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흐르지 않는 黃河

[이규태 코너] 흐르지 않는 黃河 조선일보 입력 2003.05.13 20:26 중국문명의 발상원인 황하가 군데군데 바닥이 드러나 흐르지 않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중국 서북부의 사막화가 황하 유역으로 급격히 남하함으로써 강바닥이 낮아지고 강폭이 좁아져 수량이 반감한 데다 50년 만의 가뭄이 겹쳐 농·공업 발전용수는커녕 생활용수를 대지 못해 유랑민이 생기기 시작, 사스에 못지않은 새 공황으로 뜨고 있다. 양쯔강(揚子江)을 막는 삼협댐이 담수를 시작하면서 이 넘치는 남쪽 물을 메말라가는 북쪽 황하로 끌어 올리는 대운하를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이 남수북조(南水北調)는 진시황의 만리장성에 못지않은 역사적 대사업이 될 것이다. 이미 7세기인 수양제(隋煬帝) 때부터 있었던 남수북조다. 수양제는 분열돼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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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참기름

[이규태 코너] 참기름 조선일보 입력 2003.05.14 20:35 한국사람에게 별나게 민감한 미각으로 고소한 맛을 들 수 있다. 영어로는 고소하다는 말이 없고 '참깨 맛'이라 하고 일본 말도 '간(香)바시' 곧 향기롭다고 표현할 따름이다. 고소하다는 말이 있다는 것은 그 맛이 민족문화에 절여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도적의 보물 소굴에 들어간 알리바바 형은 그 바위문이 열리는 주문을 잊어먹어 도적에게 잡혀 죽는다. 그 주문은 '열려라 참깨'다. 이 말이 영어세계에 들어와 원하는 대로 되는 만사형통을 오픈 세서미, 곧 '열려라 참깨'라 한다. 참깨가 주문에 활용됐다는 것은 아랍문화권에서의 참깨의 비중을 말해주는 것이 된다. 참깨는 서역 대완(大宛)국 원산으로 한나라 때 장건(張騫)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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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호박방(琥珀房)

[이규태 코너] 호박방(琥珀房) 조선일보 입력 2003.05.15 20:37 러시아의 옛서울 상트페테르부르크 교외에 푸슈킨이라는 고을이 있다. 러시아 국민시인 푸슈킨이 이 고을에 있던 고등학교 졸업생이라 하여 볼셰비키 혁명 후 고을 이름을 그렇게 바꾸었다. 이곳에 러시아를 부강케 한 표트르1세의 황후 이름을 딴 예카테리나궁(宮)이 있고 넓은 프랑스 정원에 둘러싸인, 길이 300m에 55개의 방으로 이루어진 그 궁의 방 가운데 하나가 호박방이다. 이 방은 사방 14m, 높이 5m의 방 전체를 7t의 호박 판 22개로 장식한 세계에서 가장 호사스런 방이다. 이 방이 히틀러 군대에 약탈당한 지 60년 만에 옛 모습대로 복원되어 엊그제 공개되었으며, 오는 27일에 성대한 오프닝 행사를 벌인다는 보도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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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敎授 깐수

[이규태 코너] 敎授 깐수 조선일보 입력 2003.05.16 19:49 콩은 노랗기에 꽃도 노랗고, 팥은 자주색이기에 꽃도 자주색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콩꽃은 자주색이고, 팥꽃은 노랗다. 열매와 꽃이 같은 색깔일 것이라는 동일 연결 사고를 하기 때문이다. 자연에만 투영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됨됨에도 동일해야 하고 전 인격적으로 변함없기를 기대한다. 이이(李珥) 율곡 선생은 생각 많은 19세에 세상에 염증을 느끼고, 머리 깎고 급강산에 입산한 적이 있었다. 한평생 사는 데 크게 세 번, 작게는 서른 여섯 번 인생이 유전한다던데 율곡의 출가는 그 많은 유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한데 불문을 배척했던 당대 지배층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지탄당해 이 거유(巨儒)는 사직소를 올리기까지 했으니 바로 전 인격적 동일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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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오리 商法

[이규태 코너] 오리 商法 조선일보 입력 2003.05.18 20:36 문화권에 따라 선망하는 새가 있고 저주하는 새가 있다. 뜨내기로 사는 이동성 민족이 좋아하는 새는 하늘 높이 그리고 멀리 나는 새인데, 예외가 없고 붙박이로 사는 정착성 민족은 날지 못하고 따라서 멀리 가지도 못히는 새를 선호한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발이 없어 영원히 날기만 하고 죽어서 땅에 떨어진다는 극락조(極樂鳥)를 우러르고, 반대로 날지도, 달리지도 못하는 오리의 이미지는 형편없다. 서양 사람들 공처가협회 회원의 마크가 오리요, 낭비하는 것을 '오리와 논다'하고 빵점을 '오리알'이라 한다. 도날드 덕이 심술궂게 나온 것도 서양 사람의 오리 이미지와 무관하지 않다. 한데 정착성이 별나게 강한 우리나라에서 버들잎 물고 있는 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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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馬上才

