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코너] 가정 주식회사

[이규태코너] 가정 주식회사 조선일보 입력 2003.09.02 16:52 텃밭에서 가꾸어 먹던 야채를 시장에서 사고, 베를 사다가 지어입던 옷을 양장점에 포기한다. 집 수선은 목수에게, 머리는 미장원에 맡기고 취사 설거지 빨래 청소는 전자기기(電子器機)나 가정부 몫이다. 아이들 교육은 과외선생에게 포기하고…. 한국 가정의 현대화는 보다 많은 살림을 가정 밖으로 포기하는 과정이라 해도 대과가 없다. 그렇게 해서 늘어나는 여가를 현명하고 건설적으로 이용할 방책을 모르고 또 아무도 제시해주지 않아 자살과도 직결되는 여가 신드롬에 감염돼 가고 있다. 거기에 국회를 통과한 주5일근무제가 실시되면 어떻게 활용할지 난감한 이 여가 신드롬은 심각한 사회병리로 저변화할 것이 자명하다. 이를 사전에 막는 석학들의 제안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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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투전(投錢) 소원풀이

[이규태코너] 투전(投錢) 소원풀이 조선일보 입력 2003.09.03 17:10 유럽의 옛도시들에는 광장이 있고 광장 복판에는 분수 샘이 있게 마련이다. 이동민족으로 이합집산하는 나그네들과 그들이 모는 말이나 나귀의 식수를 위해서였다. 이 분수샘들은 상하 2단으로 돼 있는데 물 마시는 사람과 말을 차별하기 위해서다. 그 샘 밑바닥에는 으레 동전이 깔려 있게 마련이다. 이 유럽이나 호주, 동남아의 샘들 밑바닥에 던져진 한국 동전을 긁어모아 지폐로 바꿔 간 호주인 이야기가 보도되었다. 적지 않게 2500만원어치에 이르렀고, 그 무게만 730㎏으로 자루 8개에 나누어 담아들고 온 것이다. 그동안 외국에 나간 한국 관광객들이 던진 동전으로 묵과할 수 없는 거액이며, 왜 돈을 샘에 던지는가 그에 표출된 한국인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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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어르신네 행차

[이규태코너] 어르신네 행차 조선일보 입력 2003.09.04 16:48 임금은 말할 것 없고 재상의 행차에도 그 가마 가는 앞의 행인들을 비키는 전도(前導)꾼들은 요란스럽고 수다스러웠다. 이를 벽제( 除)라 했는데 앞을 쓸어 없앤다는 뜻으로, 그 횡포가 심하여 밀치고 넘어져 다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벽제에는 일화도 많다. 선조 때 명상 이항복(李恒福)이 조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벽제꾼에 의해 한 여인이 밀쳐 넘어졌다. 이 여인 집까지 뒤따라와 고함치기를 “머리 허연 늙은 것이 종들을 풀어 길가는 사람 밀쳐 넘어뜨리니 네가 정승이 되어 나라 위해 한 일이 뭣이기에 위세를 부리느냐”고 했다. 이항복은 “저러다가 지쳐서 돌아가겠지요” 하고 잡아들이려는 것을 몸으로 막았다. 대단한 서민의 민권의식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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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여성 割禮

[이규태코너] 여성 割禮 조선일보 입력 2003.09.05 16:09 아프리카의 전근대적 관행을 살려나가느냐 폐지시키느냐의 두 가지 현안이 온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나이지리아에서 혼외 출산을 한 여인을 돌로 쳐죽이는 석살(石殺)을 하느냐 마느냐의 최후심이 그 하나다. 처형하면 원시적이고 비인도적인 처사에 대한 온세계의 비난이 두렵고, 처형하지 않으면 기독교도의 압력에 굴복한 처사라 하여 종교적인 반동이 두려운 것이다. 그래서 변호인측에서는 이슬람의 율법으로 태아는 최대 5년 동안 뱃속에 살아 있는 것으로 돼 있기에 2년 전에 이혼한 남편의 아이일 수 있다는 절충안을 내세워 율법과 과학을 둔 판단에 관심을 끓고 있다. 다른 하나는 아프리카 전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여성 할례(割禮)의 금지다. 의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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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헐릴 뻔한 동·남대문

[이규태코너] 헐릴 뻔한 동·남대문 조선일보 입력 2003.09.07 15:55 | 수정 2003.09.07 23:22 임진왜란 때 한반도를 침공한 제1군인 고니시(小西行長)와 제2군인 가토오(加 正)는 전자가 천주교도요 후자가 불교도로 종교가 다른 데다 무공을 겨뤄온 앙숙으로 도요토미(豊臣秀吉)에게 조선침략의 무공을 앞다투어 과시하느라 초전부터 암투가 대단했다. 누가 먼저 수도 한양에 입성하느냐는 그 무공평가의 기준이 되기에 보다 빨리 입성하려는 암투는 가관이었다. 탄금대 전투 후 충주를 출발한 고니시군은 여주에서 한강을 건너 한양으로 직행하기로 했는데, 때마침 큰비가 내려 물이 불고 배가 없어 집을 뜯어 뗏목을 급조, 도강을 했는데 도중에 엎어져 적지 않은 병력의 손실을 보았다. 고니시는 도강한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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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파트타임 판사

