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코너] 당나귀젖 크림

[이규태코너] 당나귀젖 크림 조선일보 입력 2003.08.10 16:29 지난주 영국에서 발굴된 2000년 전 로마시대의 화장품이 공개되었다. 그 중 크림통에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는 크림이 나왔는데 학자들은 당시 귀족사회에 유행했던 당나귀젖을 응고해 만든 크림일 것으로 추정했다. 질박하고 사치와 향락을 배격했던 로마사람들이 화장에 빠져든 것은 그리스문명을 접하기 시작한 기원전 150년 이후로 본다. 당시 우국(憂國)의 철학자였던 루크레튜스는 「부모가 땀흘려 번 돈으로 딸들은 외국에서 들여온 화장품 사는 데 낭비하고 아들들은 밤낮 도박과 술판으로 지새우니 나라 앞날을 뻔히 내다 볼 수 있다」고 개탄했다. 로마의 백과사전이랄 「박물지」를 지은 프리니우스는 당시 대표적인 고급화장품으로 당나귀의 젖 크림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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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피어싱 경고령

[이규태코너] 피어싱 경고령 조선일보 입력 2003.08.11 17:58 갓 태어난 아기들 포경수술이 유행하던 때의 일이다. 옛 할아버지들 손자놈들 고추 만져보는 재미로 존재확인을 한다던데 끝껍질이 없는 고추를 만져보고 기겁을 하고 돌아앉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조손 간의 거리를 느끼게 하는 이 육체 손상을 둔 조상들의 인식은 확고했다. 병자호란 중 남한산성에서 농성 중이던 중신들 간에 집단자살이 심각하게 논의됐었는데 자살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발부(身體髮膚)의 훼손이라 하여, 불효를 저지를 수 없다고 실행을 보지 못했었다. 신여성을 며느리로 맞은 시아버지가 귓불을 뚫고 귀고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를 짐짓 피해 귀고리를 뗀 후에야 큰절을 받은 사례도 알고 있다. 삼국시대 고분에서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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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키위 프루츠

[이규태코너] 키위 프루츠 조선일보 입력 2003.08.12 16:27 감귤의 고장 제주도에서 울면서 귤나무를 베어 없애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옛날에도 울면서 귤나무 뿌리에 독을 부어 고사시킨 일이 문헌에 나오는데 관에서 워낙 수탈이 혹심해서였지만 지금은 과잉생산으로 값이 폭락한 때문이라 한다. 그 귤나무 베어낸 자리에 대체작물로 키위를 기르고자 제주도 농가에서 뉴질랜드 현지 견습이 빈번하다 한다. 키위는 뉴질랜드 특산으로 알고 있는데 실은 원숭이 복숭아로 불리는 중국다래를 지난 세기 초에 뉴질랜드에 가져가 30년 동안 개량, 1930년에 처음으로 재배에 성공한 우리나라의 다래와 같은 조상의 열매다. 키위의 학명 가운데는 ‘Chinesis’라 하여 그 뿌리를 밝혀놓고 있다. '본초강목'에 보면 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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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대통령과 '하이 눈'

[이규태코너] 대통령과 '하이 눈' 조선일보 입력 2003.08.13 16:34 지난 50년간 7명의 미국 대통령들이 가장 즐겨 보았던 영화가 서부극 '하이 눈' 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20번이나 이 영화를 즐겨 보았다. 그렇다면 미국 대통령들이 갖는 절실한 공감대가 이 영화에 표출되어 있다는 것이 된다. '하이 눈'의 어떤, 무엇이 미국 대통령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그 무엇보다 주인공인 보안관 게리 쿠퍼의 고독한 결정과 대결이 중대사를 둔 대통령의 경우와 들어맞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5년 전에 잡아넣었던 흉악범 일당이 복역을 마치고 복수전을 위해 돌아온다. 보안관 임무를 마치고 신부와 마차를 타고 떠나가던 쿠퍼는 그 소식을 듣고 마을로 돌아온다. 이 흉악범들과 대결코자 우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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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비단벌레 치마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비단벌레 치마 입력 2003.08.14 16:46:18 | 수정 2003.08.14 16:46:18 어제 개막한 국립민속박물관의 「우리옷 발자취」전에 별나게 눈길을 잡아두는 삼국시대의 치마가 있다. 영롱한 금녹색을 띠는 비단벌레(玉蟲)의 날개 두 쌍씩을 십(十)자형으로 엮어 옷감에 무늬를 놓아 지은 치마로,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빛깔이 달라진다. 경주 금관총(金冠塚) 발굴 때 옷무늬로 수식했을 비단벌레 날개들이 나왔으며 그 날개 크기로 미루어 저고리 하나를 비단벌레로 장식하는 데 140마리는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염색 이전에 자연 그대로의 색깔로 미를 추구했던 조상들의 미의식에 숙연케 하는 비단벌레 치마다. 익선관(翼蟬冠)이라 하여 매미 날개로 관모를 장식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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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비무초친(比武招親)

