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 코너] 청계천

[이규태 코너] 청계천 조선일보 입력 2002.03.28 20:15 한양의 걸식하는 부랑자를 속된 말로 「꼭지」라고 불렀으며 청계천 다리 밑이 그들 본거지다. 한 다리 밑마다 꼭지딴이라는 우두머리가 있어 조직적으로 움직였는데 광교 꼭지는 북촌 김 대감댁 꼭지요 수표교 꼭지는 혜전(鞋廛) 꼭지라듯이 대가나 상가의 조직 폭력배 구실을 했다. 갑오개혁 때 이 꼭지 조직폭력의 공포로부터 해방시키고자 경무청으로 하여금 자주 소탕령을 내렸지만 워낙 권력 밀착이 뿌리깊어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 복개된 위를 고가도로가 달리고 있는 청계천을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민선 서울시장 후보들이 표 모을 궁리 끝에 생각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환경 단체나 환경 학자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이미 ..

이규태 코너 2022.11.27

[이규태 코너] 계란 세우기

[이규태 코너] 계란 세우기 조선일보 입력 2002.03.29 20:03 '계란 세우기' 하면 생각나는 것이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세울 수 없는 타원형의 계란 한쪽을 약간 짓눌러 세움으로써 세상에 불가능이 없다는 비유로 쓰여져 내렸다. 한데 이 같은 짓눌림 없이도 삶은 계란을 수평상태에서 팽이처럼 돌리면 제풀로 수직으로 서서 돌아간다는 사실이 입증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300년 동안 기적으로만 알려져온 이 계란 세우기가 물리적·수학적으로 입증된 셈이요, 콜럼버스가 굳이 계란 한쪽을 짓누르지 않아도 되는데 괜한 일을 했다는 것이 된다. 그 물리적 발견이나 수학적 입증이 얼마나 뜻있고 큰일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의를 끄는 것은 삶은 계란만이 회전 끝에 서는 것이지 날계란은 아무리 돌려도 서지 않는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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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은하 철도

[이규태 코너] 은하 철도 조선일보 입력 2002.03.31 19:45 은하속의 별들을 오가는 동화성의 소설로 생각나는것은 프랑스 작가 생텍쥐베리의 「별의 왕자들」을 들수 있다.왕자는 여섯 별나라를 거쳐 지구에 온다.첫째 별의 임금은 자기만이 최고라는 오만독존형(傲慢獨尊型)이고 둘째 별에서는 자아도취형의 사나이를 만나며 세째 별에서 만난 사나이는 망각을 위해 마시고만 사는 주정형이다.네째는 별을 평생 헤아리며 돈 벌것을 꿈꾸고 사는 이재형이요 다섯째는 가로등에 불을 키고 다니는 이타형(利他型)이며 여섯째별에서는 탐험을 즐기는 늙은 지리학자를 만난다.일곱번째 별인 지구에 와보니 왕만도 111명 지리학자 7000명 실업가 90만명 주정뱅이 750만 오만독존형 인간이 3억이나 되었다.왕자는 지구의 사막을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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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百八拜

[이규태 코너] 百八拜 조선일보 입력 2002.04.01 20:01 베트남 오지에 사는 묘족(苗族)은 축제나 결혼 상봉 같은 경사스러운 일은 108일을 미리 잡아 매듭 108개를 엮은 매듭끈을 하루에 한 매듭씩 풀어간다고 한다. 불교국가인지라 불교에서 영향받은 것인지 불교 이전부터 있었던 문화인지는 알 수 없다. 불교에서 정신통일이 된 경지를 삼매(三昧)라 하는데 그 삼매경도 108이다. 만다라에 배치된 불보살 수도 108존(尊)이요, 재앙의 소멸을 비는 주문(呪文)도 108번 외운다해서 백팔소재(消災)라 한다. 그래서 염주알 수는 108개다. 해가 바뀌는 제야의 종을 33번 치기도 하지만 옛날 사원에서는 108번 쳤다. 108수는 불교에서만 존중되는 수가 아니다. 불교 이전의 인도 바라문교에서 해탈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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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혀빼기 수술

[이규태 코너] 혀빼기 수술 조선일보 입력 2002.04.02 20:12 클레오파트라는 코가 조금만 낮은 것뿐 아니라 혓바닥이 조금만 짧았어도 세상이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그가 로마의 영웅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미모가 아니라 능수능란한 언변 때문이며 외국어에도 천재적 소질을 지녔다 한다. 사실 통역을 가운데 두고 연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언변 좋은 것을 서양사람들 혀가 길다고 한 데서 클레오파트라의 혓바닥 길이로 역사전환의 변수로 삼은 것일게다. 성서에 '기프트 오브 텅스(Gift of tongues)'란 말이 나오는데 성령(聖靈)을 받은 사람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외국어나 방언으로 전도를 하게 되는 경지를 뜻한다. 「습유기(拾遺記)」라는 중국 문헌에 서역 인소국(因 )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나라 사..

