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450

[뉴스 속의 한국사] 컴퓨터게임 없던 조선시대, '대나무 말' 타며 놀았대요

조선시대 어린이는 뭐 하며 놀았지? 대나무 두 개에 발판을 만들어 말처럼 타고 달리는 죽마놀이 주사위 이용한 승경도·승람도 지금의 보드게임과 비슷하대요 내일은 우리 친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이날이에요.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존중하고 그들의 사회적인 지위를 높이기 위해 정한 기념일이죠. 이날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에 색동회라는 모임이 중심이 돼 만들어졌어요. 어린이날에 우리 어린이들은 부모님에게 선물도 받고, 가족과 함께 나들이를 가거나 재미난 놀이도 하지요. 그런데 지금처럼 다양한 장난감이나 재미난 컴퓨터게임이 없었던 옛날 어린이들은 어떤 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을까요? ◇'이랴 말아 어서 가자' 조선시대 황해도의 어느 살림집에서 아이가 아버지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졸랐어요. "아버지, 대말 ..

[뉴스 속의 한국사] 정조는 왜 이순신 장군의 책 만들라고 했을까?

이순신 장군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기록·전투 활약상 찾으라 명령 이순신 일기 모아 만든 '난중일기'… 전쟁 상황부터 서민 생활 모습까지 생생한 경험 기록하고 있어요 내일 4월 28일은 충무공 탄생일이에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날을 기념하며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사랑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기념일이지요.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날은 1545년 음력 3월 8일이라고 해요. 이날을 양력으로 고쳐서 정한 것이지요. 우리가 이처럼 이순신 장군의 탄생일을 기념하듯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200년이 지난 1792년 조선 정조 임금 때에도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일이 있었어요. 어떤 일이었는지 살펴볼까요? ◇임진왜란 일어난 지 200년 후,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다 1792년, 정조 임금이 신하들에게 다음..

[뉴스 속의 한국사] 독도가 우리땅인 것 알려주는 증인 '이사부 장군'

우산국은 독도 포함한 작은 나라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 정복한 사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적혀 있어요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 여러 책서도 독도 우리땅이라고 밝혀 최근 일본이 자국의 외교 정책을 담은 보고서인 2015년판 외교청서를 공개했는데, 이를 계기로 또 독도는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어요. 또한 일본 아베 정부는 모든 일본 중학교 교과서에도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집어넣게 하는 데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죠.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길 때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떠올라요. 노래 가사 중에 나오는 신라 장군 이사부란 인물에 대해서도요. 이사부가 어떤 인물이었기에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에 등장하는 걸까요? ◇이사부로 우산국을 공격하게 하라 신라 지증왕 때에 ..

[뉴스 속의 한국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하이 땅에서 독립을 외치다

상하이 땅에 있는 프랑스 조계지, 일제 지배 안 받는 곳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하기 적합 체계적인 독립운동 가능했던 건 임시정부서 뜻 모았기 때문이에요 오늘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이에요. 1919년 4월 13일 중국 땅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 것을 기념해 만든 날이지요(더 정확히는 4월 11일이에요). 임시정부는 말 그대로 임시로 기능을 수행한 정부를 말해요. 정식 정부를 세우지 못하고 임시정부를 세운 것은 그 당시에 우리나라가 일제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왜 한국 땅에서 세워지지 않고 중국 땅인 상하이에 세워졌을까요?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1919년으로 역사 여행을 떠나볼까요? ◇3·1운동과 임시정부 우리는 조선이 독립된 나..

[뉴스 속의 한국사] 800년간 신라 왕궁 들어섰던 '초승달 모양의 땅'

탈해왕, 남의 땅에 숯 몰래 묻어 초승달 모양 땅을 자기 것이라 주장 제5대 신라 임금에 오른 파사왕 본격적으로 월성에 왕궁 만들어서 정사 돌보고, 외국 사신 맞았대요 신라의 왕궁터인 경상북도 경주시 월성에서 본격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됐어요. 지난해 12월부터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약 3개월 동안 월성 내부의 중심부인 석빙고 주변 지역에서 예비 조사를 벌인 결과, 월성에 왕궁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유적과 유물 등이 발굴됐죠. 대규모 발굴 작업을 정밀하게 벌여 그 흔적을 통해 월성에 있던 신라 왕궁의 크기와 모습을 알아낸 것이죠. 월성에 신라의 왕궁이 있었다는 것은 역사적인 기록에서는 찾을 수 있었지만, 아직 유적과 유물을 통해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역사적인 기록을 살펴보면, 신라의..

