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코너 994

[이규태코너] 명상(瞑想) 산업

[이규태코너] 명상(瞑想) 산업 조선일보 입력 2003.09.17 16:09 | 수정 2003.09.17 16:10 고금의 학식을 담은 그릇이 크고 그 지식을 지혜로 농축 실용화하는 데 뛰어난 분으로 세조 때 재상 김수온(金守溫)을 든다. 그가 젊었을 때 성균관에 오가면서 하루에 책장 한 장을 찢어 소매 속에 넣고다니며 외워 한 질을 외우고 나면 책 한 권이 없어지곤 했다. 신숙주(申叔舟)가 임금이 내린 ‘고문선(古文選)’을 가보로 간직하고 있었는데 김수온이 빌리기를 간청하자 마지못해 빌려주었다. 돌려준다는 날을 넘겨 가져오지 않기에 마르냇가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가 문을 열어보았더니 그 책이 쪽마다 찢기어 방 천장과 벽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었다. 누워서 외우느라 그러했다는 것이었다. 김수온은 곧잘..

이규태 코너 2022.10.31

[이규태코너] 다리의 심층심리

[이규태코너] 다리의 심층심리 조선일보 입력 2003.09.18 17:03 소설이나 영화 속의 다리는 단절의 상징이냐 상봉의 상징이냐로 대별할 수 있다. 전자의 대표적인 다리가 유고작가 안드리치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드리나강의 다리」다. 이 다리를 두고 고대에는 로마와 게르만이 대결했고, 근세에는 오스트리아와 터키가, 근대에는 독일과 헝거리가 대결했고, 얼마 전까지는 종교와 민족이 다른 보스니아와 세르비아가 이 강을 두고 대결했었다. 이 다리 복판 난간에 구멍이 나 있는데 그 속에 검은 사나이가 살며 밤에는 꿈 속을 편력하고, 낮에는 요정으로 날아다니며 양 기슭에 사는 사람들에게 반목을 유발하고 다닌다는 전설이 있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워털루 브리지」「금지된 장난」등 명화 속의 다리들도 단절로..

이규태 코너 2022.10.30

[이규태코너] 미 원주민 이설(異說)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미 원주민 이설(異說) 입력 2003.09.19 16:22:18 | 수정 2003.09.19 16:22:18 스페인 연구진들에 의해 미국에 처음으로 이주한 원주민은 동북 아시아계가 아닌 호주와 동남아계로 판명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여태까지는 1만3000여년 전 얼어붙어 연륙돼 있던 알래스카를 통해 동북 아시아계 인종이 미대륙에 건너가 남하한 것으로 돼 있었다. 더욱이 한국 문화와 흡사한 문화를 누린 미국 원주민이 보고되어 한민족과 뿌리가 같다는 설마저 대두되어 온 터라 이 원주민 이설이 관심을 끈다. 산타페의 뉴멕시코 박물관에는 미국 원주민의 민속을 그린 대형 그림들이 전시돼 있는데 그중 삼한(三韓)시대의 성인식 광경을 그대로 그린 그림을 만나 놀란 적이 있다. 문헌..

이규태 코너 2022.10.30

[이규태코너] 大山 愼鏞虎

[이규태코너] 大山 愼鏞虎 조선일보 입력 2003.09.21 17:34 베를린 아래 포츠담에 프리드리히 대왕이 말년을 살았던 무우궁(無憂宮)이 있다. 궁을 지을 때 바로 곁에 있던 한 농부의 풍차방앗간을 수용하려 했다. 한데 이 농부 기개가 대단했던지, 백성 것을 빼앗아 호화를 누리려 합니까 하고 나를 죽인 다음 풍차방앗간을 하십쇼 하고 목을 내밀고 버텼다. 대왕도 크게 느껴 축소설계를 했고, 이 풍차방앗간은 지금도 민권의 성지로 무우궁을 웃도는 관광명소가 돼 있다. 우리나라에도 이 무우궁과 같은 일이 벌어졌었다. 한국의 중심이 서울이요, 서울의 중심이 광화문이다. 별세한 교육보험 창시자 대산 신용호가 그 광화문에 22층 교보빌딩을 거의 다 올리고 있을 때 일이다. 어느 날 청와대가 내려보이는 곳에서 1..

이규태 코너 2022.10.30

[이규태코너] 살신 문화사

조선일보 | 오피니언 [이규태코너] 살신 문화사 입력 2003.09.22 15:58:32 | 수정 2003.09.22 15:58:32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엽기적 살신(殺身)범죄가 발생해 험해가는 세상을 절감케 하고 있다. 피자 배달하는 중년남자를 납치해 목에다 시한폭탄이 장치된 수가(首枷)를 채우고 시한 안에 은행에 가서 돈을 강탈해 오면 수가를 풀어주고 그렇지 않으면 폭살한다는 살신 사주범죄가 발생했다. 돈을 강탈하기까지는 했으나 현행범으로 체포돼 시계 소리 나는 시한폭탄을 풀고자 폭약처리반의 출동을 기다리는 동안에 폭사하고 만 엽기범죄다. 역사에는 동서 가림 없이 스스로를 죽이거나 몸에 상처를 내는 살신문화가 강요돼왔다. 충효(忠孝) 등의 명분으로 미화됐던 순장(殉葬)도 그것이다. 고구려 동천왕의 ..