[이규태코너] 비무초친(比武招親) 조선일보 입력 2003.08.15 16:54 무예(武藝)가 남다른 여(女)호걸이 그 기량이나 호방함을 겨루어 자신보다 뛰어났을 때 신랑으로 맞이하는 것을 비무초친(比武招親)이라 한다. ‘금계야담(錦溪野談)’에 보면 왜국의 출중한 미모와 지혜를 갖춘 여호걸이 비무초친코자 왜국 나라 안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하고 조선으로 건너왔다. 스님으로 변장, 대궐 옆에 서서 호걸을 찾던 중 등극하기 이전의 효종(孝宗)이 그럴싸하여 호걸로서의 자질을 겨루어 보고자 접근했다. 한 달쯤 겪어보더니 ‘전하는 소국 영웅은 될지 몰라도 대국 영웅은 못 되옵니다’는 서한을 남기고 종적을 감추었다. 그 후 병자호란의 인질로 효종이 잡혀가 있을 때 청나라 황제의 초대로 음식을 대접받았는데 그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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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프리터族

[이규태코너] 프리터族 조선일보 입력 2003.08.17 18:10 미국에 게이트키퍼라는 새 직종이 있다. 걸핏 들으면 수위나 경호원의 직명을 업그레이드한 것으 로 착각하기 쉽지만 부사장보다 급이 높은 자리다. 게이트키퍼가 하는 일은 항상 새로운 일을 창 출하거나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일인데, 구상이나 아이디어만으로는 통하지 않는 미국인지라 그 구상을 구체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그 새 구상에 필요한 분야의 학술·기초·응용·생산·판매에 서부터, 심지어 그 물건 팔아먹을 지역에 인디언이 많으면 그 인디언의 문화·역사·의식주·의식구 조까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두어 팀을 구성, 연구하고 토론시켜 계획을 짜게 한다. 게이트 키퍼가 갖고 있는 전문직종은 12만종까지 세분화돼 있는데, 그 직종에 등록된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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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골프 대디

[이규태코너] 골프 대디 조선일보 입력 2003.08.18 15:51 20여년 전 한국인 교포가 미국아이의 고추를 만진 것을 성추행이라 하여 미국 법정에 선 일이 있다. 이때 미 법정의 요구에 따라 한국에서 아이들 고추 만지는 행위의 문화적·관습적 사례와 그 심리적 배경에 대해 진술서를 써보낸 적이 있는데, 세상이 좁아질수록 지역적으로 형성된 고유 문화끼리 충돌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잦았고 앞으로 더욱 잦아질 것이다. 세계 여자 골프에서 두각을 드러낸 앳된 한국 아가씨들이 온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전에 없던 한국인 갤러리의 매너가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것도 그런 것 가운데 하나다. 참관하는 선수의 아버지들이 경기 중인 딸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관여하는 것은 불법일 뿐더러 서양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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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육아 수당

[이규태코너] 육아 수당 조선일보 입력 2003.08.19 15:48 우리나라가 다산국(多産國)에서 세계 최저의 소산국(少産國)으로 추락하자 출산장려책으로 셋째 이상의 아이에게 육아수당을 지급한다는 법안이 성안되었다. 그 타당성 이전에 다산시절의 조건들을 되뇌어보는 것도 무위하지 않을 것 같다. 옛날에는 수당 없이도 아이 많이 낳는 부인들은 경제적 특혜가 컸다. 이를테면 논밭에 씨앗을 뿌릴 때 다산녀(多産女)를 사다 뿌리는 것이 관례가 돼 있었다. 농작과 다산은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아이 많이 낳는 주력을 열매 많이 열리는 풍작과 유감(類感)시키는 원시사고에서 합리적이다. 밭 갈 때 나경(裸耕)이라 하여 아들 많이 낳은 장정 불러다가 하체를 노출시켜 논밭을 갈면 풍작이 들 것이라는 생각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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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다듬이 심리학

[이규태코너] 다듬이 심리학 조선일보 입력 2003.08.20 17:02 경주 문화엑스포 개막식에서 천마(天馬)의 소리를 연상케 하는 다듬이 소리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가 눈길을 끌었다. 그 더욱 외국사람들에게 인상적인 것은 외국인에게 생소한 한국미의 한 유형으로 생활 속의 일상적인 도구로 미를 창출했다는 점이다. 이미 주방의 잡다한 도구들로 세상의 눈길을 끌었던 난타 공연이 그렇고 이번 경주엑스포에서 피로된 다듬이 퍼포먼스가 또한 그러하다. 다듬이는 옷감을 다듬는 도구가 아니라 한국여인의 심정을 표출하는 심금이라는 편이 옳다. 옛날 도리깨질로 콩 타작하는 타작마당을 보고 머슴들의 속마음을 낌새쳤었다. 콩이 타작마당에 얼마만큼 깊이 박혔나로 무의식 중에 힘이 들어간 돌이깨질에서 상전을 둔 불평불만의 깊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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