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 70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21>‘나와 너’의 복원

시소 타는 사람. 동아일보DB ‘오리진(origin)’의 붕괴는 인간관계에서도 필요하다. 관계의 오리진은 ‘나’와 ‘너’의 엄정한 분리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시작된 개인의 발견은 이런 생각을 공고화했다. 이제 ‘나’는 하나의 소우주이며, 누구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사적인 존재다. 또 독립적인 인격과 자유, 권리를 가지는 존재로 인식된다. 외부에는 ‘너’라고 하는 타인이 존재한다. ‘나’와 ‘너’가 분리돼 있고 서로가 침해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산업사회는 ‘너’가 ‘그것(it)’이 되는 비참한 현실을 가져왔다. 타인은 하나의 수단이 돼 나의 이익을 위해 일하고, 사물화돼 인격을 상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비정상적 관계의 오리..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22>‘지금’‘여기’를 보자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한 ‘파우스트’의 한 장면. 현대인은 끊임없이 소비를 하며 살아간다. 물건을 사는 운명에 처한 우리는 ‘소비자’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아직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몇몇 원시부족을 제외하고는 이 소비자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특정 물건의 소비자일 뿐 아니라 스스로가 소비를 당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를 소비하는 소비자는 누구인가. 독일 문학의 최고봉으로 불리는 괴테(1749∼1832)는 전 생애에 걸쳐 ‘파우스트’라는 위대한 작품을 완성했다. 인간과 악마의 계약이라는 흥미로운 사건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선과 악, 실존과 구원 등을 다룬다. 2부에는 왕을 도운 대가로 땅을 하사받은 파우스트가 등장한다. 그는 자신의 땅을 유토피아로 만..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23>해답은 ‘느림’에 있다

가끔씩 삶에 대한 의혹이 생긴다. 과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생활, 혹은 일이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일까?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 것일까? 정말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 이런 질문은 현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이미 내재돼 있다. 즉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질문은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가속도의 삶이 유발하는 자아이탈 현상, 즉 ‘엑스터시(ecstasy)’ 때문이다. 체코 출신 소설가 밀란 쿤데라(83)의 소설 ‘느림’에는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오토바이 위에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은 오직 현재, 이 순간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단절된 한 조각 시간에 매달린다. 그는 시간의 연속에서 빠져나와 있다. 그는 시간의 바깥에 있다. 달리 말해 그는 엑스터시 상태에..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24>느림의 견고함

여유와 평화, 인내와 근면을 상징해온 소. 삶의 속도를 늦추는 건 단지 긴장을 풀고 여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현재 생활에 더 강한 긴장을 불어넣고, 하고자 하는 일을 완벽에 가깝게 만드는 견고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되는 이백(李白·701∼762)은 방랑과 자유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술에 취해 강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익사했다는 전설이 나돌 정도다. 그처럼 분방하고 자유로운 기개가 그의 시를 만들어낸 원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성품은 간혹 단점으로 작용했다. 특히 젊은 시절에는 학문을 닦는 데 방해가 됐다. 이백은 한동안 상이산에 들어가 공부했지만 오랫동안 계속하지는 못했다. 적막한 산이 답답하게 느껴졌고 무엇보다 오랜 공부의 기간을 참아..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25>‘여백의 시간’

비워야 채울 수 있다. 그림은 곽호진 작가의 ‘Sailing on the Golden Forest’. 포털아트 제공 느림의 연장선상에 ‘비움’이 있다. 빽빽한 스케줄에 느림을 적용하면 시간 중간 중간에 텅 빈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많은 이들은 이 비움, 혹은 비워짐이 의미가 없거나 별 소용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이 비움이야말로 또 다른 채움과 충만을 위한 ‘결정적 배후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노자(老子)는 이렇게 말했다. “바퀴살 서른 개가 모두 한 개의 바퀴 중앙으로 모여 있다. 그러나 모인 자리가 비어 있어 그곳으로부터 수레의 쓰임이 생긴다. 흙으로 그릇을 만들되 그릇의 빈 곳으로부터 그릇의 작용이 일어난다. 문과 창을 내어서 방을 만들지만 그 비어있는 곳이 방으로 사용된다..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26>스펙 혹은 낙인