고려 사람들, 왜 금속활자 만들어 냈을까

나무판에 글자 새겨 찍는 목판인쇄… 쉽게 불타고 제작 시간 오래 걸려 만들어진 판 짜맞추는 활자 제작 고려 말, 외부 침략·반란 일어나자 튼튼한 금속 활자까지 만들게 됐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물은 직지심체요절이에요. 지금으로부터 638년 전인 1377년에 펴낸 인쇄물이지요. 그런데 그보다 138년이나 앞서서 금속활자로 인쇄한 인쇄물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어요. 1239년에 펴낸 것으로 알려진 '남명천화상송증도가'라는 것이에요. 그동안은 금속활자로 찍은 것을 다시 목판으로 새겨 찍은 것만 전해졌는데 2012년에 또 다른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세상에 알려졌고, 한 학자가 그 책을 연구한 결과 금속활자로 찍은 것이라고 주장한 거예요. 이 주장이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조선시대, 부패한 관리는 손자까지 벼슬 못해

권력자에게 뇌물 줘 청탁하는 '분경'… 고려 말 성행해 조선 초부터 단속 관리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도 감시… 태종 땐 5촌 밖 친척 私的 방문 처벌 지난 3월 3일, 국회 본회의에서 '김영란법'을 제정했어요. 이 법안은 법제처의 심의와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 공포되면 1년 6개월이 지난 뒤 시행될 예정이죠. 김영란법은 김영란 전 대법관이 2012년에 제안한 법률로 정식 명칭은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에요. 즉, 부정부패를 막아 깨끗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무원, 국회의원처럼 공공의 일을 맡은 사람이 부정한 청탁이나 돈을 받으면 법에 따라 처벌을 하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조선시대에도 관리들의 부정과 부패를 막기 위한 법이 있었대요. ◇분경을 법으로 엄격히 금지하다 조선..

[뉴스 속의 한국사] 100년 전 태극기, 지금 모양과 달라요

1876년 강화도조약 맺은 후 국기의 필요성 느낀 고종 명령으로 태극 문양에 8괘 그린 태극기 탄생 박영효가 사용한 4괘 태극기를 고종이 1883년 정식 국기 삼았어요 지난달 25일 문화재청은 강릉 선교장에서 간직해 온 태극기를 문화재로 등록할 예정이라고 밝혔어요. 1900년대에 만들어진 강릉 선교장 태극기가 역사성과 희귀성이 매우 높다면서 말이지요. 선교장은 300여 년의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이에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가옥 중 한 곳으로 인정을 받아 국가 지정 중요민속문화재가 됐지요. 그런데 선교장에서 어떻게 100년도 더 전에 만든 태극기를 간직해오고 있었을까요? 우선 선교장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아볼까요? ◇효령대군의 11세손이 강릉으로 이사하다 1700년 무렵, 세..

"금실 무늬 옷은 금지" 검소한 왕, 영조의 명령

"게을러지니 방석을 쓰지 않겠다" 스스로 앞장서 사치품 반대한 영조… 즉위 전부터 백성 가까이하며 절약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금실 제작법, 금실 무늬 옷감 금지된 후 사라져 280여 년 만에 금으로 만든 실인 금사(金絲) 제작의 전통이 되살아났어요. 지난달 11일에 문화재청은 국내 최초로 전통 금사 제작 기술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어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섬유복원연구소와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4년 동안 연구한 성과이지요. 금사로 옷에 무늬를 새기는 일은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 기술이었어요. 그러나 조선 후기에 영조 임금이 옷감에 무늬를 넣은 것을 금지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금실로 옷감에 무늬를 넣는 일도 사라져갔고, 금실을 만드는 기술도 없어졌죠. 그런데 영조 임금은 왜 무늬를 넣은 옷감을 ..

인사청문회, 고려 때부터 있었답니다

관직 임명자 자격 심사하는 '서경' 고려의 모든 관리가 거쳐야 했어요 대관·간관 합친 '대간'이 심사·감독 고위직 자손 채용하는 '음서'와 함께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졌답니다 얼마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있었어요. 당시 총리 후보자는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거치며 잘못을 따지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으며, 국회의원과 국민에게 자신의 포부와 계획을 밝히기도 했지요. 인사청문회란 국무총리나 장관 등 고위 공직에 지명된 사람 자신이 맡을 일을 잘해낼 수 있는지, 또는 도덕적인 자질을 갖췄는지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 국회의 검증 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지금의 인사청문회 같은 제도가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있었어요. 과연 어떤 제도였는지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볼게요. ..