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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서약하는 돌

[이규태코너] 서약하는 돌 조선일보 입력 2004.06.30 18:40 서양사람들은 성서에 손을 얹고 서약을 하지만 신라사람들은 돌멩이에 서약 내용을 적어 성소(聖所)에 묻음으로써 하늘의 보증을 받았다. 1935년 당시 경주보통학교 교장이던 일본인 오사카(大阪金太郞)란 분이 경주 근교 금장대(金丈臺)에 소풍갔다가 그 꼭대기에 앉아 쉬는데, 발에 돌 하나가 차였다. 주워서 보니 글자가 새겨져 있어 판독하니 “임신년 6월 두 사람이 하늘에 맹세한다. 지금부터 3년 동안 나라에 충성하며 과실 없기를 빌며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에는 하늘이 큰 벌을 내려도 감수할 것을 다짐한다. 난세가 되더라도 이 약속은 행할 것을 아울러 서약한다. 앞서 신미년 7월에 약속했듯이 시(詩) 상서(尙書) 예기(禮記) 전(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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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주말 여가시대

[이규태코너] 주말 여가시대 조선일보 입력 2004.07.01 19:08 7월 1일 어제부터 우리나라 근로자의 25%가 주말 이틀을 여가로 즐길 수 있는 주말시대로 접어들었다. 지금은 이렇다 할 변화를 못 느끼지만 먼 훗날 오늘을 뒤돌아 보았을 때 한국적 인생의 질이 달라지는 엄청난 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여가가 체질화하고 정착하기까지는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사회학자 웨브렌의 설명이다. 그 첫 단계로 그는 영국의 한 묘지에 서 있는 잡역부(雜役夫)의 묘비명을 든다. ‘친구들이여 울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제 아무 일 하지 않아도 되게 됐으니 말이다.’ 노동으로 고달픈 인생을 마쳤으니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슬프디슬픈 여가의 정의다. 곧 여가개념의 1단계는 고달픈 구속작업으로부터의 해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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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서역의 고구려사신

[이규태코너] 서역의 고구려사신 조선일보 입력 2004.07.02 18:33 실크로드의 길목 서역(西域) 사마르칸트 인근은 고대 터키인 돌궐제국의 지배 아래 강국(康國) 석국(石國) 조국(曹國) 하국(何國) 미국(米國) 사국(史國) 등 씨족국가들이 활거했는데 그중에는 당나라에 지배당하면서 귀화성이 되어 우리나라에도 그 후손이 번져왔다. 이 돌궐왕궁터에서 발굴된 7세기경 벽화 속의 두 인물이 예상했던 대로 고구려 사신임이 확인됐다. 현지 박물관이 이 벽화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명문(銘文)을 발견, 상석에 앉은 분이 돌궐의 바흐르만(拂呼? 650~670) 왕임도 밝혀졌다고 이곳에 들른 인하대 학술조사단이 확인했다 한다. 그 벽화 왼쪽에 머리에 새 깃 두 개를 꽂은 조우관(鳥羽冠)을 쓴 두 사람이 보이는데 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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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마포 나루

[이규태 코너] 마포 나루 조선일보 입력 2004.07.04 18:43 마포의 본 이름은 삼개요, 삼개 하면 삼개 삼주(三主)가 떠오른다. 나루를 지배했던 객주(客主) 색주(色主) 당주(堂主)가 그것이다. 객주는 집산하는 물화를 보관·위탁·판매하는 경제지배층이다. 삼개 미두(米豆) 객주가 사흘만 쌀을 매점하면 장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생기고 사흘만 새우젓을 매점하면 장안 밥상이 싱거워진다 하리만큼 위세가 대단했다. 무시로 객주가 풀어놓은 무시로장수들의 ‘용수 채반 시루밑 시누이 뺨치기 좋은 밥주걱―’ 하는 호객소리는 삼개의 청각문화재였다. 왕족이나 고관대작들의 돈을 늘려주고 거간하는 벼슬객주, 팔도의 물화가 돛단배로 집산되기에 날씨를 미리 알아 팔아먹는 바람비 객주에 이르기까지 전통사회의 경제 사회구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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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경덕진 도자기전

[이규태코너] 경덕진 도자기전 조선일보 입력 2004.07.05 18:23 독재 공포정치를 베풀었던 청나라 옹정제(雍正帝)가 영문 없이 급서했다. 실록에는 병으로 이틀 동안 앓다가 죽은 것으로 돼 있지만, 항간에는 맹독에 의한 즉사로 소문났었다. 그 가장 유력한 사인으로 옹정제의 어용 도자기에 비장시킨 맹독이요, 그 음모의 현장이 황제의 어용 도자기를 만드는 경덕진으로 드러났다. 북송(北宋) 경덕(景德) 연간에 이곳에 도요지를 두었다 하여 지명이 돼 버린 경덕진(景德鎭)에서는 역대 왕조의 그릇을 굽는 어기창을 대신해 왔기로 최고급 최정예의 도자기의 대명사가 돼 내리기도 했다. 이 경덕진에 도자기 그림을 그리는 화장(畵匠)으로 여사랑(呂四娘)이라는 아가씨가 있었다. 그의 할아버지인 주자학자 여유량(呂留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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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연기(燕岐)

