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윤의 슬픈 중국 120

톈안먼 광장에 모인 200만 군중의 분노, 문혁 종식의 전조

톈안먼 광장에 모인 200만 군중의 분노, 문혁 종식의 전조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입력 2021.08.07 08:55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권력투쟁의 목적으로 마오쩌둥은 4인방의 선전·선동을 적극 활용했지만, 그들을 신뢰하진 않았다. 1975년 초 국무원의 만년 총리 저우언라이(周恩來, 1898-1976)의 건강이 급속도로 쇠약해지자 마오쩌둥은 덩샤오핑(鄧小平, 1904-1997)에게 군사·행정·정치의 3권을 떠넘기는 파격적 정부개편을 시도했다. 놀랍게도 4인방은 채 1년도 못 된 1976년 4월 7일 군중반란을 책동한 혐의를 씌워 다시금 덩샤오핑을 몰아낼 수 있었다. 저우언라이가 세상을 버린 지 석 달쯤 되던 날이었다. 4인방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덩샤오핑을 몰아냈나? 마오, ..

“종교의 자유 달라!” 문혁 말기 무슬림 순교자들

“종교의 자유 달라!” 문혁 말기 무슬림 순교자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입력 2021.07.31 08:55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이야기 627년 광주(廣州, 현재 광둥성 광저우)에 중국 최초의 청진사(淸眞寺, 이슬람교사원)가 지어졌다. 이후 1400년의 세월 동안 이슬람교는 중국 전역으로 꾸준히 퍼져나갔다. 2014년 현재 중국 전역엔 모두 3만9135개의 이슬람사원이 있다. 그중 2만5000개가 신장 지역에 집중돼 있다. 오늘날 중국공산당 정부가 인정한 55개 소수민족들 중에서 10개 민족은 무슬림들이다. 중국 내 무슬림 인구의 정부 집계는 총인구의 0.45%(600만)에서 2.85%(3900만)까지 상이한 수치가 있다. 다른 민간의 집계는 6000만 명에서 8000만 명을 헤아린다. ..

[朝鮮칼럼 The Column] ‘중국몽’이 인권·자유보다 더 큰 꿈인가

[朝鮮칼럼 The Column] ‘중국몽’이 인권·자유보다 더 큰 꿈인가 中대사 “천하대세 따라야” 발언, 대세 잘못 짚은 나라는 중국 세계는 인권·자유·민주로 가는데 중국은 ‘중화민족’ 부흥 내걸고 거꾸로 가며 세계 상대로 싸움… 中이야말로 대세 따라야 성공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역사학 입력 2021.07.27 03:20 얼마 전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가 한국을 향해 “천하대세를 따르면 창성한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높은 산맥의 나라” 중국의 대사가 “중국몽에 동참하겠다”는 “작은 나라”를 향해 “시진핑 주석의 영도 아래” 욱일승천하는 중국의 질서에 순응하라고 요구한 듯하다. 주권국가 간 외교의 프로토콜을 어기는 비례(非禮)의 언어지만 놀라거나 분노할 필요는 없다. 현재 중국 공산당은 ..

소수민족 겁주고 옥죄는 봉쇄 전략...‘중화민족’은 누구인가

소수민족 겁주고 옥죄는 봉쇄 전략...‘중화민족’은 누구인가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입력 2021.07.24 09:00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1996년 여름 네이멍구(內蒙古, 내몽골)의 후허하오터(呼和浩特)시 교외의 한 라마교 사원을 방문했을 때, 필자는 법전(法殿) 앞에 진열된 오백 나한상(羅漢像)의 코들이 하나 같이 모두 깨져 있는 참혹한 장면을 목격했다. 1967년 베이징에서 몰려 온 홍위병들의 만행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했다. 중국 정부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문혁 시절 네이멍구에선 34만6000명의 몽고족이 구속됐고, 그 중에서 2만7900명이 처형됐다. 1981년, 네이멍구의 당서기 저우후이(周惠)는 문혁 당시 79만 명의 몽고족이 구속되거나 밀실에서 조사를 받았다고 폭로했다..

“중화민족 부흥”… 문혁 때 죽였던 공자 다시 불러낸 까닭은?

“중화민족 부흥”… 문혁 때 죽였던 공자 다시 불러낸 까닭은?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입력 2021.07.17 09:05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문혁 시기 중국의 관변학자들은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를 노예제의 복원을 희구했던 노예주의 대변인이라 비판했다. 그들은 공자를 “공씨 둘째 아들” 쯤을 의미하는 “콩라오얼(孔老二)”이라 불렀다. “콩라오얼의 추악한 면모” “콩라오얼의 죄악(罪惡) 일생” “콩라오얼 죄악사(罪惡史)” 등등 문혁 시대의 정치 포스터뿐만 아니라 아동용 만화도 공자를 역사의 죄인으로 몰고 갔다. 문혁 이후 만신창이로 내버려졌던 공자는 2000년대 중반부터 중국공산당의 부름을 받고 다시 살아났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스타디움에서 아이들이 세계를..