‘주홍글씨’ 주인공 헤스터 프린. 지금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그들에게 찍혀 있는 부정적인 ‘낙인’ 때문에 힘들고 아파한다. 창의성과 열정,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의 가치가 강조되지만, 여전히 그 이면에는 ‘스펙’이라 불리는 출신 학교와 학습능력, 그리고 경제적인 부(富)에 의해서만 가능한 다양한 활동들이 ‘낙인’이 되어 그들을 옥죄고 있다. 결국 이 시대 청춘들은 스펙이라는 낙인 때문에 정체된 삶을 살아가야만 하고 그로 인해 총체적인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작가 너대니얼 호손이 1850년에 출간한 ‘주홍글씨’는 19세기 미국문학 중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힌다. 남편 칠링워스와 아내 헤스터 프린은 미국으로 건너가 살기로 했다. 하지만 사정상 아내가 먼저 미국에 가게 됐다. 그 ..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27>스스로 낙인을 찍지말라

스스로를 옥죄는 감옥에서 벗어나야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 타인과 세상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낙인을 찍기도 하지만, 때로는 ‘내’가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같은 낙인은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미래를 향한 도전 의지를 꺾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낙인을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진나라에 악광이라는 관리가 있었다.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늘 모든 일을 백성의 편에서 처리해 백성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그에게는 친한 술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친구의 발길이 뜸해졌다. 의아하게 여긴 악광이 이유를 묻자 친구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번 자네와 술을 마실 때 내 술잔에 뱀이 들어 있었다네. 자네가 무안해할 것 같아 그냥 마시긴 했는..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28>극단을 넘어서라

다양한 주거공간의 가능성을 탐색한 ‘버티컬 빌리지’의 전시물 창조적인 관점을 확보하기 위해선 한 번쯤 자신의 생각을 뒤집어보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관점과 해석, 그리고 그것이 총체화된 세계관은 쉽게 뒤집어지지 않는다. 본질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우리가 극단의 관점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극단은 꼭 ‘양쪽 끝’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매몰되어 있다면 그 위치가 어디여도 ‘극단’이 될 수 있다. 중국 고전 ‘열자(列子)’ 양주편에서 양주는 우리가 잘 아는 백이와 숙제를 비롯한 여러 앞선 인물들에 대해 색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양주가 말했다. “백이는 욕망이 없었던 게 아니다. 고결함을 자랑하는 것이 지나쳐 굶어 죽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전계는 정욕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29>뒤집고,바꾸고,부정하라

세계관을 뒤집는 건 어렵지만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마치 동전의 양면을 뒤집는 것처럼. 자신의 세계관을 극단적으로 뒤집어 보는 건 당혹스러운 일이다. ‘과연 가능할까’ 하는 의문도 든다. 하지만 뒤집기로 마음만 먹으면 뒤집을 수 있다. ‘한비자’에서는 맹헌백이 보여준 겸손을 두고 이런 극단적 뒤집기가 이뤄진다. 맹헌백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 중 하나인 ‘상경’에 임명되자 친구인 숙향이 축하를 하러 간다. 그런데 집에 있던 말은 비쩍 말라있었고 높은 직책과 함께 하사받은 수레 두 대도 보이지 않았다. 이를 의아하게 여겨 맹헌백에게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예전부터 많은 백성들이 굶주린 것을 봐왔기에 말에게도 곡식을 주지 않는 것이고, 많은 노인들이 아픈 다리로 걸어 다니는 것을 봤기 ..

[이남훈의 ‘고전에서 배우는 투자’]<30>타인을 향해 소통하라

내가 아닌 상대방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소통이다. 동아일보DB 우리의 삶은 ‘관계의 연속’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부모 자식의 관계부터 친구, 부부, 동료 조직 내 관계까지…. 모든 것은 관계에서 시작되고 관계로부터 유지된다. 관계를 떠난 인간은 사회적으로 온전히 설 수 없고 자신의 정체성마저 제대로 유지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관계의 근원에는 ‘의사소통’이 있다. 올바른 의사소통이 이뤄지지 않으면 관계도 제대로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의사소통에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중국 후한 말기에 모융이라는 학자가 있었는데, 불교학에 아주 능통했다. 그는 주변의 유학자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불교학이 아니라 유학의 예를 들어 이야기를 했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불교학자들은 모융을 비판했다. 불교학에 자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