[이규태코너] 파트타임 판사 조선일보 입력 2003.09.08 16:00 이웃 일본에서는 시민의 권리의식이 높아감에 따라 급증하는 조정재판이나 군소사건들을 해결하고자 지역별로 파트타임 판사를 임명키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재판소가 도시 편중이라 시골사람들은 불편하기 짝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타산지석이 아닐 수 없다. 파트타임 판사 제도가 잘 돼 있는 미국, 그 미국의 오클라호마 교외 한 타운에서 그 목가적(牧歌的)인 재판을 방청한 일이 생각난다. 전문적인 법관이 주재하는 곳은 카운티 이상의 도시로 이 작은 마을에서는 부정기적으로 치안판사(Justice of the Peace)가 재판을 했다. 주민 가운데 덕망 있는 분으로 주민 투표에 의해 선출되는 이 마을의 파트타임 판사는 인근 주립대학의 고고학 교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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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추석 아웃소싱

[이규태코너] 추석 아웃소싱 조선일보 입력 2003.09.09 15:58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다락에 앉아 글을 읽고 있는데 수레바퀴 만드는 노장인(老匠人)이 지나가다가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하고 물었다. 성현의 글이라고 하자 “그러하시다면 성현의 껍데기만 얻고 계시는구먼요” 했다. “신이 수레를 깎을 때 느리게 깎으면 곧질 못하고 급히 깎으면 맞질 않으니 알맞게 깎기란 70여년 해야 감(勘)이 잡히고 감이 잡혀야 손끝에 얻음(得)이 생기는 것이지, 말이나 글로써 전수할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도 자식에게마저 전수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성인이 터득한 오묘한 경지를 어찌 글로 얻을 수 있겠나이까” 했다. 정치도 정치학에서 얻을 수 있는 한계가 있어 경륜을 쌓아야 하고 공경이나 정성이 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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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대만 공화국

[이규태코너] 대만 공화국 조선일보 입력 2003.09.13 15:06 얼마 전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대만공화국으로 바꾸자며 일어난 15만 군중의 대규모 시위가, 중국의 눈에는 가시를 박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의 눈길을 끌었다. 이미 내년 3월에 있을 총통 선거를 겨냥해 대만이라는 국호가 표기된 여권을 발부하고 있어 중국의 기반에서 벗어나는 데 가속을 한 것이 된다. 명나라 말 이 중국대륙의 동남쪽에 붙은 섬을 동번(東蕃) 또는 토번(土蕃)이라 불렀던 중국말 음이 와전되어 타이완이 되었다기도 하고, 대만 동해안 지역에 취락한 원주민인 파이완족이 일찍 본토와 교류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타이완으로 와전되었다기도 한다. 대륙과 최초로 교류했던 대남(台南)의 지역이름이 그 뿌리라는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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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이슬람 종교난민

[이규태코너] 이슬람 종교난민 조선일보 입력 2003.09.15 17:01 기독교로 개종한 30대의 두 이슬람 사업가가 한국정부에 난민신청을 했다. 정치망명이 아닌 종교망명은 처음 있는 일이요, 온 세계의 분쟁이 두 종교 간의 적대에서 빚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종교와는 달리 온 교도들의 심정적 결속이 별나게 강한 이슬람이기에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기독교도와 연애만 해도 사형에 처하는데 하물며 이슬람을 버리고 기독교를 택한다는 것은 죽음을 무릅쓴 모험이다. 좀 옛날 일이긴 하지만 윌리엄 레이의 ‘이집트 풍물지’에 카이로 거리에서 손발을 묶인 채 개처럼 끌려 다니다가 나일강에 던져진 여인 목격담이 적혀 있다. 그 이유는 이슬람을 배교하고 기독교도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팔에 십자가 문신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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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코너] 고구려인 기질

[이규태코너] 고구려인 기질 조선일보 입력 2003.09.16 15:27 추석 연휴에 중국동포들의 노래자랑을 텔레비전으로 보았는데 노래자랑이 아니라 춤자랑이었다. 춤을 추기 위해 노래를 곁들였다는 편이 옳았다. 노래하는 사람도 그렇지만 빗속에서 비닐 우의 덮어쓴 수만 관중의 다수가 제자리에 일어서서 너울너울 춤들을 추었다. 연상되는 것이 중국 고대문헌들에 나오는 고구려 사람들의 낙천기질이다. ‘가무(歌舞)를 즐겨 밤만 되면 남녀가 어울려 춤추고 노래한다’(魏書)했다. 타임머신을 타고 천여년을 뒤돌아간 느낌이 들었던 노래자랑이었다. 백두산 가는 길에 차가 펑크가 나 수선하는 그 잠깐 동안에도 승객들이 춤추며 기다리는 것을 보았다. 연변의 갈비집에서 손님들이 줄줄이 좌석을 가로세로 돌며 춤추고 도는 것도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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