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 587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9> 당황과 황당 : 느닷, 터무니, 뜬금, 어이없다

한쪽은 한자, 다른 한쪽은 우리말인데 우리말이 더 재미있고 다채롭다. 먹던 빵에서 한 마리 바퀴벌레가 나오면 당황하고, 반 마리 바퀴벌레가 나오면 황당하다는 우스개 말이 있다. 반 쪽이라면 바퀴벌레의 누런 체액이 먹던 빵에 흘렀으니 더 놀란다는 뜻이다. 그런데 당황과 황당은 글자 순서만 거꾸로가 아니라 뜻이 다르다. 당황(唐慌)은 깜짝 놀라 정신없이 어리둥절해지는 것이다. 원인의 기미를 뜻하는 느닷(indication of cause) 없이 갑자기 일이 생기면 깜짝 놀라니 당황한다. 황당(荒唐)은 진실과 반대말로 실속없이 근거없이 큰소리치는 허풍이다. 집 지어진 터의 무늬가 없다는 터무니없음도 실속 근거없는 허풍이다. 하늘에 뜬 구름인 뜬금 어원설보다 시장에서 띄운 물건값인 뜬금 어원설이 더 그럴듯한 뜬..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0> 쑥맥, 바카야로 : 꺼벙이, 멍충이, 바보

누가 이 낱말을 내게 한다면 화가 난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하다.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낫이 ㄱ(기역)자로 생겼는데 모르니 글자를 한 자도 모르는 일자무식(一字無識)이라는 뜻이다. 까막눈이라고도 하는데 새끼를 낳으려고 눈이 먼 어미새의 눈이 까막눈이다. 까막눈이 된 어미에게 다 자란 새끼는 먹이를 물어다 준단다. 그래서 까막눈은 효도를 실천하는 새의 아름다운 모습이지 무식의 뜻은 아니다. 무식하다는 뜻으로 쑥맥이 있다. 콩(菽)과 보리(麥)도 구별 못하는 숙맥불변(菽麥不辨)에서 왔다. 콩과 보리도 모르니 얼마나 무식한가? 일본어 바카야로(馬鹿野朗)도 비슷하다. 사슴(鹿)과 말(馬)도 구분 못하는 무식한 녀석(野朗)이다. 조고가 진시왕의 아들 호해에게 사슴을 가리켜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1> 가르침과 교육 : 에듀케이션

세 낱말은 비슷하다. 그러나 메커니즘과 다이내믹스가 전혀 다르다. 가리키다는 어떤 방향을 지시하는 것인데 가르치다는 먼저(先) 태어난(生) 선생님(teacher)이 늦게 태어난 어린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밭이나 논을 일구기 위해 땅을 가는 것과 같다. 땅을 간다는 것은 큰 덩어리의 흙을 될수록 작은 가루로 만드는 과정이다. 사람을 가르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람 머릿속에 덩어리째 들어 있어 쓸모없는 무언가를 가루가 되도록 쳐서 쓸모있게 만드는 일이 바로 가르치는 것이다. 밭갈이나 논갈이처럼 머리갈이다. 가르치다에 해당하는 한자는 교육(敎育)이다. 교(敎)는 책에 담긴 말씀(爻)을 아이(子)가 알도록 회초리(文)를 들고 치는 일이다. 교육을 위해 적당한 체벌의 회초리가 필요함은 敎라는 한자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3> 기와 촉 ; 어떠한 관계일까?

어떻게 하면 기가 있는 사람과 촉이 좋은 사람이 될까? 동양철학에서 기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이(理)를 위주로 하는 주리론적 성리학과 대척하는 것이 기철학이다. 생명의 원천인 정(精)을 퍼져서 흐르게 하는 근본 에너지가 기(氣)이며, 그 기가 어느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무형의 벡터가 신(神)이다. 중국의 한(漢)의학에서 벗어나 우리 나름의 한(韓)의학을 개척한 허준의 동의보감에서도 정-기-신은 오장육부의 건강을 관할한다. 정-기-신은 하나의 맥이며 기는 그 중심을 이룬다. 그런데 생기, 원기 등의 이 기가 끼가 되면 기의 온전성이 사라지고 요상한 것이 되버리고 만다. 바람기, 도박끼, 장난끼에서 처럼…. 여기서 끼는 기에서 온 말로 추정된다. 끼가 많은 사람이란 어느 방면에 재주가 많은 사람..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4> 노가리, 뻥, 구라, 후라이 : 거짓말

이 낱말들은 모두 좋은 뜻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로 알아보면 재미있다. 우리에게 가장 흔한 생선이었던 명태는 다양하게 변신한다. 바다에서 잡힐 때는 명태, 안 얼려서 오면 생태, 얼려서 오면 동태, 반만 말리면 코다리, 완전히 말리면 북어, 얼리고 녹이며 말리면 황태다. 이런 명태의 새끼가 맥주 안주인 노가리다. 명태알인 명란젓에는 셀 수조차 없을 만큼 알이 수북하다. 그 알들이 다 새끼가 된다면 얼마나 많은 노가리들이 나오겠는가? 그래서 노가리깐다는 말은 실속없이 말이 아주 많다는 뜻이다. 거짓말은 그 어원이 깊다. 세종의 아들인 세조가 수양대군 때 어머니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석보상절 안의 거즛말에서 왔다. 참말, 정말과 달리 거짓말은 비속어가 많다. 공갈(恐喝)은 거짓말이 아니라..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5> 감기와 독감 ; 더 치명적인 바이러스