이규태 코너 2022.10.30

[이규태코너] 구멍가게

[이규태코너] 구멍가게 조선일보 입력 2003.09.23 15:53 서울 종로 큰길 복판에 소나 개 거위들이 낮잠 자지 못하게 금족령을 내린 것은 100년 전인 1904년의 일이요, 도로변에 ‘나무장수는 길 복판에 나뭇짐을 받쳐놓지 말 일’ ‘황토마루(세종로)에 소말뚝을 박지 말 일’ ‘종로 복판에 자리를 펴고 약재를 팔지 말 일’ 등의 표지물이 나붙어 있었다. 지금도 종로 양편에 피마(避馬) 길이라는 골목길이 곧게 나 있는데 대로를 가노라면 높고 낮은 대관들의 벽제( 除)에 쫓기고, 말 타고 가는 양반들 가는 길에 업드려 읍을 하느라 볼일 못보기에 이를 피해 골목길을 선택했던 것이 피맛길이 됐다. 하지만 이 골목길이 생긴 이유는 딴 데 있었고, 후에 피맛길로 이용됐다고 본다. 법전에 보면 앞서 3대로는..

이규태 코너 2022.10.30

[이규태코너] 트리 크라이밍

[이규태코너] 트리 크라이밍 조선일보 입력 2003.09.24 15:24 | 수정 2003.09.24 15:35 나무 목(木)자에 절단을 뜻하는 가로 막대(ㅡ)가 상중하 어디에 걸렸는가로 뜻이 달라진다. 아래 밑둥을 자르면 쓸모로 보아서 진짜인지라 본(本)이요 윗 가지를 자르면 덜 됐다해서 미(未)이고 중간에 양쪽으로 뻗은 곁가지는 별볼일 없다해서 말(末)이다. 이처럼 나무를 쓸모로만 보는 세상은 이미 지났다. 사람(人)이 나무(木) 곁에 있으면 쉰다는 뜻모음 글씨인 휴(休)가 된다는것도 바로 나무의 쓸모의 차원 전도를 예언한 것이 된다. 석가모니가 성도(成道)한 곳은 보리수 아래요 인류가 지혜를 얻은 곳도 에덴동산의 복판에 자라는 지혜의 나무다. 그리스도가 태어났을 때 동방박사들이 들고 와 축복했다는 ..

이규태 코너 2022.10.30

[이규태코너] 르가메와 홍종우

[이규태코너] 르가메와 홍종우 조선일보 입력 2003.09.25 16:28 최초의 한국소재 서양화가 보도되어 눈길을 끌었다. 고종황제가 어가(御駕)를 타고 청계천 수표교를 건너는 광경이다. 파리의 한 화랑에서 공개된 이 그림은 1876년경 세계일주를 한 프랑스 화가 르가메가 한국에 들렀을 때 그린 것으로 소개되었다. 화가 르가메는, 한말의 풍운아요 출세를 위해 김옥균(金玉均)을 살해한 홍종우(洪鍾宇)의 파리 체재시 후견인이요, 친한 친구였다. 당돌한 풍운의 뜻을 품었던 홍종우가 프랑스인 뮈텔 대주교의 소개장을 들고 일본을 거쳐 파리에 온 것은 1890년 말이었다. 사인(私人)으로서 유럽에 발을 디딘 최초의 한국인인 그는 당시 일본 동경제국대학 문과에서 프랑스말을 조금 익혔으니 준비된 풍운행각이었다. 그는..

이규태 코너 2022.10.30

[이규태코너] 서복 전시관

[이규태코너] 서복 전시관 조선일보 입력 2003.09.26 16:24 불로초 찾아 제주도까지 왔다는 진시황의 사자 서복(徐福)을 기념하는 전시관이 어제 서귀포 정방폭포 인근에서 개관했다. 폭포 근처 벼랑에 ‘서시가 이곳을 지나갔다(徐市過此)’라 새겨진 옛글을 바탕으로 유적을 정비하고 관광재로 창출한 것이다. 서시(徐市)는 서복의 이명(異名)이다. 서복이 불로장생약 찾아 떠난 것은, 이 기록의 출처인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司馬遷)이 태어난 지 겨우 70년 전에 있었던 일인지라 전설이나 가공의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다만, 기록처럼 진시황의 특명으로 동남동녀(童男童女) 3000명과 오곡(五穀)의 씨앗, 온갖 기술자들인 백공(百工)을 거느리고 불로초 찾아 떠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정치상황이나 인..

이규태 코너 2022.10.30

[이규태코너] 청계천과 로마분수

[이규태코너] 청계천과 로마분수 조선일보 입력 2003.09.28 18:15 「성문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로 시작되는 슈베르트의 가곡 「보리수」를 두고 한국사람은 고색창연한 성문 밖 자연히 솟아 흐르는 옹달샘가의 보리수를 연상한다. 하지만 이 우물은 산과 들에 솟아 흐르는 자연 샘이 아니라 유럽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조각이 발산하는 미관과 상수(上水) 용도를 겸한 인공 분수다. 이 조각분수의 뿌리는 고대 로마였다. 지금도 로마에는 바로크의 창시자 베르니니가 조각한 바르카차의 분수를 비롯해 트레비의 분수, 도나우강·갠지스강·나일강·라플라타강을 상징하는 네 개의 거상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대하(四大河)의 분수 등 분수의 고향임을 과시하고 있다. 지금은 상수의 기능은 상실하고 새들이 물을 찾아 날아..

이규태 코너 2022.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