 통해 싸우기도 하고 어르기도 했던 집요한 인물이다. 휴머니스트보다 내셔널리스트다. 노예해방은 중앙정부가 있는 북부에서 탈퇴하려는 남부를 억눌러 하나의 굳건한 미합중국(USA)을 이루기 위해 절실했던 전략적 선택이었다.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