약탈·방화·강간 저지르면서 해방군 자처한 소련군

약탈·방화·강간 저지르면서 해방군 자처한 소련군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마음이 교만한 정치인들은 과거사를 제멋대로 주물러서 세상을 우롱한다. 틈만 나면 그들은 얕은 지식을 끌어와 역사의 맥락에서 벗어난 허황된 주장을 마구 펼친다. 이념의 “죽창”을 휘두르는 그들은 늘 목소리가 격하고 눈초리가 사납다. 오도된 확신일까? 정치적 연막일까? 결국 “내 편 네 편”을 갈라 정치적 편익을 취하는 얄팍한 선동의 기술일 뿐이다. 얼마 전 한 인사가 고교생들을 향해 1945년 8월 한반도에 진입한 소련군은 해방군이며 미군은 점령군이라 부르짖었다. 그 주장의 근거란 게 고작 당시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 극동 25군 사령관 치스차코프(Ivan Chistyakov, 1900-197..

“사회주의 파괴 금지” 중국 헌법 1조가 부리는 무소불위 마법

“사회주의 파괴 금지” 중국 헌법 1조가 부리는 무소불위 마법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지난 6월 24일 홍콩의 자유언론 가 중국공산당 정부의 탄압으로 폐간됐다. 전 세계가 이구동성으로 중공 정부를 규탄하자 중공 기관지 (영문판, The Global Times)는 “는 폐간됐지만, 홍콩의 언론자유는 건재하다”며, 내정간섭을 멈추라 부르짖었다. 언론사를 문 닫게 하고 언론인들을 줄줄이 잡아가면서 대체 무슨 근거로 홍콩의 언론 자유가 건재하다 주장을 하고 있나? 그 주장의 논리적 근거는 놀랍게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총강 제1조는 “그 어떤 조직이나 개인의 사회주의 제도 파괴도 금지된다”고 명기하고 있다. 중공 정부는 가 중국 헌법이 허용하는 언론의..

총칼로 권력 잡은 자, 2인자의 총칼을 두려워한다

총칼로 권력 잡은 자, 2인자의 총칼을 두려워한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 기원전 247-195)은 천재적인 군사전략으로 자신을 도와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룩한 최고의 개국공신(開國功臣), 국사무쌍(國士無雙)의 명장 한신(韓信, 기원전 ?-196)을 제거했다. 한신이 모반하지 않을까 늘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린뱌오 역시 천재적 군사전략으로 마오쩌둥을 도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희대의 명장이었다. 린뱌오도 한신처럼 정치권력의 정점에서 불운의 최후를 맞았다. 한신과 린뱌오 모두 탁월한 군사적 능력이 액운을 자초했지만, 그들의 모반 혐의는 권력자가 지어낸 이야기일 수 있다. 누구든 마상(馬上)에서 권력을 잡아 황제의 지위에 오르면 군부의 실..

몽골 초원 위 떨어진 비행기에 시신 아홉이...

몽골 초원 위 떨어진 비행기에 시신 아홉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1971년 9월 13일 새벽 2시 30분 경 영국제 HS-121 트리던트(Trident, 삼지창) 운수기가 굉음을 울리며 몽고의 은드르항(Öndörkhaan) 부근으로 추락했다. 몽고인 목격자에 따르면 추락하는 비행기의 꼬리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날이 밝자 비행기가 떨어진 초원 위엔 불에 탄 시신 아홉 구가 나뒹굴고 있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파견된 몽골 외무부에 따르면 형체를 알 수 없이 짓뭉개진 시신들이었다. 아홉 구의 시신 중에서 딱 하나에서만 신분증이 발견됐다. 그 주인은 바로 당 서열 제2위로서 마오쩌둥의 후계자로 지명된 린뱌오(林彪, 1907-1971)의 장남 린리궈(林..

권력에 걸림돌이 되면...옛 동지도 반역자일 뿐

권력에 걸림돌이 되면...옛 동지도 반역자일 뿐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 송재윤의 슬픈 중국: 문화혁명 이야기 제갈량(諸葛亮, 181-234)은 눈물을 흘리며 아끼던 장수 마속(馬謖, 190-228)을 처형했다. 어리석게도 산 위에 진을 쳤다가 위(魏)나라 군대에 포위되어 휘하의 병사들을 죽음으로 내몬 군사적 패착의 책임을 엄중히 물었던 것. 이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고사는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는 공정한 법 집행의 의미로 널리 사용되어 왔다. 제갈량은 법과 원칙을 세우기 위해 마속을 처형했지만, 마오쩌둥은 혁명의 미명 아래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동지들을 차례로 제거했다. 1969년 11월 독방에 감금된 류샤오치(劉少奇, 1898-1969)가 의료 방치로 쓰러진 후, 채 한 해를 못 넘겨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