[이규태코너] 연기(燕岐) 조선일보 입력 2004.07.06 18:30 행정수도로서 서남동(西南東) 삼방향이 공주 대전 청주 세 도시로 에워싸인 연기가 점 찍혔다. 한국사상 수십 차례 도읍을 정하고 옮겨오면서 일관된 것이 있었다면 그 지세(地勢)가 도읍풍수에 합당한지 여부였다. 고대의 풍수는 후세의 화복(禍福)에는 아랑곳없이 과학적이었다. 고구려 동명왕이 비류수(沸流水) 윗녘에 도읍을 정할 때 땅이 걸다는 경제적 조건과 산하가 험하다는 방위적 조건을 들어 정했으며, 백제 온조왕이 하남 땅에 도읍을 정했을 때도 북쪽을 한강이 두르고 동쪽을 북쪽의 큰 산이 막아주며 남쪽은 기름진 들판이 있고 서쪽으론 바다가 펼쳐진, 역시 방위와 경제조건을 충족시키는 조건을 택했다. 그렇다면 연기 땅은 어떤 풍수 내력을 지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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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新朝鮮'수난사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新朝鮮'수난사 입력 2004.07.07 18:45:34 | 수정 2004.07.07 18:45:34 일제 탄압 속에서 산고(産苦) 끝에 탄생했다가 종적을 감추었던 종합잡지 ‘신조선(新朝鮮)’ 창간호가 77년 만에 발견되었다. 창간호의 목록만이 당시 신문에 보도되었을 뿐 실물이 없어 한국언론사에서 증발할 뻔했던 민족문화재다. ‘신조선’이 민족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가늠해보자. 이 창간호를 발행한 날이 1927년 2월 10일이다. 당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노선으로 갈라져 있던 국내의 민족운동을 통합전선으로 발족한 것이 신간회(新幹會)요, 그 신간회가 발족한 것이 1927년 2월 15일이고 보면 ‘신조선’과 신간회는 탄생이 같다. 곧 ‘신조선’은 통합민족전선인 신간회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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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투표 자수

[이규태코너] 투표 자수 조선일보 입력 2004.07.08 18:41 영국작가 버나드 쇼의 아버지는 장례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기만 하면 웃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남의 불행을 좋아하는 얼빠진 사람으로 소외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고장에서는 고난을 등지고 편안하게 먼저 간다 하여 웃을 수도 있고, 고인의 죽음에 눈물 흘리는 형식적 관행을 따르지 않았다 하여 신선하게 받아들이기도 했다 한다. 개별 의사나 행동을 두고 정착사회와 이동사회의 태도가 이렇게 다르다. 우리나라처럼 아는 사람끼리 수백년 더불어 살아온 정착사회에서 소수의견은 다수의견에 수렴하는 것이 미덕이다. 하지만 유럽이나 중동처럼 낯선 사람끼리 살아온 뜨내기 이동사회에서 소수의견은 존중해 주는 것이 미덕이다. 19세기 말 에디슨 최초의 발명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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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한중 국경선

[이규태코너] 한중 국경선 조선일보 입력 2004.07.09 18:33 18세기 초 청나라에서 만들어진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 유럽판 지도에 한·중 국경선이 압록강과 두만강이 아니라 그 강에서 100~200리 북쪽으로 올라가 그려져 있어 국경선을 둔 논란의 불씨가 될 것 같다. 국경을 가르는 성에는 토성(土城) 전성(?城) 석성(石城)이 있고, 통나무를 엮어 잇는 책성(柵城)이 있다. 그 지도에 표시된 국경선은 당시 발해만에서 시작 동해까지 이르는 2000여리의 책성을 따라 그은 것이다. 이 책성 이남은 청나라에서 공인한 한국영토요, 얼마 전에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고구려 유적들이 집결돼 있는 지안(集安) 환런(桓仁)을 포함한 간도지방은 한국영토였다는 물증이기도 하다. 연행기록들에 보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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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식물유전 조약

[이규태 코너] 식물유전 조약 조선일보 입력 2004.07.11 18:17 사막국가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요,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 구리온은 사막의 정복 없이 이스라엘의 미래는 없다라며 총리, 국회의원직 등을 사임하고 네게브 사막에 들어갔다. 그곳에 벤 구리온 대학을 세워 사막농업을 개발하고 있는 현장에 들러본 일이 있었다. 그 사막농장에 열린 복숭아 하나를 따 주기에 먹어보았다. 생김새가 우리나라 개복숭아 같은 그 사막복숭아를 한 입 씹어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토록 감미가 진한 과일을 먹어본 일이 없다 할 만큼 달았기 때문이다. 충격받는 얼굴을 보고 연구원이 말했다. 사막의 과수는 염분을 품은 지하수와 싸워 이겨야 하기에 여느 담수로 자라는 열매보다 한결 달지 않을 수 없으며 지하수의 염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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