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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75세 안네 프랑크

[이규태코너] 75세 안네 프랑크 조선일보 입력 2004.06.18 18:27 금주는 안네 프랑크가 75세 되는 주간으로 전 세계 유대인 단체와 교회, 학살 관련 기관과 단체들에서 전시회와 일기 낭독회, 연극을 상연하는 등 기념행사가 한창이다. 안네가 25개월 숨어 지내던 방에 들른 적이 있는데 안네 자매가 키를 견주던 눈금이 벽에 있고, 침대머리에 배우의 사진들이 안네가 붙인 채로 있는 바로 그 방에서 안네의 미공개 사진들을 전시 중이다. 아마추어 사진가인 안네의 아버지가 찍어 처음으로 공개한 사진들로, 살았으면 75세 할머니가 됐을 그 세월을 압축하는 데 울먹임 없이 불가능하다는 관람객의 말이 인상적이다. 안네가 숨어 살았던 곳, 네덜란드의 전쟁자료관은 ‘안네의 일기’ 가운데 출판 직전에 아버지가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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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집시 EU의원

[이규태코너] 집시 EU의원 조선일보 입력 2004.06.20 18:35 ‘집시’ 하면 떠오르는 두어 장면이 있다. 런던에서 도버해협에 이르는 2번국도변 집시들의 캠프촌 가설무대에서 춤추던 집시 아가씨·선회하면 드러나는 팬티스타킹에 크고 작은 별무늬가 눈길을 끌었는데 무늬가 아니라 해진 구멍들을 땜질해놓은 누더기 별로 한두 개 떨어져나가 속살이 드러나 보이기도 했던 아가씨다. 또 한 장면은 이스탄불 옛 거리에서 곰 한 마리 끌고 다니며 곡예로 푼돈 벌이하던 집시 소년이다. 곰을 세워놓고 깡깡이를 켜며 곡예를 유도하자 이 곰 느닷없이 앞발을 들어 소년에게 펀치를 먹이는 것이었다. 곡예의 일종인 줄 알았더니 쓰러져 우는 집시 소년을 마구 때리는 것이었다. 벌이가 안 돼 몇끼 못 먹이면 이렇게 저항한다던 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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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오일조(五一租)

[이규태코너] 오일조(五一租) 조선일보 입력 2004.06.21 18:18 하루 10시간 일하면 5분의 1인 2시간을 세금몫으로 일하고, 하루 1만원 벌면 5분의 1인 2000원을 세금으로 무는 오일조(五一租) 세상이 됐다. 맹자를 찾아가 곧잘 시비를 따졌던 전국시대의 정치가 백규(白圭)가 어느 날 맹자에게 물었다. “백성의 소득 5분의 1을 취하여 정치를 하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자 맹자는 “백성으로부터 10분의 1을 넘겨 거두면 걸(桀)의 소행이요, 10분의 1을 못 미치게 거두면 오랑캐의 도리다” 했다. 걸은 중국정치사에서 악정의 상징이요, 오랑캐는 야만의 상징이다. 이 맹자의 십일조(十一租)는 동서고금의 정치가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가장 이상적인 적정 담세율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국정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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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한·영 역사축구

[이규태코너] 한·영 역사축구 조선일보 입력 2004.06.22 18:36 어제 수원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100여년의 시공(時空)을 압축시킨 이상한 축구시합이 있었다. 인천항에 기항한 영국 해군장병들이 백수십년 전에 입었던 옷차림으로 한국 해군장병들과 축구경기를 벌인 것이다. 바로 1882년 6월 영국 해군장병들이 한국땅에 처음으로 축구를 전래시킨 것을 기념하기 위한 역사축구였다. 그때 제물포에 입항한 영국 군함 플라잉피시호의 승무원들은 배 안에 갇혀 있기 답답해서 부두에 내려와 공을 찼다. 상륙허가를 받지 않은 터라 조선 군졸에게 쫓기어 축구공을 놓아둔 채 뱃속으로 들어갔고 공차는 것을 신기하게 보고 있던 아이들이 그 공을 주워 찬 것이 한국축구의 시축(始蹴)이었다. 이렇게 축구를 전하고 떠나가던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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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손가락 소포

[이규태코너] 손가락 소포 조선일보 입력 2004.06.23 18:45 어린 의붓딸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해온 범인이 보석되자 담당 판사에게 잘린 손가락 하나가 배달되었다. 인면수심에 격앙한 범인의 아내요 피해 어린이의 어머니가 보석에 대한 항의를 그렇게 끔찍하게 표출한 것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손가락은 인체의 한 부위 이상의 진한 뜻이 있어 왔다.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사람은 종교의식에 준해서가 아니라 저도 모르게 손바닥과 손가락을 맞춘다. 가장 예민하게 무형의 소원을 대행하는 유형의 부위가 손가락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라 때 여인 욱면이 아무리 염불을 하고 합장기도를 해도 세속에 흩어진 마음이 모두어지질 않자 합장한 두 손가락을 송곳으로 뚫어 노끈으로 꿰어 합심을 추구하기까지 했다. 수도승을 두고 쌍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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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입 씻이