이규태 코너 2022.11.27

[이규태 코너] 酒道

[이규태 코너] 酒道 조선일보 입력 2002.04.03 20:28 신임 검사들을 위한 실무지침 가운데 지켜야 할 주도(酒道)가 들어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얼마나 마시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마시느냐가 문제라 전제하고 상사부터 차례로 술을 권한다, 상사에게는 두 손으로 권한다, 건배를 할 때에는 자신의 잔을 낮춘다는 등이 그것이다. 서양의 주도(酒道)가 수평사고에 뿌리를 두었다면 한국의 주도는 수직사고에 뿌리 박았다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이 굳이 주도를 가르쳐서가 아니라 은연중에 몸에 익혀 내렸는데 마을 사람들이 상하 가림없이 참여했던 향음(鄕飮)의 주법이 수직적으로 돼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단위로 날을 잡아 학덕있는 분이나 나이 많은 분을 주빈으로 상석에 모시고 신분이나 벼슬 그리고 평민이면 나이순으로 ..

이규태 코너 2022.11.26

[이규태 코너] 일본속의 元曉

[이규태 코너] 일본속의 元曉 조선일보 입력 2002.04.04 19:59 불교 교리와 철학에 그 많은 저술을 남긴 이론가 원효대사는 만년에 아무런 거리낌없다는 무애인(無碍人)을 자처, 무애박(無碍匏)을 치고 무애가(無碍歌)를 부르며, 무애무(無碍舞)를 추고 다니며 무지몽매한 민중에 불심을 적시고 다녔다. 곧 의상대사가 산간불교·귀족불교로 정법을 지켰다면 원효대사는 시정(市井)불교·민중불교로 편법 전도를 꾀한 것이다. 이 원효대사의 노래하며 춤추는 염불불교가 일본에 건너가 용약염불(踊躍念佛)의 씨앗을 뿌렸다. 7세기 나라(奈良)시대의 고승 행기(行基), 10세기 헤이안(平安)시대의 고승 공야(空也), 13세기 가마쿠라(鎌倉)시대의 고승 일편(一遍)의 노래하며 춤추는 염불에 의한 제도(濟度)의 뿌리를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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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시장 정찰제

[이규태 코너] 시장 정찰제 조선일보 입력 2002.04.05 18:46 남대문·동대문 시장 등 서울의 주요 재래시장에도 오는 5월부터 백화점처럼 가격 정찰제를 시행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제 유구한 한국적 상술이던 에누리며 덤이 발붙일 여지를 뭉개버리는 것이 되니, 공정거래라는 경제적 소득은 얻을지 몰라도 그에 잠재된 인심이라는 심정적 가치는 유린당한 것이 된다. 같은 시장이라도 인종·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먹고 입고 사는 것이 다른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파는 바자와 생김새며 말이며 차림새가 같고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끼리 팔고 사는 5일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바자에서는 속임을 당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심이며, 팔고 사는 상대방의 일거수 일투족, 달라지는 눈빛까지 놓쳐서는 안 되며, 일단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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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서울 소림사

[이규태 코너] 서울 소림사 조선일보 입력 2002.04.07 19:41 중국에서는 오악(五岳)이라 하여 다섯 개 명산을 숭상해왔는데 그 중 한복판에 있는 중악(中岳)이 숭산(嵩山)이다. 태실산(太室山) 소실산(少室山)으로 불리는 두 개의 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황하의 치수를 성공시킨 전설속의 임금 우왕(禹王)이 두 부인을 거느렸는데, 젊은 쪽이 소실산이요 첩을 소실이라 부르게끔 원인 제공을 한 바로 그 산이다. 495년에 북위(北魏)의 효문제가 인도에서 온 고승을 위해 절을 소실산 두메에 짓고 소림사(少林寺)라 했던 것이다. 신라 유학승들이 반드시 들러 좌선 한번 하는 것을 소원으로 삼았던 곳이 바로 소림사 초조암(初祖菴)이다. 바로 선종(禪宗)의 우두머리인 달마대사가 면벽 9년 도를 닦았던 암자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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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코너] 舞草

[이규태 코너] 舞草 조선일보 입력 2002.04.08 20:56 안면도에서 열릴 국제 꽃박람회에 중국 운남성에서만 자라는 콩과식물인 무초(舞草)가 전시된다 한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면 그 잎새들이 리듬에 맞추어 위아래로 흐느적거린다 하여 무초다. 어른 목청보다 아이 목청에 민감하고 남자 목청보다 여자 목청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빠른 리듬보다 느슨한 리듬에 민감하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춤추다가도 멎어버린다 한다. 인도 무굴제국의 3대 황제 때 신하 한 사람이 성가(聖歌)인 라가를 연주하여 꽃을 피웠다는 기록이 있으나 과장된 기록으로만 여겨왔었다. 한데 이를 범연하게 보아 넘기지 않았던 찰스 다윈은 미모사(함수초·含羞草)와 봉숭아 앞에서 색소폰을 불어 그 잎이 자극받아 운동을 일으키는가 여부를 실험했다. 미..

이규태 코너 2022.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