두 낱말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바이러스에 의한 것인데 더 심한 바이러스가 있다. 감기는 기를 느낀다는 뜻으로 感氣라 쓴다. 아마도 추운 기운을 느낀다는 뜻이다. 그런데 감기(減氣)가 더 맞는 한자가 아닐까? 감기는 몸 밖이 추워서가 아니라 몸 안이 차서 기(氣)가 떨어지면(減)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떨어져 걸리기 때문이다. 아무리 추워도 바이러스가 희박한 남극, 북극 지역에는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더운 여름에도 몸의 기가 떨어지면 감기에 걸린다. 바이러스 중 리노바이러스 등에 의한 감기는 콧물로 코에 불이 난 우리말 고뿔처럼 몸 위쪽 증세가 가벼워 자연회복된다. 하지만 바이러스 중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독감은 몸살, 발열, 오한, 복통, 식은 땀 등 몸 전체..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6> 흥미와 재미 ; 잘하기 위한 동력

두 낱말은 많이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다. 그 뜻을 흥미롭게 캐면 재미있다. 하나의 한자에는 여러 개의 뜻이 있다. 원래의 뜻이 있고 여러 개로 파생된 뜻이 있다. 흥(興)이라는 한자는 동시에(同) 마주 든다(舁)는 뜻이 합쳐진 글자다. 동시에 마주 드니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일 興이다. 그런데 이 원래의 뜻에서 기뻐하다 등의 여러 뜻이 파생됐다. 동시에 마주들어 일어나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그래서 흥미란 기쁜 맛(味)이다. 어떤 일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은 그 일에 기쁜 맛을 느낀다는 뜻이다. 재미는 우리말인 것 같지만 한자인 자미(滋味)가 바뀐 말이다. 자(滋)라는 한자는 물(氵)과 우거진다(玆)가 합쳐진 글자다. 물을 주니 우거지도록 불어난다 뜻이다. 그래서 불을 滋다. 그런데 이 원래의 뜻에서..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7> 시집가고 장가간다; 결혼이 맞나?

남자가 장가가고 여자가 시집가는 것을 결혼이라 한다. 그게 맞을까? 장가(杖家)란 장인이 사는 집이다. 장(丈)은 키가 열(十) 뼘(又)이나 되는 나이 드신 큰 어른이다. 자기의 아버지는 아무리 어른이라도 장인(丈人)이 아니다. 다만 나를 키워주신 아버님일뿐이다. 하지만 신랑의 관점에서 볼 때 신부의 아버지는 아무리 키가 작아도 어려워서 크게 보이기 마련이니 장인이다. 똑같은 뜻의 말을 한 번 더 반복강조하여 장인어른이시다. 장인의 아내는 장모다. 요즘은 결혼을 결혼식장에서 하지만 옛날에는 장인의 집인 장가에서 했다. 요즘은 주로 낮에 하지만 옛날에는 해가 저무는 저녁에 했다. 예식을 치르고 나면 곧바로 어두운 밤이 되어 신랑과 신부는 설레는 첫날밤을 맞이했다. 이렇듯 남자가 장가드는 일이 장인의 딸인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8> 집 宇 집 宙 집 家

집을 뜻하는 한자들이 많다. 사람이 사는 집은 무엇을 뜻하고 있을까? 집을 뜻하는 이 세 한자들의 공통점은 모두 宀을 위에 쓰고 있다는 점이다. 면(宀)은 집을 갓머리처럼 덮어씌운 지붕을 나타낸 상형문자다. 宀 밑에 클 우(于)가 들어간 우(宇)는 아주 커다란 공간의 집이다. 宀 밑에 말미암을 유(由)가 들어간 주(宙)는 아주 길다란 시간의 집이다. 합쳐서 우주는 공간적으로 무한한 크기와 시간적으로 무한한 길이를 담은 집이다. 광활한 집인 우와 주와 달리 가(家)는 사람이 사는 집이다. 그런데 왜 宀 밑에 하필 돼지(豕)가 들어갔을까? 소, 개도 아니고…. 소가 들어간 뢰(牢)는 외양간 우리일 뿐이다. 개 키우는 집에 모르는 사람이 들어가면 갑자기 개가 튀어 나오는 것처럼 개가 들어간 돌(宀)은 갑자기 ..

[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9> 박테리아 감염 : 바이러스 교란

콜레라 등 박테리아에 감염된 질병과 에이즈 등 바이러스에 교란된 질병은 다르다. 박테리아는 곰팡이, 효모처럼 다수의 진핵세포를 가진 진짜 균(眞菌)과 달리 하나의 원핵세포를 가진 미세한 균(細菌)이다. 박테리아와 달리 바이러스는 우리말이 아예 없다. 중국어로는 병독(病毒)인데, 박테리아도 병이 되는 독이 되기에 어설프다. '총 균 쇠'라는 책 제목도 '총 병 쇠'가 맞다. 16세기 중남미에서 유럽으로 퍼진 매독은 박테리아에 의한 병이지만, 유럽에서 중남미로 퍼트린 천연두는 바이러스에 의한 병이기 때문이다. 박테리아는 생명의 기본단위인 세포를 가진 생명체다. 영양만 얻는다면 혼자서도 살며 숙주 세포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바이러스는 세포가 아니라 DNA나 RNA 형태의 유전자다. 생물은 아니고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