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639〉 우이팡(둘째 줄 오른쪽 첫째)은 현안에 관한 회의를 자주 열었다. 1933년 일본군이 화베이(華北)를 점령하자 ‘국제문제토론회’를 열었다. [사진 김명호] 개혁과 혁명은 혼란의 시작이지 마무리가 아니었다. 19세기 중후반 개혁과 혁명 바람이 불면서 중국은 조용한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어느 구석에서건 총질이 벌어졌다. 유서 깊은 골목에서 몽둥이가 춤을 추고, 일하는 사람은 일하지 않는 사람의 비판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 나지막하지만 힘 실린 목소리 붓처럼 곧은 자세에 학생들 환호 구애하던 국민당 고관 결혼 소식에 충격 받은 우이팡, 교육에 전념 전란·자연재해 잦은 시대 맞춰 ‘후생’을 교훈 삼아 23년간 재직 엉망이긴 교육기관도 마찬가지였다. 서구에서 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