[이규태 코너] 입 씻이 조선일보 입력 2004.06.24 18:20 미국 뉴욕의 한 초등학교에서 욕설을 한 어린이에게 오염된 입을 비누로 씻게 한 교사가 정직처분됐다는 AP통신의 보도가 있었다. 지금 70대 노인들이 서당에 다닐 무렵만 해도 험한 욕말을 하면 훈장이 샘가에 데려가 세 차례 양치질을 시켜 그로써 더러워진 입을 씻어내는 벌을 주었던 것으로 미루어 문화의 괴리나 격세지감을 절감케 하는 입씻이(洗口) 처벌이다. 조상들에겐 이목구비(耳目口鼻)를 통한 정신오염을 그 통로를 씻음으로써 불식될 것으로 알았던 심신(心身)문화가 꽤 발달했었다. 명군이던 영조는 성격이 조급하고 편벽과 애증(愛憎)이 혹심했다. 임금님의 맏며느리요 사도세자의 부인이며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閑中錄)’에 영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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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코벤트리의 톰

[이규태코너] 코벤트리의 톰 조선일보 입력 2004.06.25 17:54 실크로드 복판에 위치하여 동서무역에 상재(商才)를 부렸던 소그드 상인은 아기가 태어나면 탄생의식을 베푼다. 눈두덩에 꿀칠을 하여 눈을 못 뜨게 하고 손바닥에 아교를 쥐어줌으로써 펴지 못하게 했다. 상담(商談)할 때 이윤이나 물욕에 눈을 밝히지 말라는 눈두덩에의 꿀칠이요, 한번 들어온 재(財)는 악착스레 놓치지 말라는 손바닥에의 아교칠이다. 소그드 상인의 상재를 지탱해온 상업철학을 그렇게 태어나면서부터 터득시켰던 것이다. 시집갈 때 가마에 오르기 직전 한국의 어머니는 울면서 신부의 눈에 꿀칠을 하고 목화솜으로 귀를 틀어 막으며 어금니에 대추 씨앗을 물림으로써 매사에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시집살이 철학을 그렇게 터득시켰다.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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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대한문(大漢門)

[이규태 코너] 대한문(大漢門) 조선일보 입력 2004.06.27 18:11 | 수정 2004.06.27 18:11 덕수궁이 수리 중인 것을 계기로 이 왕궁을 둔 풍설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이 태조의 계비 강(康)씨 능(貞陵)은 지금 서울의 도심인 정동(貞洞)에 있었고 임금의 능 참배를 위해 지은 행궁이 경운궁(慶運宮)이다. 그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뀐 것은 1906년 고종 황제가 일제의 강압에 굴하여 제위를 순종에게 물리고 이 궁에 물러앉아 태상왕궁(太上王宮)이 됐을 때다. 고려 충렬왕이 충선왕에게 왕위를 물리고 물러앉은 궁이 덕자궁(德慈宮)이요, 조선조 태조께서 정종에게 왕위를 물리고 물러앉은 궁 이름이 덕수궁(德壽宮)이었다. 곧 덕수궁은 왕위를 물린 태상왕의 궁궐을 일컫는 보통명사였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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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드레스덴의 십자가

[이규태 코너] 드레스덴의 십자가 조선일보 입력 2004.06.28 18:39 지난주 22일 이 세상 양식의 눈들이 온통 드레스덴에 있는 성모교회에 쏠렸었다. 독일 최대의 프로테스탄트 교회요, 짓는 데 6100일이나 걸렸다던 교회가 2차대전 종전 전야인 1945년 2월 13일 영국공군의 대공습으로 6분10초 만에 와해했다 하여 전쟁과 문화재의 함수관계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돼 내려온 현장이다. 극작가 하우프트먼의 집이 이 교회에서 멀지 않았던지 이 대폭격으로 성인상(聖人像)의 파편이 자기집 정원에 날아들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또한 바흐가 연주했다던 오르간이 폭격 맞을 당시까지 이 교회에 있었으며 비오는 밤이면 이 잿더미 속에서 오르간의 저음소리가 들린다 하여 밤길을 피해다녔다고도 한다. 재건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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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드림 내각

[이규태코너] 드림 내각 조선일보 입력 2004.06.29 18:40 지금 사이버 공간에서는 역사상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장관들로 시공을 초월한 내각을 조각하는 드림 내각이 뜨고 있다. 김선일씨의 충격적인 죽음을 둔 정부의 무능력에 대한 반동이요, 권력 나눠먹기로 장관을 임명하는 관행에 대한 민심을 반영하는 드림내각이다. 그 많은 드림마다 빠짐없이 끼이는 분으로 왜란 중 크고 작은 36개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이순신(李舜臣) 국방장관, 신라시대 동북아시아 해상을 관장했던 장보고(張保皐) 해양수산장관, 분단을 막고자 남북을 내왕한 김구(金九) 통일장관, 남침한 거란의 적진에 들어가 담판으로 서북지방을 우리땅으로 만든 고려초의 서희(徐熙) 외교장관이 그분들이다. 옛 선비들 사랑에 모여 ‘만고도목(萬古都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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