[이규태 코너] 馬上才 조선일보 입력 2003.05.19 20:14 엊그제 18일 과천 경마장에서 고려·조선시대 기마병의 무술인 마상재(馬上才)가 피로되었다. 유럽을 휩쓸었던 몽골, 서역과 중국을 위협했던 흉노와 월씨국(月氏國)은 모두 북방 기마민족이요, 이 기마민족의 일부가 남하하여 신라와 일본의 지배층을 이루었다는 기마민족설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작금이다. 신라고분들에서 출토된 유물의 적지 않은 분량이, 백마가 그려진 자작나무 안장을 비롯, 마구(馬具)라는 것이 이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산이 많아 기마활동에 부적한 한반도이면서도 기마문화가 끈질기게 유지돼 내린 것도 이 기마민족의 유전질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미 고려 태조 때 귀순한 적장(賊將) 아자개를 맞는 환영잔치를 격구(擊毬)장에서 베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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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공직 윤리강령

[이규태 코너] 공직 윤리강령 조선일보 입력 2003.05.20 20:27 공무원의 청렴 유지 등을 위한 행동강령이 시작되자 요식업체, 골프장 등 관련 업계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조사비를 5만원 이내로, 관계 공무원과 식사는 2만원 이내로, 4촌 이내의 친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는 회피하며 부당한 상급자를 하급자가 고발할 수 있게 한다는 등 실천사항이 구체적으로 명시된 때문일 것이다. 부정부패의 원천적 차단시도는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조선조 때만 해도 그보다 몇 곱절 가혹한 제재가 시도됐었다. 이를테면 현감이라는 말단 수령일지라도 이권을 둔 혈연을 통한 접촉을 차단코자 수령의 아들마저도 아버지가 사는 관가(官家) 나들이를 할 수 없게 했다. 가족일로 급히 아버지를 만날 일이 생기면 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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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사스 報復論

[이규태 코너] 사스 報復論 조선일보 입력 2003.05.21 20:12 불교의 영향으로 조상들 짐승에게 가해하거나 살생을 하면 반드시 보복받는다는 업보(業報)사상에 투철했다. 태종11년에 처음으로 들여온 코끼리를 사복시(司僕寺)에서 길렀는데 이를 구경하던 공조(工曹)의 한 벼슬아치가 추하게 생겼다고 침을 뱉자 코끼리가 코로 말아 땅에 내리치는 바람에 죽는 변이 있었다. 전생불(前生佛)로 외경하는 코끼리인지라 이 벼슬아치의 죽음은 자업자득의 업보로 인식되었었다. 어릴 적 벌에 쏘이면 할머니는 쏘인 환부에 된장을 발라주며 너 혹시 참외밭 서리갔다가 쏘인 것 아니냐, 남의 집 닭둥지에서 계란 꺼내 먹다가 쏘인 것 아니냐는 등 벌의 가해를 나의 소행에 대한 업보로 합리화하려 꼬치꼬치 따져물었던 기억이 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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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대통령과 삼계탕

[이규태 코너] 대통령과 삼계탕 조선일보 입력 2003.05.22 19:41 존슨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면서 주방장과 갈등이 생겼다. 주방장은 프랑스 정통요리 솜씨를 인정받아 전임 케네디 대통령에게 고용되었던 프랑스 사람이다. 프랑스 요리를 좋아했던 케네디와는 달리 존슨은 더운 텍사스 출신인지라 냉동이나 얼음 음식을 올리도록 지시받자 주방장은 불복했다. 국가의 명예가 걸린 백악관에서 격이 떨어지는 냉동식품이나 얼음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입맛을 하루아침에 돌릴 수는 없는 일인지라 이 요리장은 "미국이 촌스러워져 간다"는 뼈대 있는 말을 남기고 백악관을 떠났다. 20세기 초 프랑스 8대 대통령을 역임했던 아르망 파리엘은 대식가요, 미식가였다. 대통령이 되면서 최초로 한 일이 바로 관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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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아까시 동산

[이규태 코너] 아까시 동산 조선일보 입력 2003.05.23 19:43 아까시 꽃철에 서울~부산 간을 기차로 달리면서 놀라웠던 것은 이 아까시나무 꽃이 한반도를 간단없이 뒤덮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도 아니요, 남산에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 동산도 아닌 아까시 동산이다. 아까시를 아카시아로 썼다가 식물학자들에게 호통 맞기를 여러 번 했는데 아카시아는 아열대 이남에서만 자라는 열대작물로 그 식생 상한이 대만(臺灣)이며,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는 아까시는 유사(類似)아카시아 가짜 아카시아로도 불리는 별종이다. 이 아까시가 우리나라에서뿐 아니라 프랑스·영국·일본 등지에서도 아카시아로 불리고 있고 불려온 것이다. 아카시아는 고대 이집트나 구약성서 지방에서는 불사의 상징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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